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기후테크에 달렸다
ㆍby 커피팟
최근 기후 분야에서 다소 절망적인 소식이 먼저 발표된 다음에 조금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어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은 무엇이고, 이 소식들이 전해진 각 국제기구 회의에서 나온 공통적인 결론은 뭐였을까요? 기후테크
나쁜 소식: 예상보다 심각한 기후 위기
2월 28일, 기후 위기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는 IPCC*의 제6차 보고서(AR6)가 전 세계에 충격을 줬어요. 보고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후변화 위험으로부터 도시, 농장, 해안선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인데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보고서를 두고 “인류 고통의 세계지도(atlas)이자, 전 세계 리더십의 실패를 비판하는 고발장”이라고 촌평했죠.
*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이번 보고서가 충격인 이유는, 불과 몇 년 전까지 과학자들이 얘기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과학계에서는 지구 기온 상승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덜 직접적이라고 말해왔는데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산불⋅폭염⋅해수면 상승 등 생태적 위협이 신체적 질환은 물론이고 정신적 질환까지 유발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어요. 또, 지구 기온이 19세기 대비 1.5도 이상으로 한 번이라도 올라가면 해안⋅산악⋅극지방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도 드러났죠.
좋은 소식: 플라스틱 시대는 곧 끝난다?
우울한 소식이 전해진 이틀 뒤, 케냐 나이로비에서 희망적인 소식이 하나 날아왔어요. 유엔 회원국들이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만들기로 했다는 거예요. 그동안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해양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결의안을 만든 적은 몇 번 있지만, 플라스틱 전체 생애주기에 관한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기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구속력이 있는 만큼 플라스틱을 생산⋅판매⋅이용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2015년 파리협정 이후 가장 중요한 협정”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요.
이번 안은 포괄적인 플라스틱 전체 생애주기를 다루는 페루⋅르완다 안과, 해양 플라스틱에 초점을 맞춘 일본 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요(참고로 한국은 페루⋅르완다 쪽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어요). 미국화학협회(ACC)*는 최대한 일본 안이 반영되도록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어요. 미국 국무부는 “국가별로 상황이 다른 ‘해양 플라스틱 오염’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 협상을 지지한다”라는 입장을 냈고 중국도 일본 안을 지지했죠.
그렇지만 결국 페루⋅르완다 안이 더 비중 있게 받아들여지면서, 해양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전 생애주기에 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을 만들기로 한 건데요. 플라스틱 오염은 그 특성상 전방위적인 접근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 듯해요. 해양에 부유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만 보더라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나라와 해류 등의 영향으로 밀려온 쓰레기를 떠안는 나라가 다르니까요.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상황을 두고 “플라스틱 기득권을 쥔 석유화학 산업의 반발에 맞서기로 한 야심 찬 결의안”이라고 표현했죠. 이제 2024년까지,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각국과 글로벌 기업은 각자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결의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작업을 벌일 것으로 예상돼요.
“기후 위기에 대응할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사흘 사이에 연달아 발표된 IPCC AR6와 유엔환경총회 합의는 중요한 지점에서 공통된 목소리를 냈는데요. 바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기술(climate technology, climate-tech)’을 개발해야 한다며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에요.
IPCC 보고서에는 가뭄을 잘 견딜 수 있는 작물 품종 개발 등 각국이 자기 상황에 맞게 기술 개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어요. 유엔 회원국들도 플라스틱 오염 절감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더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고요. 코카콜라, 펩시, 네슬라 등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속한 단체인 ‘플라스틱 오염 관련 유엔 협약에 대한 산업계의 요청(The Business Call for a UN Treaty on Plastic Pollution)’ 측에서는 생원료 사용과 패키지 혁신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협약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보냈어요.
블룸버그는 오피니언을 통해 “기존 플라스틱 사용을 제한하고 대체 소재와 재활용 시스템 연구를 지원하는 정부 조치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나서서 새우껍질, 옥수수, 해조류 등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대체품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어요. 기업과 정책 당국이 최종 협약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서면요.
주류 회사 바카디(Bacardi)처럼 기술 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례도 재조명되고 있어요. 바카디는 매년 8000만 병의 술을 파는데, 어마어마한 플라스틱병이 나오는 사실에 자성하고 2023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재생 플라스틱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분해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기존의 플라스틱병과 달리 18개월 만에 생분해되는데, 매립지는 물론 바다에서도 분해된다고. 바카디는 이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새로운 표준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생각도 있다고 전했어요.
“기후테크, 돈이 돼?”
여기까지 읽으면 “그래, 기후변화 대응 기술에 투자하는 게 중요하겠지. 그런데 그게 돈이 돼? 투자기관이나 기업이 돈이 안 되는 사업에 움직이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기후 분야에 먼저 주목한 건 사실 투자자들이에요.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기후는 이미 ‘당위’ 문제가 아닌데요. 여러 맥락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사건을 꼽는다면, 2020년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이 “우리는 앞으로 기후에 투자할 것이며, 탄소 배출에 영향을 끼치는 투자는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이에요.
블랙록은 한국 돈으로 1경 원이 넘는 돈을 굴리는 세계 1위 자산운용사죠. 2021년에도 ‘기후 위기 대응 투자가 중심’이라는 묵직한 연례 서한을 발표했던 핑크 회장은 2022년 신년 서한에서 “사회적이거나 이면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것이 자본주의다”라며 ESG 투자를 강조하는 배경을 설명했어요. 이제 자본 시장에서 재무적 가치만큼이나 환경⋅사회 등 비재무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비재무적 가치에 신경 쓰는 것이 곧 주주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처사이자 지속가능한 기업활동이라는 뜻이에요.
2021년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45개국 금융기관 450곳이 모인 ‘넷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금융 연맹(GFANZ)’이 결성되면서 기후테크 투자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요. GFANZ는 “2050년 넷제로(온실가스 순 배출량 0)를 목표로 130조 달러(약 15경 3000조 원) 규모의 자본을 투자하겠다”라며 일정 기간마다 탄소중립 진척 상황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GFANZ에는 HSBC 홀딩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도이치뱅크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이들이 전 세계 자산의 40%를 굴리는 만큼 이들과 엮인 전 세계 다른 회사들도 탄소중립 투자 및 기업활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기후테크 투자에 눈 돌리는 기업들
‘라임 팀버’라는 미국 회사가 있는데요. 150만 에이커(약 18억 평)의 삼림을 소유한 목재회사예요. 이 회사의 CEO 짐 우르드퀸(Jim Hourdequin)이 며칠 전 블룸버그에 “우리 회사는 사실 가짜 탄소배출권”을 팔아왔다고 양심 고백을 했어요.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미국에는 기업⋅기관이 산림의 탄소 흡수량을 구매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인증받는 ‘산림 탄소 상쇄 제도’라는 게 있어요. 쉽게 말하면 기업이 돈을 써서 간접적으로 나무 심은 효과를 내게 하는 탄소중립 실천 방법이죠. 라임 같은 산림 소유주로부터 기업이 탄소 흡수량을 구매하면, 산림 소유주는 그만큼 목재 수확량을 줄이거나 새 나무를 심어요. 이론적으로 보면 기업의 지출이 탄소 감축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라임 팀버는 삼림의 약 15%(2억 7000만 평)를 산림 탄소시장에 내놓아 최근 2년간 5300만 달러(약 660억 원)를 벌었어요. 기후테크
그런데 이 제도가 성립하려면, 한번 판매된 산림은 중복으로 거래될 수 없어야 해요. 특정 면적만큼의 산림이 만들어내는 탄소 흡수량을 이미 구매한 곳이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라임 CEO가 고백한 내용에 따르면, 사실상 중복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요. 벌목하지 않겠다고 계약했거나, 원래 벌목이 불가능해 추가적인 탄소 절감 효과가 없는 숲도 탄소 시장에 팔고 있고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생긴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데요. 친환경 효과에 대한 의문은 자꾸 제기되는 데다, 라임 CEO의 고백처럼 시장 교란 행위도 적발되면서 규제당국에서 탄소배출권 시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기 시작했어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모든 상장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처럼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은 스코프 1~3으로 분류하는데 스코프1은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 스코프2는 전력 사용 등으로 간접 배출하는 온실가스, 스코프3은 한 기업의 제품이 생산⋅유통⋅소비⋅폐기되는 전체 밸류체인에서 발생하는 모든 배출량을 가리켜요. 미국 SEC가 스코프3까지 의무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확정하면(물론 그 내용과 범위에 따라서) 전 세계에 미칠 파장이 큰데요. 그래서 미국 최대 기업단체인 미국상공회의소(The U.S. Chamber of Commerce)는 당국이 스코프3 공시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반대로 환경단체들은 엑손모빌 같은 석유 기업의 경우 탄소 배출량의 85%가 스코프3에 해당한다면서 공시 의무에 스코프3 포함을 요구하는 상황이고요.
이처럼 규제와 감시가 치밀해지면서, 오히려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정확하게 집계해주는 스타트업의 몸값이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탄소 회계 소프트웨어로 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주는 워터쉐드(Watershed) 같은 스타트업이 대표적인데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세쿼이아캐피털의 리드로 7,000만 달러(약 840억 원) 규모 투자를 받으면서 기업가치 1조 원(10억 달러)을 인정받아 유니콘 스타트업에 등극했어요.
벤처캐피털 투자 관련 전문 리서치 업체인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탄소 회계 소프트웨어 분야는 지난해 3억 6000만 달러(약 4,2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어요. 이는 1년 전보다 5배가 늘어난 수치예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도 탄소 회계 분야에 직접 뛰어들거나 인수합병을 늘리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어요. 세일즈포스는 자체 개발한 ‘넷 제로 클라우드‘를 출시했고,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클라우드 고객이 탄소 배출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었죠. 글로벌 기업에서 기후테크 에 투자하는 금액도 늘어나고 있어요.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탄소 배출량이 큰 회사일수록 혁신 기술로 배출량을 절감하기 위해 스타트업 육성⋅투자에 관심을 보인다고 하는데요. 일례로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직접 탄소중립 선박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어요.
Writer 앨런 커피팟에서 기후위기에 산업계와 자본 시장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전해요.
Edit 송수아 Graphic 박세희
– 이 글은 2022년 3월 8일, 3월 22일에 발행된 커피팟의 뉴스레터에 기반해 2022년 4월 25일(월) 기준으로 재편집되었습니다. –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외부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토스팀의 블로그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