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찾아온 겨울, VC의 마음을 사로잡을 전략은?
ㆍby 커피팟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친숙한 용어일 거예요. 전통 산업 분야에 있다면 조금 낯설 수 있고요.
블리츠스케일링을 한국어로 옮기자면 ‘맹렬한 확장’ 정도가 될 텐데요. 스타트업의 사업 규모를 빠르게 확장하는 걸 뜻해요. 사업 규모나 회사의 가치를 빠르게 ‘스케일업’하는 수준이 아니라,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우선 몸집부터 키우고 보는 전략이죠. 블리츠스케일링은 최근 몇 년간 실리콘밸리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스타트업의 성장 공식처럼 여겨졌어요.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 겨울’이 오자 블리츠스케일링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어요.
날개가 없어도 엔진에 불부터 붙여라
블리츠스케일링의 개념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갈게요. 블리츠스케일링은 링크드인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Reid Hoffman, 현재는 그레이록 파트너스라는 벤처캐피털(VC)의 파트너)이 제시한 개념으로, 불확실한 환경에서 효율보다 속도를 우선시하는 전략을 말해요. 경영상 불확실한 요소가 있더라도 맹렬한 속도로 몸집을 키워서 경쟁자를 따돌려야 승리할 수 있다는 거죠.
전통적인 경영학에서도 초기 기업에게는 위험을 감수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요. 그러나 위험 요소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단서를 다는데요. 이와 달리 블리츠스케일링은 효율보다 ‘속도’를 완전히 우위에 두는 것을 뜻해요. 리드 호프먼은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정리했어요.
리드 호프먼은 저서에서 에어비앤비와 같이 수십조 원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사례를 들며 “블리스케일링이야말로 스타트업이 경쟁자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이 방법”이라고 역설해요.
스타트업 용어에 익숙한 분이라면 블리츠스케일링이 ‘린 스타트업(완제품이 아니라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시장에 내놓고 고객 의견을 반영해 수정해나가는 제품 개발 로드맵)’, 그리고 ‘애자일(Agile) 방법론(필수 기능부터 개발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기능을 추가해 가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눈치챘을 거예요.
린 스타트업은 회사 및 서비스 기획 분야에서, 애자일 방법론은 개발 분야에서, 블리츠스케일링은 경영 및 투자 분야에서 모두 한 목소리를 내죠. “스타트업에게는 효율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더 빨리 실험하고 검증해서 경쟁자를 제거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모두가 “더 빨리, 더 빨리, 진격 앞으로!”를 외치며(blitz는 실제로 독일 군사 용어에서 유래햇어요) 이 개념들을 ‘스타트업 바이블’로 삼았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블리츠스케일링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에도 블리츠스케일링이 가능한가? 라는 물음표가 생긴 거예요.
블리츠스케일링이 가능하려면 경쟁자보다 빠르게 투자를 받아서, 사업 규모를 대폭 키운 다음, 후속 투자도 더 빠르게 받아야 해요. 받은 투자금은 물류 기업이라면 생산 및 설비 라인 확장에,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면 인재 확보에 중점적으로 사용돼죠. 이렇게 투자금을 받는 족족 사세 확장에 쏟아부으면 현금 소진율(burn rate)이 폭증하고요. 스타트업 경영진은 얼마 전까지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왔어요. 다음 투자를 받으면 되니까요. 아니, 블리츠스케일링 전략에 따르면 다음 투자를 받기 위해서 “그래야만 한다”였어요.
그런데 금리가 오르자 벤처캐피털(VC)들이 후속 투자를 대폭 줄였어요. 그리고 “투자를 받으려면 영업이익을 내서 숫자로 보여줘”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효율보다 속도’를 외친 스타트업들이 효율과 안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다른 전략은 아직 없는데
그래도 스타트업 전문가들은 여전히 블리츠스케일링이 유효한 성공 방정식이라고 말해요. 왜 그럴까요?
1. 승자 독식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에요
플랫폼 경제와 앱 생태계에서는 더 그러하죠. 독점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기업이 끝내 승리합니다. 다른 경쟁자들은 인수합병되거나 다른 사업 모델을 찾거나, 폐업하게 되고요.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보하려면 여전히 블리츠스케일링할 수밖에 없어요.
2. 벤처캐피털은 여전히 많은 양의 드라이파우더(Dry Powder, 미투자 보유금)를 갖고 있어요
VC들이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깐깐하게 보기 시작했지만, 옥석을 가려서 ‘옥’에는 돈을 줄 거예요. 이런 상황일수록 한 번 가려낸 옥에 더 많은 돈을 부을 수도 있죠. 결국 그 돈은 블리츠스케일링하는 회사에 갈 거고, 그 회사는 더 많이 받은 투자금으로 더 블리츠스케일링할 거예요.
그렇다면 이 시점에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답변은 조금 뻔하지만, 결국 ‘제품과 시장의 궁합(Product-Market Fit, PMF)’을 찾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해요. 사실 리드 호프먼도 저서에서 “블리츠스케일링의 핵심은 수익모델(Business Model)이 입증되기 전에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라면서도 “PMF가 맞지 않으면 블리츠스케일링은 아주 고통스럽고 빠른 ‘블리츠페일링(Blitzfailing)’으로 이어진다”고 조언했어요. 지금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회사가 PMF를 찾았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맹렬히 PMF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계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지금 투자자들이 찾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투자자들은 발 빠르게 투자 전략을 선회하고 있어요. ‘투자를 받고 싶다면 달성해야 할 기준치’가 세워지고 있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특정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겠다면서 높은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기도 하죠.
1. 유니콘을 넘어선 ‘켄타우로스’
소프트웨어 분야에 주력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로 유명한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이하 베세머)는 얼마 전 “더 이상 유니콘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Centaur)’를 지향하는 스타트업 발굴에 더 힘을 쓰겠다고 밝혔어요.
베세머가 정의한 켄타우로스는 ‘비즈니스 펀더멘털에 뿌리를 둔 기업’이라는 개념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SaaS* 기업 중 ARR(연간반복매출)* 1억 달러(약 1,300억 원) 이상을 내는 것을 기준으로 해요. 베세머는 1억 달러에 달하는 ARR이 받쳐주는 비즈니스가, 벤처캐피털이 산정하는 기업 가치보다 안정적인 성장의 지표가 된다고 본 것이죠.
지금 켄타우로스가 중요한 이유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반열에 오른 기업은 올해 2월을 기점으로 1,000개가 넘었어요. 팬데믹 상황에서 유동성이 증가했고, 스타트업에도 투자가 늘어나면서 가치 평가가 후해진 게 유니콘의 급증으로 이어졌죠. 하지만 기업이 얼마나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느냐보다, 회사를 10억 달러 가치로 인정하는 투자자가 있다면 유니콘에 등극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었어요.
이 우려는 급속히 둔화하는 벤처 투자 시장의 흐름과 만나면서 현실이 되었는데요. 이제는 투자 유치를 위한 숫자보다는 수익과 현금흐름, 즉 얼마나 고객이 반복적으로 회사의 서비스나 제품을 구매하는지, 이로 인해 자생할 수 있는 현금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어요. 어쩌면 유니콘 기업 중에서도 켄타우로스 지위를 획득한다면 ‘진짜’ 유니콘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게 된 거죠.
왜 클라우드 시장, 왜 SaaS일까
그렇다면 베세머는 켄타우로스의 유망 분야로 왜 클라우드 기반의 SaaS 분야를 선택했을까요? 이들은 BVP 나스닥 어메이징 클라우드 인덱스*의 기업들이 영업과 마케팅에 투입하는 1달러당 68%의 IRR(Internal Rate of Return, 내부 수익률)*을 창출했다고 짚었어요. 평균적인 S&P500 기업들이 20%의 IRR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고려하면 클라우드 기반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이 되고, 효과적으로 돈을 버는지 알 수 있는데요.
최근 경기 침체를 우려하면서 세쿼이어 캐피털이 포트폴리오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는 자생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구독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의 요구에 집중하며 비즈니스를 개선하고 이를 토대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요.
이미 각종 SaaS는 각 분야에서 필수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제는 금융, 의료 등 기업의 민감한 데이터들도 점점 클라우드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이고, 더 많은 기업과 고객들이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SaaS를 이용하게 됐어요. 게다가 클라우드 마켓플레이스도 등장하면서 SaaS 서비스들의 판매 채널이 되고 있어요. 마켓플레이스도 2020년 대비 2021년 약 70% 증가한 40억 달러(약 5조 1600억 원) 규모로 성장했고, 2025년까지 약 500억 달러(약 64조 5200억 원)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2. ‘40의 법칙’을 충족하는 회사
40의 법칙(Rule of 40)은 기업이 성공하려면 수익률과 성장률을 더해 40%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계산법은 유동적이지만 주로 수익률은 이자 비용, 세금, 감각상각비를 빼기 전 이익(EBITDA)으로 계산하고, 성장률은 연간반복매출(ARR)로 계산해요.
40의 법칙은 SaaS 기업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에요. 성공한 창업가이자 투자자이면서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 저자인 브레드 펠트(Brad Feld)가 2015년 블로그에 제시한 이후 확산해서 최근에는 테크 업계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죠.
VC들은 요즘 같은 겨울에도 40의 법칙을 충족하는 회사라면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해요. 성장성이 담보된 회사에 넉넉한 투자금이 주어지면 성장이 더 빨라질 테니까요. 물론 이런 회사가 흔하지는 않아요. 맥킨지가 소프트웨어 기업 200곳을 분석해보니, 2011~2021년 사이에 40의 법칙을 초과 달성한 기업은 16%에 불과했어요. 대신 40의 법칙 기준으로 상위 25%에 속하는 기업들의 기업 가치가, 하위 25% 대비 3배에 달했고요. 그러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확실히 매력적인 지표로 통할 수밖에 없는 거죠. 다만 초기 스타트업을 40의 법칙으로 평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전문가들은 이 법칙을 한두 해 달성하는 건 의미가 없고, 꾸준히 충족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위에서 언급한 맥킨지 조사에서 40의 법칙 달성과 매출 성장세를 계속 이어간 회사는 단 1.6%뿐이었다고 해요. 베인앤컴퍼니가 소프트웨어 기업 124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3년 이상 40의 법칙을 충조한 기업은 25%뿐이었어요.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이 글은 2022년 6월 21일, 6월 28일, 7월 12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기반해 2022년 8월 10일(수) 기준으로 재편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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