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한국인은 곧 마늘이다

by 장하준

영국으로 간 마늘 몬스터, 장하준

한국은 말 그대로 마늘이라는 초석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곰이 마늘 먹고 사람 된 건국 신화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어요. 한국식 양념 치킨은 가히 마늘의 향연이지요. 다진 마늘을 넣은 반죽을 묻혀 튀긴 다음, 마늘을 더 넣은 고추장 소스를 입히니까요. 김치도 빼놓을 수 없죠.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김치는 있어도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김치는 없습니다.

한국인의 마늘 소비는 ‘마늘을 먹는다’ 그 이상인데요. 한국인은 곧 마늘입니다. 한국인 1명이 1년에 먹는 마늘이 무려 7.5킬로그램입니다. 가장 마늘을 많이 먹은 것으로 집계된 2013년에는 1인당 소비가 8.9킬로그램에 달했어요. 마늘 좋아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인보다 10배 이상 많지요. 마늘 소비에 관한 한 한국인에 비하면 이탈리아인은 “깨작거리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제임스 펜턴(James Fenton)이 1988년 서울 올림픽 직전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쓴 표현.

평생을 마늘 몬스터 사이에서 살다 보면 날마다 얼마나 많은 마늘을 먹는지 깨닫지 못해요. 1986년 스물두살의 나이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영국으로 향하기 직전까지 제가 그랬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영국 음식

요즘은 서울에서 런던까지 11시간 정도 걸리지만,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에는 대한민국 국적기가 중국과 소련 상공을 지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먼저 미국 알래스카로 9시간을 날아가서 2시간을 대기한 후, 다시 9시간 날아서 유럽으로 가야 했지요.

비행기가 파리까지밖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3시간을 기다렸다가 마지막 비행을 해서 마침내 런던에 도착했어요. 24시간 여정 끝 런던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머나먼 곳이었습니다.

영국이 낯선 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만은 아니었어요. 언어장벽, 인종문제, 문화적 편견 등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비마저 견뎌낼 수 있었어요.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의 원인은 음식이었습니다. 영국 음식이 세계 최고는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실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 지는 짐작조차 못했어요.

스테이크 앤드 키드니 파이(steak and kidney pie),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 코니시 패스티(Cornish pasty)처럼 괜찮은 음식을 몇 가지 만나긴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형편없었습니다. 고기는 너무 익혀서 질겼고 양념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레이비 소스 없이는 먹기가 힘들었지만 그레이비마저 어떨 때는 아주 맛있고, 어떨 때는 너무 맛이 없었어요. 그러다 발견한 잉글리시 머스터드를 저녁 끼니를 때우기 위한 전쟁에서 핵심적인 무기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형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끓여서 곤죽이 된 채 나오는 채소를 그나마 먹을 만하게 만들 만한 양념이라곤 소금밖에 없었고요.

영국인 최고의 적, 마늘

1980년대 영국 음식 문화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단어를 쓴다면 ‘엄청나게 보수적’이었지요. 영국인은 익숙하지 않은 건 아무것도 입에 대질 않았어요. ‘외국’ 음식으로 보이는 것은 신심에 가까운 회의론과 뼈에 새겨진 듯한 혐오감으로 대했어요.

당시 인기 있던 피자 체인점 피자랜드야말로 영국인의 음식 보수주의를 극명히 보여주는 좋은 예시인데요. 피자랜드는 사람들이 피자처럼 낯선 외국 음식에 상처받을까봐 걱정한 나머지, 영국인이 잘 아는 베이크드 포테이토를 피자에 얹어 고객을 유인했어요.

모든 ‘외국’ 재료 중에서도 전국민의 적수는 마늘인 듯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마늘을 너무 싫어해 버킹엄궁이나 윈저성에 여왕이 묵는 동안에는 그곳에 있는 누구도 마늘을 먹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많은 영국인이 마늘 먹는 걸 야만스러운 행위 또는 주변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행위라고 여겼어요.

공부를 해보겠다고 제 발로 찾아간 곳이 한국인의 삶의 정수인 마늘이 문화인에 대한 모욕이며, 문명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 여기는 나라였던 거예요.

어느날 세계 요리에 눈 뜬 영국

그런데 시간이 흘러 영국의 음식 문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어요. 저는 영국인들이 1990년대 중반 어느 여름날, 마치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네 음식이 솔직히 정말 형편없다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깨닫는 장면을 떠올리곤 해요.

일단 자기 나라 음식이 시쳇말로 ‘구리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자, 영국인들은 전 세계의 요리를 마음껏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영국은 금새 음식 천국이 되었지요.

이제 런던에는 모든 것이 다 있어요. 새벽 1시에 거리에서 사먹는 값싸고 훌륭한 튀르키예식 되네르 케밥에서부터 섬세한 페루식 요리, 풍부한 맛을 뽐내는 아르헨티나 스테이크, 눈물 찔끔 날 정도로 비싼 일본식 가이세키 요리에 이르기까지 상상하는 모든 것이요.

메뉴가 하나 뿐인 요즘 경제학

이렇게 음식의 우주가 빛의 속도로 확장되는 동안, 제가 속한 다른 우주인 경제학은 슬프게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학 분야에는 서로 다른 비전과 연구 방법을 자랑하는 다양한 학파가 공존했어요.

가장 굵직한 학파만 해도 고전학파, 마르크스주의, 신고전학파, 케인스학파, 개발주의, 오스트리아학파, 슘페터학파, 제도주의, 행동주의 등이 있었지요. 각 학파는 세계 각국의 정책 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논점을 갈고 닦았고, 다른 학파의 아이디어를 차용하기도 했어요.

1970년대까지의 경제학 분야는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수없이 다양한 음식 문화가 공존하며 경쟁을 벌이는 요즘의 영국 음식과 닮은 데가 많았어요. 모두 각자의 전통에 긍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배우며 융합해 간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경제학 분야는 이전의 영국 음식 문화처럼 메뉴를 통일해 버렸어요. 한 가지 학문적 전통, 다시 말해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요.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주류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경제학'과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동의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경이 되었습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즉 대다수의 경제학자는 다른 학파의 장점은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학파가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다른 학파들이 과거에 내놓은 유용한 통찰, 가령 슘페터학파의 혁신에 관한 아이디어나 행동주의학파의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에 대한 아이디어 등은 ‘주류’ 경제학, 다시 말해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이미 융합되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이들은 그것이 융합이 아니라 베이크드 포테이토를 올린 피자처럼 단순히 ‘추가'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은 간과합니다.

경제학이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를 바꾼다

학자들이 좁아터진 소견을 고집하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경제학은 북유럽 고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나 수백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지구 같은 행성을 찾는 학문과 다릅니다. 경제학은 우리 삶에 엄청나게 크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니까요.

우리 모두는 경제학 이론이 세금, 복지 지출, 이자율, 노동 시장 규제 등의 정책에 영향을 주고, 이런 정책은 일자리와 노동 환경, 임금, 대출 상환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생산성 높은 산업을 발전시키고, 혁신을 꾀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가능케 하는 정책 수립에 영향을 끼쳐 그 경제 체제의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결정하기도 하지요.

그게 다가 아닙니다. 경제학은 경제적 변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경제학 이론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줍니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보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으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어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루저’라고 조롱당하거나 이기적인 저의를 품고 있다고 의심받지요.

만약 행동주의나 제도주의 경제학 이론이 제일 주목받는 세상이었다면 인간이 더 복합적인 동기를 지닌 존재고, 이기적 동기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 믿었을 거예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여러 동기 중에 특정한 것을 장려할 수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기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거고요.

경제학은 또 경제가 발달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그에 따라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우리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 정부가 공공 정책을 통해 산업화를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해 경제학 이론마다 다른 견해를 가져요. 그리고 한 나라의 산업화 정도는 다른 유형의 개인을 만들어 내는데요. 가령 더 산업화된 나라 사람들은 농업 사회 사람들에 비해 시간을 더 잘 지킵니다. 그들이 하는 일과 그에 따르는 일상이 시계에 따라 조직되기 때문이에요.

산업화가 진행되면 노조 운동이 생겨나요. 수많은 노동자가 한데 모여 일하는 공장에서는, 서로 협조가 더 잘 이루어져야 순조롭게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노조 운동은 곧 평등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는 중도좌파 정당을 낳았고, 공장이 사라져도 이런 정치 세력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이처럼 경제학은 소득, 일자리, 연금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으로 다양한 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 모두는 경제학의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차원, 즉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골고루 재료를 고른 경제학 한 상 차림

경제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기껏 설득시켜 놓고, 거기서부터는 알아서 하시라 하는 건 도리가 아니겠지요.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저는 음식과 경제학 이야기를 한 상에 차려 내려고 합니다.

골고루 재료를 고르고, 다양한 양념으로 복합적인 맛을 냈어요. 관심을 받지 못하고 등한시되던 주제를 부각시키고, 단 하나의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다원적 경제학 이론을 사용하며, 경제 정책의 정치적 영향을 논의하고, 현재의 경제 질서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탐구할 겁니다.

저는 맛있는 음식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좋아해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하고, 요리에 관해 이야기하며 함께 군침을 흘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제학 이론을 소화하고, 섞고, 융합하면서 얻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지적 친구들인 독자들과 함께 누리고 싶어요.


Edit 정경화 Graphic 조수희

– 해당 콘텐츠는 2023.06.30.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3년 03월 출간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발췌해 토스피드에서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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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임용됐고, 2022년 SOAS 런던대로 옮겼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다. 전세계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비롯해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책 17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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