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손

선거운동 하면서 쓴 돈, 왜 세금으로 돌려주는 걸까?

by 심용환

선거철이 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두툼한 책 한 권을 낸다. <선거비용 보전 안내서>. 선거비용 보전은 선거운동을 위해 쓴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다. 당선자 뿐만 아니라 일정 비율 이상의 득표를 한 후보자도 선거비용 일부 또는 전부를 보전받을 수 있다. 여기서 드는 생각, ‘잠깐. 그 돈 설마 내 세금이야?’ 맞다. 우리가 낸 세금이다.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후보자가 15% 이상 득표할 경우 선거비용의 전액을 돌려받는다. 득표율이 10~15%일 경우에는 절반을 받는다. 비례대표의 경우는 ‘후보자 중 당선인이 있는 경우' 정당이 지출한 비용의 전액을 돌려받는다. 지역구는 후보자를 비례대표는 정당을 보고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국민의 세금으로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는 걸까? 선거비용의 보전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선거운동은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하며 동시에 후보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헌법 제116조 ①) 그리고 선거비용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 제116조 ②) 균등한 기회를 주고, 선거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공정한 선거, 즉 선거공영제*가 가능하다는 발상이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선거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고 정부가 선거를 관리하는 제도

페리클레스가 말했다 ‘재산에 관계 없이 공직에 몸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국가가 선거비용을 부담해야 공정한 선거가 가능할까? 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 국가이고 민주주의가 발전했는데 아테네가 대표적이었다. 그리스는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Pericles, BC495?~BC429) 시대 때 전성기를 맞이했고 바로 이때 수당 제도가 도입된다.

아테네의 저명한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그리스 시민 모두가 평생에 한 번 이상은 공직에 몸담으며 민주주의를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재산이 많은 귀족이나 평민만 정치에 참여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전쟁에 나갈 때도 개인이 무장 비용을 부담했다. 귀족이나 상류층은 많은 돈을 들여 강력하고 화려한 무장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자유민들은 출정하는 배에서 노를 젓는 역할을 했다.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노젓는 역할을 통해 자유민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노를 젓는 가난한 자유민들에게 수당을 지급했다. 이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었고 덕분에 아테네 시민들은 평생에 한 번 이상은 공직을 수행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에게도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를 주고, 이를 통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정치적 주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급여 제도를 만든 것이다. 국가가 선거비용을 부담하는 이유는 이와 상통한다.

선거 운동은 돈이 많이 든다. 선거벽보, 선거공보, 명함은 물론이고 간판, 현수막, 방송이나 신문광고,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등 모든 것이 돈이다. 어디 이뿐인가. 사무실 임차료, 임대차 대여비, 선거 로고송 등등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선거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비용 제한액은 평균 약 2억 1,800만 원으로 설정되었는데 지난번보다 20.1% 높인 액수다. 1인당 선거비용으로 약 2억 1천만 원 이상은 쓸 수 없다는 뜻이다. 비례대표의 경우는 약 52억 8,000만 원으로 이또한 지난 총선보다 8.1% 상향 조정되었다.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한 금액인데, 이렇게 선거비용에 제한선을 두는 이유는 과열 혼탁 선거를 막기 위함이다.

결국 돈이 없으면 선거 운동은 물론이고 정치 활동 자체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선거공영제를 통해 돈 안 드는 선거를 하고, 선거 비용을 국가가 보전해주면 돈이 없어도 정치를 할 수 있고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다.

‘돈 안 드는 선거’를 만들기까지

1990년대만 하더라도 ‘30억 쓰면 당선, 20억 쓰면 낙선’이라는 말이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금품(현금)을 살포하거나, 오리털 점퍼, 시계, 심지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볼펜까지 나눠주던 것이 대한민국이었다. 선거 부정은 한두건이 아니었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제기도 했다. 돈 안드는 선거는 커녕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많을수록 당선 확률이 높아지던 시대. 금권 선거의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 가운데 90년대 초 선거공영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핵심은 ‘돈 안 드는 선거'. 선거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감당하는 것이 선거공영제의 핵심이었다. 선거 벽보와 인쇄물 제작을 일괄 국고에서 지원하고, 정당 보조금을 늘리고자 했다. 당원 단합대회나 사랑방 좌담회* 등을 명목으로 금품을 살포하던 관행을 금지했고 금권 선거를 겨냥한 강력한 처벌 규정도 만들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정책이나 복지와 관련된 문제 등을 주민과 논의하는 모임

후보자 재산 공개도 이때 시작됐다. 후보자들은 재산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재산의 200분의 1이상을 선거비용으로 초과 사용하면 당선을 무효로 했다. 금품 살포는 미수에 그치더라도 처벌하고자 했다. 이를 감독하기 위해 선관위에 신고한 금융기관 계좌만 선거에 쓸 수 있게 하고, 사용한 비용은 증빙 서류를 첨부하여 회계 보고하게 했다. 그리고 이 내역을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했다.

더불어 선거 활동을 위한 유급 운동원을 무보수 자원봉사제로 전환했다. 음식물과 기념품을 포함해 어떠한 형태의 향응 제공도 불허했다. 대신 개인 연설회를 무제한 허용하고 간담회 개최, 신문 방송 등을 통한 선거운동을 도입했다. 후원회 결성 요건을 완화하고,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을 유권자 1인당 600원에서 800원으로 증액했다. 또한 선관위는 국민이 국회의원을 직접 후원하는 경우 그 비용을 5만 원, 10만 원, 50만 원으로 정하고 후원한 금액에 대한 영수증을 끊어주어 후원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동시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을 도입했다. *현재(2024. 04 기준) 후원금, 기탁금, 당비 등 정치자금은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되고, 10만 원초과 금액은 15%, 3,000만 원 초과 금액은 25% 까지 세액공제 된다.

시민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선거공영활동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2002년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 등 4개 정당은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선거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가가 부담’하며 유효 득표수의 15% 이상을 획득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선거 비용의 상당수를 보전해 주는 것에 합의를 보았다.

내 돈의 쓰임을 지켜보는 일

한국의 선거는 과거와는 다르게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 없을 수준으로 깨끗해졌다. 금권 선거는 찾아보기 힘들고, 선거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더불어 새로운 판례들도 쌓이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가 되면 선거비용도 보전받을 수 있을까? 2014년 지방선거 당시에 벌어졌던 논란이다. 선관위는 선거비용을 회수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지지했다. ‘선거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재산권보다 선거의 공정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국가 기관, 공공 단체의 일을 하는 사람을 뽑는 일에 관한 법률

선거비용 보전은 돈이 없는 이들도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제도적 기반이다. 단단한 기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세금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다. 내 돈을 들여 치른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는지, 내 돈을 들여 뽑은 정치인들이 올바른 정치를 하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열린재정 재정정보 공개 시스템에서 세금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다. 중앙·지방정부 지표별 재정 규모와, 분야별, 부처별 지출 등을 볼 수 있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 해당 콘텐츠는 2024. 4. 0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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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사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이자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역사와 인문학 공부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기관, 지자체, 매체 등을 통해 사람들과 호흡하는 인문학 강의를 한다. KBS 〈역사저널 그날〉, MBC〈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X〉 출연과 《1페이지 한국사365》를 비롯해 《리더의 상상력》,《꿈꾸는 한국사》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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