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월급을 받아요
ㆍby My Money Story
쇼트트랙 선수 곽윤기 님의 마이머니스토리
열 여섯, 내 인생은 스케이팅이라고 마음먹었어요
안녕하세요. 쇼트트랙 선수 곽윤기입니다.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들어갈 때 즈음이었어요. 제가 목동에 살았거든요. 그때 목동 사는 사람들은 취미로 수영이나 빙상장에서 운동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여동생, 사촌 형들이랑 다 같이 재미로 스케이팅을 배우다가 저만 남게 됐죠. 동생이랑 사촌 형들은 스케이팅이 즐겁지 않았대요. 저만 즐거웠나 봐요.
이미지=곽윤기 제공
선수반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새벽 훈련 때문에 부모님이 고생했죠. 새벽 5시부터 훈련이니까 어머니는 4시 반 이렇게 일어나셔서 매일같이 저를 빙상장에 데려다주셨고요. 훈련 끝나면 데리러 오시고요. 어머니의 청춘을 제가 다 써버렸죠.
‘월드 주니어 챔피언십’이라고 시니어로 가기 전, 주니어 선발전이 있어요. 중학교 3학년부터 대학생까지 출전이 가능해서 경쟁이 치열했는데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주전으로 선발되게 됐어요. 쟁쟁한 형들도 많았는데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했죠. 그때 ‘내 인생은 이거다’라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경기에서 곽윤기라는 선수가 어떤 테크닉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케이팅에 대한 마음가짐도 바뀌었죠. 단순히 좋아서 타는 게 아니라, 타야 하기 때문에 스케이팅을 하는 걸로요.
이미지=곽윤기 제공
스포츠에서는 남들과 타협이 안 되잖아요 차라리 자신과의 싸움이 더 쉽다고 봐요
2010 세계선수권 슈퍼파이널에서 이호석 선수와 겨루게 됐어요. 3,000m 경기에서는 총 27바퀴를 돌아야 하고, 26바퀴를 돌면 원래 마지막 바퀴라고 종을 울려주거든요. 그런데 조직위원회 실수로 25바퀴 째에 종이 울려서 다들 한 바퀴를 덜 탄 거예요. 저도 속으로 바퀴 수를 세면서 타고 있었는데, 종소리 때문에 타이밍 잃으면서 종합 2위를 했고요. 너무 아쉬웠죠. 운이 안 따라준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이호석 선수가 1위 해서 다행이지 외국 선수랑 겨뤘는데 이런 상황이 됐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더라고요. 2010 세계선수권 직후부터는 ‘최고가 아니더라도 유일한 사람이 되자’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훈련이나 연습 때는 항상 잘하는 선수였어요. 그런데 시합 날만 되면 얼어있고 쫄아있었어요. 시합을 피하고 싶고, 경쟁을 싫어한다는 걸 그때부터 느꼈었죠. 경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혼나는 것도 싫었고요. 그래서 청소년 때 방황도 좀 했어요. 스케이팅을 강압적으로 타다 보니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가출도 했었고요.
순위를 매기는 삶을 산다는 건, 불행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제가 1등까지 못 올라봤기 때문에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순위는 영원하지 않잖아요. 아무리 상위권에 있던 선수들도 언젠가는 내려오게 되어 있어요. 나의 가치가 순위에 비례한다면 그때는 행복할지 몰라도 그 이후에는 되게 불행한 삶을 살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순위에 집착하기보다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여기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스포츠에서는 남들과 타협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차라리 자신과의 싸움이 저는 좀 더 쉽다고 봐요. 이런 생각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비교할 대상도 없어지고, 조금 더 편하게 스케이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벽에 막히고 안될 때가 너무 많죠. 그런 것들은 그냥 내려놔요. 저는 그냥 그런 주의에요. 매뉴얼대로 똑같이 살아가기 보다 나의 길에 확신을 갖고, 힘들지만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과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무조건 후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당장은 배고플 수 있지만 진짜 나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도 느껴지면 언젠가 그 보상은 받게 되는 것 같거든요.
잘 풀리려다가 안 풀리고 풀리려다가 무너지고 가늘고 길게 살아야지, 생각한 적도 있어요
2015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에서 발목 골절 부상을 입었어요. 그때 독일에 있었는데, 독일 병원에서는 부러진 게 아니래요. 현장에서 괜찮다고 하니까 바로 걸어 다니고 재활에 들어갔죠. 그런데 한국 와서 MRI를 찍어보니 부러져서 수술을 해야 했어요. 당시 병원 원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2014소치) 세계 대회 선발전 준비해도 된다. 하고 싶으면 해라, 근데 그 경기가 선수 생활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라’ 저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아직 선발전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희망을 놓지 않았었죠.
수술하고 재활하고, 치료하는 과정에만 한 달 넘게 걸렸어요. 그리고 다시 스케이트를 타려고 하는데 발이 너무 부어서 원래 신던 스케이트가 안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완전 옛날에 신던 스케이트 구두를 꺼내왔어요. 스케이트 구두가 원래 딱딱한데, 오래 신으면 운동화처럼 말랑말랑 해지거든요. 그때 사실 반 포기 상태였죠. 치료 때문에 스케이트를 한 달간 못 탄 건 그렇다 치는데, 옛날 장비까지 써서 스케이트를 타야 한다는 상황이 힘들었어요. ‘나는 안되는구나’ 좌절하면서 선발전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선발전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고요.
하지만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계약이 1~2년 더 남아있었거든요. 어쩔 수 없이 타다 보니까 또 되더라고요? 발목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요. 그 당시 평창 유치가 확정됐을 때였어요. 우리나라에서 세계대회가 열리는데, 언제 그 영광을 누려보겠나 싶어서 열심히 준비해서 국가대표에 선발됐어요. 당시 서른 살이었는데, 서른 살 국가대표는 정말 흔치 않았거든요. 선배님들 뒤를 이어 또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너무 좋았고 ‘평창에서 내가 뛴다고? 그 영광을 내가 가져간다고?’ 이런 생각이 들면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이제 오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평창 결승전 경기 중반부에서 넘어지죠. 그때 온갖 생각이 다 스치더라고요. 인생이 잘 풀리려다가, 안 풀리고, 풀리려다가 무너지고. 내 인생은 이런가 보다. 풀리려다가 안 되는 그런 인생인가 보다. 그냥 가늘고 길게 점잖게 살아야지. 그때 생각하면 막 가슴이 쪼여와요.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세계 대회였는데 2010년도에 딴 메달을 마지막으로 이렇게 그만둬야 하나? 내 가치에 대해서 증명하고 싶은데 그걸 못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근데 너무 감사하게도 경기가 아쉬웠는데도 방송에서 저를 찾아주셔서 용기를 얻고 1~2년만 더 타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계속 도전할 수 있게끔 상황들이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물론 경기 결과로만 본다면 아직까지 속이 엄청 시원하지만은 않아요. 목마름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말씀드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베이징 세계 대회 끝나고 보내주시는 사랑은 그간 꾸준히 노력했던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솔직히 조심스럽게 들어요. 마음 같아서는 또 도전하고 싶어요. 한 번이라도 더 제가 빙판을 달리는 모습을 팬분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아니까요. 제 뼈가 닳을 때까지는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계속 견뎌 보려고요.
쇼트트랙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월급을 받아요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억대 연봉을 받기 때문에 지출에 유해도 되지만, 쇼트트랙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월급을 받고 있어요. 평균 연봉 5천만 원 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못 받는 선수들도 있고요.
저희 집이 엄청 넉넉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서른 가까이까지는 수입의 대부분을 집에 도움을 드렸죠. 사실 후배들에게 뭔가를 사줄 여유가 없었어요. 얘기하다 보니 갑자기 미안하네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세계 대회가 열리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수 입장에서는 변수가 너무 많아요. 부상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돈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갑자기 운동을 그만두게 됐을 때 새로운 길을 걷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잖아요.
제가 짜게 구는 이유도 사실 후배들이 본인 것을 잘 지켰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해요. 저도 후배들에게 밥을 사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 친구들도 본인들 후배에게 밥을 사겠죠. 저는 이게 악순환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시간을 내서 만난 거니까 각자 계산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더치페이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죠. 물론 가끔 선배가 사줘야 할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각자 계산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경제적 목표는 모두의 꿈인 ‘내 집 마련’이에요. 좁은 숙소를 벗어나고 싶어요. 재테크는 무조건 저금입니다. 체육인들 특별 분양이 있는데 당첨되면 현금이 있어야 하거든요. 돈을 어딘가에 묶어놨다가 해지하면 수수료 물고 아깝잖아요. 돈이 묶이지 않도록 지금은 저금만 하고 있어요. 저는 갈수록 물욕이 없어지거든요.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만족도는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그냥 동네 집 앞에서 맥주 한 잔 소소하게 하는 게 정말 좋고요. 오히려 어떤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더 큰 의미라서요. 요즘 쓰는 돈이 많지 않아요. 식비도 팀에서 지원 많이 받고요. 숙소 생활 하니까 월세도 안 나가고요. 카드 값이 많이 나오면 100만 원, 적게 나오면 80만 원 정도 나오는 것 같아요.
아, 근데 최근에 반성한 것도 있어요. 제가 4만 원대 휴대폰 요금제를 쓰거든요. 데이터 5기가 쓰고 3G로 넘어가는데요.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중간에 3G로 넘어가서 끊기더라고요. 원래는 와이파이가 있는 곳에서 라이브를 하는데, 그날은 라이브를 차에서 했거든요. 팬분들이 요금제 올려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좀 반성했어요. 아, 이건 내가 선 넘었다!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쇼트트랙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하면미지근한 온도로 길게 끌고 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세계 대회에 대한 열기가 짧고 금방 식는다는 걸 여러 번 느끼다 보니 어떻게 하면 관심을 미지근한 온도로 길게 끌고 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미디어 노출이 많아야 한다고 판단했고요. 방송은 출연하고 싶다고 다 출연할 수가 없으니까 개인 채널을 운영해 보자고 생각했죠. 쇼트트랙에 대한 넓은 시선을 대중들에게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유튜브 채널은 평창 끝나고 거의 바로 시작했는데요. 생각보다 너무 관심을 못 받는 거예요. 이게 내 수준이구나, 쇼트트랙이 이 정도 사랑밖에 못 받나, 이런 생각까지 들면서 그때도 좌절했어요. 근데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베야 하잖아요. 조회 수나 구독자 수에 연연하지 않고, PD님이랑 우리가 재밌는 걸 해보기로 했죠. 쇼트트랙을 보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던 영상이 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제게는 너무 당연했던 것들을 많은 분들이 정말 재밌게 봐주시더라고요. 그때 유튜브에 대한 감을 찾았던 것 같아요.
다들 100만 구독자 됐으니까 됐다고 말하는데 저는 2백만 3백만까지 올리면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스케이트 퍼포먼스도 좋은데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그 선수들까지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는 시간을 꼭 만들고 싶어요. 프로 종목 행사처럼 쇼트트랙도 올스타전 같은 큰 행사가 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랑과 응원 속에서 훈련하고 시합할 수 있을지 고민 많이 해보려고요. 이제야 쇼트트랙 인프라를 형성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 같아서, 그 부분에 좀 더 힘을 쓰려 합니다.
Interview 정우진 이지영 Edit 이지영 Video 정우진 Photo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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