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원만 있어도 주식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ㆍby My Money Story
택시기사 이만규의 머니 스토리
하루에 딱 20만 원 버는 게 목표예요
택시 일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되었어요. 원래 강화에서 택시 운전을 시작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당연히 손님도 없었고요. 강화는 군인들 택시 수요가 많은 지역인데 외출, 외박도 제한되고… 시작하자마자 이 일을 접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노심초사하면서 택시를 몰고 있는데 한 번은 손님을 태우고 서울로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서울에 있는 택시기사님들한테 ‘요즘 장사 어떠세요?’라고 물어봤더니 끄떡없다 하시는 거예요. 차라리 서울로 와서 운행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셨고요. 바로 서울에 방을 구하고 서울에서 택시를 운행하기 시작했죠. 확실히 강화에서보다 수입이 훨씬 나아지더라고요.
처음 택시 일 시작하고서 하루에 15시간씩 일했는데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하루에 딱 20만 원만 벌겠다고 목표를 정했습니다. 보통 10시간 정도 운행하면 목표 금액이 딱 채워져요. 그렇게 한 달을 일하면 55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를 벌고요. 회사에 가져다주고 정산하고 나면, 저한테 남는 돈은 250~300만 원 정도 됩니다. 이렇게 번 돈 중에서 50만 원 정도는 주식을 하는데 쓰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쓰고 있어요.
손님들이 제게 에너지를 많이 얻어간대요
손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아무 주제나 툭 던지면 손님들은 자기 관심 분야와 연관 지어서 이야기하세요. 요즘엔 코로나 얘기하면 그냥 술술 풀어놓으세요. 직업부터 시작해서 매출이 얼마큼 되는지,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까지… 그럼 저는 ‘아이고, 힘드시겠어요’ 하면서 장단을 맞춰드리죠.
한번은 여행업체 운영하는 사장님을 태운 적이 있는데요. 타자마자 죽겠다 하시더라고요. 전년도 매출의 10%밖에 안 나온대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여행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던데 전년도 10%라도 매출이 생기니 다행이라고요. 그분이 옳다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손님 중에는 제 목소리가 명랑해서 에너지를 많이 얻어간다 하시는 분들이 꽤 계세요. 그럼 한마디 해드려요. 로또 사시라고. 제가 오늘 일하고 남은 에너지를 다 드릴 테니까 로또 사시라고. 그러면 좋다고 하시죠.
어릴 때부터 궁금한 일을 직업으로 삼았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기술자이셨던 아버지 권유로 겨울방학 동안 ‘삼천포’라는 지역의 화력발전소에서 일했는데요. 고등학교 재학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3년간 학업을 쉬고 나서 본격적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죠.
이후 정말 다양한 일에 도전했어요. 궁금증이 많아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무안에 있는 밭에서 양파도 캐보고, 배추도 키워보고, 바다에 나가서 다시마 수확도 해보고… 볼트 공장, 도금집, 인쇄소, 마트, 주유소 직원 등을 거쳐서 지금 하는 택시기사까지 오게 되었어요.
택시 면허증은 볼트 공장에서 일할 때 따두었어요. 볼트를 만들고 옮기는 일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무겁더라고요. 포대에 조금만 넣어도 60kg이 넘으니까 이걸 5~60대까지 들고 다니면서 일할 수 있을까 엄청나게 고민했었죠. 대비책으로 택시 면허를 따놓은 거고요.
바로 택시 일을 시작하진 못했어요
택시 면허 따고 나서도 바로 택시를 시작하지는 않고, 도금집에 들어가서 일을 했어요. 당시 울산에서 인천으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인천 지리를 잘 몰랐거든요. 인천에 있는 어떤 회사라도 들어가서 지리를 배워야겠다 생각해서 도금 회사에 취직을 했던 거죠.
그렇게 인천 지역 지리를 익혔는데, 인천 말고 또 다른 지역의 지리도 알아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또 다른 지역의 회사를 들어갔어요. 그러고서 ‘됐다. 이제 이 근방 지리는 다 알았다.’하면서 택시 운행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이 택시 업종이 불경기라고 했어요. 택시 일을 시작하는 걸 다 말렸고요. 그래서 바로 시작하진 못하고 다른 일을 전전했죠.
택시 기사를 하기 직전에는 강화에 있는 마트 직원으로 일했어요. 마트 내 허드렛일은 도맡아서 했던 것 같아요. 화장실, 매장 바닥을 청소하는 것부터 창고 정리, 에어컨 필터 교체까지… 강화가 소도시이기도 하고 큰 규모의 마트가 없어서 한동안은 장사가 잘됐는데요. 어느 날 인근 지역에 대형 마트가 하나 생긴 후부터는 손님들이 다 그리로 넘어가더라고요. 우리 마트는 5~10분 정도 되는 거리만 배달하는데, 거기는 김포시 경계를 넘어서 강화까지 배달을 왔어요. 배달을 위한 최소 금액도 10만 원이 아니라 5만 원이었고요. 우리 마트에는 저녁에 찬거리 사는 주부들만 남게 됐죠. 자연히 마트 운영이 어려워졌고요. 결국 사장님이 마트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되었고, 저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택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1,000만 원만 있어도 주식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15년 전부터 주식 투자를 해오고 있는데요. 예전에 주유소에서 함께 일한 분이 주식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분은 원래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일하셨던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분한테 주식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죠. 그래프 보는 법, 작전주나 단기급등주 찾아내는 법…
처음엔 3만 원으로 300원짜리 주식 100주를 샀어요. 그렇게 꾸준히 주식을 하면서 번 돈 40~60만 원. 큰 애 학교 들어갈 때마다 책도 사주고 교복도 사주고… 계속 주식을 하다 보니까 큰 애가 대학교 갈 때는 400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었어요. 특별히 투자 금액을 늘린 것도 아니고, 월급에서 5~10만 원 정도를 꾸준히 투자한 건데 성과가 괜찮았어요. 주식 시작한 후로 손해본 적도 많지만, 돈을 벌었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내한테도 늘 ‘목돈 1,000만 원만 있으면 주식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1,000만 원 들고서 30% 정도 수익만 나면 300만 원이잖아요. 한 달에 300만 원이면 충분히 먹고 살거든요. 200만 원 수익이 나더라도 어떻게든 먹고살면 되는 거니까. 사실 아직 빚도 있고, 통장에 있는 돈도 100만 원 조금 넘는 정도지만 목표는 그래요.
예전에 주식해서 번 돈에 월급을 더해서 아내의 하지 정맥류 수술을 시켜준 적이 있어요. 300만 원 정도가 들었는데, 그때 아내와 장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요즘도 주식으로 번 돈으로 아이들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가끔 아내 옷도 사주곤 해요. 가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꼭 큰 돈을 벌어야지만 행복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