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돼요

by 머니그라피


샘나당을 운영하는 백예린, 백샘희, 백예원입니다

샘나당은 여수의 디저트 카페예요. ‘샘물을 나누는 집’이라는 뜻인데,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가치를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손님들은 직접 만든 마카롱과 스콘, 케이크를 좋아해 주세요.

샘희 샘나당은 2019년 철원에서 마카롱 픽업 가게로 문을 열었어요. 당시 저희는 18살(예린), 17살(샘희), 16살(예원)로 모두 청소년이었지만 학교를 안 다니고 있었어요. 제가 가장 먼저 자퇴했는데요. 학교를 그만둔 후 영어, 수영 등 다양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카롱이 유행하면서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베이커리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러자 엄마가 “가게 차리는 걸 목표로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이 일이 맞는지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서면서요. 저도 처음에는 먼 미래 정도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진짜 마카롱 가게를 차리고 싶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때 “응, 나 해보고 싶어”라고 대답하면서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어요. 돌이켜 보면 그때는 가게 차리는 걸 꿈빛파티시엘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만든 디저트가 놓여 있는 예쁜 가게 정도로요.

꿈빛파티시엘은 없었어요. 그냥 현실이었죠. 

보증금 포함 600~1,000만원으로 시작한 첫 가게는 14평 정도였어요. 한 사람이 들어가서 오븐을 열면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고, 만들다 힘들면 벽에 기대서 잘 수 있을 정도로 좁았어요. 손님이 5명 정도만 들어와도 내부가 꽉 차서 매번 밖에서 기다려야 했고요. 당시 저희가 모두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부모님께 돈을 빌려서 가게를 차리고 이후 나온 수익으로 조금씩 갚았어요.

철원에서 가게를 처음 오픈한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저희가 오픈 전날까지도 마카롱을 만들었거든요. 만들면서도 과연 손님들이 올지 반신반의했는데, 오픈하자마자 줄을 진짜 많이 서 주신 거예요. 그날 팔려고 만들었던 물량이 너무 빨리 떨어져서, 다음날을 위해 준비해둔 것까지 꺼내서 팔았어요. 다 합치면 천 개 정도 됐을 거예요. 가게 마감 후에 다음날을 위해 또 천 개를 밤새 만들어 오픈했고요. 그러다 셋째 날에는 결국 재료가 없어서 문을 못 열었어요. 

제가 살던 지역에는 마카롱 가게가 없었어요. 지역 커뮤니티에 ‘마카롱 먹고 싶다’는 말도 자주 올라왔죠. 그런데 어느 날 차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에 마카롱 가게가 생겼더니 사람들이 정말 많이 가더라고요. 저희도 가게를 열면 수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맘카페에 저희가 연습하는 것도 올리고 증정품도 준비하면서 가게 오픈한다고 홍보를 했어요. 동네로 들어오는 길목 5곳에 현수막도 붙였어요. 아마 동네 사람들이 한 번씩은 현수막을 봤을 거예요. 번Z 샘나당

여수로 옮기면서 80평으로 확장했어요

가족이 모두 여수로 이사 오게 되면서 철원 가게는 다른 분께 넘겨드리고 새로 가게를 차리게 됐어요. 새 공간을 알아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가게의 규모예요. 철원 가게가 워낙 소규모였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4명뿐인데도 좁았거든요. 새로운 곳에서는 넓고 쾌적하게 일하고 싶었어요. 저희 세 명이 각자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다를 테니, 그걸 찾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기 위해서라도 넓은 공간이 필요해 보였고요. 

처음부터 자본금과 평수가 딱 정해진 건 아니었고, 넓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공간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유동 인구가 많고 상권이 발달한 시내 쪽을 알아봤어요. 하지만 원하는 평수의 가게를 알아보려니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대가 훨씬 더 높았죠. 지금 가게 위치는 주변에 상권이 발달한 곳은 아니에요. 그래도 공간이 넓고 주변에 아파트와 학교가 있어서 손님들이 적당히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를 선택했어요.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던 건 아니에요. 여기는 철원 가게를 인계하고 받은 돈으로 차렸는데, 큰 금액이 아니다 보니 완벽하게 시작하지는 못했어요. 테이블이랑 의자도 몇 개 없었고, 그마저도 중고 거래로 가져온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익이 생기면 대부분 가게에 다시 투자해요. 

제일 먼저 바꾼 것도 테이블과 의자예요. 손님들이 좀 더 편하게 앉아 있다 가실 수 있도록 소파나 방석 등을 세팅하고 따뜻하고 집 같은 느낌이 나도록 우드 톤의 가구로 바꿨어요. 디저트 매대도 세 번 정도 바뀌었어요. 주력 상품을 스콘으로 정한 후에, 저희가 만든 스콘과 디저트들이 더 잘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디저트 매대를 직접 만들면서 업그레이드했어요. 

일주일에 스콘만 천 개 정도 팔려요

오픈조는 8시 반에, 마감조는 10시에 출근해요. 보통 하루에 8~10시간 일하지만, 크리스마스라든가 빼빼로데이 같은 시즌 때는 예약이 많아져서 그 이상 일하기도 해요. 3개 시즌이 겹친 어제는 아침 8시 반에 나와서 오후 10시까지 일했어요. 

날마다 만드는 디저트의 종류는 다른데, 주력 상품인 스콘은 일주일에 천 개 가까이 만들고 있어요. 품절돼서 손님이 원하는 디저트를 못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저희가 팔리는 상황을 보고 곧 떨어질 것 같은 디저트가 생기면 바로바로 조금씩 더 만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샘나당을 운영한 지 3~4년 정도 되니 이제는 천 개 만들면 천 개가 다 팔리는 것처럼 일주일 치 수량 계산을 잘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단가 계산도 안 하고 팔았어요. 할 줄 몰랐거든요. 막연하게 ‘기본 재료에서 2~3배 정도만 받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단가 계산하는 법을 배우고 나니 완전히 잘못하고 있었더라고요. 실제로 시간 들여 만드는 것 대비 남는 게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넘버스(Numbers) 등을 이용해 계산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가 좋은 재료를 너무 비싸지 않게 팔아서 더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이익을 많이 남기고 있지는 않아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나만의 속도로 찾기 위해 자퇴를 했어요

샘희 학교에 불만이 있다거나, 어떤 문제가 있어서 자퇴를 한 건 아니에요. 옛날부터 엄마랑 ‘미래에는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하고, 어떤 신념을 드러내면서 살고 싶은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획일화된 수업을 듣다 보니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속도에 맞게 공부하면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기로 했어요. 

예원 제가 중학교 때 우울증이 있었어요.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졌고,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매일매일 핸드폰만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보다 못한 부모님이 핸드폰을 압수할 때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잠만 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샘희 언니가 자퇴하니까 엄마가 ‘너도 학교는 그만두고 샘희랑 같이 지내보지 않을래?’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싫다고 했어요. 자퇴한 후의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작은 엄마(샘희 엄마)와 함께 학교에 다닐 때의 좋은 점과 자퇴를 했을 때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만약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면 어떻게 지낼지를 같이 이야기하다 보니 점점 학교를 그만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학교에 다닌다면 제가 노력하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점이 좋다고 생각했고, 반면 자퇴를 하면 스스로 삶을 개척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찾을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예린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학교를 그만뒀어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대학교에 갈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샘희랑 예원이가 자퇴한 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자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에 다니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수능 보고 대학에 가는 것 하나지만, 자퇴를 하면 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선택지가 여러 개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검정고시를 보면 여전히 대학도 갈 수 있을 테고요. 번Z 샘나당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돼요 

예린 자퇴하면 가장 먼저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었어요. 애들 다 학교 가 있을 때 텅텅 빈, 사람 없는 놀이공원에도 가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자퇴하고 바로 두 달 뒤에 가게를 차려야 해서 놀이공원은 가지 못했어요(웃음).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걸 좋아해요. 샘희가 마카롱 가게를 차리겠다고 했을 때 제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만들어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가게를 하게 됐어요. 

샘나당의 패키지 디자인을 시작한 건 작은 엄마의 제안 덕분이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 엽서나 패키지를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처음에는 대단히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결과물 내는 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제가 만든 스티커와 엽서를 손님들이 좋아해 주시는 걸 보면서 그림 그리는 게 즐거운 일이 되었어요.

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어요. 제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으로 누군가를 돕고, 그로 인해 인정받는 걸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못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고 채워주는 과정을 좋아해요. 

예원 예린 언니가 워낙 그림을 잘 그리니까 저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마카롱 꼬끄에 그림을 그리고, 케이크 디자인도 하면서 생각보다 나도 이걸 잘하는구나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저는 꾸준히 하는 걸 잘해요. 샘희 언니는 아이디어가 샘솟는 사람이라면, 저는 그 아이디어를 지속해서 이끌어가는 사람인 거죠. 

저는 새로운 도전이나 경험을 두려워하면서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샘나당에서 하는 일은 다 처음 해보는 것투성이라 도전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계속하다 보니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제가 많이 밝아지게 된 것도 샘나당의 영향이 커요. 처음에는 저에 대해 이름이랑 나이, 성별 정도만 알았다면 지금은 전체를 10이라고 했을 때  6~7 정도는 안다고 생각해요. 샘나당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저를 이만큼 알 수도 없었을 거예요. 번Z 샘나당

샘나당 이후의 삶에 대해 자주 상상해요 

샘나당 이후의 삶을 요즘 되게 많이 상상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샘나당을 시내 쪽으로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접었어요. 시내에 나가면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할 텐데, 수익을 위해 육체적으로 계속 노동하면서 디저트를 만들어 내는 게 저희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신 생산이나 카페 운영 말고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좋아하는 걸 어디서 어떻게 펼칠 수 있는지를 많이 상상해보고 있어요. 샘나당이 가진 가치와 철학을 지금보다 다양한 루트와 형태로 전할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샘희 10년 후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걸 지혜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린 저는 10년 후에 따뜻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제가 함께하는 사람들과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의 성장을 도우면서, 행복을 누리는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예원 저는 10년 후에 나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내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걸 책으로 담고 싶어요.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가치관을 세우고 꿈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Interview 송수아 김태성 Edit 송수아 Video 김태성 하인주 남정현 Graphic 조수희

– 해당 콘텐츠는 2022. 12. 2.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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