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길어질수록 ‘눈앞의 손해’를 택하는 이유

by 김경일

심리학자가 애용하는 실험 재료는 ‘돈’

인지심리학은 ‘생각의 작동 방식’을 정밀하게 분해해 연구한다. 일상 속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인과 관계에 기초해 설명하는 학문이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아, 그래서 그렇게 됐구나’ 하는 이해와 ‘그러면 이렇게 해야 하겠구나’라는 통찰을 주는 심리학 분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사고하는 과정 속 원인과 결과를 세분화해서 탐구하기 때문에 미시심리학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물론 경제학처럼 미시와 거시를 분명하게 구분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미시적이고 정밀하다는 것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서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지심리학자들이 자신의 실험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는 바로 ‘돈’이다. 왜일까? 돈은 인간이 지닌 가치판단 체계 중에서 가장 촘촘한 눈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촘촘함은 마치 줄자의 눈금과도 같아서 미세한 판단의 차이도 정밀하게 반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통해 그 개인과 사회의 가치관을 상당 부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돈에 대한 판단을 관찰함으로써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추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돈을 둘러싼 태도를 보는 것은 결국 우리의 생각을 살피는 일이므로, 이를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심화시켜 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눈앞의 작고 확실한 손실 vs. 크고 불확실한 손실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에서 유명한 예를 하나 살펴보자.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아래의 두 상황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개인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연구나 실제 인터뷰에서 평균적으로 약 80%의 사람들이 B를 선택하겠다고 응답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확실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A의 상황보다는 더 모험적이긴 하지만 B의 상황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오히려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는 모험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의 ‘조망 이론(혹은 전망 이론, prospect theory)’의 핵심 현상 중 하나기도 하다.  ✱출처=Hershey, J. C., and Schoemaker, P. J. H., “Risk Taking and Problem Context in the Domain of Losses: An Expected Utility Analysis,” The Journal of Risk and Insurance, Vol. 47, 1, 1980, pp.111-132.

그런데 이러한 이른바 ‘확실한 손실 혐오’ 현상 즉 옵션 B 선호 경향이 언제나 일관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든 상황에서 B를 선호한다면 애초에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보험이다. 보험이란 무엇이겠는가? 큰 손실(20만 원)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작지만 확실한 손실(5만 원)을 기꺼이 감수하는 상품이다. 즉 옵션 A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다양한 보험을 구입한다. 어떤 과정을 통해 A, 즉 확실한 손실을 감수하는 것일까? 

핵심은 두 옵션간 제시 간격에 있다. 예를 들어, A와 B를 동시에 제시하고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차를 두고 보여주거나 들려주면 사람들로 하여금 정반대의 선택인 A를 선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B의 상황을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즉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B의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즉 25%의 확률은 사실 무시할 수 없는 것이며, 20만 원이라는 큰돈을 잃을 때의 상실감 역시 상당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상상하면, 두려워진다 

상상이라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의 상상은 말 그대로 무엇의 시작과 발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싫은 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거나 짜증이 나곤 한다. 아직 그 일이 벌어지거나 내 앞에 나타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20만 원을 잃는다는 상상을 일정 시간 지속하고 나면 이제는 당연히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은 욕구도 커진다. 이때 A를 하나의 대안의 형태로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A를 선택하면 B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러면 거의 70%의 사람들이 기꺼이 A를 받아들여 B의 상황을 피하겠다고 응답한다. 이제 사람들은 확실한 작은 손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보험은 그렇기 때문에 판매가 가능하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보험 프리미엄(insurance premiu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확실하게 작은 손실과 불확실한 큰 손실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상상을 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가치를 판단하는 인간의 기준이 얼마나 유동적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번 더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할까?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에 대해 ‘얼마나 상상하는가’가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요한 사안에 있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 고민하는 중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그렇게 단순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역으로, 내가 지금 오래도록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무언가의 객관적 가치는 그대로 두고서라도 어느 것에 대해 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느냐에 따라 주관적 가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확실한 돈과 불확실한 돈의 가치다. 

설득이 급할수록 여유를 줄 것

이를 좀 더 인간사에 확장해 고민해 보면 심리학이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대해 밝혀온 가장 중요한 측면 하나가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는 설득이 논리와 이성에 기초해 호소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위의 예는 설득이 결코 그것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물며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가’에 관한 판단에 있어서도 말이다. 생각, 즉 ‘상상할 시간적 여유’를 부여함으로써 정서와 감성 역시 움직여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이제 B의 상황에 대해 나와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같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개의 대안을 놓고 그중 더 합리적인 안은 이것이니 그것을 고르라고 하는 식의 양자택일식 강요는 설득이 아니다. 설득의 대상은 작은 희생을 기꺼이 제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반감이 생기고, 설득하는 입장에서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어리석은 방법이다. 많은 설득과 협상의 전문가들이 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줌으로써 이득을 보는 결과에 더 빨리 다다를 수 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상대방이 같은 정서로 ‘공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설득이다. 돈도 예외가 아니다.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 해당 콘텐츠는 2023. 1. 5.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 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토스팀 브랜드 미디어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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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인지심리학자이자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창의성에 관해 연구했다. 다양한 기관・매체에서 강연하며 ‘생각의 작동 원리'를 알리고 있다.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지혜의 심리학⟫과 ⟪적정한 삶⟫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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