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디올을 사려고 신발 30켤레를 팔았어요

by My Money Story

스니커즈 유튜버 와디의 머니 스토리

외장하드가 고장난 덕분에 유튜버가 됐어요

안녕하세요, ‘와디의 신발장’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5년 차 유튜버 와디입니다. 구독자 수는 17만 명 정도 되고요. 유튜브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스니커즈 마니아로서 신발 사고팔기를 반복했는데요. 집안에 신발을 쟁여 놓을 공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새로운 신발을 사려면 예전에 샀던 신발을 팔아서 비용을 마련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이 신발들을 그냥 떠나보내기는 아쉽잖아요. 신발을 하나씩 영상으로 찍어 놓고서 외장하드에 저장해 두었는데… 어느 날 외장하드가 고장이 나버린 거에요. 그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찍었던 영상 파일을 모두 유튜브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유튜브를 무료 클라우드로 인식했던 거죠.

희한한 건 사람들이 제가 올린 동영상 중에서 유독 신발 영상만 보더라고요. 그때 유튜브에 가족여행 영상 등 이것저것 다 올려놓았는데 유독 신발 영상만 조회 수가 높았던 거죠. 신기해서 유튜브를 뒤져보니 해외에서는 이미 스니커즈 유튜버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유튜브에서 신발을 리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이름이 ‘고영대’라서 일할 때 ‘YD’라는 이니셜을 쓰는데요. ‘YD’보다는 ‘와디’가 부르기 편할 것 같아서 ‘와디의 신발장’이라고 채널 이름을 지었습니다.

토스 마이머니스토리

삼성전자 있을 때 유튜버 활동은 부업이 아닌 취미였어요

유튜버 활동을 한다고 저를 비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심지어 직속 상사였던 상무님은 아주 좋아해 주셨죠. 그런 면에서 삼성전자는 굉장히 개방적인 회사였다고 생각해요. 아, 물론 사내 논의가 있긴 했어요. 인사팀에 계속 알람을 줬거든요. ‘저 구독자 수 1만 명 넘었습니다.’, ‘2만 명 넘었습니다.’, ‘3만 명 넘었습니다.’, ‘고할지 스톱할지 결정 해주세요.’

그런데 직원이 유튜버로 활동한 전례가 없다 보니, 인사팀에서도 쉽게 결정을 못 내렸어요. ‘규칙을 만들어야겠네?’하면서 고민을 시작했고요. 이후 회사에서 법무 검토를 하고 다양한 논의를 거친 끝에, ‘유튜브, 다 해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유튜브도 SNS의 일환이라 규정한 건데요. 삼성전자에 입사한다 해서 SNS에 사진을 올리는 걸 막지 않는 것처럼 회사 기밀 누설하지 않고, 회사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으며, 경쟁사 제품을 홍보하는 것만 아니라면 맘껏 할 수 있게 한 거예요. 물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요. 이후 매우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원 시절, 유튜브는 부업이 아닌 취미 생활이었어요. 골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날 아무리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새벽에 골프 치러 나가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출퇴근만 왕복 2시간 걸렸거든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보통 저녁 8~9시. 피곤해도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재우고, 꼭 신발 리뷰 영상을 찍었어요. 왜? 재밌으니까요. 부업이라 생각했으면 한 달에 15만 원씩 벌면서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신발 리뷰 영상을 찍어 올리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와디

제주도에서의 일상은 서울과는 여러모로 달라요

2020년 10월에 퇴사하고 1년 동안 제주도에서 살아보려 내려왔어요. 원래 계획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육아휴직 신청해서 내려오는 거였어요. 10살, 7살이 된 아들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을 했거든요. 제주도 자연을 벗 삼아 수영, 승마, 서핑, 낚시 같은 액티비티들을 신나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육아 휴직계를 내고 제주도로 떠날 계획을 다 세워 놓았는데, 갑자기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주도에 내려가야 해서 어려울 것 같다 답을 했는데 무신사는 괜찮다 하더라고요. 요즘엔 일하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무신사에서도 전 직원이 재택근무 중이었거든요. 무신사와 함께 일하면 상부 결재를 받을 필요가 없이 아주 신나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사하고 제주도로 내려오게 되었죠.

제주도에서의 일상은 서울과는 여러모로 달라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과 아침을 만들어 먹고서 저는 지하 사무실로 업무를 보러 내려갑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제주도 집이 4층인데, 지하 1층에 제 사무실을 만들었거든요. 지하에서 일하다 1층으로 올라오는 게 퇴근이고요. 최대한 6시엔 퇴근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처음 배운 낚시도 즐기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와디의 신발장

유튜버로 성공하려면, 진짜 좋아하는 걸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친구 중에 ‘고영대가 저렇게 유튜버로 잘 되는 거 보니 나도 해봐야겠다’며 옷 리뷰를 시작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옷을 아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역시나 금방 그만 두더라고요. 주말을 전부 투자해서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렸는데, 조회수는 25… 시간은 시간대로 들이는데 반응 없고 구독자 안 늘어나면 지치는게 당연해요. 허탈감, 자괴감까지 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유튜버로 성공하려면 진짜 좋아하는 것, 누가 봐주지 않아도 흥이 나서 할 수 있는 그런 걸 가지고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취미활동에 카메라만 비추는 거죠. 그러다 보면 능력이 발견되고, 비즈니스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까. 더 나아가선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다 생각해요.

유튜버로 성공한 원인이요? 부담감 없는 외모가 한몫한 거 같아요. (웃음) 누가 봐도 너무 잘 생기지 않았잖아요. 그렇다고 너무 재수 없지도 않고. 주변에 둘러보면 한 명 정도 있을 것 같은 이미지죠.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 재미가 중요한 것 같아요. 평소에 말할 때 남들이 불쾌하게 느끼지 않는 개그를 하려 하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유튜브에 1,300개 정도 영상을 올렸는데,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어요. 이런 꾸준함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와디

랩이든 스니커즈든, 취미를 끝까지 파는 사람이에요.

학생일 때도 취미를 아주 깊게 파는 아이였어요. 고등학생이었을 때 한국 힙합 문화 태동기였는데요. 당시 랩에 심취해 있었어요. 점심 시간마다 드럼, 베이스 치는 친구들과 함께 즉흥 랩을 했고, 자작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죠. 나중에는 타워 레코드 같은 음반 가게에 제 CD가 꽂혀 있는 모습이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CD를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어요. 곡을 써서 녹음하고, 디자인하는 친구한테 커버를 부탁하고, CD 공장을 찾아가고… 마지막에는 음반 제작사를 찾아갔죠. CD를 유통해 달라고요. 스무 살짜리 애가 음반사 찾아가서 계약하자고 했는데, 의외로 흔쾌하게 오케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앨범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함께 랩을 했던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이었어요. 버벌진트, 스윙스, 딥플로우, 산이, 주석, 가리온… 물론 지금은 이분들과 연락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웃음)… 그러다 래퍼 활동을 접었어요.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도 아니고, 이걸로 먹고 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렇게 랩을 끝까지 파본 경험이 스니커즈로 이어진 것 같아요. 스니커즈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건 중학생 때부터예요. NBA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95년, 친구들은 다들 NBA 선수들이 신고 나오는 멋진 농구화를 보면서 신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 해에 ‘에어 조던11’이 나왔고요. 마침 그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요. ‘에어 조던11’ 콩코드 컬러는 어디를 가든 다 품절인 거예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품절’이라는 걸 경험했어요. 운동화를 사러 갔는데 매장에 없다? 빨리 창고에서 꺼내 오든지 다시 만들든지 해서 많이 팔아야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었죠. 한정판, 프리미엄 신발이라는걸 그때 알게 됐어요. 결국 ‘에어 조던11’은 사지 못했어요. 이 신발을 가지고 싶은 열망은 더 커지게 됐고요.

결국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프리미엄 신발 ‘에어 맥스 97’을 사주셨어요. 첫 프리미엄 신발이었습니다. 집이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었거든요. 부모님께서 ‘등골브레이킹’해서 사주신 신발이라 더욱 소중했어요. 2017년에 ‘에어 맥스97’이 출시 20주년을 맞아 재발매 된 적이 있는데요. 그때 3켤레를 사서 부모님께 가져갔어요. “예전에 엄마 아빠가 사 주셨던 아주 비싼 신발인데, 이번에 다시 나와서 또 사왔어요.”라고 뭉클한 마음으로 이야기 했죠. 부모님은 기억 못 하시더라고요. (웃음)

와디

‘에어 디올’을 사려고 신발 30켤레를 팔았어요

스토리가 있는 스니커즈를 좋아해요. 사실 신발을 ‘그냥 신발’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위에 스토리가 얹어지면 특별한 신발이 되어 버려요. 개인의 스토리일 수도, 브랜드에서 창조한 스토리일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고무와 천으로 만들어진 이 공산품을 판매하기 위해 아주 멋진 이야기들이 필요한 거죠.

‘에어 디올’은 킴 존스라는 디자이너가 크리스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서 만든 신발이에요. 킴 존스는 예전부터 나이키의 헤리티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어요. 킴 존스 본인부터 ‘조던1’의 엄청난 수집가이기도 하거든요. 킴 존스는 디올과 나이키의 첫 콜라보 아이템으로 조던1을 골랐고, 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해냈습니다. 디올 가방에 들어가는 고급 차심 가죽으로 신발을 제조했어요. 그것도 이탈리아의 디올 공장에서요. 또 조던1 위에 디올의 패턴과 디올을 상징하는 컬러 웨이를 넣고, ‘에어 조던’ 대신 ‘에어 디올’을 새겼습니다. ‘에어 디올’이 만들어진 과정은 너무나 매력적인 스토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에어 디올’은 최고의 신발로 꼽히고 있고요. 저도 이 신발을 살 비용을 마련하려고, 가지고 있던 스니커즈 30켤레를 팔았어요.

스니커즈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도 나이키와의 기억인데요. ‘에어 조던3 서울’이 출시됐을 때예요. ‘에어 조던3 서울’은 나이키가 한국을 위해 제작한 최초의 조던 시리즈인데, 태극기 문양과 한글이 새겨진 신발이에요. 이 제품을 제가 제일 빨리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갔죠. 미국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난리가 난 거예요. ‘뭐야, 너 이거 어떻게 구했어?’, ‘너 한국에서 왔니?’라고 물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더라고요.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스니커즈 사는데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쓰는 것 같아요.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데, 아내가 이 정도는 스니커즈에 써도 된다고 했거든요. 신발에 큰 금액을 쓰는 건 사실이지만, 스니커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기준에서 보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에요. 그리고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 유튜버로 활동하면서부터 사는 신발보다 브랜드에서 보내준 신발이 더 많아졌어요. 어떤 브랜드이든지 받은 신발을 열심히 신어주는 것이 보내준 사람에 대한 예의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 신발들만 신기에도 굉장히 바빠요.

와디의 신발장

사람들이 신발의 가격보다, 신발이 가진 문화적 가치나 스토리에 매력을 느끼면 좋겠어요

가장 오랜 기간 좋아해 온 브랜드는 나이키예요. 나이키의 위대함은 방대한 헤리티지에서 나오는데요. 1985년부터 지금까지 35년간 늘 최고의 자리에 있었거든요. 그 기간 동안 히트친 제품도 수없이 많고요.

패션이 돌고 돈다 하잖아요. 특히 신발은 더 돌고 돌거든요? 예를 들어 사람들은 조던34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라요. 조던33도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고요. 그런데 조던1은 다 알아요. 사람들은 조던1이 출시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새로운 신발을 사기보다 조던1을 다시 찾는 거예요. ‘어렸을 때 신었던 에어 포스 역시 멋있어.’ ‘95년에 나온 맥스 95가 진짜 예뻤지’ 하면서 찾게 되고요. 이런 식으로 같은 신발에 대한 소비가 반복되는데, 나이키가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은 무려 35년인 거예요. 아디다스가 나이키보다 브랜드 역사는 더 길지만, ‘핫했던’ 역사는 나이키보다 짧거든요. 나이키가 계속해서 트렌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최근의 스니커즈 열풍도 나이키가 주도한 한정판 마케팅에서 비롯됐다 생각해요. 이제 모든 브랜드가 한정판 마케팅 대열에 합류했거든요. 새로 발매한 신발을 어떻게든 빨리 품절이 되게 하고, 다시 구할 수 없게 만들어서 세컨드 마켓에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거의 모든 스트리트 브랜드와 잘 나가는 스포츠 브랜드들의 필수 공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그런 마케팅이 계속 통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시장이 계속 확장되고 있어요. 과거 한정판 마케팅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브랜드들까지도 ‘우리도 한정판 제품 있어.’ 하면서 전부 다 이 트렌드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고요. 아식스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인데 과거와는 달리 션 우더스푼, 아트모스, 아이앱 등과 협업한 한정판 제품을 만들면서 고객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죠. 한정판 마켓, 스니커즈 마켓 자체가 엄청나게 큰 산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셀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주변에 리셀을 많이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신발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들이에요. 이 친구들은 빠르게 정보를 얻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어요. 리셀을 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요. 그래서 저는 리셀을 잘해서 많은 부를 창출해낸다면 그 친구가 대단한 거라 봐요. 물론 리셀을 장려할 필요까진 없지만, 너무 색안경 끼고 볼 필요도 없다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장 염원하는 건 사람들이 신발의 가격보다는 신발 자체에 매력을 느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 신발이 원래 얼마짜리인데 지금은 얼마가 됐어.’ 이런 것보다 그 신발이 가진 문화적 가치나 스토리에 관심을 두면 좋겠어요. 이름도 모르는 암호화폐에 투자하듯 스니커즈를 바라보지 말고, ‘몇 년에 나와서 누가 신은 신발’, ‘누구랑 콜라보한 신발’ 이런 정보에 관심을 가져 보자는 거죠. 알면 알수록 정말 재미있거든요.

와디의 신발장

우리는 고시생 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저는 세 개의 수입원이 있어요. 무신사에서 받는 월급, 유튜브 수익,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 수익이에요. 제 수입 규모를 조심스레 말해보자면… 아내가 백화점에서 가방을 들어보고 예쁘다 했을 때 바로 사줄 수 있을 정도는 버는 것 같아요. 물론 어떤 가방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웃음) 삼성전자 다닐 때부터 유튜브 수입이 회사 연봉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도 꽤 잘 되고 있고요.

결혼 10년 차인데, 지금까지 아내와 16개의 사업자등록증을 내봤어요. 저희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돈보다 성취감을 더 중시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달성하면, 돈은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내 명의로 카페를 열었을 때도 ‘카페로 대박 내야지’가 아니었어요. ‘부평에 멋있는 카페가 하나도 없네. 아내가 컵케이크를 맛있게 구우니까 그걸로 멋있는 카페를 만들어보자’, ‘맛있는 멕시칸 집이 없는데 우리가 내보자’ 이런 식이었어요. 이후 여행 앱, 액세서리 가게, 지금 하는 유튜브 사업까지 다 그런 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실패한 사업도 있지만, 대체로 선방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 ‘고시생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해요. ‘이 고시만 패스하면 다 끝이야’라는 생각으로 사는 거죠. 삼성전자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힘들게 살지만, 임원만 달면 행복해질 거야. 그때까진 좀 포기해야 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이것도 저것도…’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룬 후에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삶이라는 건 지금, 이 순간들의 합이 아닐까요? 점들의 합이 선인 것처럼요. 오늘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좋아하는 것,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에 굉장히 집중하는 편입니다. 아이들과 살 비비고 누워서 TV 보는 그 순간을 즐기는 거죠. 왜? 내일은 그걸 못하니까요. 아이들이 크면 아빠 옆에 안 올 수도 있는 거고요. 전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상에 돈보다 더 소중한 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돈이 소중하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네 식구 모두 비즈니스석을 타고 LA에 놀러 갔던 적이 있어요. 여유있었던 건 아니지만, 한 번쯤 다같이 비즈니스석을 타고 미국에 가서 그림 같은 집에서 생활해보고 싶었거든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도 줄 안 서고 탈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을 구입했고요. 1인당 300불 정도 했는데, 그래도 프리패스로 선택했어요. 덕분에 아이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친 듯이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죠.

그때 첫째 아들한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엄마아빠가 운 좋게 돈이 있어서 엄청 좋은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어. 줄 안 서고도 실컷 놀이기구 탈 수 있었고. 앞으로 이렇게 못할 수도 있을거야. 그래도 오늘은 엄마아빠가 네게 주는 선물이니 행복하게 기억하렴.” 그랬더니 아들이 저를 꼭 안아주면서 “엄마아빠 감사합니다.” 이러는 거예요. 이런 경험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큰 돈이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는걸 자연스레 깨닫게 해준거니까요. 이런 경험은 가족의 행복과 사랑이 더 잘 쌓여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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