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음악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벌어진 일들

by 차우진

음악과 게임은 의외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세기의 8비트 게임 시절부터 뿅뿅 거리는 칩튠(Chiptune)* 사운드는 게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고, 사운드 칩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더 정교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 칩튠(Chiptune)은 1980~90년대의 레트로 게임기에서 발생하던 8비트, 16비트 사운드 칩의 한정된 음원으로 만든 음악을 말한다.

기술적인 관계가 이러했다면, 문화적으로는 ‘옛날 감성’이 창의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특히 2010년대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칩튠 비트를 활용한 음악이 대거 등장했는데 크리스탈 캐슬(Crystal Castles)*, 케샤(Ke$ha)*, 퍼퓸(Perfume)* 같은 아티스트를 통해 메인 스트림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뿅뿅거리는 과거의 사운드가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고, 칩튠과 헤비메탈이 결합된 파생장르로 ‘닌텐도 코어’라고 부르는 고유한 스타일도 등장했다.

* 크리스탈 캐슬은 캐나다 출신의 전자음악 듀오로, 8비트 신디사이저와 독특한 보컬이 결합된 음악을 선보였다. 대표곡으로는 Alice Practice, Not in Love 등이 있다.

* 케샤는 미국의 팝 가수로, 일렉트로팝과 댄스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선보였다. 대표곡으로는 TiK ToK, We R Who we R 등이 있다.

* 퍼퓸은 일본의 여성 3인조 테크노 팝 그룹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팝 멜로디를 결합한 음악을 선보였다. 대표곡으로는 Polyrhythm, Chocolate Disco 등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게임과 음악이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 단순히 게임의 배경음악을 넘어,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고 다른 팬들과 상호작용한다. 심지어 음악을 통해 게임 스토리를 전개하는 시도도 늘었다.

음악이 단지 게임의 홍보 콘텐츠나 부가 콘텐츠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게임 산업에서 음악은 중요한 밸류체인의 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 게임을 넘어, 문화를 잇다

게임 플랫폼 포트나이트(Fortnite)는 단순한 배틀로얄 게임을 넘어,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점점 더 진화중이다. 게임 내에서 빌리 아일리시, 메탈리카 등 유명 음악가들의 가상 공연을 개최하며, 전통적인 콘서트의 개념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이전에는 음악가들이 공연장이나 콘서트 홀에서만 노래를 들려줬다면, 이제는 수백만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가상 공간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이 방식은 음악과 게임을 독특하게 결합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친구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여 연주하거나, 포트나이트 페스티벌에서 무대에 올라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작곡한 히트곡을 솔로로 연주하세요!” ‘포트나이트 페스티벌’의 설명을 보면 플레이어가 뮤직 페스티벌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출처]

더 나아가 포트나이트는 공연의 음원을 게임 내 리듬 게임 요소에 활용한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 플레이어들이 직접 음악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음악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준다. 음악 산업에서 주요한 ‘신곡 발표(드랍/drop)’ 채널로 자리잡으며, 음악가들에게도 매력적인 마케팅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또다른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도 음악과 적극적으로 결합한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로블록스는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10대 초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미 로블록스가 저학년 층의 메인 플랫폼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을 정도다.

로블록스는 단순히 게임 플랫폼이 아니다. 거대한 커뮤니티다. 아이들은 로블록스에서 같은 취향의 친구들을 만나 놀면서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로블록스는 공식적으로 게임을 ‘경험(experience)’이라고 하고, ‘경험 콘텐츠’를 통해 사용자들은 직접 음악을 만들고 공유할 수도 있다.

“매일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Roblox를 방문해 작품을 제작하거나, 글로벌 크리에이터 커뮤니티가 직접 만든 체험에서 서로 소통하며 함께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로블록스 홈페이지를 보면 단순 게임 플랫폼을 넘어 크리에이터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최근 로블록스는 플랫폼 내 음악 검색 기능을 강화하고, 음악 차트를 도입하는 등 음악 생태계 조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 협력해 가상 음악 허브인 '비트 갤럭시'를 구축하고, 롤링 스톤즈와 같은 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개최하는 등 음악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로블록스를 기반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나 회사도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차별화된 게임 경험을 창조하기도 한다. 로블록스는 음악을 통해 단순한 게임 플랫폼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젠레스 존 제로: 게임 회사가 싱글을 발표하는 이유

게임 산업은 이제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넘어 음악 창작의 혁신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라이엇 게임즈의 가상 걸그룹 K/DA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들로 구성된 K/DA는 (여자)아이들의 소연, 미연이 참여해 2018년 ⟨POP/STARS⟩를 발표했고, 놀랍게도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게임 음악이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진정한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K/DA 그룹의 프로필, 인터뷰, 팬아트 등을 정리한 공식 유니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원신⟩, ⟨붕괴⟩ 등 인기 모바일 게임으로 유명한 호요버스의 ⟨젠레스 존 제로(Zenless Zone Zero)⟩ 게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게임의 세계관을 음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음악과 게임의 융합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다. 게임을 출시하기 전 세계적인 아티스트 DJ 티에스토(Tiësto)와 협업해, 테마곡 ⟨Zenless⟩를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공개했다. 이를 시작으로 지금은 아예 게임 캐릭터가 음악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 게임은 세련되고 매력적인 그래픽 아트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결합한다. 게임 캐릭터의 분위기에 맞는 음원을 성우 혹은 가수와 협업해 발표하고,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를 새로 제작해 유통하기까지 한다. 케이팝, 록, EDM, 시티팝, 시네마틱 발라드 등 음악의 스타일도 다양하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가사를 표현하는 등 처음부터 다국적 콘텐츠로 기획된다.

단순 OST 제작을 넘어 게임 캐릭터의 정체성과 분위기를 완벽히 반영하는 음악 전략을 펼치는, 게임과 음악의 융합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이 게임플레이의 본질적 핵심 요소로 자리잡는 현상은 게임 산업의 가장 흥미로운 혁신 중 하나다. 2023년 출시된 ⟨하이파이 러시(Hi-Fi Rush)⟩는 최근 트렌드를 완벽하게 구현한 대표 사례다.

이 리듬 게임은 단순한 액션 게임을 넘어 음악을 게임플레이의 근간으로 삼았다. 플레이어의 모든 액션 (공격, 회피, 점프 등)이 음악의 비트와 정확하게 동기화되며, 이 정확성에 따라 게임 내 성과와 점수가 결정된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프로디지(The Prodigy)⟩ 같은 강렬한 록, 일렉트로닉 유명 밴드의 곡들은 리듬과 에너지를 극대화하며 플레이어의 액션과 음악이 동기화되는 쾌감을 선사했다.

이 게임들은 음악을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게임의 서사, 디자인, 플레이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격상시키고 있다. 리듬 게임에서 시작된 이 혁신은 이제 스토리 게임, 액션 게임, 심지어 롤플레잉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플레이어는 더 이상 수동적인 청취자가 아니라, 음악과 직접 상호작용하며 게임 세계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된다.

엔터테인먼트의 다음 단계: 기술과 산업의 교집합

음악과 게임 산업의 수익 모델은 진화중이다. 그 핵심은 게임 내부에서 음악을 판매하고 활용하는 ‘인게임 판매’ 모델이다.

‘DLC’는 DownLoadable Content(다운받을 수 있는 콘텐츠)의 줄임말로, 게임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을 말한다. 리듬 게임에서는 이를 통해 새로운 음악 트랙을 판매한다. 마치 음반을 사는 것처럼, 플레이어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곡을 게임 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뮤지션과의 콜라보 아이템 판매로도 수익을 얻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비트세이버(Beat Saber)⟩라는 가상현실(VR) 리듬 게임을 들 수 있다. 이 게임은 방탄소년단(BTS)의 12곡을 포함한 음악팩을 출시했고, 여기에 타이니탄(TinyTAN) 게임 캐릭터까지 등장시켜 팬 서비스 콘텐츠로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다른 모델은 ‘라이선싱(Licensing)’으로, 현실 라디오처럼 게임 안에서 유명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로 ⟨GTA(Grand Theft Auto)⟩ 게임에서는 ‘지역 라디오’라는 설정이 있어서, 플레이어가 차를 운전하면서 실제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다양한 음악 채널을 선택할 수 있다. 유명 아티스트의 곡들이 게임 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데, 게임사가 이 곡을 사용하려면 음악의 저작권을 가진 권리사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마치 현실의 라디오 방송국이 음악을 틀 때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어떤 게임사들은 직접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젠레스 존 제로⟩ 같은 게임에서는 게임 마케팅을 위해 특별히 음악을 제작하고, 그 음악이 큰 인기를 얻어 추가 수익까지 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 방식을 ‘IP 확장형 모델’이라 한다.

이렇게 음악과 게임의 관계가 다양해지는 것은 메타버스와 가상현실의 발달 덕분이기도 하다. 기술적 발전은 앞으로 음악 감상의 방식을 크게 바꿀 전망이다. 포트나이트, 로블록스의 사례처럼 전세계 수천만 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메타버스 콘서트는 이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팬데믹 때 대안으로 여겨지던 가상 콘서트는 이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자연스러운 선택 사항이 되고 있다. 가상 투어로 글로벌 팬들과 소통하는 아티스트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2022년부터 MTV는 시상식에 ‘최우수 메타버스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했고, 첫 해의 수상자는 블랙핑크로, 배틀그라운드(PUBG) 모바일 콘서트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AI 음악 기술도 게임 음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과거에는 게임 음악이 상황에 따라 페이드 인/아웃되거나 루프를 바꾸는 ‘동적 음악(adaptive music)’ 시스템이 주로 활용되었는데, 앞으로는 AI가 실시간으로 음악을 작곡/변조해 게임의 상황에 맞춰 어디에도 없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AI 알고리즘이 플레이어의 위치나 행동, 감정 상태 등을 분석해 즉석에서 음악의 분위기나 템포를 조절함으로써, 매 순간 절묘하게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과 음악은 서로를 도우며 함께 진화해 나간다

게임 회사들은 왜 이렇게 음악에 공을 들이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은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고, 사용자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임 음악은 2차 가공 콘텐츠로서 게임의 이해도를 높이고, 팬층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 오케스트라, 국악 등 전통 예술과 결합한다면? 게임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까지 발휘한다.

또한, 게임 내 음악은 사용자들이 게임을 더 오래 즐기도록 유도하고,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음악은 게임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결국, 게임과 음악의 관계는 앞으로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게임 음악 제작 방식을 혁신하고 있으며, ‘가상 콘서트’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악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히 게임 콘셉트 구상에서부터 캐릭터 및 배경 음악 생성 등 게임 제작에 생성형 AI 활용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기술 발전을 통해 게임과 음악이 어떻게 융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게임사는 음악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높이고, 음악 회사는 게임을 통해 IP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다.

실제로 게임사 에픽게임즈(Epic Games)는 2021년 음악게임 개발사 하모닉스(Harmonix)를 인수하면서 “플레이어가 음악을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 엔진을 활용해 가상 공연을 연출하거나, 플레이어가 직접 음악을 리믹스/연주하는 참여형 콘텐츠 등을 제공하면서 이전에 없던 엔터테인먼트를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음악 산업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신인을 찾거나 팬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다. 그동안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신인 뮤지션과 새로운 음악이 등장했다면, 앞으로는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뮤지션이 메인 스트림에 데뷔할 수도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게임 속에서 나만의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게임으로 데뷔할 수도 있다. 게임은 이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장르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음악과 같은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도 될 수 있다.

게임은 새로운 미디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정의하고 있다.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미디어로서 게임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 게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사용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는 점이다. 게임과 음악은 서로를 도우며 함께 진화해 나간다. 고도로 발달한 네트워크 환경에서 음악이든 게임이든, 대규모의 사람이 소비하는 콘텐츠는 그 자체로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또 무엇이 있을까?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하다.


Edit 금혜원 Graphic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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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20년차 음악평론가. 2020년부터 TMI.FM(Tomorrow of the Music Industry)이란 뉴스레터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분석하고 있다. 가끔 컨설팅과 투자 자문도 하지만, 주로 듣고 보고 읽고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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