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을까?

by 커피팟

패럿 애널리틱스(Parrot Analytics)는 스트리밍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 시청 수요를 조사해 분석하는 기업인데요. 얼마 전, 개별 콘텐츠가 그들이 속한 스트리밍 서비스에 재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측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그동안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콘텐츠가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도에 관한 데이터의 많은 부분을 공개하지 않았기에, 패럿의 시스템이 스트리밍 산업과 그 콘텐츠의 성과 분석 투명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프렌즈 vs. 기묘한 이야기 재무적으로 더 가치 있는 콘텐츠는?

지난 몇 년간 패럿은 소셜 미디어, 연구 활동, 콘텐츠 소비 데이터 등 여러 가지 지표를 결합한 자신들만의 평가 시스템으로 스트리밍 콘텐츠의 시청률을 예상해왔어요.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 간의 경쟁이 심화됐고, 높은 시청률만으로 구독자와 수익 성장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죠. 더 다양하고 포괄적인 신호를 이용해 소비자의 요구를 수집해야만 효과적으로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개발한 거예요. 

새로운 콘텐츠 가치 측정 시스템은 스트리밍 서비스 수익 대비 각 콘텐츠의 시청률을 분기별로 분석한 다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이를 살펴보면서 특정 콘텐츠의 ‘고객 평생 가치(Lifetime Value)’를 예측해요. 한 명의 고객이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동안 발생시킬 총이익을 예측해 제작비 대비 고객 평생 가치가 높다면 서비스에 더 큰 재무적 가치가 있는 콘텐츠로 분류되죠. 

콘텐츠의 고객 평생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핵심은 시간이 지나도 그 콘텐츠를 보는 시청자가 꾸준히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프렌즈(Friends)>나 <오피스(Office)>처럼 오랜 시간 사랑받는 코미디 또는 시트콤은 서비스 재방문을 강하게 일으킬 수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더 크라운(The Crown)>이나 <기묘한 이야기>보다 고객 평생 가치를 높이는 콘텐츠로 평가될 수 있어요.

여름휴가나 크리스마스처럼 사람들이 연휴에 가볍게 보도록 만들어진 영화나 하이틴 영화도 고객 평생 가치가 높은 콘텐츠로 분류될 수 있어요. 제작비는 상대적으로 적게 들지만, 사람들이 반복해서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이처럼 새로운 평가 시스템은 콘텐츠를 보고자 하는 사용자의 의도를 지금까지 없었던 방식으로 기업의 수익과 연결해요.

콘텐츠 제작 과정에 영향도

패럿은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아래의 내용 등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해요.

  • 각 플랫폼이 수익을 내는데 각 시장에서 개별 콘텐츠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측정할 수 있어요. 또, 해당 수익의 몇 %가 각각 신규 가입자 추가(Acquisition), 기존 가입자 유지(Retention)로 인해 창출되었는지 알 수 있고요.
  • 새로운 프로덕션, 새로운 시즌, 플랫폼이 가진 콘텐츠 등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신규 구독자를 데려오거나 재방문을 끌어낼 수 있는지, 즉 수익을 낼 잠재력을 가졌는지를 측정할 수 있어요.
  • 특정 콘텐츠의 고객 평생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알맞은 플랫폼을 결정하는 모델링을 제공해요.
  • 특정 콘텐츠가 영화관에서 먼저 상영되는 것과 스트리밍 서비스에 바로 배포되는 것 중에 어디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측정해요.

패럿이 악시오스(Axios)에 제공한 첫 번째 분석에 따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두 시리즈를 더 추가할 경우 넷플릭스의 가장 가치 있는 타이틀이 될 수 있어요. 2027년까지 20억 달러(약 2조 6200억 원)의 누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예상되기 때문인데요. <오징어 게임> 시즌 1은 제작비가 2140만 달러(약 280억 원)로 다른 오리지널 콘텐츠에 비해 훨씬 더 적은 돈을 투자해 큰돈을 벌어들인 콘텐츠죠. 

반면, 각각 약 2억 달러(약 26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레드 노티스(Red Notice)>나 <그레이맨(The Gray Man)>은 향후 6년간 약 8000만 달러(약 1050억 원)의 누적 수익만을 낼 것으로 예상됐는데요. 이는 큰 비용을 들여 만든 오리지널 영화가 훨씬 더 저렴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빈지워칭에 적합한 콘텐츠보다 더 적은 고객 평생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요.

그간 대부분의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콘텐츠 시청에 관한 다양하고 세분된 데이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제작사와 같은 파트너에게 공유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사는 자신의 결과물이 전 세계적으로 어떤 성적을 내고 있는지, 또는 속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었죠. 이는 곧 스트리밍 기업과 콘텐츠 제작 기업 간의 정보 격차에 따른 힘의 불균형을 불러일으켰고요.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제작사도 콘텐츠의 고객 평생 가치를 예측할 수 있어요. 이 데이터를 이용한다면 제작사는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협상을 유리한 쪽으로 끌어낼 수도 있죠. 더 나아가 제작사와 감독이 그들의 창작물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플랫폼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고요.

결과적으로 새로운 평가 시스템은 글로벌 콘텐츠가 제작되는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요.

당연히 한계가 있지만

새로운 평가 시스템이 ‘성공’했다고 정의된 작품과 각 스트리밍 서비스가 성공했다고 정의하는 작품이 반드시 같지 않을 수 있어요. 패럿은 넷플릭스에서 <레드 노티스>가 <그레이 아나토미>보다 고객 평생 가치가 낮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레드 노티스와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계속 나와야만 사람들은 넷플릭스를 계속 구독할 가치를 느끼겠죠. 새로운 유입자도 늘어날 테고요. 실제로 넷플릭스도 레드 노티스를 회사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 수를 기록한 영화라고 발표하며 성공 작품으로 정의했어요.

각각의 스트리밍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이 매우 다른 것도 콘텐츠 투자 기준을 패럿의 평가 시스템에만 기댈 수 없는 이유로 꼽혀요. 지금까지 넷플릭스는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 유료 구독자를 데려올 수 있는지에 관한 지표를 집중적으로 살펴왔어요. 반면 광고가 포함되었던 훌루(Hulu)는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광고를 얼마나 더 많이 보는지에 대한 지표를 집중적으로 봐왔죠. 이는 곧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가 훌루와는 다른 측면에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어요.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와 <코스비 쇼(The Cosby Show)> 등을 제작한 유명 프로듀서인 캐린 맨다바흐(Caryn Mandabach)도 새로운 시스템이 산업에 투명성을 가져다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콘텐츠의 성공을 이해하는 유일한 지표가 되면 안 될 것이라고 악시오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어요. 예로, 코스비 쇼와 같은 프로그램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프로그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기간에 갈등을 개선하는데 미친 사회문화적인 영향 같은 점도 살펴봐야 한다고 언급했죠. 

그럼에도 새로운 평가 시스템에 주목하는 이유는 “막대한 금액의 콘텐츠 투자가 수익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한 기준과 확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을 만들지 말지, 어디에서 릴리즈해야 할지, 영화 상영관을 만들어야 할지, 향후 몇 년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얼마나 될지를 계산하는 시스템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제작사 모두에게 투자 대비 높은 수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힌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손실 쌓는 디즈니+

이런 가운데 디즈니는 콘텐츠와 마케팅에 쏟은 비용을 재검토해야 할 때라고 보고 있어요. 현재 많은 테크 기업들이 그러하듯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는데요. 디즈니+는 공격적인 투자로 구독자를 늘리면서 성장하고는 있지만, 지난 3분기에 14억 7000만 달러(약 1조 99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해 위기감이 커지는 중이었어요. 전체 실적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 성장했지만) 시장의 예상치에 미치지 못했고요. 회사의 주가도 최근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실적 발표 다음 날 12%나 떨어졌죠. 밥 체이펙*이 부임한 날 대비해 디즈니 주가는 22% 떨어진 상황이었어요.

*밥 체이펙은 밥 아이거에 이어 2020년 2월 월드디즈니컴퍼니의 CEO로 부임했어요.

디즈니가 매출과 주당 순이익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례적이에요. CNBC의 유명 주식 방송인 매드 머니(Mad Money)를 진행하는 짐 크레이머(Jim Cramer)는 실적 발표를 보고 “이런 실적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 체이펙을 당장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디즈니의 CFO인 크리스틴 맥카시를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체이펙에게 실망한 자신들의 의견을 디즈니 이사회에 직접 전달했습니다. 

결국 체이팩은 이사회에서 해고당했어요. 팬데믹 동안 회사를 잘 이끌어왔다고 평가받으면서 지난 6월에 임기가 2024년까지 연장됐지만,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 실적이 안 좋아진 데다 조직 운영 방식의 문제도 제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자리에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디즈니의 CEO를 지냈던 전설의 CEO 밥 아이거가 돌아오게 됐어요.

아이거가 말하는 방향과 ‘창의성’

“향후 몇 주간 회사의 조직 및 운영에 변화를 주는 조치들이 도입될 것이다. 나는 마음이자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의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회사의 구조를 다시 설계할 계획이다.” 

밥 아이거가 CEO에 재선임된 이후 바로 전한 메모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힌트를 살펴볼 수 있어요. 

회사의 핵심인 디즈니+의 구독자 성장은 놀라운 페이스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올해부터 급격히 달라진 거시경제 기류는 해당 사업이 기록 중인 손실에 대한 우려를 키웠죠. 디즈니+가 2019년 11월에 론칭한 이래 현재까지 쌓은 손실은 무려 85억 달러(약 11조 5000억 원)가 넘었고, 최근 4개 분기 연속으로 영업손실이 계속 커지고 있어요. 올해에만 콘텐츠에 300억 달러(약 40조 5700억 원) 넘게 쓰겠다면서 넷플릭스보다 큰 베팅을 했고요. 

하지만 콘텐츠에 대한 외형적인 투자 외에 콘텐츠를 배분하는 조직이 만들어진 구조에 대한 우려도 컸다고 널리 알려졌어요. 체이펙은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각 콘텐츠를 만드는 조직 외에 해당 콘텐츠들을 스트리밍, 영화관, TV 네트워크 등으로 배분하는 결정을 내리는 조직인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를 별도로 만들어 운영했어요. 스트리밍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두겠다면서 신설한 이 조직의 탄생은 기존에 디즈니가 콘텐츠 사업을 운영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었죠. 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각종 TV 프로그램 등의 콘텐츠를 만드는 각 조직이 콘텐츠를 어디에 공급한다는 결정은 물론 관련 예산 운용에 대한 권한도 잃게 되었고요. 

아이거는 11월 22일,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를 이끌던 임원인 카림 대니얼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으며 “크리에이티브팀들에게 더 많은 결정을 내릴 권한을 돌려주고 비용을 합리적으로 운영할 방안이 담긴 새로운 조직 구조를 짤 것이다”라는 메모를 보냈어요. 그는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부의 일부 요소는 남길 것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이 회사를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사업을 만드는 방식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죠. 

아이거가 말한 창의성은 일단 콘텐츠를 만드는 조직과 그 콘텐츠들이 회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통로로 고객들에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권한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은 많고

최근 디즈니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어요. 유명 행동주의 펀드인 써드 포인트(Third Point)의 댄 로앱(Dan Loeb)은 지분을 사들이면서 더 효율적인 운영에 대한 압박을 가했고, 트라이언 펀드 매니지먼트(Trian Fund Management)도 이사회의 자리를 노리는 지분을 취득했죠. 트라이언은 밥 아이거의 선임에도 반대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밥 아이거는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이들의 요구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물론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이 한층 격화되는 중인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의 수익성을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경기 상황 속에서 성장에 대한 초점보다는, 이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사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죠. 이제 1억 642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면서 넷플릭스를 바짝 따라잡는 중이지만, 계속 큰 금액을 쏟는 것보다는 효율적인 운영이 필요한 상황이 됐어요. 

그리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2년이라는 임기 동안 자신의 뒤를 이을 적합한 후임자를 다시 찾는 것입니다. 디즈니라는 거대한 온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자가 계속해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의 뒤를 이어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새로운 인물의 발굴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밥 체이팩의 선임 이후 그의 후임자 라이벌들이었던 주요 인물들도 회사를 떠났는데요. 새로운 인물들을 발굴하거나 데려오는 것이 더없이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최대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창업자이자 공동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그가 복귀한다는 소식이 밝혀지자 “윽, 나는 아이거가 대통령 선거에 나갔으면 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면서 (진심이 일정 부분 담긴) 농담과 견제의 마음이 섞인 트윗을 올렸는데요. 픽사, 마블 엔터테인먼트, 루카스 필름, 그리고 21세기 폭스 등 디즈니의 주요 콘텐츠 기업 인수를 모두 총괄하고 디즈니+까지 론칭하면서 디즈니를 키운 아이거의 행보는 당분간 업계의 모두가 주목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다시 정비되는 조직 구조가 기존에 그가 운영했던 조직 구조와는 또 어떻게 다를 것이며, 실적 압박을 받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디즈니의 본질이라고 하는 ‘창의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포함해서요.

Edit 송수아 Graphic 조수희 함영범

– 해당 콘텐츠는 11월 15일(화)과 11월 22일(화)에 발행된 커피팟의 뉴스레터에 기반해 11월 29일(화) 기준으로 재편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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