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상승장이 내게 남긴 것
ㆍby 김얀
잠들기 전, 부동산 투자 관련 유튜브를 꼭 하나씩 보고, 서울 지하철 노선표를 외우던 때가 있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죄다 찾아보고, 부동산 경매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전셋집에서 에어비앤비를 하다가 난생처음 부천에 조그만 빌라를 샀다. 그 빌라를 셰어하우스로 운영하게 된 후로 내 목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지하철 노선마다 셰어하우스 ‘김얀집’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1호선 부천역에 빌라를 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7호선 부천시청역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매수했다.
하지만 다시 1년이 지난 지금, 그 목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몇 달 새 바뀌던 부동산 법과 정책 탓도 있지만,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투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쩐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38살 여름에 시작한 돈 공부와 동시에 2년간 근무했던 치과를 퇴사했던 작년 여름, 가장 먼저 울산으로 내려갔다. 울산에는 내 본가가 있다. 그동안 토요일에도 오후 2시까지 근무를 했던 터라 울산에서 이틀 이상 머물러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2주 넘게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조카들 숙제를 봐주고 중고등학교 동창도 만났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여러모로 변했음을 느꼈다. 내가 변한 건지, 이제 마흔 초입에 들어선 내 나이 때문인지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단연 부동산을 비롯한 재테크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나름 지독하게 몸으로 부딪혀가며 돈 공부를 했던 터라 어떤 이야기판이든 숟가락 얹을 정도는 되었다.
물론 마흔 즈음 돈에 눈을 뜬 비혼 작가인 내 자산은 일찍 결혼한 친구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이번 부동산 상승장에서 그나마 선방한 건 나뿐인 것 같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내 부동산 목표이자 투자 대상은 학군 위주 아파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녀를 둔 친구들의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그동안 부동산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성공한 투자자의 이야기만 접하느라 일반인의 삶에서 부동산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6개월 전 집주인에게 미리 연락했지만, 전세 자동 연장을 생각하지 못한 소유주가 집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어린아이가 보는 앞에서 “전세 사는 거지”라는 막말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라는 친구 1, 아파트 매매 계약을 하고 덕담을 가장한 일장연설을 했던 집주인이 계약 후 몇천만 원씩 오르는 가격 때문에 덜컥 계약을 취소하고 위약금을 물려주면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치는 통에 고생했다는 친구 2. 공인 중개사로 일하는 친구 3은 좀 더 비싼 가격에 중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파트 주민 커뮤니티에 찍혀 괴롭힘 당한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투기 과열지역과 조정 지역으로 묶이면서 풍선효과로 울산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부동산 커뮤니티 사람들이 봉고를 빌려 울산으로 아파트 쇼핑을 가던 때였다.
2021년 2월 신문 기사에 따르면, 울산은 2020년 최고가에 매매 신고 후 취소된 아파트 비율이 52%로 전국 중 가장 높은 곳이었다. 실거래가 띄우기, 시세 조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당시 국토부 장관까지 나서 정밀히 조사하겠다고 말한 사안*이었다. * 울산 아파트 단지의 실거래가 조작 의심 사례에 관해 반박하는 기사도 있다. – 편집자 주
한국에서 부동산은 특히나 더 안정적인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 인구 절벽 시대지만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으로 시장에 이미 너무 많은 돈이 풀려버렸고, 따라서 좋은 인프라를 갖춘 서울 아파트들은 여전히 불패라는 말에 동의한다. 부동산도 결국 많은 공부와 연구가 필요한 투자처이고 절대로 가볍게 얻을 수 있는 불로소득이 아니라는 데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집값을 잡겠다’는 대단한 결의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과연 이 현상이 100% 정부의 탓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목표로 가슴에 1급지 아파트를 품어라.” 어느 부동산 투자자의 말에 환호하는 댓글들. 부동산 커뮤니티에 있다 보면 그들의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내가 사는 동네는 하급지라 불렸고, 절대로 집을 사서는 안 되는 곳으로 평가됐다. 수준 낮은 사람들이 사는 곳, 빨리 떠나야 할 곳, 남이 사는 동네와 그 동네 주민들에 대한 폄하가 ‘투자’라는 이름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내 인생의 목표이자 가슴에 품어야 할 큰 야망은 서울 상급지 아파트가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만든 집 한 채에 만족하는 것. 이것이 바보 같은 선택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대신 살면서 가슴에 품어야 할 큰 야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바로 4대 보험과 크지 않지만 매달 꾸준히 들어오던 고정 수입을 깨끗이 포기하고 퇴사하게 된 이유다.
돈은 중요하다. 돈이 가진 놀라운 힘은, 돈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돈이 가진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꾸만 차오르는 욕심을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면 돈은 인생에서 정말 멋진 수단이 되어준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맹자의 가르침 중 자주 언급되는 이 말은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를 뜻한다. 당시 맹자가 말한 항산(恒産)은 집과 논밭 정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나 역시 치과 월급 만한 소득을 만들어 뒀기 때문에 2년 만에 치과를 그만둘 수 있었다. 적절한 만큼의 돈이 생기니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특히 누군가의 소비 목록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투명하게 알 수 있다.
출근하지 않아도 생활이 될 정도의 수입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그 수입을 계속 늘리는 대신 조금 적게 벌더라도 예술로 돈을 버는 일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쏟고 싶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돈과 예술, 모두를 사랑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돈 얘기하는 예술인 모임 ‘M&A(Money & Art)’다. 그동안 주식이나 부동산, 코인 커뮤니티 등에 발을 걸쳐 놓고 있었지만, 늘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M&A는 인수합병(Mergers and Acquisitions)을 의미하기도 한다. 돈과 예술과 그만큼 자연스럽게 겹치기를 바란다.
최근 1년 동안 부동산을 공부하던 시간을 대신해 요즘은 M&A 친구들과 어울리며 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직을 원하는 회원을 도와 취업까지 도움을 주기도 했고 회원들의 예술 활동을 응원했다, 백화점을 전시회장으로 선택한 영상, 사진 아티스트 로잘린 송의 선택을 크게 지지했고, 일반인을 위한 뮤지컬 클래스 ‘맵 플레이하우스’를 오픈한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레이의 수업에 참석했다. 정통 회화 작가 진선희의 작업실을 방문해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나에게 꼭 어울리는 미술 작품도 구입했다. 올해는 예술인들의 시와 사진을 NFT로 발행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돈에 관한 나만의 서사를 만드는 일. 글도 돈도 멋있게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 결국 이것이 내가 가슴에 품어야 할 큰 야망이다.
Edit 손현 Graphic 이은호,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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