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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가정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에요

2021.04.01

영화감독 김주환의 머니 스토리

 

여태까지 한 모든 활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청년경찰>과 <사자>를 연출한 김주환 감독입니다. 얼마 전 <멍뭉이>의 촬영을 마쳤고요. 요즘에는 옛날에 쓰고 싶었던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김주환

글은 거의 집에서 쓰는 편이에요. 3시간씩 세 번, 하루에 총 9시간 정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쓰고, 운동하거나 환기한 다음에 또 쓰고, 두 살 된 딸아이를 보다가 딸이 자면 밤 9시부터 새벽까지 다시 쓰죠. 그날의 분량을 썼다 싶으면 넷플릭스 시리즈 등을 보면서 공부도 하고요. 글을 오래 쓰다 보니 자세가 나빠져서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가끔 레고를 만들거나, 집에 손님이 올 때 제가 좋아하는 위스키를 내오곤 해요.

열다섯, 열여섯 즈음부터 이야기를 꽤 좋아했어요. 디즈니 영화나 <여인의 향기>, <굿윌 헌팅>, <제리 맥과이어> 등 옛날 영화들을 보면서 위로도 많이 얻었어요. 자취 생활을 오래 했는데, 영화를 보며 외로운 감정이 어루만져지는 순간이 있더군요. 자연히 ‘언젠가 내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긍정적인 가치를 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영화를 쓰기 시작했죠.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미 제가 살아온 삶 속에 있어요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가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전학을 갔는데요. 전공은 영화가 아니라, 국제정치학이었어요. 이 분야도 알고 보면 역사나 외교 등 스토리텔링 요소가 많았어요. 조지타운 대학교에 지원하고자 미사일에 대한 에세이를 쓴 적도 있죠. 그 후 3년 정도 공군에서 통역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고요. 그땐 그런 모든 것들이 재밌었어요. 계속 다양한 걸 경험하면서 뭔가 이야기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 같아요.

감독에 대한 꿈은 항상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큰 그림 안에서 영화를 공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쇼박스에 지원했어요. 그곳에서 홍보 마케팅과 기획 및 개발, 투자 업무를 맡으면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죠. 2012년에 <코알라>라는 독립 장편 영화를 만들면서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했어요. 그러다 <청년경찰>을 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김주환

여태까지 한 모든 활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했던 것 같아요. 홍보 팀도 그렇고 투자 팀도 그렇고, 결국 하고 싶었던 건 영화니까요. 영화는 스토리텔링이기도 하지만 결국 산업이잖아요. 쇼박스에서 일하면서 이게 어떻게 ‘팔리는지’를 많이 봤어요. 사실 이야기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은데, 이게 어떻게 팔릴지까지 고민해야 해요. 무엇이 좋은 연출인지, 제 정체성이나 브랜드는 어떻게 자리 잡을지 등도 살펴봐야 하고요.

(가장 최근에 작업 중인) <멍뭉이>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초심이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재미요. 현장에서 배우들, 스태프들과 함께 하며 겪는 우연한 순간들이 이야기에 영향을 끼칠 때가 있어요. 배우와 저의 감정선이 딱 맞아 들어간다든지, 배우가 제 생각보다 훨씬 잘 표현한다는지… 그 과정이 매우 재미있어요. 상업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내가 세상에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확신이 있으면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의 본질,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흡과 공감 등이 있어야 스스로도 연출가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작품에 투영할 때 이야기가 가장 잘 나온다고 생각해요.

영화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있는 모든 예술은 세상에 부족한 걸 채워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의 우리는 대부분 고립되어 있어서 외롭고, 때론 금전적으로 힘들기까지 하잖아요. ‘코로나 블루’라는 말도 생겼고요. 다들 힐링을 필요로 한다고 해야 할까요? 영화에는 사랑이나 용기 등 긍정적인 가치가 한두 개씩은 들어있어요. 사람들이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기운을 얻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죠.

물론 그런 영화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긴 해요. 저도 관객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욕망들이 보여요. 웃기려는 욕망이 앞서서도 안되고, 주제에 대해 관객이 닿지 못할 깊이로 혼자 파는 것도 문제예요. 감독으로서 섬세한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매 스토리마다 새로운 과업이죠.

모든 영화가 저에겐 새로운 도전이에요. <청년경찰>이나 <사자>는 우선 긴 촬영 기간이 도전이었어요. 촬영 현장에 나가 있으면 모든 게 체력전이거든요. 중거리 달리기라고 생각했는데 장거리 달리기더군요. 갑자기 비가 오면 현장에서 신을 고쳐야 할 때도 있었고요. <청년경찰>에서는 액션 신을 처음 찍어봤고, <사자>는 CG와 어마어마한 세트, 해외 촬영 등도 큰 과제였어요. 이번에 찍은 <멍뭉이>에는 강아지가 8마리나 나오고요. 그나마 다 큰 4마리는 말을 잘 듣는데, 갓 태어난 4마리는 엄청 뛰어다녀서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이제는 (영화를) 보는 습관이 많이 바뀌었죠. 그동안 내가 티켓을 사면 두 시간 정도 앉아서 영화를 봤지만, OTT는 가입비를 내고 매월 비용을 내면서 계속 채널을 돌리거나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골라야 하잖아요. 스스로 관객 입장에서 바라봐도, OTT에서 두 시간 앉아있기는 어려워요. 60분 안에 밀도 높게 이야기해야 하고, 극 중 캐릭터도 더 뚜렷하면서 오락성도 확실히 있어야 하고요. 저도 작가로서 여러 시도를 하면서 노력 중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로 관객을 더 재미있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를 더 와 닿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영화 소재마다 다 달라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니까요.

김주환

제가 어떤 이야기를 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면 끊임없이 되물어봐요. 그 신이 왜 재미있었지? 감독은 그 신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장치를 심었을까? 그 인물은 왜 웃겼지? 웃기기 바로 전에 어떤 장면이 있었지? 그게 플롯이랑 어떻게 연결되어 있지? 이런 식으로 계속 물어보는 거죠. 이야기 문법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한창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 드라마가 어떻게 이야기를 녹여내는지, 오락성은 어떻게 확장하는지 그 뼈대를 이해하려고 해요.

거대하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없지만 일흔 정도까지는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서 가족 영화에 대한 마음도 깊어졌어요. 이처럼 스스로를 작품에 투영할 때 이야기가 제일 잘 나온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저라는 사람도 가정이나 환경 안에서 계속 변하고 있으니까요. 그때그때 관객과 교감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훨씬 중요하죠. 나아가 제 자녀가 다 자랐을 때 “이거 아빠가 만든 거야”라고 보여줄 때 그들이 재밌어하면 좋겠어요.

 

제 영감은 항상 버디극이에요.

처음에는 월급을 받아 단편과 장편을 찍었어요. 회사에 기여한 노동으로 받은 월급이 결국은 제가 찍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양분이 된 셈이었죠. 그렇게 주말이나 휴가 때마다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는 따로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떤 커리큘럼이나 좋은 멘토가 도움이 될지언정, 내가 어떤 얘기를 할 수 있고 잘하는지는 이미 제가 살아온 과정에 그 DNA가 있으니까요.

친구들과 어울리며 겪은 즐거웠던 경험을 버디극(주로 두 명이 짝을 이루어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 장르)으로 되살리려는 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게 아니거든요. 영화를 만드는 일은 제 안에 있는 본질을 뽑아내고 시대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이에요. 한편 이야기꾼으로서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 돈을 초반에는 회사에서 번 돈으로 채웠던 것 같아요.

위스키를 매우 좋아해요. 2020년에 운 좋게 희귀한 위스키를 두 병 샀어요. 하나는 위스키를 좋아하는 영화 쪽 다른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다른 하나는 아끼고만 있다가 나중에야 땄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새 가격이 세 배, 네 배 올라서 이젠 살 수 없을 정도가 됐죠.

영화 홍보 일을 할 때, 소중한 날에 먹으려고 사놓은 위스키가 한 병 있었어요. 그런데 그 소중한 날이 오지 않았어요. 엄청 공들인 영화가 흥행하지 않았던 거죠. 그해 겨울까지 찬장에 계속 있는 위스키를 보며 제가 삶을 사는 방법은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도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그게 감독의 삶이고 인생인데, 그동안 너무 외적 목표에 모든 행복 지수를 맞추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날 그 위스키를 열어 아내랑 한 잔씩 마셨는데 너무 좋았어요.

토스 마이머니스토리

만화책이랑 레고도 좋아해요.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그 이야기에 너무 빠져있을 때가 있는데, 레고를 만드는 동안 그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좋더라고요. 배트모빌, 세서미 스트리트, 트리 하우스 등 여러 가지를 사서 조립해보고 있어요. 레고도 영화와 비슷한 면이 있어요. 이것도 세트고 그 안에서 미니 피겨들이 존재하잖아요. 이미 완성된 구조로 된 레고보다는 손쉽게 변형할 수 있는 세트를 선호해요. 물론 배트모빌도 멋지지만 그걸 보고 어떤 영감을 얻기는 쉽지 않거든요. 요즘은 레고에 조명을 달 수 있는 부품들도 있어요. 용돈이 생길 때마다 아내 몰래 레고를 샀다가 혼나고, 또 열심히 글을 써서 갚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웃음)

만화책은 <슬램덩크>와 <드래곤 볼>을 보며 읽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블리치>와 <나루토>도 즐겨보고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제 영감은 항상 버디극이에요. 강백호와 서태웅, 손오공과 베지터, 나루토와 사스케라는 두 인물 구조가 이야기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거든요.

 

 

돈은 가정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에요.

지금도 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덕분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내가 과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걸 잘 만들 수 있을까’를 묻는 단계이니 상황이 더 나아졌죠.

모든 돈 관리는 아내가 알아서 다 해요. 스스로는 주식도 잘 몰라요. 요즘 다들 주식으로 돈 많이 벌잖아요. 쉽게 돈 버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주식도 알고 보면 엄청 공부해야 되잖아요. 그쪽 분야는 제 전문성이 아니니, 저는 아예 하지 말자는 쪽이고요. 거의 매일 시나리오를 쓰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소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새로운 금융 서비스는 저와 같은 초보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래전에 뭔가 시도해보다가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요. ‘이거는 그냥 되게 어렵고 나 같은 애가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얼마 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받은 2만 원도 그대로 있어요. 세상이 점차 편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긴 해요. 이제 받을 수는 있겠는데, 여전히 보낼 줄은 모르겠지만요.

감독을 하겠다고 퇴사한 해 여름에,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가 버켄스탁 슬리퍼를 선물로 사줬어요. 당시 너무 힘들고 잠이 안 와서 매일 새벽마다 걸었어요. 세 시간씩 걷고 해가 뜨면 집에 들어가서 다시 자고… 그 후 3~4개월 만에 버켄스탁 바닥이 다 닳았던 게 아직도 생각나요. 영화감독이 된다는 게 박사 학위 따는 것 같아 보였어요. 너무 어렵고 정답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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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는 굉장히 지겹지만 숭고한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야기를 써서 연출하는 사람이라면 관객의 마음을 계속 마음을 사야겠죠. 이걸로 밥벌이를 해서 가족이 행복하고 자식들이 잘 자랄 수 있다며 가장 큰 의미 아닐까요? 저에게 있어 돈은 안전망이에요. 가정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그걸로 인해 완벽히 행복해질 순 없지만, 안전망이 있어야 생활할 수 있잖아요.

일이 끊기면 어떡하지? 내가 다음 영화를 못 찍게 되면 어떡하지? 언제 마지막 영화가 나올지는 모른다는 생각으로 계속 일하고 있으니 불안감은 항상 존재해요. 그래도 운동선수가 운동을 계속하면 실력이 느는 것처럼, 영화뿐 아니라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다양한 형식과 영역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어요.

제 인생의 버디는 우선 아내예요. 그리고 영화를 찍을 때마다 버디가 하나씩 더 느는 것 같아요. 살다 보니 버디극이 단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배우와의 호흡이든, 관객과의 호흡이든 각자가 작품을 통해 만날 때 좋은 시너지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니까요. 그 최선의 기운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작품이 끝나면 우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때 만난 짧은 여정이 영화를 계속 찍는 원동력이 돼요.

공군 장교를 마치고 쇼박스에서 일하는 동안 꾸준히 벌었어요. 그러다가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까먹었죠. 벌면 까먹고 또 벌다가 또 까먹고. 그러다가 2017년 <청년경찰>이 잘 되어서 연출료랑 보너스 받고 전셋집도 마련했고요. 프리랜서로, 특히 영화감독으로 사는 건 쉽지 않아요. 이렇게 수익이 불규칙적이고 일을 안 하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걸 몸소 체감했죠. 소위 ‘대박 친다’고 할 정도로 벌어본 건 아니지만 계속 열심히 사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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