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업계에 영향 미칠 미국의 새 법과 엄격해진 전기차 보조금 혜택
ㆍby 커피팟
2022년 8월 8일, 미국 상원은 최근 몇십 년 동안 가장 중요한 기후위기 대응 법안을 통과시켰어요. 순탄치 않은 협상과 막판 조율로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은 기후위기 대응과 더불어 전 국민 건강보험 혜택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 및 에너지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이에요.
총 4,300억 달러(약 558조 원) 규모의 예산 중 3,690억 달러(약 479조 원)가 관련 산업에 투입이 될 예정인데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이 법안은 왜 중요하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법안의 가장 큰 의미부터 돌아보면
이번 법안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주춤하던 미국을 단숨에 선두 대열에 올려놓는 법안이기도 해요. 이 법안 하나로 2030년까지 2005년 탄소배출량의 50% 이하로 줄이겠다는 미국의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2/3를 하게 해 준다”라는 분석이 프린스턴 대학교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 시스템 연구 기관 제로 랩(ZERO Lab)을 통해 나오기도 했죠.
제로 랩을 이끄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제시 젠킨스(Jesse Jenkins) 교수는 “이번 법안이 기후위기와의 싸움에서 공적과 사적 영역 모두가 대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통과되지 않았다면 감축 목표를 달성할 희망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뉴욕타임스에 코멘트했는데요. 이제 비로소 관련 산업의 발전을 기후위기 대응을 해나가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해요.
이번 법안을 계기로 주요 국가들이 공동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더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파리 기후 협약에 따라 2050년까지 지구 기온이 섭씨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데 동의는 했지만, 각 국가의 정책적인 노력은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었죠. 이제 미국이 각국의 노력을 끌어내는데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도 한 거예요.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미국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했는데, 우선 이 퍼즐이 맞춰진 것에도 큰 의미가 있고요.
에너지 업계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
이번 법안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영역은 바로 ‘에너지’예요. 에너지 생산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이 있을 예정이죠. 그중에서도 주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요.
💰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과 같은 재생에너지 설비, 전기차 배터리 그리고 이를 만드는 데 필수인 자원을 미국에서 생산하고 정제하는 데 있어 총 300억 달러(약 39조 원)의 세금 공제가 포함돼요. 기존에 세금 공제 기간이 1~2년이었던 것도, 10년으로 늘렸어요.
🚗 추가로 100억 달러(약 13조 원)의 세금 공제가 재생에너지 및 전기차 등의 생산 시설을 만드는 데 적용되고요. 전기차를 구매하면 주던 세금 공제 혜택(신차 7,500달러 – 약 980만 원)도 이어질 예정이에요. 중고 전기차에도 4,000달러(약 520만 원)의 보조금이 신설되었어요.
🔋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도 계속 가동될 수 있도록 세금 공제 혜택이 주어질 예정이에요. 미국도 2013년 이후로 13개가 넘는 원자로를 폐쇄하는 등 원자력 비중이 줄고 있었는데, 화석 연료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시기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예요.
💸 주로 석유와 가스 생산 시설과 파이프라인 등에서 배출되는 메탄에 대해서는 2024년까지 톤당 900달러, 2026년부터는 톤당 1,500달러의 패널티가 부과될 예정이에요. 탄소 포집과 저장 기술에 대한 세금 공제는 톤당 50달러에서 85달러로 늘어나요.
🏦 기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에 600억 달러(약 78조 원)가 투입돼요. 저임금 지역에 탄소배출이 제로인 기술 적용과 전기차 등의 구매에 대한 보조금이 포함되어 있고요. 첫 전국 단위 ‘그린 은행’ 설립에도 270억 달러(약 35조 원)가 쓰일 예정이에요. 이 은행은 클린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등을 진행할 예정이죠. 에너지 전환에 드는 비싼 비용이 특히 더 필요한 저소득 지역에 자본을 집중할 예정이에요.
규모도 규모이지만 법안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자원이 투입되어야 할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요. 에너지 산업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하는지를 이제야 명확하게 제시한 거죠.
민주당과 공화당이 50:50인 상원에서 이번 법안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기존의 BBB(Build Back Better,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을 비롯해 이번 법안을 반대했었는데요. 민주당 소속 웨스트 버지니아의 조 맨친(Joe Manchin) 의원이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이었어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과 막판 조율을 하면서 전기차 원재료와 부품의 미국 내 생산 비율 기준을 더 엄격하게 만들고, (빅오일 회사들도 자신의 시설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해 온) 탄소 포집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환경 단체들의 반대를 받아온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대형 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지속 등을 끌어낸 덕분에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거죠.
많이 타협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이번 법안에는 건강보험 혜택 확대와 처방 약 가격 인하, 특정 약품의 가격 억제를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약사들과 협상할 수 있는 권한 등을 포함해 건강보험 영역에도 1,000억 달러(약 130조 원) 가량이 지원되는 내용도 담겼어요. 아울러 큰 지출을 충당하고,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방안도 포함됐고요.
재원 마련은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과 300억 달러(약 39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에 대한 15%의 최소 법인세 부과 등으로 충당할 예정이고요. 벌어들이는 세액을 통해 총 3,000억 달러(약 390조 원)의 연방 적자를 줄일 계획이 세워졌어요.
인플레이션 감축에 대한 효과가 분분한 상황이지만,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대체로 법안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하지만 바로 그 효과를 보기는 어렵고, 기대보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죠.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가장 역점을 둔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자, “오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처방 약 가격과 건강보험,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가장 부유한 기업들에게 공정한 부담을 부과하는 데 찬성하면서 보통의 미국 가정 편에 섰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어요.
애초 3조 5,000억 달러(약 4,570조 원) 규모로 추진하던 BBB법안에서 기후위기 대응 산업 지원에 큰 중점을 둔 법안으로 축소되었지만, 기후 및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미래 주요 산업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게 되었죠. 게다가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에도 미국이 리더 역할을 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고요.
아직 민주당이 우위를 차지하는 하원에서는 법안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돼요. 이번 주 내 대통령 서명과 공포까지 완료될 예정이고요. 그렇지만 통과는 통과일뿐, 실질적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계속 지켜봐야 해요.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전기차 보조금 정책
미국에는 기존에도 전기차를 사면 7500달러(약 970만 원)의 세금을 공제해주는 정부 보조금이 있었어요. 대신 한 자동차 제조사가 누적 20만 대의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를 판매하면 1년 뒤부터는 해당 제조사의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세금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따랐고요.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이 상한선에 도달했거나, 곧 도달할 예정이라 상한선을 없애주기를 원했죠.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원했던 대로 2032년까지 전기차 구매자들에게 지금과 마찬가지로 7500달러의 세금 공제 혜택을 제공(중고차는 4000달러 – 520만 원)하고, 제조사별 20만 대 상한선도 없앴어요. 다만 두 개의 까다로운 조건이 새롭게 붙었어요. 하나는 차량 가격의 제한이고, 하나는 배터리 원산지의 제한이에요. 얼마나 까다로운 조건이냐면, 일부에서는 이 조건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 지원금 자체가 없어졌다고 할 정도예요.
1. 합리적인 가격의 전기차를 늘려라
새로운 법안에서 제시한 보조금 지원의 첫 번째 조건은 판매 차량의 가격과 구매자의 소득 조건이에요. SUV와 픽업트럭은 8만 달러(약 1억 원), 세단은 5만 5000달러(약 7200만 원) 이하이고, 구매자는 단일 신고 납세자 기준으로 14만 달러(약 1억 9500만 원), 가구 기준으로 30만 달러(약 3억 9000만 원) 이하여야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포르쉐 타이칸과 같이 비싼 차량을 고소득층이 구매하는 데 세금이 사용될 수 없다는 의미예요.
지난 6월을 기준으로 전기차의 평균 거래 가격은 거의 6만 7000달러(약 9100만 원)에 이르러 일반 내연기관차에 비해 아직 많이 높은 편이에요. 리비안이나 테슬라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의 시작가는 보조금 요건에 들어오긴 하지만, 가격 제한을 넘어가는 여러가지 옵션을 추가하거나 고성능 버전을 구입하게 되면 보조금 제한선을 넘기 마련이죠.
제조사들이 가격을 낮춘 저가형 모델을 새롭게 빨리 내놓을 필요가 생긴 것이기도 해요. 결국 전기차가 대중화되려면 더 낮은 가격의 모델이 빨리 더 많아져야 하고, 이런 차량에 대한 혜택을 늘리겠다는 것이기도 해요.
2. 비현실적이라도 배터리 원산지 따지겠다
새로운 세금 공제 규정의 두 번째 조건은 원산지 조항이에요. 7500달러의 절반인 3750달러를 받으려면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니켈, 코발트, 그래파이트 등이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추출되었거나 정제되었어야 해요. 원재료 조건의 제한선은 당장 내년인 2023년부터 40%로 적용되어 2027년에는 80%로 올라가요.
남은 절반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를 구성하는 부품도 상당 부분이 미국 그리고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에서 제조되어야 해요. 2023년부터 50%를 만족해야 하고, 2029년까지 100%를 달성해야만 하죠. 이 내용 때문에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현존하는 그 어떤 전기차도 이 7500달러의 세금 공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거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미국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그 배터리를 이루는 원재료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계속 불편하게 여겨왔어요. 블룸버그 NEF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 배터리 관련 원재료 정제의 80% 그리고 부품 제조의 6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대부분의 배터리 핵심 광물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 인도네시아, 콩고 등에서 채굴되고 있고요. 지금으로서는 미국 내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이 존재한다고 보기 힘들어요.
결국 호주, 칠레 등 FTA 협정을 맺은 국가와 채굴, 정제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데 당장 내년부터 40% 비율을 맞추기는 어려운 실정이에요. 여러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보조금 요건으로 도전적인 원산지 규정을 넣은 것은 그만큼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셈이기도 해요.
전기차 보급, 속도보다 지속성에 무게
이번 법안은 그렇지 않아도 느린 미국 내 전기차 확산 속도를 저해한다며 환경 단체들의 비판도 받고 있어요. (참고로 현재 미국의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율은 아직 5%에 이르지 못했어요) 저 조건을 맞출 수 있는 차량이 몇 개나 되겠냐는 보도도 이미 이어지고 있죠.
하지만 전기차 보급망이 (특히)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해요. 장기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미국 중심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이고요. (위에서도 언급한) 조 맨친 의원이 “일반 내연기관 차량도 다 미국에 공급망을 두고 생산해 왔는데, 전기차라고 갑자기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논리를 내세웠기에 막판에 법안 통과를 위한 타협을 할 수도 있었죠.
일단 이번 법안의 내용이 단기적으로 전기차 확산의 촉매제로 기능하기는 어려울 텐데요. 중기 목표인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50%를 전기차로 만들겠다는 비율을 달성하는 길을 만들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해요.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함영범
본 글은 8월 9일(화)에 발행된 커피팟의 뉴스레터에 기반해 9월 5일(월) 기준으로 재편집되었습니다.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외부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토스팀의 블로그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피드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