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의 꿈을 이루면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된다

by 머니그라피


17살 믹싱 엔지니어 방건호입니다

믹싱 엔지니어는 음원을 만들 때 후반 작업을 하는 사람이에요. 악기나 사람 목소리를 사운드적으로 듣기 좋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믹싱은 처음 해봤을 때부터 저랑 맞았어요. 믹싱이란 게 예술과 기술이 적절히 섞여 있는 작업이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 야매로 믹싱을 했었는데, 그때도 솔직히 평이 좋았어요. 어느 정도 믹싱을 잘하는 애로 알려져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믹싱 하나 해줄 수 있냐?”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냥 하는 건 힘들 것 같다”고 말하니까 자기가 돈을 주겠다는 거예요. 당시 저에게 큰돈이었던 만 원을 불렀는데 콜! 해서 작업을 했어요. 제가 처음으로 번 돈이니까 정말 기쁘고 행복했죠.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구글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믹싱 공부를 시작했어요. 진짜 과장하는 게 아니라, 그때는 종일 음악 틀어 놓고 아티스트 디깅을 했어요. 맨날 에어팟을 꼽고 있다 보니까 학교가 끝나면 에어팟에 습기가 살짝 차 있더라고요. 믹싱이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장비는 뭘 사야 하는지 이런 걸 닥치는 대로 찾아보면서 말 그대로 미쳐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힘들지 않았어요. 일상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아요. 

공부하면 할수록 궁금한 게 많아지니까 레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엄마에게 처음으로 제가 믹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어요. 엄마는 큰 반대 없이 열심히 하라고 해주셨고요. 그런데 중학교 2학년 올라와서 첫 시험을 볼 때, 제가 공부는 안 하고 음악만 녹음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화가 좀 나셨나 봐요. “남들은 다 공부하는데 너는 이러고 있냐”라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날 저녁에 엄마에게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법’을 장문의 카톡으로 보냈어요. 

그때 명언을 하나 적었던 게 “그 여정이 바로 보상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에요. 저는 공부를 하기 싫어서 음악을 한 게 아니거든요. 공부만큼, 어쩌면 공부보다 음악이 더 어려울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노력하는 이 여정이 보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말을 믿어요. 엄마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이제 너의 마음이 이해되고 믿게 된다. 음악 열심히 해 봐라.”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제가 엄마를 설득한 거죠. 믹싱 엔지니어

인스타그램으로 곡을 의뢰하는 사람도 생겼어요

지금까지 로얄 44(Royal 44), 릴김치(Lil Gimchi), 랍온어비트(lobonabeat), 클라우드베이(Cloudbay), 예스코바(yescoba) 등과 작업했어요. 

믹싱 엔지니어 일은 저에게 곡을 맡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 저에게 믹싱을 맡길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을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죠. 그러다 승민이라는 친구한테 연락해서 파일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승민이는 사는 지역이 다르지만, 음악으로 친구가 됐어요. 제가 랩을 하던 시기에 디깅을 하다가 승민이라는 친구가 유튜브에 무료 비트를 올린 걸 찾았어요. 무료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그 비트를 쓰곤 했는데 저랑 잘 어울리는 거예요. 그때 승민이가 유튜브 설명란에 자기 카톡 아이디와 나이를 적어놨는데 저랑 똑같이 06년생이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카톡했죠. “나 너랑 동갑인데 음악적으로 친해지고 싶다.” 그렇게 교류를 시작했고, 처음엔 음악 이야기만 하다가 지금은 서로 고민도 나누고 그래요.

제가 믹싱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을 때 마침 승민이가 믹스 테이프를 만들고 있었고, 제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고 친구가 다른 친구나 아티스트를 소개해주면서 클라이언트들도 많아졌어요. 이제는 인스타그램으로 작업 의뢰가 먼저 오기도 해요.

제가 투자한 만큼 작업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페이는 계속 오르고 있어요. 제가 투자한 만큼 작업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업 때마다 투자를 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이전보다 나아지거든요. 아직은 돈을 쓰는 것보다 모으는 게 더 좋아서, 수입에 비해 쓰는 돈은 1%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대신 장비를 사는 데 돈을 많이 투자해요. 

제가 믹싱을 시작하고 처음 산 건 컴퓨터였어요. 당시 제가 쓰던 컴퓨터가 너무 오래돼서 이것부터 바꾸고 보자는 마인드였죠. 그게 중학교 2학년 때인데 당시에는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지원해주셨어요. 그다음으로 필요했던 스피커까지도 엄마가 지원해주셨고요. 믹싱으로 돈을 벌고 난 후에 온전히 제 수입으로만 처음 산 장비는 아담 오디오사의 A7V라고, 지금 쓰는 스피커예요. 

지금은 제 작업실도 따로 있어요. 오후 5시에 학교가 끝나면 바로 작업실로 달려와서 작업하다가, 저녁 12시쯤 집으로 가요. 학교 안 갈 때는 여기서 매일 노래 듣거나 작업하고요. 여기에 있는 장비들도 제가 돈 벌어서 직접 산 것들이 많아요. 제가 살 수 있는 것 중에서 제게 가장 잘 맞고 괜찮은 것을 고르려고 노력했어요. 

아직 청소년이라 그런지 제 계좌는 하루에 30만 원밖에 못 써요. 예전에 큰 금액의 작업비를 제 계좌로 받은 적이 있는데, 한도 때문에 한 번에 이체할 수가 없어서 며칠에 나눠서 보냈어요. 그리도 한도가 30만 원이다 보니까, 30만 원을 통장에서 빼면 연결된 카드를 못 쓰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바닐라라떼도 못 먹고… 

그래서 작업비를 받거나 장비를 사는 계좌는 엄마가 관리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장비를 살 때 가끔 제 돈인데도 눈치가 보여요. 이 장비를 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제가 얼마를 달라고 하면, 엄마가 늘 얼마 남았는지 캡처해서 함께 보내주세요. 그럼 잔액을 보고 ‘아, 이것밖에 안 남았어?’ 하면서 정신 차릴 때도 있고 ‘아, 이 정도면 괜찮아’ 이러면서 넘어갈 때도 있고 그래요.

아티스트에게 신뢰를 주는 믹싱 엔지니어 되는 게 꿈이에요

제가 친구들보다 돈을 먼저 벌기 시작했잖아요. 그래서인지 ‘나도 돈 벌고 싶으니까 음악해야겠다.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려달라’고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공부하기 싫어서 음악을 하는 건 용납이 안 돼요. 음악도, 믹싱도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 분야니까요. 그래서 늘 “아니다, 음악을 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만큼 노력해야 하고, 해야 할 것도 많다”라고 이야기해요. 

동시에 책임감이 더 생겨요. “내가 누군가의 꿈을 이루면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비슷하게 저도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데, 제 친구들은 저처럼 되고 싶어 하니까 책임감이 생겨요.

물론 힘든 것도 있지만 아직 믹싱이 재밌고 행복해요. 길을 지나가다가 제가 믹싱한 음악이 나오면 ‘어, 이거 내가 믹싱한 곡인데’ 하면서 혼자 즐길 수 있는 그런 맛이 있어요. 아티스트의 곡을 먼저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나중에 크면 제 스튜디오를 차리고 싶어요. 아티스트들이 여기에 오면 좋은 음악을 만들고 뽑을 수 있다, 여기에 오면 편안하고 좋은 사운드를 얻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스튜디오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나중에 근본과 책임감, 신뢰가 있고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는 믹싱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요. 그게 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Interview 송수아 김태성 Edit 송수아 Video 김태성 남정현 Photo 김예샘 

– 이 콘텐츠는 2022. 12. 16.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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