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가 시총 1.5조 유니콘이 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by 머니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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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볼 기업 3호: 리디

오늘 파볼 기업은 우리에게 전자책 회사로 익숙한 ‘리디’입니다. 2022년 상장 가능성이 자주 언급되는데, 시총은 약 1.5조 원으로 평가돼요. 온라인 서점 중 가장 규모가 큰 예스24의 시총이 약 2000억 원이니까 거의 일곱 배라고 생각하면 놀랍죠? 

이번 편을 준비하면서, 원래는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들과 비교하며 전자책 시장을 파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도 놀란 것은 리디의 앱과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니 전자책 기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전자책 사업도 하는 IT 콘텐츠 기업이었어요. 전자책 서비스로 시작해 ‘진짜 혁신’을 이어온 리디의 성장 비결을 짚어보겠습니다.

Chapter 1. 아이폰보다 빨랐다? 절묘했던 창업 타이밍

리디의 현재를 보려면 리디가 어떻게 전자책 시장을 먹었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우선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창업 시기가 2008년 5월이라는 점이에요. 전자책 문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지요.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아이폰이 2009년에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이폰 열풍과 함께 스마트폰 보급이 급속도로 늘었고, 종이책은 이동성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편하게 읽는 텍스트’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어요. 

이렇게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생활 습관을 변하게 하는 초입에서 리디는 이동성에 대한 트렌트를 빠르게 캐치하고 소프트웨어와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힘을 쏟았습니다. 리디의 배기식 대표는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기술기업이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임직원의 1/3이 개발자라고 해요. 

배기식 대표의 절묘한 창업 타이밍에는 해외 기업들, 특히 아마존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삼성전자 벤처사업부에 몸담고 있을 때 2008년 실리콘밸리 출장에서 아마존을 보고 퇴사를 결심했대요. 전자책과 오디오북 시장이 커가는 것을 미국에서 먼저 발견하고 기회를 잡은 겁니다. 오랫동안 기업 생태계를 관찰하다 보면 생각보다 사업 아이템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결국 스타트한 뒤 잘하냐, 못하냐, 운영이 중요합니다.

Chapter 2. 리디가 전자책 시장 장악하고 1위 된 비결 

전자책 서비스를 오픈한 초기에 리디의 가장 큰 과제는 뭐였을까요? 바로 콘텐츠 수급이었습니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처럼 대형 출판 유통처들은 출판사들이 무조건 입점하는 곳이고 끈끈한 네트워크가 있어요. 하지만 리디는 0부터 쌓아가야 했고, 당연히 콘텐츠 수급을 위해 출판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다고 해요. 배기식 대표도 직접 발로 뛰었고요. 

문제는 출판사들이 카니발리제이션*을 우려해 제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거였어요. 종이책으로 매출을 올리던 출판사들은 전자책을 유통할 경우 ‘파일로 다운로드 받으면 서로 돌려 보고 종이책은 안 사는 거 아니야?’ 하면서 전자책 시장의 성장이 실물책 시장을 잡아 먹을까 걱정이었죠.  *한 기업의 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

그후 유료 콘텐츠 시장이 커지면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대중에게 퍼지는 등 시장 자체의 변화도 있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이고, 리디의 첫 돌파구는 데이터를 보여주는 거였어요. 얼마나 팔았는지 빠르게 실시간으로 숫자를 보여주는 거예요. 기존에는 판매 데이터가 불투명한 시장이었기 때문에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어요. 베일에 쌓여 있던 실시간 판매 부수 같은 것을 제공해 출판사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줬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유통을 해보니까 전자책 판매가 실물책 판매를 깎아 먹지 않는다는 것 또한 데이터로 증명이 됐어요. 종이책 독자와 전자책 독자가 겹치지 않았던 겁니다. 그 결과 리디는 총 2200여 개의 출판사와 제휴를 맺을 수 있었고, 단기간에 전자책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했어요. 

Chapter 3. 동네 짱의 딜레마, 더 큰 난관에 부딪힌 리디 

승승장구하던 리디는 또 한 번 역경에 처합니다. 전자책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그 시장의 파이 자체가 너무 작았어요. 짱 먹고 좋아했는데 저기 구석에 동네 짱이라니 충격이었겠죠. 국내 출판 시장 규모가 약 8조 원으로 추산되는데, 전자책 시장은 약 4천억 원으로 5% 미만이었어요. 어쩌면 당시에는 기존의 대형 유통사들이 전자책 유통에 크게 정성을 쏟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리디는 다양한 시도를 시작합니다. 그중 하나가 전자책 단말기 ‘리디페이퍼’를 출시한 거예요. 과거 아마존이 킨들을 론칭한 것처럼요. 물론 리디페이퍼의 판매 매출은 그렇게 크진 않습니다. 2019년 54.3억 원, 2020년 56억 원으로 재무제표에 조그맣게 나오는 정도? 비즈니스를 키우다 보면 돈이 안 돼도 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데 이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예를 들어 구독 서비스인 리디셀렉트, IT 전문 미디어인 아웃스탠딩 인수 같은 시도도 있었어요. 2019년 기준 아웃스탠딩 매출은 42억 원, 리디셀렉트는 116억 원(추정)으로 이 또한 작지만 소중한 실험이에요. 각종 콘텐츠를 둘러싸고 다양한 실험을 한 끝에 결과적으로 리디에게 커다란 매출을 안겨준 것은? 바로 BL입니다.  

Chapter 4. 덕후들의 천국 리디는 어떻게 웹툰, 웹소설 플랫폼이 됐을까? 

2018년에 리디의 한 팀원과 나눈 대화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어요. 웹소설로 돈을 벌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똑같이 전자책 유통을 하고 있던 온라인 서점들에서 들리는 이야기와는 달랐죠. 로맨스나 BL 등 수위가 높은 장르물은 기존 출판계에서 테스트조차 못 하던 분리된 시장이었어요. 그런데 리디는 테스트를 하고 있었고, 이미 수익이 나고 있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기존 전자책 시장의 문제점은 1) 작은 시장 규모, 2) 낮은 영업이익률이었어요. 소설 작품 하나를 팔아도 서점에서 한 권 팔릴 때마다 수익이 나는 구조잖아요. 그런데 수익화 측면에서 웹툰・웹소설은 명확한 장점이 있어요. 1) 편당 과금이 가능하고, 2) 2차 활용이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웹소설 한 작품이 잘 되면 웹툰화하는 등 장르 크로스오버를 하고, 영화와 드라마화도 잘 되죠. 

대표적으로 슈퍼 IP로 유명한 <상수리 나무 아래>라는 작품이 있어요. 웹소설이 원작인데 인기가 많아지니까 웹툰화했고, OST도 나왔어요. 심지어 에일리가 불렀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형태가 된 거예요. 영문판 해외 5개국에서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등재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어요. 

시장성을 검증한 리디는 2020년 9월에 UI를 개편합니다. 메인 페이지에 내 서재, 웹소설, 웹툰, 마이리디라는 4가지 탭이 생겼어요. 앱의 첫 화면에는 서비스의 정체성과 전략이 드러나는데, 그곳에 웹툰과 웹소설이 자리했다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비즈니스 모델이 바뀐 겁니다. 이후 2022년 서비스명을 리디북스에서 리디로 변경할 때도 개편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첫 화면 홈버튼을 누르면 웹툰/만화, 웹소설, 도서, 셀렉트가 자리해 있어요.

리디가 전자책 플랫폼에서 웹툰, 웹소설 중심의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방향성을 설정한 결정적인 계기는 뭘까요? 당연히 돈 벌어서 살아남기 위한 변화예요. 이런 변화는 대부분 데이터와 실무진의 경험에 기반합니다. 교보문고나 LG생활건강처럼 역사가 오래된 성숙 기업들은 가만히 있어도 망하지 않아요. 성장은 못 해도 이익이 납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늘 적자에 시달려요. 투자 등으로 자금 조달이 안 되면 망하는 거고요. 변해서 망하나, 안 변해서 망하나 결과는 똑같으니 항상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어요. 

리디의 경우에는 다행히 진작부터 실험을 시작했었죠. 어느 시장으로 가야 할지 고민했고, 시장 반응을 관찰하며 한 발짝 더 과감했던 면이 있어요. 19금 시장은 아무나 못하거든요. 돈이 된다고 해도 접근하기가 좀 어려워요. 성인물 팔면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과감했다는 평을 받고, 또 놀라운 건 리디의 장르물은 수위가 높다는 거예요. 명확한 팬덤을 기반으로 ‘고퀄’이라는 평이 많고, 특정 팬덤을 확실하게 확보했어요. 팬들의 취향이라는 건 원래 매니악한 거니까요. 리디의 결정은 팬들의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Chapter 5. 유니콘 등극한 리디, 향후 전망은? 

종합 콘텐츠 플랫폼이라고 했을 때, 카카오랑 네이버 같은 대기업 사이에서 리디의 경쟁력을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리디에게는 자유롭게 니치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9금, BL, 로맨스 등은 오히려 몸집이 큰 곳들이 조심스러운 영역인데 리디는 이미 ‘리디 광공’, ‘리디 3서방’ 등의 용어가 생길 정도로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공모전 등 콘텐츠 개발에 투자해 오리지널 IP도 활발하게 확보하고 있고요. 이건 넷플릭스의 방식이기도 해요.  *유사 상품은 많지만 그 안에서 세분화된 타깃을 위한 상품은 없어서 비어 있는 시장. 틈새 시장이라고도 부른다. 

리디는 ‘만타’라는 글로벌 웹툰 서비스도 오픈했어요. K-콘텐츠가 유행이라 시기도 좋아요. 물론 어디서 싸울지는 계속 잘 봐야 합니다. 네이버, 카카오와 정면으로 파이 나눠 먹기를 하는 것보다는 메인 스트림을 벗어난 니치한 곳에 가야 하죠. 세상에는 무궁무진한 취향의 세계가 있으니까요. 장르물 시장은 꾸준히 신규 이용자가 진입하며 커지고 있어요. 나이를 먹어가는 기존 독자층도 유지되고, 젊은 층도 유입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취향의 다변화가 큰 산업을 이룰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것이 리디에게 큰 기회예요. 

최정우 대표의 한 줄 평:

❝시장 변화에 대응해 피봇에 성공한 기업,여태 해온 것처럼 테스트하며 나아간다면 성장이 기대된다.❞

리디가 앞으로 어느 쪽으로 사업을 전개하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테스트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스타트업의 정체성입니다. 작은 시장부터 만들어 가면서 큰 시장으로 키우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말이에요. 리디는 실제로 매출이 엄청 늘고 있어요. 2022년에 발표한 2021년 실적이 2038억 원으로 20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수익 구조를 차치하고라도 매출 크기 자체가 의미 있어요. 총 매출 2천억 원 하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결과적으로 리디는 성과가 있고, 달리고 있고, 숫자가 나쁘지 않습니다. 1) 숫자상으로 성장세가 인상적인 유니콘 기업이고, 2) 시장 변화에 먼저 대응하여 피봇에 성공한 기업이에요. 변화를 꾀하기도 쉽지 않은데 성과도 냈으니, 앞으로도 이런 변화 DNA를 가져간다면 계속 성장해나갈 거라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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