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다른 면 보고 고민하는 사람들

그 사람, 다시 믿어봐도 될까? 신뢰에 관한 심리학

by 김경일

기대를 저버린 사람에게 다시 투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경험하는 투자 대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 기업, 이를 아우르는 시장, 부동산 등등. 꾸준한 경제 공부와 각종 지수・지표 확인이 필요한 투자도 많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해볼지 결정할 때, 시작 단계의 작은 조직처럼 쌓아온 성과보다는 앞으로 일궈나갈 사람의 역량이 중요할 때 등 사람에 대한 신뢰 여부가 중요한 결과를 낳는 투자도 많다. 어쩌면 숫자를 뜯어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만약 한번 기대를 저버린 사람을 다시 믿어봐야 하는 때가 온다면? 그것이 친구이든, 거래처이든 고민은 더 깊어진다. 내가 내린 판단에서 실패를 겪고 나면 점점 새로운 시도도 소통도 줄이는 빈곤한 사례를 우리는 그간 목격해왔다. 게다가 여러 번 거래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단기간 내 손해가 있었더라도, 거래를 지속하고 양이 많아지면 결국 총합에서 더 큰 이익인 계산값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일을 오래할수록 눈앞의 작은 손해를 감안하고 장기적으로 이익을 취해야 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불신과 낙담 앞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데, 또 누군가는 같은 불신과 낙담을 경험하고도 상대를 다시 믿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오늘은 사람을 다시 신뢰하는 것과 관련해 생각해봄 직한 연구를 살펴보자.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행동과학자 모리스 슈바이처(Maurice E. Schweitzer) 교수와 연구진은 ‘변화에 대한 믿음이 실제로 사람을 신뢰하고 투자하는 데 미치는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두 가지 종류의 에세이를 읽게 하는 것이었다. 실험 참가자들 중 A그룹은 사람의 기질은 타고나며 좀처럼 변하지 않아서, 행동이나 그에 따른 결과도 고유한 기질에 달렸다는 본질적(entity) 관점을 믿도록 고안된 에세이를 읽었다. 반면 B그룹은 사람의 행동은 환경과 후천적 학습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진적(incremental) 관점을 믿고 누구나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화되도록 고안된 에세이를 읽었다.

그러고 나서 참가자들은 신뢰와 관련된 투자 게임에 임했다. 이때 참가자들은 게임 파트너가 옆방에 있는 사람이라고 전해 들었지만 실제로는 컴퓨터였다.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참가자들은 6달러씩을 지급받는다. 만약 참가자가 파트너에게 6달러를 투자하면 파트너는 투자금의 세 배인 18달러를 갖게 된다. 그리고 파트너는 둘 중 한 가지 행동을 한다. 첫 번째는 6달러를 투자한 참가자에게 수익금의 절반인 9달러를 돌려주는 것, 두 번째는 수익금을 몽땅 자기가 가져가는 것이다.

파트너(실제로는 컴퓨터이지만)와 “안녕하세요" 정도의 짧은 인사를 메시지로 나눈 참가자들은 대부분 파트너를 믿고 거래를 시작했다. 첫 번째 게임에서 90%가량의 참가자들이 파트너에게 6달러를 투자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게임까지 파트너는 매번 18달러의 수익을 자신이 독차지해버렸다. 참가자들은 점점 파트너를 신뢰하지 않았고, 세 번째 게임에서는 6달러를 파트너에게 투자하는 참가자가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때, 파트너가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앞으로 추가로 세 번의 게임을 할 때는 공정하게 수익금을 나누겠다"는 약속도 함께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일종의 신뢰 회복 과정인 셈이다.

그러자 여섯 번째 게임에 다다라서는 자신의 돈을 파트너에게 맡기는 참가자의 비율이 70% 정도까지 회복됐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연구진은 이제 마지막 게임 한 번이 남았다고 참가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파트너로부터 어떤 메시지도 없다. 일곱 번째로 진행된 마지막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얼마나 파트너를 신뢰했을까? 이 시점에 참가자 중 A그룹과 B그룹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10%까지 떨어진 거래가 4~6 번째 게임을 거치면서, 50%, 60%, 70% 정도로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냐 vs.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어떤 말을 자주 하나요?

이쯤에서 참가자들이 두 종류 중 하나의 에세이를 읽었던 실험 첫 단계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점이 참가자들의 최종 행동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에세이를 읽었던 B그룹은 53%가 파트너를 신뢰했다. 즉 마지막 게임에서도 6달러를 파트너에게 또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에세이를 읽었던 A그룹은 38%만이 파트너에게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험을 시작할 때 특정 관점으로 유도하는 에세이를 읽고 보여준 이 차이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가 결국 투자와 관련한 선택에서 얼마나 큰 차이를 낳을지를 시사하는 의미심장한 결과다. 연구진 또한 관찰한 바에서 두 가지 측면을 강조했다. 첫 번째는 사람을 믿을지 말지처럼 굳건할 것 같은 생각도 에세이처럼 외부 요인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는 것, 두 번째는 인간이 지닌 특성에 대한 평소 관점이 이미 나의 신뢰를 저버린 적 있는 사람을 다시 믿을지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이는 언어생활에서 힌트를 얻어볼 수 있다. 평소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본질적 관점)”와 “사람은 얼마든지 학습하고 나아질 수 있다(점진적 관점)” 어떤 말을 더 자주 하는가? 이는 오랜 기간에 걸친 투자에 큰 차이를 가져오곤 한다.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너무 다양해서 나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상황마다 다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떤 관점이 맞고 틀리고가 없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특정한 경험 때문에 문을 걸어 잠그거나 시야를 좁히는 것은 위험하며 결국 다시 사람을 믿고 조직이나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거래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배신하거나 속인 사람은 반드시 그리고 정확하게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그 이후의 결정에도 낙담의 경험을 잣대로 들이미는 오류를 범한다. 내 인생에 오는 수많은 타인들을 대하는 자세는 여전히 중립적인 시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믿고 지속적인 소통과 시도를 해보는 사람인지,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안겨줬어도 끝내 변화를 보여준 적이 있는지, 신뢰가 회복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사람과 투자에 관해 생각해보기 좋은 날이다.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 해당 콘텐츠는 2023.5.25.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 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토스팀 브랜드 미디어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의견 남기기
김경일 에디터 이미지
김경일

인지심리학자이자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창의성에 관해 연구했다. 다양한 기관・매체에서 강연하며 ‘생각의 작동 원리'를 알리고 있다.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지혜의 심리학⟫과 ⟪적정한 삶⟫ 등 다수의 책을 썼다.

필진 글 더보기

추천 콘텐츠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