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80만 원을 받는 걸그룹이었어요

by My Money Story

가수 류세라의 머니 스토리

다시 가요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는 걸그룹 나인뮤지스 출신의 데뷔 11년 차 가수입니다. 나인뮤지스를 탈퇴한 후에는 소속사 없이 음지에서 계속 활동을 해왔어요. 솔로 앨범을 두 장 발매하고, 콘서트도 세 번 하고… 잊혀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예전처럼 방송에서 활동을 하는 건 겁이 났어요. 한국에서는 소속사가 있어야 음악 방송이든, 예능이든 출연이 가능한데요. 돈으로 굴러가는 대중가요계 시스템 안에서 다시 소모품처럼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2016년부터는 주로 유튜브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자작곡과 커버곡을 올리다가 지금은 후배 걸그룹들의 신곡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버는 것 같아요. 채널 구독자가 14만 명인데요. 다른 사람이 만든 곡을 리뷰하는 콘텐츠이다 보니, 광고비가 모두 저작권자에게 돌아가는 구조예요. “언니 때문에 광고 안 끊고 다 봐요.”라고 말씀하시는 팬들도 계시는데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프죠. 제가 가져가는 돈이 아니니까요.

얼마 전부터는 MBN 채널의 ‘미쓰백’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어요. 걸그룹 출신 가수들의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인데요. 그동안 제가 우울증을 앓고, 생활고를 겪는 모습이 방영되어서 화제가 되었어요. 요즘은 이 프로그램의 경연 준비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속사가 없기 때문에 모든 준비를 혼자서 하고 있어요. 의상, 무대 연출 등등… 하루하루 시간을 빠듯하게 쓰고 있습니다.

월급 80만 원을 받는 걸그룹이었어요.

나인뮤지스는 항상 2, 3등 권에 머물던 걸그룹이었는데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모두가 1등을 향해 달려가는 시스템 속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는 절망감… 1등 외에는 전부 루저가 되는 시스템이 견딜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 제 삶 속에도 깊이 흡수 되더라고요. 1등이 되고 싶은데 1등이 지닌 화려함, 1등의 생활 수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아직까지 월세에 살고 있고, 공연을 할 때면 더 저렴한 장소를 알아보러 다니고… 뭐든 최고가 좋은 거라고 배웠는데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좌절감이 커져서 마음의 병이 되었고요.

데뷔하기 전에 멤버들 각자가 기획사에 몇천만 원씩 빚을 지고 시작했어요. 기획사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투자한 돈을 회수해 간다는 명목이었죠. 예를 들어 뮤직비디오를 찍는데 3천만 원을 썼고, 의상을 제작하는데 몇천만 원이 들었으면 그걸 저희의 빚으로 산정해 놓고 활동하는 동안 이 빚을 갚아나가는 시스템이었어요.

문제는 소속사가 그 금액을 투명하게 관리하지도 않았다는 건데요. 우리가 언제 손익분기점을 넘었는지도, 앞으로 얼마를 더 갚아야 하는지도 얘기를 안 해줬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저도 알아볼 생각을 안 했다는 거예요. 나의 시장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얼마를 버는지 그런 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데뷔하고 나서 2~3년 동안은 수입이 전혀 없었죠. 

나인뮤지스로 활동한 기간 전체로 보았을 때는 월 평균 80~90만 원 정도 벌었던 것 같아요. 광고 들어올 때는 300만 원, 어떤 달은 50만 원…. 그래도 그때는 회사에서 정산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당시에 다른 회사를 보면 돈을 주지 않고 분기별로 명품 가방을 하나씩 사주면서 때우려는 곳도 많았거든요. 우리는 그래도 ‘월마다 돈이 들어오네?’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던거죠. 

다행히 요즘에는 이 업계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후배 연예인들은 기획사와 정산할 때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이거는 쓴 거 맞고, 저건 안 썼어요.”, “이건 잘못됐으니 빼주시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후배들이 참 잘하고 있는거죠.

어렸을 때부터 뭐든 절약해야 한다는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할머니는 화장실 갈 때 휴지를 두 칸 이상 쓰면 안 된다고 하실 정도였죠. 캐나다에서 살 때 한 달 용돈이 정확히 80불이었는데요. 학교 가는 편도 버스비가 3불 50센트, 매일 버스 두 번만 타면 생활비가 동나버리니 학교까지 많이 걸어다녔어요. 45분이 넘는 거리였는데도요. 점심을 못 사 먹는 날이 더 많았고요. 또 그때 학교에서 럭비를 했거든요? 럭비를 하려면 장비가 필요하잖아요. 축구화, 양말, 체육복… 모두 선배들에게서 물려받았어요. 브리트니 스피어스 앨범은 몇 달 치 용돈을 모아서 샀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쉬워요. 부모님께서 절약 정신을 가르쳐 주신 건 감사한데, 돈의 다른 얼굴들도 함께 알려주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무조건 아끼는 것이 경제 활동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돈을 잘 쓰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어요. 

솔직히 요즘 누가 2만 5천 원을 받고 공연을 하나요? 

공백기에 앨범 제작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돈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점이 많이 아쉬워요. 앨범 하나 제작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요. 디자인, 재킷 사진 촬영, 공장에서 찍어낸 후 유통까지… 앨범 발매한 후에 공연을 하려고 해도 전부 돈이에요. 공연장 잡고, 세션 구하고… 이 과정에서 보통은 손익계산을 해서 앨범 가격을 책정하죠. 그런데 저는 손익계산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투자만 한 거예요. CD는 무조건 싸야 되고, 공연 장비는 최고여야 하고, 콘서트 티켓 가격은 2만 5천 원을 넘으면 절대 안 되고… 저에게는 팬들이 가장 소중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혼자서 2~3년 동안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히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게 된 거죠. 그때부터 은행 대출을 받기 시작했고요. 이렇게 깨지면서 알게 됐어요. 기준이라는 게 있어야 되는구나. 돈이 없으면 안 쓸 수는 있지만, 돈이 있으면 앨범과 공연에 질러버리니 돈을 모을 수가 없는 거였구나… 심지어 예전에 소속사가 하루에 서너 개씩 행사를 돌렸던 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공연 수익에 비해 나가는 지출이 너무 많고, 원금을 회수해야 하니까요.

월세 내기 전날 밤에는 잠이 안 와요.

남들에게 쏘는 걸 좋아해요. 주변에 ‘잘 사주는 쿨한 언니, 누나’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샌가 저를 도와주는 언니, 동생, 친구들이 많아졌더라고요. ‘세라야, 밥은 먹었니?’, ‘패딩 필요하니?’, ‘겨울에 난방은 틀고 사니?’ 이런 말들을 듣기 시작했어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는 못 하고 돈만 들어가는 존재, 계속 받기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숨 막히더라고요.

지금도 돈 때문에 참 힘든데요. 대출 받은 것도 있고 매월 수입 없이 지출만 생기다 보니까 무엇을 해도 다 마이너스가 되는 구조예요. 공연이나 앨범 작업은 시도조차 못하는 상황이고요. 서울에 집을 구해서 사는 것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데요. 월세를 낼 수 있을지 걱정돼서 매달 월세 내기 전날 밤에는 잠이 잘 안 와요. 전세를 가기에는 가진 돈이 너무 없고, 그렇다고 집을 살 수도 없고요.

6년째 신사동에 살고 있는데요. 이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껏 살았던 곳 중 성추행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동네이기 때문이에요. 미쓰백 멤버들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다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술 취한 사람이나 이상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를 떠나면 또 그런 짓을 당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비싼 동네인데도 떠나지 못하는 거예요.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고, 차도 있고, 집도 안전한 동네에 있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좀 서럽죠.

돈은 악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연예계에서는 사람에게도 값이 매겨져요. 얘는 얼마짜리고, 쟤는 출연료가 얼마고, 얘는 비싸고 쟤는 싸고, 쟤는 얼마짜리 차를 타고… 소속사 없이 활동을 시작한 후에 ‘세라 씨는 얼마예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출연료를 이야기하는 미팅 자리였는데요.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런 질문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제가 그런 말을 직접 들었던 적이 없어서 당황했던 거죠. 사실 연예계에서는 그런 질문들이 너무 당연시되거든요. 빙 돌려서 얘기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받고요.

돈이 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지난 2~3년 동안 생각이 크게 바뀐 부분인데요. 그동안 돈은 나쁘고, 돈에 욕심을 가지면 나쁜 사람이라고 배우면서 자랐거든요. 자연히 돈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죠. 자신의 이익을 따질 것 같은 사람과는 아예 미팅조차 하지 않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잣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살다보니 점점 도태되고, 고립되더라고요. 제 마음이 아프면서부터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죠. ‘올바르다고 믿었던 가치관대로 살아왔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모두 배척했는데 왜 아프고 힘든거지?’, ‘돈이 나쁜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왜 전혀 만족감이 없지?’ 돈에 대한 가치관이 올바르지 않으면 저처럼 소득이 불규칙한 사람들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고, 굳이 받지 않아야 될 상처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요. 심지어 돈이 넉넉할 때도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되고요.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꽤 크잖아요.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좋아하는 작곡가에게 가서 “DC 해주세요.”라는 말 없이 당당하게 곡을 받고… 이번에 미쓰백 무대에 섰을 때도 느꼈어요. 상상만 하던 무대가 그대로 현실로 이뤄지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제작진의 서포트를 받으며 돈 걱정 없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되니까, 흥이 없고 진중한 스타일인데도,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절로 났어요. 

앞으로는 중학교에서부터 돈에 대해 가르치면 좋겠어요. ‘돈은 악하다.’라는 식의 이분법 적인 생각은 제 세대에서 끊어야 할 것 같고요. 돈의 속성, 돈의 필요성, 세금, 집, 저축… 이런 것들을 꼭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해요. 저처럼 경제적으로 너무 뒤쳐졌다는 느낌, 아예 스타트 라인이 다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게 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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