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이토록 쇼핑을 즐기게 됐을까?
ㆍby 심용환
11월 넷째 주 목요일 ‘블랙프라이데이’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쇼핑의 계절이 왔다. 소셜미디어와 광고는 온통 ‘SALE’로 도배되고, 국내외 기업들은 파격적인 할인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쇼핑의 즐거움. 우리는 그것이 상술임을 뻔히 알면서도 지갑을 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이토록 쇼핑을 즐기게 되었을까?
쇼핑의 모든 원칙, 백화점에서 완성되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신유행품점' 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주로 옷감과 화장품을 파는 가게들이었는데 카탈로그와 안내서를 구비했고 저가 판매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1852년 '신유행품'의 판매 기법을 도입한 세계 최초 백화점 봉마르셰를 시작으로, 루브르, 쁘랭탕, 사마리텐 등 여러 백화점이 등장해 기존 소매업의 질서를 뒤흔들었다. 많은 소매상이 몰락했고, 백화점은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소비와 쇼핑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초기 백화점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18세기 산업혁명을 계기로 방직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다양한 옷감이 만들어졌고, 소비자들은 새롭고 화려한 상품에 매료됐다. 백화점은 매력적인 상품을 더 매력 있게 전시했다. 큰 건물을 짓고, 넓은 공간을 확보해 ‘혼을 쏙 빼놓는’ 수준으로 제품을 멋지게 소개했다. 카탈로그를 만들거나, 셔틀 차량을 운영하면서 소비자를 섬세하게 대했고, 엄마를 따라오는 아이들을 위해 백화점 내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여는 등 세상에 없던 마케팅 전략이 백화점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백화점은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가 물건을 구경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주인과 흥정을 벌일 필요도 없었고, 마음껏 제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 동시에 엄격한 교육과 수당제에 훈련된 매장 직원들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우아하지만 집요하게 손님들을 꼬셨다. 백화점은 정찰제와 현금거래를 통해 판매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했고, 유행이 지난 상품은 염가 판매를 통해 해결했다.
무엇보다 백화점은 철과 유리로 지어졌는데 산업혁명의 기술을 상징하는 최첨단 소재였기 때문에 건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상품을 근사하게 전시하고, 고객이 공간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며, 구매 욕구를 자극한 모든 요소를 갖춘 백화점은 소비의 중심지가 되었고, 쇼핑의 기본 원칙들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의 백화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30년의 경성은 실로 백화점 시대다(경성일보).’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5대 백화점이 있었다. 미쓰코시, 조지아, 히라타, 미나카이, 화신 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이 있던 자리는 오늘날 신세계 백화점이 있는 소공동이다. 인근 조지아 백화점 역시 현재는 롯데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화신 백화점은 민족 자본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곳에는 현재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다. 대다수 민중에게야 백화점 쇼핑은 그림의 떡이었지만 소공동에는 일본인들이 다니는 백화점이, 종로에는 조선인들이 다니는 백화점이 있었다.
일본계 백화점은 해방 이후 미군정에 몰수되었다가 한국인 자본가들에게 나누어졌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조지아 백화점은 자리만 같을 뿐이다. 지금은 신세계나 롯데가 한국을 대표하는 백화점이지만 당시에는 화신 백화점의 인기가 대단했다. 친일파이지만 경영의 귀재였던 박흥식은 조선인들의 필요를 잘 알았고 무엇보다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이라는 물산장려운동에 부응하며 백화점 경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하간 한국의 백화점은 일본 백화점의 역사와 맞닿아있다.
에펠탑에서 아이스크림콘까지 박람회가 바꾼 소비의 역사
최근에는 ‘페어(Fair)’라고 불리는 박람회가 쇼핑을 즐기는 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리빙디자인페어, 핸드메이드페어, 펫페어 등 박람회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지고 세분화되고 있다. 페어는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산업과 관련 제품과 서비스, 기술과 아이디어를 전시하기 때문에 유행을 파악하고, 소비의 흐름까지 살펴볼 수 있다.
사실 박람회는 역사가 깊다. 백화점은 박람회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만국박람회’는 그야말로 국가와 도시의 위상을 보여주는 무대 그 자체였다. 개최국은 첨단의 발명품이나 혁신적인 기술을 만국박람회에서 공개했다. 소비 패러다임은 물론이고 생활 방식을 바꿔나갈 각종 기술들이 만국박람회를 통해 화제가 되고 투자를 받았다.
프랑스는 박람회를 여러 차례 추진하면서 도시 모양 자체를 바꾸어 나갔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열린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상징하는 기념물이었다. 파리는 에펠탑을 중심으로 센강 양안 일대의 건물을 재조정 하며 도시개발을 이어갔다. 루브르, 퐁피두 센터와 더불어 프랑스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오르세 역시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이었다. 엄청난 철근과 고도의 기술력은 그야말로 경탄의 대상이었다. 오르세의 경우 미술관으로 재탄생하며 명물이 되었다.
프랑스가 박람회를 통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만들어갔다면, 미국은 역시 미국다운 행보를 보였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는 ‘기업관’이 등장한다. 기업이 직접 박람회에 투자 하고 각자의 기업관을 통해 신기술을 선보였으니 오늘날 매해 열리는 CES 행사(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기업관은 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상징적 장소였다. 시카고 박람회 당시에는 제너럴모터스, 크라이슬러 등이 주도했고 ‘과학’을 특화시킨 행사였다. 벨의 전화기, 싱어의 재봉틀, 콜트사의 무기, 굿이어의 고무 제품, 매코믹의 트랙터. 그리고 에디슨의 전구, 메가폰과 축음기 등등 다양한 발명품이 박람회를 통해 주목받았다. 비단 기술 혁신뿐이었을까?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서는 아이스크림 콘이 히트를 쳤다. 박람회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터가 아니라 기술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단순한 경제 행위에서 시작된 소비는 이제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 백화점이 구현한 쇼핑의 기본 원칙은 오늘날 대형 쇼핑센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소비 패턴은 더 정교해지고, 개인화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소비 패턴은 어떤 형태로 진화할까? 과거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소비와 쇼핑의 다음 변화 역시 인간의 욕망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쇼핑은 참으로 진기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사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이자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역사와 인문학 공부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기관, 지자체, 매체 등을 통해 사람들과 호흡하는 인문학 강의를 한다. KBS 〈역사저널 그날〉, MBC〈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X〉 출연과 《1페이지 한국사365》를 비롯해 《리더의 상상력》,《꿈꾸는 한국사》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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