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를 살리러 온 구원자, 이정후와 오타니
ㆍby 이종성
'바람의 손자' 이정후 덕분에 요즘 MLB(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 부진했던 소속 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리그 정상급 팀으로 부상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죠.
이정후가 활약하고 있는 MLB는 최근 산업 전반에 걸쳐 큰 환경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MLB가 미국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에서 수익 확대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전통적인 사업 모델이 흔들리는 가운데, MLB는 어떤 전략으로 산업 구조를 바꿔 나가고 있을까요?

샌프란시스코에서 활약 중인 이정후 / 사진: 로이터
MLB의 효자 상품, 지역 중계권
미국 5대 프로스포츠의 중계권료를 보면, 왜 미국을 ‘프로 스포츠의 천국’이라 부르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 프로스포츠 중계권 수익은 크게 전국 방송, 지역 방송, 해외 중계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전국 방송 중계권료만 보면 NFL(내셔널 풋볼 리그)이 약 18조 5,000억 원으로 가장 높고, NBA(전미 농구 협회)가 약 5조 3,000억 원으로 그 뒤를 잇습니다. MLB의 전국 방송 중계권료 수입은 약 2조 7,000억 원 규모입니다.

전국 방송 중계권료 측면에서 MLB는 3위지만, 지역 방송 중계권을 놓고 보면 단연 1위입니다. 지역 방송 중계권은 특정 구단이 위치한 지역에서만 제공되는 TV 중계 방송권을 의미해요.
야구는 경기 수가 많고, 시청률도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에, 지역 방송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콘텐츠였습니다. 덕분에 MLB 구단은 지역 중계권료만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어요.
미국 주요 프로 스포츠 리그 가운데, 리그 전체 수입에서 지역 중계권료 비중이 가장 높은 것도 MLB입니다. MLB는 전체 수입 가운데 23%가 지역 중계권료 수입이죠. NBA(13%), NHL(12%)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며, NFL은 고작 1%에 불과합니다.

급변하는 환경에 무너지는 MLB 지역 중계권
하지만 최근 5년 사이, MLB 구단들의 지역 중계권 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 세대가 야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코드 커팅*까지 확산된 탓이죠. 2023년 조사에 따르면, 18~29세 미국인 중 야구를 ‘가장 즐겨 보는 스포츠’로 꼽은 비율은 고작 5%에 불과합니다.
* 코드 커팅: Cord-cutting, 유료 방송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인터넷TV, OTT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상
OTT와 유튜브 중심으로 미디어 환경이 재편되면서, 케이블 TV 기반의 중계 모델은 경쟁력을 잃었고, 지역 방송사들은 MLB 중계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기가 하락한 MLB는 지역 방송사의 유료 회원을 끌어들이는 데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고, 잦은 경기 수에 따라 발생하는 높은 중계 제작비도 방송사 입장에서 큰 부담이기 때문이죠.

2023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포함한 4개 MLB 구단은 지역 방송사의 파산으로 지역 중계권료 수입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2024년에도 지역 중계권 시장의 어려움은 계속됩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지역 중계권 수입은 전년 대비 40% 감소했고, 워싱턴 내셔널스 역시 같은 기간 20% 줄었습니다.
MLB 사무국은 무너지는 지역 중계권 모델에 대응해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중계 방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수준의 수익을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어요.
MLB를 살리러 온 구원자 오타니 쇼헤이
사실 MLB는 지역 중계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일찌감치 감지하고 있었어요.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2019년에 MLB 런던시리즈의 막을 연 것도 그 때문이었죠. 다행히 런던시리즈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펼친 첫 경기는 해외 경기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인 59,659명을 동원했고, 굿즈 판매에서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지역 중계권이 붕괴된 MLB 구단들에게 유럽 시장은 당장 해결책이 될 순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MLB를 제대로 확장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MLB 런던시리즈에 등장한 해리 왕자와 왕자비 메건 마클 / 사진: 로이터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입니다. MLB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오타니는 투타 겸업, 이른바 ‘이도류’로 야구 팬들의 낭만을 다시 일깨운 주인공입니다.
2024년, 오타니가 LA 다저스로 이적한 첫 해에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자, MLB는 다시 한 번 ‘야구 르네상스’를 꿈꾸게 됩니다.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죠.
일본의 열기는 특히 뜨거웠습니다. 오타니는 물론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다저스의 선발투수로 나섰던 월드시리즈 2차전은 일본 내 시청률 13.9%를 기록했습니다. 이 경기를 지켜본 일본인은 약 1,590만 명으로, 같은 경기를 본 미국 시청자 수 1,380만 명을 넘어섰어요. 일본이 월드시리즈에 보여준 폭발적인 관심은 MLB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사건이었습니다.

LA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오타니 쇼헤이 / 사진: 로이터
재팬 머니는 MLB를 춤추게 한다
MLB가 2024년, 역대 최대 규모인 17조 5,200억 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도 일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어요.
2024년 MLB 구단의 스폰서십 수입은 약 2조 8,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나 증가했습니다. 이 가운데 일본 기업들의 경기장 광고는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타니 열풍이 거셌던 2023~2024년 사이, MLB 경기장에 광고를 집행한 일본 기업 수는 2022년에 비해 무려 218% 많아졌거든요.
일본 기업들이 MLB 광고 시장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내에서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일본 시장을 겨냥한 효과도 함께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타니를 비롯한 일본 선수들의 활약으로 일본 내 MLB 관심도가 급등하면서, 경기장 광고가 일본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죠.

일본 기업들의 광고판으로 가득 찬 다저 스타디움 / 사진: 로이터
일본에서 MLB가 거둬들이는 중계권료 수입도 상당합니다. 2024년, 일본 미디어가 MLB 중계권료로 지불한 금액은 약 1,000억 원대에 이릅니다. 이는 MLB 해외 중계권 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죠.
현재 일본에서는 무려 11개의 방송사와 OTT 플랫폼이 경쟁적으로 MLB 경기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마존 프라임 일본 법인도 중계에 뛰어들면서, 일본 내 MLB 중계권료는 더욱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흥미롭게도 MLB에서 활약하는 일본 선수는 미국 서부 지역 구단 소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2024년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를 비롯해서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 모두 서부 팀에서 뛰고 있어요. 한국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혜성, 류현진, 박찬호는 LA 다저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이고, 김하성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뛴 바 있죠.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서부 팀 경기는 현지 기준 오후 7시에 시작되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 시간으로 정오쯤입니다. 실시간 시청은 어렵지만, 점심시간 전후 하이라이트 소비나 SNS 확산에는 유리한 시간대죠. 게다가 주말 낮 경기는 한국과 일본에서 오전 9시쯤 시작돼 생중계 시청에도 적합합니다.
반면 동부 팀 경기는 한국과 일본의 바쁜 출근 시간대와 겹치고, 주말 낮 경기 역시 새벽 3시쯤 시작돼 시청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시간대 차이는 MLB가 아시아 팬층을 고려해 서부 팀에 아시아 선수를 집중 영입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홈런은 오타니가 치고 돈은 미국이 번다
일본의 MLB 영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재팬 머니는 이제 미국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24년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LA의 일본 타운 ‘리틀 도쿄’에는 높이 45m의 오타니 벽화를 보기 위해 일본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방문했습니다. LA 다저스의 스프링캠프가 열린 애리조나 주에는 수백 명의 일본 팬과 취재진이 몰려들었죠. 몰려든 인파로 인해 경기장에는 임시 주차장이 설치됐고, 일본에서 온 팬들은 현지에서 숙박하고 식사하며 골프를 즐기는 등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소비 효과를 만들었습니다.
이 열기는 도쿄에서 열린 MLB 공식 개막전 도쿄시리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LA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가 맞붙은 경기의 온라인 티켓은 판매 시작 4초 만에 전석 매진될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 패션 브랜드로도 자리 잡은 MLB / 사진: 로이터
머천다이징 수입(굿즈 판매)도 눈에 띕니다. 2024년 MLB는 국내외에서 약 2조 4,000억 원 규모의 머천다이징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이 중 미국 내 수입이 약 1조 6,000억 원, 해외 수입은 약 8,000억 원입니다.
일본 시장에서는 MLB 굿즈 수익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MLB 해외 머천다이징 사업을 맡고 있는 패너틱스(Fanatics)의 2024년 일본 내 수입은 전년 대비 170% 증가했고, 오타니가 활약 중인 LA 다저스 관련 굿즈 수입은 무려 2,000%나 급등했습니다.
도쿄시리즈 현장에서만 패너틱스가 벌어들인 굿즈 수입은 약 576억 원. 이는 패너틱스 역사상 단일 이벤트 기준 최대 매출입니다. NFL 슈퍼볼, MLB 월드시리즈, 올스타 게임까지 담당하는 글로벌 스포츠 굿즈 기업인 패너틱스가 이 기록을 도쿄시리즈에서 경신했다는 점은 오타니와 일본 시장의 경제적 영향력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오타니 효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MLB의 머천다이징 수입은 2025년에도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바람을 타고 한국에서 온 또 다른 구원자, 이정후
MLB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입니다. 수많은 MLB 올스타와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가 이 지역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국가가 많아 중계권료와 스폰서십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척돔에서 열린 MLB 서울시리즈 개막전 / 사진: 로이터
그런 면에서 MLB의 핵심 해외 시장은 이미 야구 문화가 널리 퍼져 있고, 경제 수준도 높은 일본과 한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2024년 MLB 서울시리즈가 열린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당시 쿠팡은 중계권료와 티켓 판매권으로 약 120억 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정후는 MLB 입단과 동시에 굿즈 판매 증가, 중계 시청 증가, 구단 SNS 팔로워 수 급등 같은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MLB는 그를 통해 한국 시장의 문이 더 크게 열리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타니가 일본을 뜨겁게 달궜듯, 이정후가 ‘한국의 MLB 구원자’가 되어주길 바라면서요.
Edit 윤동해 Graphic 이은호 이제현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서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중, 스포츠가 사회문화 현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늦은 나이에 영국 DMU(드몽포트) 대학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야구의 나라》, 《스포츠문화사》,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과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 c. 1910~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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