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이드 치킨

치킨은 어떻게 우리나라의 소울푸드가 됐을까?

by 심용환

치킨값이 또 올랐다

만 원 짜리 세장. 이제 그 정도는 있어야 치킨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다. 치킨 브랜드들이 2,000~3,000원씩 앞다투어 가격을 올리며 ‘치킨 인플레이션’이 다시 화제다. 치킨값이 오를 때마다 뉴스는 빠르게 보도하고, 우리는 분노한다.

치킨값에 유독 여론이 뜨거운 것은 그만큼 치킨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음식이자 문화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치킨을 사랑하게 된 걸까? 한국 치킨의 대중화는 단순 우연이 아닌 경제성장과 맞물린 문화·산업적 산물이기도 하다.

통닭이 치킨이 되기까지

부위별로 조각내 튀긴 ‘치킨’의 시작은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로 알려진 ‘림스치킨’은 1975년 설립되어 1977년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1호점을 열었다. 요즘으로 치면 더현대같은 핫플레이스에 입점한 셈일 것이다. 당시의 정확한 가격은 찾기 어렵지만, 대략 2,000원 정도였다고 한다.

닭은 네 조각으로 잘라 ‘3G 파우더’를 묻혀 튀겼다. 마늘(Garlic), 생강(Ginger), 인삼(Ginseng)이 들어가 ‘3G 파우더’라고 불렀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특별할 게 없지만, 림스치킨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는 닭을 조각내거나 튀김옷을 입힌 치킨이 흔치 않았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기구이 통닭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튀김가루를 묻히고, 물반죽을 입힌 후, 다시 튀김가루를 묻히는 등 전용 가루 씽크대인 ‘브레딩 테이블’이 필요했는데 설비 투자에 만만치 않은 돈이 필요했다. 더구나 통닭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튀기는 과정 또한 전용 튀김 용기가 필요했고 기름도 훨씬 많이 써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옛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월급날 아빠가 사 오는 누런 종이봉투에 통째로 담긴 닭 한 마리’. 이 기름 한 방울 없이 구워낸 전기구이 통닭이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시대, 치킨은 혜성처럼 등장했다.

닭이 튀김옷을 입을 수 있었던 이유

치킨이 처음부터 서민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600~700원, 경양식집 돈가스는 1,300~1,400원 하던 1988년. 치킨 한 마리는 약 4,000~5,000원으로 짜장면과 돈가스보다 몇 배나 비쌌다. 심지어 짜장면과 돈가스도 생일이나 졸업식, 소풍 등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킨의 시대는 다가오고 있었다. 배경에는 1980년대 경제적 고도성장이 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며 양계 산업 또한 번성했기 때문이다. 1970년, 1.4kg이었던 국민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980년, 6.9kg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10년 사이 닭고기 소비량이 5배나 늘어난 것이다.

사실 닭고기가 한국의 입맛을 사로잡은 역사는 길지 않다. 조선 시대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던 고기는 소고기였고, 조선 후기에도 닭보다는 꿩사냥이 흔했다. 닭을 체계적으로 사육하는 시설이 들어선 것은 일제 강점기였고, 1960년대가 되어 과학적인 영농을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단계에 들어서게 됐다.

그리고 1980년대 경제성장의 성과를 고기를 구워먹는 것으로 누렸던 우리 국민들은 기름을 사용한 음식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치킨부터 삼겹살까지 현대 한국인의 육류 소비는 대부분 산업화 이후의 새로운 식습관이었다.

양념치킨의 등장

특히 1986~1988년까지, GDP 성장률은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찍으며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닭을 향한 한국인의 입맛 또한 나날이 발전했다. 엠보형 치킨, 크리스피형 치킨, 민무늬형 치킨 등 다양한 튀김옷 스타일이 개발되었고 ‘림스치킨’을 통해 이제 통닭이 아닌 ‘치킨’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양념치킨이 등장한다.

1984년 당시, 대구먹자골목에서는 통닭과 찍어 먹는 소스를 함께 내주곤 했었습니다. 대전에서 페리카나를 운영하고 있던 페리카나 치킨 창립자 양희권 회장은 찍어 먹는 소스를 보고 문득 소스를 찍어 먹는 대신 치킨에 버무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고추장, 마늘, 양파, 물엿, 마요네즈 등을 사용해서 양념을 개발하였으며 양념 소스를 묻혔을 때 맛이 더 잘 배는 얇은 튀김옷의 후라이드를 고수하여 양념치킨의 맛을 현재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페리카나 양념치킨 홈페이지

변화는 과감했다. 통닭에 튀김옷을 입힌 지 10년 만에 한국인들은 우리만의 치킨 제조법을 발전시켰다. 1984년 대구먹자골목에서는 고추장소스를 듬뿍 발라 양념치킨을 만들어냈다. ‘맛이 더 잘 배는 얇은 튀김옷’과 양념소스의 결합. 이때부터 한국의 치킨 산업은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추장에서 시작한 양념치킨은 곧 전국으로 퍼져 다양한 치킨 브랜드로 확대된다. 멕시칸 치킨, 처갓집 양념통닭, 이서방 양념통닭, 스모프 양념통닭 등 전문 브랜드들이 줄줄이 생기며 치킨이 ‘브랜드’로서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IMF와 치킨 프랜차이즈의 질주

90년대 교촌치킨(1991), 지코바(1994), BBQ(1995) 등 대표 브랜드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이 시작되었다. 꼭 치킨뿐만은 아니었다. 88년 압구정에 1호점을 내며 한국에 상륙한 맥도날드는 1990년대가 되어 국민 소비 수준이 높아지며 매장 수도 급속도로 늘어갔다. 종로김밥, 김가네 같은 브랜드 역시 이 무렵 등장했으니 90년대는 프랜차이즈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랜차이즈 시대는 ‘치킨’이 단순한 음식에서 산업, 창업 모델로 진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치킨 산업에 기회가 되었다. 20세기 말의 대한민국은 휘청였고, 수많은 가장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들은 치킨집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치킨집에 대한 서민적 이미지가 극대화된 것 도 이 시기이며, 자조적 농담처럼 말하는 ‘기승전치킨집’의 실제 사례이기도 하다. BBQ는 IMF 이후 치킨 프랜차이즈 열풍을 몰아 창업 4년 만인 1997년 가맹점 1,000개를 돌파했다. 류승룡 배우가 수많은 치킨집 사장님 연기를 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치킨은 간식, 술안주 그 이상

2000년대에 들어서며 치킨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사장님 부부가 직접 닭을 튀기고 배달까지 하는 동네 치킨집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사랑받고, 간장 치킨, 파닭 같은 새로운 메뉴와 컨셉을 앞세운 신생 브랜드들도 빠르게 인기를 끌었다.

브랜드들은 소녀시대, 전지현 같은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BBQ는 ‘치킨대학’을 만들어 창업 경험이 없는 일반인을 위한 외식 교육까지 시작했다. 치킨은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가 되기도 하며 하나의 콘텐츠로 확장되었다.

한국인에게 치킨은 단순한 간식이나 술안주가 아닐 것이다. 한 달 간 고생한 나와 가족에게 주는 소소한 보상이 되기도 하고, 고된 하루를 위로하는 낙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의 삶을 다시 일으킨 창업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특정한 음식이 이토록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대변한 적이 있었을까? 아마 김장문화 이후로, 치킨만큼 한국인의 애환과 삶을 상징하는 음식도 드물 것이다.

최근에는 파리, 뉴욕 등에서 한국치킨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불과 50년 만에 한국은 치킨 선진국이 되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치킨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또 다른 음식이 새로운 문화와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맛을 향한 한국인의 집요한 사랑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심용환 에디터 이미지
심용환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사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이자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역사와 인문학 공부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기관, 지자체, 매체 등을 통해 사람들과 호흡하는 인문학 강의를 한다. KBS 〈역사저널 그날〉, MBC〈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X〉 출연과 《1페이지 한국사365》를 비롯해 《리더의 상상력》,《꿈꾸는 한국사》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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