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책 표지에는 왜 파란색도 로고도 없나요?
ㆍby 토스
‘유난한 도전’ 책 디자인 맡은 권영찬 토스 브랜드 디자이너 인터뷰
토스의 이야기를 다룬 책 ‘유난한 도전’ 출간 이후, 책 디자인에 대해 놀라움과 감탄을 표하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흰 바탕에 굵은 검정 글씨로 제목과 부제만 남긴 표지, 토스 브랜드의 키컬러인 파란색도, 로고도 넣지 않은 심플함, 사진 한 장 없이 글자만 빼곡한 내지까지.
“내용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마치 흑백 다큐멘터리 같다.” “극강의 심플함을 추구하는 토스 앱처럼 책 디자인도 토스답다.”
이 책의 표지와 내지 디자인은 토스팀의 브랜드 디자이너 권영찬 님이 도맡았는데요. 영찬 님은 “읽는 사람이 편안하면서도, 책 안에 담긴 이야기의 무게는 가볍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땀 냄새 나는 토스 책
Q. 유난한 도전 출간 2주차, 심플한 표지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요. ‘토스 책 표지인데 왜 토스를 상징하는 파란색을 쓰지 않았을까?’ ‘최근에 토스 로고도 바뀌었던데 왜 넣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도 들어오고요. 표지 디자인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요?
디자인 작업 전 ‘유난한 도전’의 원고를 먼저 읽었는데, 토스팀의 실패담까지 솔직하게 담겨 있어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임팩트 있는 책의 제목과 내용, 이를 읽고 느낀 감정이 표지에 잘 드러나게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제목과 부제라는 핵심 요소만 남겨 직관적이고 담백한 디자인으로 결정했어요. 판형도 그렇고요.
처음에 저자인 경화님과 얘기를 나눴는데, 책에 삽화나 사진을 하나도 안 넣는다는 거예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싶다고요. 화려한 디자인은 원하지 않았고 저 역시 팬시한 판형을 지양하자고 했던 기억이 나요. 과하게 핸디하거나 반대로 너무 크거나 해서, 겉으로 보기엔 예쁘지만 정작 읽기에는 불편한 모양은 피하고 싶었어요.
한 기업을 다룬 책이니 브랜드 컬러나 로고를 활용하는게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죠. 사실 파란색을 쓴 표지도 그려봤어요. 하지만 토스팀의 땀과 눈물이 담긴 이야기와 산뜻한 파란색이 반드시 어울리지는 않더라고요. 또 새로 바뀐 로고가 토스팀이 걸어온 지난 길을 이야기하는 책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판단했고요.
Q. 표지 뒷면에는 불 꺼진 사무실 사진이 있어요. 모니터가 즐비하고, 의자도 어지럽게 놓여있고요. 팀원들이 빽빽히 앉아 일하는 사진이 아니라는 점이 의외인데요.
텅 빈 토스 사무실이예요. 토스팀 다큐 FINTECH : BEHIND THE SIMPLICITY에 나왔던 장면인데요. 일에 관한 이야기인만큼 일터 사진을 넣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토스팀원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이요. 글에서 느껴지는 노고가 표지에서도 느껴졌으면 좋겠더라고요. 물론 토스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사진은 아니예요. 다른 회사 사무실도 이렇게 생긴 곳이 많겠죠. 그래서 더 보편적이라고 느꼈어요.
또 같은 장소라도 사람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매우 다른데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것보다 비어 있는 장면을 볼 때 더 다양한 층위의 심상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이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릴 수도, 독자 자신이 겪은 일들과 연관지을 수도, 이를 통해 감정과 상상력이 증폭될 수도 있겠지요.
Q. 표지 디자인을 결정하기까지 시안을 스무가지 정도 만드셨는데요. 다른 후보안은 어땠는지 공개할 수 있나요?
네, 최종 결정된 안은 왼쪽 위의 ‘유난히’ 미니멀한 시안인데요. 하지만 아래 보시는 것처럼 저와 저자가 동시에 좋아한 시안 중에는 최종 표지와 정반대로 맥시멀하고 표현적인 안도 있었어요. 다양한 표정의 이모지가 들어차 있어서 밀도가 높았죠. 토스팀원들이 겪어온 희노애락을 담아보려고 했고, 한편으론 이야기의 진지함과 대비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러 팀원들이 심플한 표지가 책의 내용과 더 어울리겠다는 의견을 주셨고, 저도 결정을 내릴 수 있었죠.
토스의 파란색을 활용한 안도 있었답니다. 심플하되 책의 배면을 파랗게 칠해서 아이코닉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봤죠. 매대에 책이 놓여 있을 때 다른 책들과 확연히 구분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일정상 어렵거니와, 배면을 칠하려면 책의 판형 자체를 바꿔야 하더라고요. 앞서 이야기한대로 반드시 파란색이 어울리는 책은 아니라는 판단으로 과감히 드롭했어요. 나중에 새 표지로 리커버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또 새로운 방향으로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편안하지만 묵직한
Q. 책의 안쪽에서는 중제목 서체가 굵직해서 눈에 잘 띄더라고요. 챕터마다 첫 단락을 시작할 때 들여쓰기 하지 않은 것도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글의 분량이 제법 길고 사진 요소가 없다보니 편집을 통해 중간 중간 끊어가는 게 필요했어요. 독자들이 호흡을 고르며 읽어나갈 수 있도록이요. 중제목이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단단하고 심플하지만 임팩트 있는 서체로 ‘토스 프로덕트 산스’를 골랐어요. 토스 제품에 쓰이는 서체인만큼 토스 이야기를 담은 책에 사용되는 것도 자연스러웠죠. 본문은 국문 신신명조, 영문 리리코 프로라는 서체를 조합해서 사용했는데요. 무엇보다 ‘잘 읽히게끔’ 하는데 중점을 뒀어요. 모바일 화면보다는 인쇄물에서 읽기에 편안한 글자체입니다.
첫 단에 들여쓰기 하지 않은 것 역시 독자 입장을 고려하는 디자인 태도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업계에서 그간 배워온 대로 했다면 들여쓰기를 했을거예요. 일반적으로 들여쓰기를 하는 이유는 앞단과 뒷단을 띄어쓰기 하지 않으면서 구분지으려는 의도거든요. 그런데 여기가 첫 단이라는 건 읽는 사람이 알아요. 들여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거죠. 저는 이전에 미술 도록 등 책 만드는 작업을 자주 해왔는데, 같은 이유로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첫 단을 들여쓰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Q. 서점에 가봤는데 다른 책들과 나란히 놓인 ‘유난한 도전’ 표지가 유독 반짝거렸어요. 내지는 제법 톡톡한 느낌이 들고요. 도서 디자인에서 쓸 종이를 고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일텐데요,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요?
맞아요. 책은 대체로 3차원으로 구성된 현실에서 만져지는 물체니까, 만져질 때의 느낌, 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지만, 책등은 두텁게 나올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죠. 겉표지로는 앞면이 매끈하고 뒷면은 텁텁해서 대비가 강한 종이를 썼어요. 앞면을 반짝거리게 코팅해서 단단하고 매끈한 느낌이 들죠. 내지에는 손으로 한 장씩 넘길 때 질감이 느껴지는 종이를 쓰고 싶었어요. 부드럽기보다 도톰하고 까슬하죠. 읽는 사람이 편안하면서도, 그 이야기의 무게는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했습니다.
Q. 책 디자인마저 ‘토스답다’고들 하는데요. 이 책에는 어떤 토스다움이 묻어 있을까요?
파란색을 토스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고, 편리함을 토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디자이너로서 저는 ‘언제나 핵심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은 빼자’는 태도가 토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책 표지에도 중요한 것만, 제목과 부제만 표지에 남기자고 제안했어요. 그럴 때 팀원들이나 출판사 모두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신기하고 좋았어요. 이렇게나 심플한 표지를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신선하다는 반응들이고요.
‘유난한 도전’은 디자인과 글 모두 꾸밈없고 단단하다는 점에서 토스답다고 생각해요. 책은 무엇보다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본질이 잘 읽힌다, 재미있고 유난하다’ 그런 반응을 접할 때 제일 좋습니다.
Photo 김예샘 Graphic 권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