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스토어의 위치 선정과 2040년 서울 도시 계획
ㆍby 얼랩
“찬란한 서울의 중심부에 새롭게 오픈한 Apple 명동. 대한민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본 매장은 모두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자 합니다.” – 애플 공식 웹사이트
2022년 4월, 명동 애플 스토어(공식 명칭은 Apple 명동)가 문을 열었다. 처음 신사동 가로수길에 매장을 오픈할 때만큼의 화제는 아니지만 애플의 모든 제품을 가장 편하게 경험하고, 구매하려는 사람이라면 어디건 애플 스토어가 좀 더 여러 곳에 생기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곳이 비록 코로나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져 공실률이 높아진 바람에 조금 휑하게 느껴지는 명동일지라도. 애플이 매장 오픈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전부터 새로운 매장에 대한 ‘카더라’ 수준의 ‘썰’이 돌기도 하고 커뮤니티나 블로그에 공사 중인 현장 가림막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애플의 새로운 오프라인 공간이 열리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는지 짐작 가능하다.
이따금씩 애플이 한국 시장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유 중 하나는 명동 매장을 포함하여 국내에 애플 스토어가 세 곳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세 곳이 모두 서울에 몰려 있기도 하다. 첫 매장은 2018년 1월에 문을 연 신사동의 Apple 가로수길, 두 번째 매장은 2021년 2월 문을 연 여의도 IFC몰의 Apple 여의도, 명동이 바로 세 번째 매장이다.
아이폰의 국내 첫 출시부터 줄곧 애플 기기들을 사용해왔음에도 굳이 애플 스토어를 방문하지 않았는데, Apple 명동은 매일 지나는 길목에 있어 한번 들러보려 한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명동 일대, 즉 4대문 도심은 많은 사람들의 일터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상업용 부동산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 발길이 끊어져 위상이 전과 같지 않지만, 여전히 공시지가 1위부터 8위까지의 토지는 모두 명동 쇼핑 거리에 있다.
애플이 서울 시내에 단 세 곳뿐인 매장 입지로 찍은 명동-여의도-신사동은 우연하게도 서울시의 도심 세 곳과 겹쳐진다. 바로 2014년에 서울시가 2030년 미래상을 그리며 세운 도시기본계획 <2030 서울플랜>의 ‘한양도성’과 ‘영등포·여의도’, ‘강남’의 3도심이다. 애플의 신규 매장 담당자가 서울시의 도시계획을 미리 검색하지는 않았겠지만 가장 많은 고객이 들르기 좋은 곳을 찾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도시계획상의 3개 도심과 매장 위치가 겹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한 도시에서 업무, 상업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도심이기 때문이다.
애플 스토어 위치와 3도심 체계. 출처=네이버 지도(위), <2030 서울플랜>(아래)
2022년 3월 초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의 3도심은 2040년의 미래를 바라보며 만든 도시계획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 4대문 안 도심을 일컫던 한양도성은 역사성보다는 서울 전체에서의 상징성과 중심성을 강조한 서울도심으로, 영등포·여의도는 금융을 비롯한 국제적인 업무 기능 역할에 초점을 둔 여의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의 6가지 목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는 ‘도시공간 재구조화’와 ‘미래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해 ① ’보행 일상권’ 조성, ② 수변중심 공간 재편, ③ 미래성장거점, 중심지 혁신, ④ 다양한 도시 모습, 도시계획 대전환, ⑤ 기반시설 입체화(지상철도 지하화), ⑥ 미래교통 인프라 확충이라는 6개 공간계획 목표가 제시되었다. 애플 스토어와 맞아떨어진 3도심의 변화를 비롯해 개발 방향, 연관된 미래 산업 키워드, 핵심 지역을 뜯어보고 도시기본계획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까지 알아보자.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곳을 모두 걸어서 이동하도록 ① ’보행 일상권’ 조성
첫 번째 목표인 ‘보행 일상권’ 조성은 해외에서 먼저 등장한 ‘15분 도시’, ‘20분 도시’의 서울시 버전이다. 2020년, 파리시장은 시내 어디에서나 자신의 일터, 학교는 물론 시장과 같은 편의시설, 공원, 공공기관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15분 도시’를 제안했다. 싱가포르에서는 20분과 45분을 내세웠는데, 20분 안에 지역 중심에 접근하여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면서, 최대 통근 시간은 45분을 넘게 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전부터 긴 통근시간을 줄이고 불필요한 이동 없이 편의를 누리는 도시를 만들고,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유사한 개념이 곳곳에서 등장해왔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동이 제한되거나 어딘가에 모이는 일이 최소화되고, 재택근무는 일상화된 까닭에 소위 ‘근린(neighborhood)’이라고 하는 동네 생활권의 중요성이 조명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행정동 1~2개를 하나의 도보권으로 보고, 도보 30분 내에 일자리와 편의시설, 문화시설과 공원・녹지가 있어 ‘일상생활을 보행권 내에서 누릴 수 있는 도시’를 목표로 내세웠다. 집과 일터는 물론 무언가를 즐기는 공간까지 모두 걸을 수 있는 생활권 안에 두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거에 치우친 지역은 기능을 복합화하고, 용도지역*을 유연하게 조정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업무나 상업용도는 물론 공원, 녹지를 비롯한 여가 용도가 함께 입지할 수 있도록 새롭게 복합용도를 도입하거나 용도지역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용도지역은 해당 토지의 이용을 고려하여 정하는 도시계획의 일종으로,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 혹은 조금 더 세분화된 ‘제2종일반주거지역’, ‘일반상업지역’과 같은 분류가 모두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많은 지역과 주거 우세 지역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서울에서 토지의 용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일자리를 재배치하는 것이 가능할까.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민간 부문이 단순히 사옥이나 매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 도시 안에서 사무실의 위치를 쉽게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거점 오피스나 공유 오피스를 고려할 수는 있으나 일상 회복을 바라보며 기존 오피스로의 복귀를 추진하는 회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자리 지도는 도시계획 외에도 미래의 산업과 고용 구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기본계획에 언급된 것만으로 당장의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렵고, 구직자가 가까운 곳에 있는 일자리만을 고집할 까닭도 없다. 그럼에도 팬데믹을 거치며 새롭게 발견한 지역의 가치를 계획에 반영하려고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는 있을 것이다.
한강은 물론 지천에도 이어지는 공간 계획 ② 수변중심 공간 재편
수변중심 공간 재편은 오세훈 시장의 첫 임기였던 2006년 시작된 ‘한강 르네상스’ 정책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수변 접근성을 높이고 한강 곳곳을 명소로 만들겠다는 정책으로 반포대교의 ‘달빛무지개분수’나 ‘세빛섬’이 탄생했다. 2009년에는 계획 대상지가 한강 둔치뿐 아니라 배후 주거지로까지 확대되었다. 서울시는 한강변에 전략정비구역 다섯 곳(성수, 합정, 이촌, 압구정, 여의도)을 지정하고, 초고층 재개발・재건축을 허용했다. 대신, 일반적인 고층(30층 이하) 단지보다 넓어지게 될 동간 간격을 활용하여 수변으로 열린 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는 성수 전략정비구역(성수동 한강변 일대)에서만 사업이 진행되고 있을 뿐 그 외 구역은 여전히 사업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추진이 어려워져 구역 자체가 해제되었다.
지난 일을 언급한 것은 이번에도 비슷한 관점에서 수변 활성화 방안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한강은 물론 서울의 4대 지천(안양천, 중랑천, 홍제천, 탄천)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한강 르네상스’에 비춰 말하자면 ‘지천 르네상스’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계획이다. 서울시가 예로 든 뉴욕 허드슨강의 ‘리틀 아일랜드’에서는 다시 ‘세빛섬’도 떠올리게 된다. 강변도로를 지하화하거나 덮개를 씌워 공원으로 만드는 방안도 등장했다.
수변 중심의 공간 정책이 연속성을 갖고 꾸준히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중랑천을 살펴보면 다른 지천의 미래도 점쳐볼 수 있다. 천변을 따라 교각 위에 떠 있는 동부간선도로를 지하화하는 공사가 2023년 착공을 앞뒀기 때문이다. 동시에 도로가 있었던 지상부는 수변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전임 시장 임기에서부터 추진 중이던 한강변 국제교류복합지구(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의 올림픽대로 지하화 사업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정비사업과 연계하여 수변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은 일부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적용되고 있다. 강변북로를 지하화하는 계획은 성수 전략정비구역 내의 4개 구역이 비용을 부담하는 전제로 추진되고 있다. 또한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반포 1,2,4주구의 정비계획에는 한강으로의 접근을 위해 일부 구간에 덮개 공원을 도입하는 계획이 반영되어 있다. 한강변의 다른 정비사업지에도 유사한 형태의 덮개 공원을 상상하면 되는 것일까. 그럼에도 다른 정비구역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지 가능성은 따져봐야 한다. 장기간이 소요되는 정비사업의 특성상, 부담을 작정하고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부동산 경기 악화로 사업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개별 민간사업과 연계된 정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2040 계획의 핵심, 3도심 ③ 미래성장거점, 중심지 혁신
서울도심
도심의 경우 2030 계획의 3도심 체계 자체는 유지되지만 개발 방향에 있어서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4대문 안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도심’의 경우, 변화의 폭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서울시는 지난 10년간의 보존 중심 정책으로 도심이 활력을 잃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높이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인센티브를 통해 용적률을 상향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90m에서 110m로 높아졌다가 다시 90m로 낮아진 건축물 최고 높이 제한은 다시 완화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전에도 인센티브 부여로 실제로는 90m 이상으로 추진된 경우가 많았기에 기존의 높이 제한 역시 엄격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는 그 높이 제한을 유연하게, 결론적으로는 상향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역 전면의 마루노우치 사례나 뉴욕의 허드슨 야드 개발이 사례로 등장하기도 했다.
도시 정비형 재개발사업, 즉 도심 재개발은 4대문 안에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된 상태이기는 하다. 그러나, 일부 미시행 구역에서는 높이 완화가 거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운상가 일대의 경우, 이번 도심부 정책 방향에 따라 높이나 용적률 완화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도심 재개발이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만큼, 재개발을 통해 완공된 건물을 다시 재개발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울역 전면 남산 자락에 위치한 힐튼 호텔의 재개발이다.
다만 한양도성 일대의 경우 서울시의 높이 규제 외에 문화재나 경관 보호를 위한 다른 높이 규제가 있으므로 높이 완화가 현재 이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는 사업마다 지켜봐야 한다. 좀 더 구체적인 미래상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별도로 준비 중인 서울 도심 마스터플랜에 담길 예정이다.
여의도 도심
여의도 도심의 조성 방향에서는 여의도 자체보다는 용산과의 연계와 배후지로 등장한 노량진이 눈에 띈다. 물론 여의도는 여전히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는 대표적인 업무 중심지이다. 2021년 개점한 ‘더현대서울’은 상업 중심지, 관광 중심지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입주 50년 차를 넘은 시범아파트를 비롯한 여의도 아파트 단지들은 재건축 관련 뉴스에 빠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개별 아파트 단지나 건물의 재건축 외에 신규 개발이 가능한 부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의도 일대의 마스터플랜·지구단위계획의 경우 2018년과 2021년에 각각 발표가 추진되다가 부동산 가격 상승 우려에 따라 공개가 보류된 적이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만큼, 시장의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앞으로 나올 지구단위계획과 여의도 금융특구 조성 방안의 내용에 따라 여의도 도심의 미래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의 가용공간 부족을 해소하는 대책으로 등장한 용산 정비창 부지는, 서울시가 인허가권자로서 원하는 대로 밑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유도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입지 중 하나다. 특히 공공주택을 짓겠다는 정부와 업무 중심으로 조성하겠다는 서울시의 입장이 대립했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청와대 이전 문제까지 더해져 계획대로 개발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
노량진 일대에서는 공공시설이 이전하고 남은 부지와 철로변 부지가 가용 부지로 지목되었다. 도시 기능 측면에서는 여의도의 업무 중심과 연계하고, 샛강을 중심으로 한 물리적 연결도 제시되었다. 기본계획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인접한 노량진 뉴타운의 배후 주거지로서의 역할도 기대해볼 수 있다.
강남 도심
강남 도심에도 다른 두 도심과 마찬가지로 가용지 부족 해소가 제시되었다. 기존 건물을 재건축하여 용적률을 상향하는 것 외엔 중심지 용도를 담을 건축 연면적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다. 현재 강남 상업지역의 용적률은 조례상 용적률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서 수치상 개발 여력은 있으나, 이미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오피스나 상가를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삼성동 코엑스 일대부터 현대자동차 부지, 잠실운동장까지 지정된 ‘국제교류복합지구’는 부족한 가용지 확보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거 한국전력 본사로 사용된 현대자동차 부지와 주변의 공공기관 이전 부지, 기능 복합화가 지속적으로 거론되던 잠실운동장은 강남 도심의 물리적 영역과 기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동쪽 끝이 잠실운동장이라면 서쪽 끝엔 서리풀터널 옆 정보사 부지가 있다. 물론 주거 지역으로는 개발밀도가 제한되어 있으며 입지 역시 구릉지이기 때문에, 삼성동 일대의 고밀 개발과는 조금 다른 컨셉으로 업무 복합 단지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이 역시 테헤란로의 끝에서 강남 도심의 물리적 한계를 조금 더 확장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축으로는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입체화가 단절된 주변 지역을 연결할 수 있는 계획으로 제시되었다. 주변 부지나 상부 공간은 신축을 위한 부지나 공원과 같은 오픈 스페이스로 활용될 수 있다. 서울시내의 다른 도로나 철도의 지하화 사업에 비해서는 좀 더 실현 가능성이 높은 계획이다. 당장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는 서초구의 경우 오래 전부터 연구 용역을 실시하며 본격적인 사업을 준비해 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Beyond Zoning, Beyond 35층 ④ 다양한 도시 모습, 도시계획 대전환
‘35층 룰 폐지’, ‘재건축 대못 35층 규제 삭제’와 같은 표현으로 언론에 보도되며, 이번 2040 계획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내용이다. 원래대로라면 기본계획은 개별 사업의 층수까지 규제할 정도의 구체성을 갖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임 시장 재임 시 ‘한강 자연성 회복’의 실천방안으로 주거지역 내 재건축 최고 높이는 35층을 넘을 수 없게 했고, 그 내용이 2030 기본계획에까지 그대로 담겼다. 도심은 초고층 건립도 원칙적으로 가능하나, 대부분의 재개발·재건축은 도심이 아닌 주거지역에서 추진되기 때문에 35층이 대원칙인 셈이었다. ‘특별건축구역’으로 단지 디자인을 차별화하면 층수를 완화해주는 정책도 있었는데, 38층까지 완화받은 반포의 ‘아크로 리버파크’가 해당 사례다.
2040 계획에서는 2030 버전에서 정해진 35층과 같은 층수 규제의 수치 기준을 삭제하고, 위원회 심의를 통하여 적정 층수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몇몇 단지에서는 35층 제한을 거부하고 오랫동안 50층 이상의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해왔다. 이런 단지 중에서는 분명 높이 완화가 자산 가치 상승으로 직결되어 사업성이 올라가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효과는 없이 공사비와 공사 기간만 늘어나는 구역도 있을 수 있다. 지금이야 각종 규제완화가 맞물려 모든 구역의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장기간이 소요되는 사업 특성상 주택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제시한 높낮이가 다양한 두바이의 수변 경관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간주한다 해도, 과연 이것이 층수 완화로 가능할지도 의문이 든다. 한강변 아파트의 단조로운 외관은 높이 규제 외에도 여러 동이 단지로 계획된 한국의 아파트 대부분이 가진 특성이나 수요가 검증된 배치·평면계획에 의해 형성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높이 완화와 함께 ‘Beyond Zoning’이라는 이름으로 용도지역 제도를 재편하겠다는 방침도 제시되었다. ‘보행 일상권’ 조성 항목에서 언급된 복합용도 도입이나 용도 완화가 제도로 정착된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현재는 엄격한 용도지역 체계에 따라 대상지의 지리적 위치나 입지와 상관 없이 동일한 용도지역이라면 동일한 토지이용규제가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입지에서도 기존의 용도지역 틀에 따라 활용되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지구단위계획을 통하여 용도지역에 담을 수 없는 세부적인 개발 방안을 만들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용도지역의 틀을 뛰어 넘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용도지역 제도의 한계는 개발 가용지가 부족하고 고밀개발이 당연한 서울시에서 오랫동안 이슈가 되었다. 2017년 서울시가 실시한 연구용역에서는 4종 일반주거지역, 1~4종 복합주거지역을 신설하고 용적률을 600%까지 허용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일반상업지역과 중심상업지역에도 종을 세분화하여 용적률을 최고 1500%까지 다양하게 부여하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당장의 법제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국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규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2040 계획에서는 뉴욕과 LA의 용도지역 시스템이 예시로 등장했다. 두 도시는 자체적으로 도시 내 각 지역의 현황에 맞게 용도지역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계획법에 따른 일률적인 제도에서 벗어나 서울에 맞는 체계를 만들어 실현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다만, 기존의 용도지역 변경이나 완화는 대개 개발밀도가 높아지는 방향이었으며, 사업자는 높아진 개발밀도를 받은 대가로 기반시설을 부담하며 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 지역 실정에 맞는 용도지역 체계를 고민한다면, 이러한 개발사업 구도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프라 확충보다는 개발 가용지의 확대 ⑤ 기반시설 입체화(지상철도 지하화)
기본계획의 한 축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파격적인, 지상철도 지하화가 다섯 번째 목표로 제시되었다. 도시 공간에 대한 계획이 우선인 도시기본계획의 성격을 고려하면 의외의 내용이다. 그러나 기반시설 입체화나 지상철도 지하화의 결과가 결국 ‘부지’를 만들고 인공적인 ‘대지’를 만드는 것이라면, 공간계획의 일부로서 도시기본계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40 계획 역시 지상철도를 지하화하는 목적으로 단절된 도시공간의 연결과 가용지 부족 해소를 들고 있다.
2000년대 상암 DMC와 은평뉴타운, 마곡지구, 문정지구를 끝으로 서울시가 주도할 수 있는 대규모 개발은 이미 끝난 상태다. 용산 정비창 부지도 서울시가 인허가권을 가지고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민간개발 사업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철도 부지의 경우 조금 더 공공의 관점에서 활용이 가능해 보인다. 지하화 또는 입체화를 한다 해도 철도라는 공공시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기에 완전히 민간 주도의 개발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시내 곳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입지가 우수하므로 다양한 용도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비슷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행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3년의 연구 결과에서는 지상철도 약 80km를 지하화하는 데 수십조 원이 든다는 결론이 도출되기도 했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지하화 시 활용하거나 매각 가능한 자산의 가치 역시 증가했을 것이므로 다른 결론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노선별로, 구간별로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시범사업지를 선정하여 지하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내용 역시 작년 하반기에 시작된 지하화 연구용역의 결과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철도부지는 아니지만, 기존 도로나 버스차고지 위를 데크로 조성하여 공공주택 단지로 조성하는 사업은 시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내의 주택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자 시작된 일명 ‘컴팩트 시티’ 사업이다. 북부간선도로 신내 IC 위에 지어질 ‘신내 컴팩트 시티’가 대표적인데 상부는 공공 임대주택과 공원으로, 하부는 도로와 주차장 등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김포공항, 용산, 삼성, 잠실의 공통점 ⑥ 미래 교통 인프라 확충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계획이 처음으로 도시계획 전면에 등장했다. 자율주행과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교통)은 똑같은 물리적 여건 내에서도 도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이 활성화되면 도심 내 도로와 주차장 수요가 감소하며 신규 도시공간이 창출된다는 기대도 있다.
서울시의 UAM 계획은 2020년 정부 주도로 시작된 K-UAM(한국형 도심항공교통)로드맵과 함께 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K-UAM을 위한 일명 ‘팀 코리아’에는 중앙정부와 연구기관, 지자체와 공기업, 민간기업이 참여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지자체의 일원으로 참여 중인데, 터미널과 같은 UAM 인프라에 대한 인허가권을 갖는 지자체로서 제도 개선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으로 김포공항, 용산, 삼성, 잠실과 같은 구체적인 UAM 터미널의 위치가 언급되었다. 공항과 도심 사이의 셔틀 활용을 생각하면 김포공항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동은 국제 비즈니스와 광역 교통망이 집중되는 입지가, 잠실은 민간투자사업에서 제시된 UAM 인프라와 한강변 입지가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용산은 국제업무지구를 예상하여 UAM 노선이 제시되었으나, 역시 청와대 용산 이전의 영향권 아래에 있어 어떻게 추진될 것인지 현 시점에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청와대 이전에 따라 한강변 비행경로에도 영향이 생길 경우, 서울시 계획은 물론 K-UAM 로드맵 상의 실증·시범 노선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2040 도시기본계획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도시기본계획은 20년 목표로 수립되는 계획이기는 하나 5년 마다의 재정비 과정에서 재수립 수준으로 내용이 바뀌거나 시장이 바뀌면 그 내용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 수립된 <2030 서울플랜>은 전임 시장이 재선을 앞둔 2014년에 발표된 계획인데 계획의 내용은 물론, 형식 자체도 기존 계획과 달랐다. 법적 명칭인 ‘도시기본계획’은 부제로 바뀌고 ‘서울플랜’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도 이례적이었다. 도시에 대한 공간적·물리적 계획 위주에서 벗어나 서울이 당면한 이슈를 선정하고 그 이슈를 대응하는 방식으로 공간계획을 제시한 계획이었다.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계획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그저 공공에서 법에 따라 수립하는 계획의 하나로서 도시계획에 관심이 많거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 정도만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한 도시가 세울 수 있는 최상위 도시계획이라는 위상에도 직접적으로 행위를 규제하는 식의 법적 강제성이 없어 그 계획이 어떤 식으로 일상에 이어지는지 모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박원순 시장이 재선과 3선에 성공하며, 서울플랜의 계획 기조가 전후 약 10년 간의 서울시 정책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서울플랜이 제시한 기본 방향이 분야별 세부 연구용역이나 계획수립을 통해 구체화되고, 개발 사업 또는 개별 필지 단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나 세부계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막연하고 모호한 계획 언어가 스터디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부동산 투자 학습 붐이 인 것도 한 몫을 했다. 오프라인 강의는 물론 유튜브와 인터넷 매체에서도 이제 투자에 앞서 도시계획을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와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에 이어 패키지로 묶인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에 대해서는 서울의 3도심 사이에 입지하고 있어 교통 인프라가 우수하고 일자리 접근성이 좋다는 설명도 가능했다. 도심, 부도심, 중심과 같은 단어가 명확한 구분 없이 쓰이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3도심=일자리로 귀결되며 입지 평가의 절대적 지표가 되었다. 도심은 아니지만 도심 수준의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산디지털단지가 언급되고, 공실률 제로라는 판교 역시 일자리의 대명사로 거론되었다. 입지를 알려면 일자리와 접근성을 알아야 하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도시계획이라는 논리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역시 미래 도시 공간의 변화를 짚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기본계획에 언급된 특정 계획 아이템만으로 투자에 나서는 사람은 없겠지만, 입지 변화를 예측하고 도시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이 될 것인지 가늠하게 하는 훌륭한 자료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2040년을 향하여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번에 공개된 2040 계획안은 전체 계획의 일부이기는 하나 당면한 개발 이슈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연말까지 최종 결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시민의 삶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다양하게 담겨야 할 것이다.
물리적 공간에 대한 계획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기후 변화의 시대에 도시는 어떠해야 할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양한 형태로 도시민을 위협할 재난은 어떻게 대처하고 막을 것인지, 시민의 커뮤니티는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미래와는 무관하게 20년 전에 멈추어 있는 영역은 없는지도 고민해본다. 2040년을 향하여.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김예샘
– 해당 콘텐츠는 2022. 5. 24.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외부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토스팀의 블로그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피드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건설사에 근무하며 법과 제도로 이루어진 도시계획을, 부동산이라는 결과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아파트를 비롯하여 대규모 복합시설과 도시 단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동산 개발사업을 경험하였습니다.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이야기하고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도시를 산책합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였습니다.
필진 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