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공동 주거는 가족을 대체할 수 있을까?
ㆍby 사소한 질문들
UN은 한 나라의 고령인구(만 65세 이상)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합니다.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사회,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통계청은 2019년 장래인구추계에서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전 세계적 추세이긴 하지만 다른 국가 대비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확연히 빠른 상황이에요.
언젠가부터 이 초고령사회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내 반강제적 1인 가구들의 탄생과 고독사까지 의식의 흐름이 다다르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고 허전했습니다. 살아갈 공간을 확보할 때 수익성과 가성비를 따지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사람과의 연결에는 소홀했던 우리가 풀어갈 과제는 어떤 것일까요? ‘나이 들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집 짓고 살기’ 같은 로망은 지금부터 열심히 돈을 모으면 이루어질까요?
지역, 가격대, 건물 형태로 나뉘는 부동산앱 카테고리에 ‘이웃 형태’가 추가되는 상상을 해보며, 경제적 가치 위주로 돌아가는 이 시장에서 인간성과 관계 회복을 고민하고 주저 없이 시도해보는 건축가 박창현과 공인중개사 전명희를 만났습니다.
박창현공간을 매개로 관계성 회복을 추구하는 건축가. 학부에서 가구를 전공하고 경기대 건축전문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를 받았다. 2013년부터 에이라운드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2009년 ‘SKMS 이천 연구소’로 건축가 협회 BEST7을 2013년에 ‘조은 사랑채’로 서울시건축상, 2015년 ‘무진도원’으로 김수근 프리뷰 건축상을 수상했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대, 고려대 등에서 강의와 국내외 젊은 건축가 50여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건축계의 지도를 독자적으로 그려나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주택에서의 사회적 관점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형성에서 물리적, 심리적 제안으로 건축 작업을 해나간다. 그가 만든 신개념 공동주택 브랜드 ‘써드플레이스’에서는 공간을 통한 관계 맺기를 현실화하기 위해 여러 제안과 아이디어를 직접 실천하고 있다.
전명희‘별집’이라는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가가 설계한 주거/업무/상업 공간과 재미난 스토리가 담긴 공간을 큐레이팅하여 중개한다. 학부에서는 건축 설계를, 대학원에서는 CM을 전공했다. 졸업 후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일본의 도쿄R부동산을 알게 되었다. 건축가 출신들이 만든 부동산으로 기존 부동산업의 공식을 따르는 대신 오래된 공간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큐레이션하는 이색적인 부동산이다. 마침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본래 집이라는 공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 부동산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동산업도 결국 건축물을 유통하는 일이니까. 다양한 공간에서의 경험이 우리 삶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킨다고 믿으며, 모든 사람이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감각들을 일깨우는 즐거운 공간을 만나기를 희망한다. 단순히 공간을 중개하는 것이 아닌 그 공간의 가치와 삶의 태도를 전하는 부동산이 되고자 한다.
집을 짓고 잇는 사람들이 경험한 집
Q. 현재와 미래의 주거를 이야기하기 전에, 두 분이 경험한 ‘집’부터 여쭙고 싶어요. 집은 사람이 경험하는 최초의 건축물일 텐데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요?
창현: 어린 시절 2층 양옥집에 살았어요. 물리적으로는 담장이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경계 없이 누빈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죠. 마당의 높낮이가 고르지 않게 입체적인 형태였는데 그만큼 저도 자유롭게 놀았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그 경험이 집에 관한 기억의 전부예요. 중학교 이후로 아파트에 살았고, 그때부터는 인상 깊은 공간 경험이 없네요.
명희: 엄마 뱃속에서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5층짜리 저층 아파트에 살았어요. 동네 잔치에 전기가 필요하면 2층 저희 집에서 코드를 연결해서 썼고, 바로 옆집은 할머니댁이라서 매일 저녁 맨발로 건너가 다 같이 밥을 먹곤 했어요. 오래 살았으니까 이웃과도 자연스럽게 교류가 있었고요. 2001년에 재건축한다고 해서 이사했는데, 밤마다 그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어요. 그곳이 나의 진짜 집이라는 생각이 오래오래 들었었죠. 4인 가족이 거주하기엔 작은 집이었고, 겨울에 몹시 추웠지만 그때의 경험과 기억이 공간 감수성을 키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창현: 지금은 집도 회전율이 너무 빨라요. 이런 경험을 듣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Q. 지금은 어떤 집에 살고 계신가요?
창현: 저 아파트 사는데요…
명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니까 자연스러운 일이죠.
창현: 바쁘게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동안 편의성, 학군, 경제 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선택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저도 아내도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고 내년에 자녀가 독립하고 나면 드디어 새로운 주거 형태에 도전해볼 예정입니다. 저는 본업이 공간을 구상하고 구현하는 일이니까 거기서 많은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하는데, 아내는 오히려 공간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해서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롱스테이를 할 거예요. 저는 서울 작은 집에 살면서 가끔씩 내려가고, 아내도 가끔 올라오고 하면 큰 집은 필요없어져요.
명희: 지은 지 30년 된 오래된 빌라로 작년 8월쯤 이사를 왔어요. 지금 사는 곳에서 사계절을 보냈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이곳에서 포착한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을 기록하는 건 처음이에요. 구조가 독특한 점, 돌출된 창, 근처 학교 종소리와 아이들 웃음 소리가 좋아요.
Q. 박창현 소장님이 지은 집을 전명희 대표님이 중개하고 계시죠. 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명희: 2018년 녹사평역 공공미술프로젝트에서 만났어요. 당시 소장님이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너무 멋진데 설치 난이도가 높아서 제가 늘 신기해하며 잘 되고 있나 지켜봤거든요. 그곳에서 만난 스태프가 저희를 소개시켜주셨고, 제가 지역 기반이 아닌 공간 감수성을 키워줄 수 있는 다채로운 공간 중개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소장님이 유일주택 건축주를 소개해주셨죠. 그게 별집의 첫 매물이었어요.
창현: 저는 전 대표가 하려는 일을 듣고 너무 반가웠어요. 중개도 좀 바뀔 필요가 있거든요. 중개해주는 사람이 집의 가치를 알아봐준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당장 매물 확보해줄게! 하며 나섰어요.
현재의 주거 환경에 필요한 질적 대화
Q. 건축가로서, 공인중개사로서 지금 한국 사람들의 주거 환경을 돌이켜본다면 어떤가요?
명희: ‘집 장수’가 아닌 건축가에게 의뢰해 집을 짓는 케이스도 늘어나고 있어요. 사는 사람을 생각하며 방음과 단열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조금이라도 공간 구성을 다양화하려는 시도가 있는 거죠. 지금도 주택 시장은 공급자 주도의 시장이고, 많은 수요자(사용자)에게는 집이 투자의 대상이에요. 다양한 공간 경험을 통해 내 취향을 알아갈 기회가 없었겠지만, 더 많은 희망을 요구하다 보면 공급자도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한 공간을 만들어낼 거예요.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목소리를 더 크게 냈으면 좋겠어요.
창현: 주거에 대해서는 여전히 양적 성장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이뤄져요. 어떻게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것이냐, 어떻게 더 큰 전용 면적을 확보할 것이냐 같은 거죠. 국내 주택공급율은 100%를 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반지하처럼 열악한 집을 모두 포함한 숫자예요. 질적 대화의 기회는 거의 없었던 거예요. 좋은 자재를 쓴 집이 비싼 집일 수 있지만 주거의 질까지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Q. 좋은 집이 자재 문제가 아니라면, 질적 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창현: 건축이 표준화되고 공업화되면서 최저 공사비로 최대한 많은 집을 만드는 것에 모두가 몰두한 시기가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건물 참 빨리 짓는 것도 모두들 알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제로 그 집에서 살아갈 입주자에 대한 고려는 많이 부족했어요. 집이 사는 방식을 변하게도 하고, 사람도 집을 변하게 하면서 서로 입체적인 관계여야 하거든요. 자극과 상상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주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해요.
명희: 예를 들면 조경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지금도 많은 아파트 단지나 빌딩이 조경에 신경을 써요. 값비싼 나무도 많이 심고요. 그런데 저는 바라만 봐야 하는 조경은 의미가 없는 것 같거든요. 외부 공간도 탐험하고, 텐트 치고 놀고 하면서 사용자가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Q. 국민의 다수가 이렇게 산 지 워낙 오래되었기 때문에 가성비 좋은 공간에서 모두 똑같은 평면도 위에 사는 게 이상한가? 싶을 정도예요.
창현: 사람들의 가치관은 정말 많이 달라졌는데 전국 어느 지역이나 24평형, 32평형 아파트는 30년 전과 아직도 똑같아요. 밥 벌어먹고 사는 방법, 주변 환경 다 다른데 전 국민이 똑같은 집에 산다는 게 너무 놀랄 일이지 않나요? 공간의 획일화는 사람마다 지닌 고유한 정체성을 빼앗고, 과도한 프라이버시 위주의 단절은 이웃 상실과 배척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Q. 저는 아파트를 떠날 용기가 없고, 또 한편으로 단독주택을 마냥 동경해요.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주거 형태나 동네를 만난 적이 있나요?
명희: 우리 나라는 국토 면적 대비 인구 수가 많아서 집합주거 형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예요. 그래서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저층형 집합주거가 도심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5층 이하의 공동주택들로 이뤄져서 적당히 우리 건물 사람들 정도는 알고 인사 나누며 살아가면 층간소음처럼 단절된 이웃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도 나아질 거예요. 서로 잘 모르는 사이더라도 심정적으로는 ‘한 동네 사람’으로 인지하는 거죠. 윗집 아이 이름을 알고 나면 쿵쿵거리는 소리가 잘 노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는 것처럼요. 개인적으로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지친 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줄 풍경을 갖고 있는지, 주택과 작은 상점들이 어수선하지 않게 잘 어우러져 길을 걸을 때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거리에서 적당한 활기가 느껴지는지, 단골로 삼고 싶은 빵집과 카페가 있는지, 즐거움을 함께 나눌 친구가 살고 있는지를 살펴요. 계속 살고 싶은 동네로, 살아보니 좋은 동네로 만드는 건 내 몫이기도 한 것 같아요. 최근 사무실을 혜화역 인근으로 이전했는데 산책할 때마다 구옥을 고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에요.
창현: 저도 전 대표의 의견과 비슷한데요, ‘이랬으면 한다’를 생각해보자면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지은 한국 아파트가 떠올라요. 바로 저소득층을 위해 LH에서 지은 강남 하우징 아파트예요. 아주 독특한 시도들을 해서 여러 이야기가 많았지만 입주 후 10년이 흘렀고 지금 가보면 똑같은 나이의 다른 단지들과는 다른 모습이 보여요. 공용공간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고, 그래서 바깥으로도 생활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이죠. 이웃끼리 같이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복도 공간도 충분해서 화분도 장독대도 빨래도 나와 있어요. 참 인간적이고 편하게 보이더라고요. 그렇다고 많이 소통할수록 좋은 건 아니라서, 한 논문을 보니까 1인 가구는 4~10명 정도인 커뮤니티에서의 유대가 적당하고, 3인 가족끼리라면 25인을 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미래에는 열 집 내외가 함께 사는 건물들이 생기고, 인간 관계가 주는 퀄리티도 챙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써드플레이스, 단독주택의 개별성과 집합주택의 연결성을 갖추다
Q. 그런 고민이 이어져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공동주택을 궁리하기 시작한 건가요?
창현: 저도 예전에는 고급 주택을 했었어요. 재벌가 자녀의 집 같은 걸 만들면 좋은 점은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자재를 마음껏 써본다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건축가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역할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나랑 더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집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요. 그러면서 2009년부터 저층형 집합주택을 맡기 시작했어요. 한 프로젝트를 끝낼 때마다 느낀 것은 입주민들이 건축가의 계획대로만 살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기능을 생각하지 않고 남겨진 공간이 각 층에 있었는데, 이 공간을 층마다 다르게 쓰고 있었어요. 2층은 자전거를 보관하고, 3층은 택배를 두고, 4층은 식물을 키우는 식으로요. 사례를 살펴보면서 복도를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쓰는구나, 공용공간을 바꾸면 이렇구나 하면서 차곡차곡 자료를 수집해왔어요. ‘조은사랑채’를 지을 때는 위치가 도심과 산이 연결되는 지점이라 건물 외부에 양쪽으로 쉬는 공간을 남겼고, ‘유일주택’은 동네 사랑방 기능을 하던 목욕탕 자리였으니 같이 쓰는 목욕실을 만드는 등 아이디어를 하나 넣어보고 반응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수익 극대화를 위해 전용면적만 중요하게 생각해왔지만, 막상 홀대하던 공용면적을 제대로 만들자 건물 가치도 올라가는 검증도 할 수 있었어요.
Q. 공동체주택 브랜드 ‘써드플레이스’로 이어진 계기가 궁금해요.
창현: 공동주택은 다세대, 연립 빌라, 아파트처럼 여러 세대가 사는 건축물을 통칭하는 단어고요, 공동체주택은 서울시가 앞으로 생길 사회문제를 책임지려고 만든 인증제도예요. 정확히 말하면 범주나 원인은 다르지만 층간소음, 고독사 등 주거 환경을 둘러싼 사회문제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도 예견되어 있으니 이를 방지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지금 주거 형태보다는 더 쾌적하면서, 이웃간 관계를 증진해주는 취지가 담겨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이 취지에 깊이 공감했고요.이 제도를 기획할 때 자문을 했고, 자연스럽게 심사를 맡았는데 화가 났죠. 정말 이 제도 취지에 공감했다기보다 지원금을 받으려는 의도가 보이는 프로젝트가 많아서요. 그래서 담당 주무관님께 “저는 이제 심사 그만하겠다, 대신 좋은 사례 만들어보겠다”고 했어요. 제도를 이해하고 있었고, 지어본 경험이 있으니까, 이해와 경험이 만난 결과를 만들려고 시작한 게 써드플레이스예요. 써드플레이스는 우리가 짓는 공동체주택 브랜드명이자 이를 잘 운영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 이름입니다.
Q. 서울이 그렇다면, 다른 지역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창현: 서울이 앞장서자 다른 지역 지자체에서도 시작되고 있어요. 하나의 정책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기다려봐야겠지요. 경기도도 지자체가 주도하는 공동체주택이 있고, 부산은 작년에 제도 시행이 결정되고 예산 확보하는 단계로 알고 있어요.
Q. 써드플레이스 입주 심사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창현: 사전에 입주 희망자들에게 서류를 통해 공동체주택에 입주하고 싶은 이유, 자신이 맡아보고 싶은 역할과 경험을 물었고, 서류를 통과하면 아주 캐주얼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그때도 여기서 어떤 생활을 원하는지, 어떤 걸 해보고 싶은지 정도죠. 지금은 입주자들끼리 인터뷰를 봅니다.
Q. 얼마나 지원을 받나요?
명희: 건축주가 대지를 매입하거나 건물을 지을 때 서울시로부터 대출과 이자 지원을 받고요, 대신 월세는 주변 시세의 95%까지만 받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입주자들은 신축 건물에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죠.
Q. 입주자 후기에서 ‘공용공간이 달라지자 현관문이 아니라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우리 집이라고 느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실제로 좋은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나요.
창현: 써드플레이스 홍은2에 다섯 세대가 입주한 지 3년 차인데, 모두 1인 가구이고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한 건물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자연스러운 교류가 일어나고 있어요. 믹서기 필요할 때 빌려 쓰고, 식재료 남으면 나눠 먹고 그런 거죠. 무엇보다 입주민들은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심리적 연대가 생기는 것이 좋다고 말해요. 이런 안정감이 집에 대한 만족이나 삶의 질로 연결된다고 보고 있어요. 물론 언제나 좋을 수는 없어서 사람 사는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도 있겠지요.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해나가면 좋을지 고민 중이에요.
Q. 한 달에 한 번 식사, 텃밭 가꾸기를 진행하고 계신데, 공동체주택 프로그램 기획에 중요한 점이나 고려한 점이 있을까요?
창현: 입주자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의무가 있고요, 서로 피로하지 않으면서 느슨한 연결고리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소통이 이뤄져야 할까 여전히 궁리해요. 처음 써드플레이스 홍은2에 사람들이 입주하고 1년간 일월일식에 저도 참여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자리 내가 있어서 돌아가는 건가?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었죠. 지금도 소통은 잘 일어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등 이래저래 식사 자리는 자연스럽게 소극적으로 바뀌었어요.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도 더 느슨한 사이여야 유지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Q. 공동체주택 입주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준비가 있을까요?
창현: 이웃이 있는 삶에 대한 관심, 그리고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나갈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Q. 한번 입주하면 10년은 살 수 있다고 들었어요.
창현: 공동체주택의 경우 최소 10년의 거주 기간을 보장해요. 당연히 결혼을 해서, 직장을 옮겨서 언제든 이사 나갈 수도 있지만, 공간이나 이웃과 나의 관계를 안심하고 만들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해요. 재밌는 것은 집 면적이 거주 기간을 결정하기도 해요. 보통 집이 좁으면 이사가 필요해지거든요. 그래서 수납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거주 기간도 길어질 수 있어요.
Q. 일반인이 의욕과 자금만 가지고 이런 공동주택을 짓고 운영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얼마나 오랜 기간이 필요한가요?
창현: 제가 진행해본 서울 홍은동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공동체주택의 경우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자금은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 보증금 정도로도 시작할 수 있어요. 혼자가 아니라 뜻이 맞는 사람들과 공동 자금을 모으고, 지가 상승 등 추후 수익에 대한 배분을 나눠도 되고요. 이때 최소 다섯 가구는 되어야 하고 저희 같은 업체에 의뢰할 수도 있어요. 각 가구의 특징이 반영된 설계, 공동체주택 인증, 대출과 시공, 그리고 완공까지 1년에서 1년 반 정도는 필요해요.아시다시피 여러 가지 국내외 정세 때문에 인건비, 자재비가 많이 올라갔어요. 올 여름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공사가 지연됐고 그러면 들어가는 인건비가 또 상승해요. 그런 이유로 중단된 공사도 있기 때문에 이런 변수까지 고려하면서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의 주거 환경은 ‘연결 기회’를 책임져야 한다
Q. 지금은 상대적으로 젊은 1인 가구 위주의 집을 짓고 중개하셨는데, 시니어의 공동 주거에 대해 생각한 계기가 있다면요?
창현: 여러 이유 때문에 ‘시니어의 공동 주거’에 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됐어요. 우선 젊은 1인 가구들이 함께 살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요. 사실 집에 머물고 가꾸는 시간이 길어야 한 건물에서의 커뮤니티도 더 의미 있거든요. 그래서 써드플레이스5는 업무 공간 뒤에 집이 붙어 있는 형태로 구상해 보았고, 써드플레이스8은 개인 전용면적을 줄이고 공용공간을 더 늘리는 등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은퇴 후라면 또 다르겠지요? 집에 머물고 이웃과 소통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어지니까요. 노인의 고독 문제는 현재도 심각한데, 그간 사회에서의 연대가 단절된 시점에 연결을 유지해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써드플레이스2는 1층에 내추럴와인바가 있었는데요, 시니어를 위한 공동주택이라면 1층에 가정의학과가 들어오면 좋겠고, 엘리베이터도 꼭 설치해야 하고요, 주차 공간도 더 필요할 겁니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고 있고 고심 끝에 아이디어를 하나씩 제안해볼 거예요.
명희: 유튜브에서 전문직 여성들이 은퇴 후 고급실버타운에 사는 후기 영상을 봤어요. 다양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과 각자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존중하며 즐겁게 연대하며 지내는 모습이 좋아 보이긴 했는데, 주로 ‘여기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저에게는 그렇게 큰 메리트로 느끼지 못한 게, 저희 세대는 웬만한 인프라는 많이 갖춰진 환경에서 자랐잖아요. 그래서 아 지금 현재 시니어에게는 편리한 시설이 가장 큰 장점이구나. 우리가 시니어가 됐을 때는 관계 형성이라든지, 다른 요소의 중요도가 더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바깥에서 사회력을 끌어다 쓰니까 집에 돌아가서 소셜 에너지를 또 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겠지만 은퇴 후에는 쓸 곳이 없어지니까요.
Q.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 이웃이 있다는 게 안심되고 위안이 된다”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써드플레이스 입주자의 소감이 제가 꿈꾸는 노년기의 주거와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노년기 주거에는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명희: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삶에 가장 큰 안정을 준다고 생각해요. 고독감을 느끼지 않는 환경, 적응하기 쉬운 환경, 사회활동이 가능해 활력을 주는 환경이 중요하죠.
창현: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좋은 예가 있어요. 학생 수가 줄어 폐교하게 된 도쿄 도심의 오래된 초등학교를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를 케어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한 거예요. 최근 종로구에 있는 초등학교가 얼마 전 문을 닫았는데 우리도 적용하는 사례를 만들 수 있겠죠. 종로구는 서울에서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기도 하니까요. 노년의 삶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젊었을 때 일했던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있거나 연속된 학습, 교육의 기회예요. 이런 교육의 연장이 남은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므로 주거 환경과도 연결되어야 해요.
Q. 귀농귀촌처럼 살고 싶은 곳으로 갔다가도 의료 환경 때문에 오히려 노인이 되면 도시로 회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초고령사회에는 도시와 집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명희: 우리나라가 2025년이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고 하기에, 이제 도시계획을 할 때 학교보다 병원시설 수요를 고려한 계획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군이 아니라 대형 병원 유무나 거리에 따라 집값이 달라질지도 모르죠. 예전에는 실버타운 하면 도시 외곽에 세워진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도심형 실버타운이 서울 한복판, 또는 대학 병원 근처에 많이 들어설 거예요. 각 지차체에서 도시계획을 할 때 의료시설 수요를 중요하게 고려하거나, 마을 커뮤니티를 잘 활용해 시니어를 위한 주거를 계획하면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창현: 귀농귀촌은 주변 인구의 밀도를 낮추고 싶은 욕구에서부터 시작돼요. 이 욕구 충족을 도시에서도 하게 될 거예요. 지금 나만의 조그만 놀이터가 필요하다 보니 도시에서 가까운 지역에도 좋은 스테이들이 많이 생겼죠. 시간이 더 흐르면 집과 숙박업소의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더 캐주얼하게 오가는 흐름이 생길 거예요.
Q. 건축과 공인중개가 노년의 고독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요?
창현: 층간소음이나 고독사 같은 사회 문제가 해결되려면 행정, 건축, 시장 흐름이 모두 바뀌어야겠지요. 그중에서도 건축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집, 집과 집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설계를 해야 하고요. 현관문을 열다가도 앞집 사람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마주치기 싫어서 기다렸다가 나가는 관계 회피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요. 단번에 그런 설계와 실행은 어려우니까 저나 다른 동료들이 지금처럼 작게 적용해보고, 또 바꿔보고 하는 과정에서 찾아갈 겁니다.
명희: 일본에서 노인들의 고독사를 막고 집이 없는 청년들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함께 살게 해주는 ‘룸 쉐어링’에 대한 기사를 몇 년 전에 읽었어요. 최근에 한국에서 그와 똑같은 설정의 ⟨룸 쉐어링⟩이라는 영화도 개봉했더라고요. 까다로운 할머니와 알바에 찌든 대학생이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공인중개사로서는 필요 이상으로 집이 넓은 노인과 안전하고 저렴한 주거지를 찾는 청년들을 매칭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창현: 그와 비슷하게 ‘월세 차등을 두면 자연스럽게 소셜 믹스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같은 건물이라도 사회초년생은 돈이 없으니까 월세를 조금 싸게 살고, 상대적으로 주거 비용이 준비된 시니어는 조금 비싸게 사는 거죠.
공간이 사람을 연결하면 자연스레 회복될 것들
Q. 통계를 보면 1인 가구가 된 이유 중 학업/직장이나 개인의 취향은 2,3위더라고요. 1위는 가족/배우자의 사망이었고요. 1인 가구가 되어 노년을 보낼 거라고 생각하면 두렵기도 합니다. 가족이 없어도 공동 주거로 충분한 시대가 올까요?
명희: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연대와 주거의 형식은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어서, 가족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과 살 것인가 선택하게 될 거예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어도 함께 어우러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립해서 살아가기 충분하다고 믿어요. 다만 공동 주거라고 규칙과 규율로 강제하기보다는 자발적인 연대, 느슨한 연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창현: 함께 살아온 익숙한 가족 형태의 변화는 대체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통계가 말해주는 것처럼 자의가 아닐 확률이 높고요.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죠. 그래서 이웃의 존재가 더욱 필요합니다. 꼭 ‘옆집 사람’만이 아니라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요. 혈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로 마음이 맞고 긴 시간 호흡 하고 있는 상대라면 가족 이상의 연대감이나 위안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Q. 시니어 코리빙이 미래의 답이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창현: 우선 실수요자인 우리가 이 문제를 지금 고민해야 돼요. 젊을 때는 자기와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으니까요.
명희: 좋은 공간과 프로그램,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해요. 특히 지금 청년 세대에게는 나이 들어서도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관계 맺으며 살아갈 방법이 고려돼야 하고요. 그리고 시니어 코리빙도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다양한 모델 발굴이 필요해요. 또, 거주자의 자발성도 중요하지만 관리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할 수도 있겠고요.
Q. 두 분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창현: 당장 내년에 선보일 수 있는 것은 동네에 대한 이야기예요. 홍은동이라는 오래된 동네에 새롭게 지어진 써드플레이스가 반경 300미터 내 7개 있어요. 이 건물들은 각각 다른 콘텐츠와 기획으로 운영될 예정이고, 기존 동네와 느슨하게 연결되는 앵커(닻) 역할을 기대하고 있어요. 각 건물들은 각자의 프로그램으로 공동체가 연결되고, 각 건물 1층에 있는 근생과 라운지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오래 이어져온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속 가능한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지금까지의 집의 형식보다 훨씬 유연한 방식으로 머물 수 있는 집을 구상하고 있어요. 우리는 집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앞으로는 집이 어떠해야 하는지 제안하고 싶어요. 누구와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더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를 드러낼 수 있는 주거가 되겠지요.
명희: 별집은 다양한 선택지를 준비해서 사람들이 여러 공간 경험을 통해 본인에게 맞는 공간 취향을 갖게 하고, 그래서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수요자)가 목소리를 내게 하고, 공급자가 이를 반영해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려는 취지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제 3년이 조금 넘었는데요, 고객이 별집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별집의 핵심 가치를 뾰족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건축가의 공간에 더 집중할 예정이에요.최근 시작한 건 ‘프로젝트 반짝반짝’으로, 별집에서 중개하는 공간을 임대/매매되기 전까지 공실 기간 동안 팝업으로 렌탈하는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한 번 임대되면 쓰임새가 장기간 제한되는데, 잠시라도 새로운 사용자를 만나기 전까지 유휴 공간의 다양한 쓸모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Interview・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조수희 Photo 김예샘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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