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 시작되는 과소비의 심리학
ㆍby 김경일
선생님, 뭔가 사는 행위를 멈추기 힘들어요
참 많은 분들이 과소비에 대해, 또는 보복소비에 대해 질문을 주신다. 과소비는 ‘돈이나 물품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 보복소비는 ‘어떤 외부 요인으로 억눌려 있다가 터져나오는 소비 현상'을 뜻한다. 보복소비의 대표적 예로 코로나19 때문에 생활에 제약이 많아졌을 때 국내 백화점 명품관에서 폭발적인 소비가 일어난 현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억눌림은 줄어들었지만 국제 정세는 전쟁, 자연 재해를 거치며 더욱 험악해졌고, 가파르게 올라가는 금리, 불황 속에서도 물가가 자꾸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경제는 침체 사인을 자꾸만 보내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널뛰는 소비 심리는 멈출 줄 모른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쇼핑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6.6%씩 성장했고, 2022년에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처음으로 200조 원을 넘겼다. 단순히 소비만 증가한 것은 아니고, 만족의 역치가 높아져 명품을 비롯한 고가품 소비 증가세가 유난히 눈에 띈다.
질문하는 분들은 “아무리 소비를 줄이려고 결심하고 조심해도 어느새 사고 싶은 것만 잔뜩 늘어나 있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단순히 이번 달은 소비를 줄여보자는 마음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데 공감한다. 왜 그럴까?
사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의지나 결심의 힘을 크게 믿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OO을 하지 말아야지"의 OO은 원인이기보다 무언가에서 비롯된 결과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심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결과 이전의 근본적 원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과소비의 심리학에는 우리가 자주 놓치는, 그러나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휴식과 외로움이다.
부족한 휴식은 자극적인 소비를 부추긴다
현대인은 다들 바쁘다. 늘 할 일이 많거나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신경 쓰느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런데 우리는 바쁠수록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고 한다. 머릿속이 바쁜 것과 자극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르네 반더 발(Reine C. van der Wal) 박사와 로테 반 딜렌(Lotte van Dillen) 교수의 연구✱로, 둘은 먼저 실험 참가자들에게 레몬에이드(혹은 크랜베리 주스)를 마시고 신맛과 단맛의 강도를 평가하게 했다. 그러고는 A군은 일곱 자리 숫자들의 배열을 동시에 외우게 했고, B군은 한 자리 숫자들의 단순한 배열을 외우게 했다. 그러면서 레몬에이드(혹은 크랜베리 주스)를 마시게 하고, 사전에 마신 것 대비 신맛과 단맛의 강도가 어떤지 평가하게 했다. 주어진 일의 강도가 입안에 들어오는 음료의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한 것이다.
✱Van der Wal RC, Van Dillen LF. ⟨Leaving a Flat Taste in Your Mouth: Task Load Reduces Taste Perception⟩, Psychological Science. 2013;24(7):1277-1284. doi:10.1177/0956797612471953
결과는 명확했다. 일곱 자리 숫자들의 배열을 외우던 사람들은 더 시고 더 단 음료를 줘야 사전에 마신 것과 같은 강도를 느꼈다. 다시 말해 순한 맛의 음료로는 평상시와 같은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이어진 실험에서는 특정한 맛의 강도뿐 아니라 섭취하는 음식의 양도 바쁜 상황에서는 더 강하고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평소와 유사한 수준의 만족감을 가진다는 것을 밝혔다.
어떤 행위에서 온전한 만족을 느끼려면 반드시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주의가 분산되어 집중이 흐트러지면 똑같은 행위를 해도 만족의 양과 질이 떨어진다. 위 실험 결과가 말해주듯이 사람들의 뇌가 바빠지면 결국 평소보다 더 크고 자극적인 무언가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과소비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내가 이전보다 부쩍 커다란 보상과 자극을 원하고 있다면 되돌아보자. 필요 이상으로 내 머릿속에 할 일을 밀어넣고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은가를 말이다. 잦은 충동 구매, 고가품에 대한 집착 등의 원인이 의외로 여기 있었는지 모른다.
외로운 사람이 낭비하게 되는 이유
불황과 팬데믹으로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사람들이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연구✱가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신시아 크라이더(Cynthia Cryder) 교수가 그 주인공으로, 논문의 제목만 보아도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다. “고통받는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Misery Is Not Miserly).” 과거 다양한 연구들에서도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과 전혀 무관한 물건 구입에 있어서도 과소비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은 자주 관찰되어 왔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는 슬픈 영화나 재난 영화를 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경향이 관찰됐다. 왜 고통받는 사람들은 과소비에 취약해질까?
✱Cryder, C. E., Lerner, J. S., Gross, J. J., & Dahl, R. E. (2008). ⟨Misery Is Not Miserly: Sad and Self-Focused Individuals Spend More⟩, Psychological Science, 19(6), 525–530. https://doi.org/10.1111/j.1467-9280.2008.02118.x
연구진은 그 이유와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선, 사람들은 마음이 힘든 일을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쪼그라든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욕구가 발생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욕구의 상당 부분이 엉뚱하게도 문제 해결과 무관한 물건의 소유욕 같은 것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사실 일상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자주 목격해왔을 것이다. 실연의 상처를 받고 난 뒤 폭음이나 폭식을 하는 경우는 그나마 무난하다. 존중이 부족한 성장 과정을 거친 학생과 성인들 중 일부가 학교와 직장에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측면이 강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상받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 등 역시 정확히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불안하고 고통받는 팬데믹이나 경제 위기의 시대에는 엉뚱한 보상 심리로 마음을 회복하려는 현상이 더 광범위하게 관찰되곤 한다.
크라이더 교수의 연구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도 같이 제시하고 있다. 실험 진행 중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과소비 경향이나 사치품 소유의 욕구를 불필요한 수준으로 보이지 않은 사람들에 주목한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 상대적으로 ‘자기 초점(self-focus)’ 경향성이 낮은 공통점을 보였다. 자기 초점은 자신이 겪는 일들이 모두 자신과 관련 있으며, 그래서 자신에게만 집중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성이다. 그리고 자기 초점 경향성이 낮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 나 때문에 일어났거나, 나에게만 일어난다는 생각을 덜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자기 초점 경향성이 높은 것, 즉 불행과 고난이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늘 외롭다. 안 그래도 외로운데 그런 경향이 더 외롭게 한다. 마음의 문제는 물건 소유로 해결되지 않으므로 결국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 희로애락을 나누며 외로움을 다스려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불안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 해당 콘텐츠는 2023.3.10.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 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토스팀 브랜드 미디어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자이자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창의성에 관해 연구했다. 다양한 기관・매체에서 강연하며 ‘생각의 작동 원리'를 알리고 있다.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지혜의 심리학⟫과 ⟪적정한 삶⟫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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