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 싶지 않아요. 이제 더 이상, 돈한테

by My Money Story

크리에이터 장삐쭈의 머니 스토리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애니메이션 만들고 있는 장삐쭈입니다. 2017년부터 창작 애니메이션을 시작해서 애니메이터, 어시스트, 편집자 등 동료들을 모으며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채널 장삐쭈

매주 화요일에 정기회의를 해요. 정기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획회의를 하고, 기획을 마치면 대본 작업을 합니다. 대본 다음으로는 스토리보드가 나오고요. 스토리보드가 나오면 가녹음을 해요.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녹음을 먼저 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로 타이밍을 맞춰서 가녹음 하고, 그것에 맞춰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형태예요. 5~6분짜리 콘텐츠 한 편당 작업 기간이 보름 정도 걸리죠. 

콘텐츠를 만들 때 철칙이 있어요. ‘계속 의심하기’. 정말 재미있는지, 혹은 콘텐츠에 불편한 지점이 있지 않은지 등을 살펴요.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으면 갈아엎기도 하고요. 우리가 ‘와, 진짜 재밌다’ 싶으면 대중들은 ‘재밌다’ 정도고요. 우리가 ‘이건 미쳤다, 핵폭탄급이다’ 하면 대중들 반응은 ‘대박’ 정도예요. 우리는 항상 즐겁고 재밌게 콘텐츠를 짜니까 스스로 속지 말자는 거죠. 꾸준히 의심하면서 평균 이상의 재미를 뽑아내려 해요. 콘텐츠에는 경험을 녹이는 편이에요.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사건들. 그리고 온라인에서 본 썰들을 종합해서 인간 군상을 만들어요. 재밌는 건 어느 집단에나 빌런은 있고, 빌런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 있어’ 이런 공감대 형성이 되더라고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그런 생각을 하죠.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스튜디오 장삐쭈 멤버들 

사실 장삐쭈 콘텐츠가 유튜브에 안 어울리기도 해요. 인물 중심의 유튜브 시장에서 스토리 중심의 애니메이션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요. 제가 셀럽을 초대해서 홍보를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완전히 독고다이 스타일이거든요(웃음). 구독자가 300만 명이 다 되어가는데, 구독자 10만 명 때와 달라진 건 크게 없는 것 같아요. 방에서 글 쓰고, 연기하고, 이런 과정들은 같거든요. 

포기하고 싶을 때나 환멸이 날 때도 많았죠. 온라인 공간이 폭력적이고, 혐오가 많기도 하니까요. 서로 너무 싸우고 물어뜯으니까, 틈 하나 보이면 그 틈을 파고들어서 끌어내리려고 하고요. 그래도 저의 생업이잖아요. 일을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제 어깨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달려 있어요. 제가 멈추면 그 사람들이 곤란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고, 지금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습니다(웃음). 

낮에는 대추고 만들고, 밤에는 영상 만들고. 유튜브 수익이 130만 원 됐을 때 전업으로 돌렸죠.

구속받는 걸 엄청 싫어해요. 학교도 군대도 제게는 지옥이었어요. 자유를 계속 갈망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선생님하고도 많이 싸우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도 빨리했어요. 

정말 많은 일을 했죠.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공장일, 핸드폰 장사, 옷 장사, 주방보조, 막노동, 택배 분류. 다양한 일을 하면서 밑바닥도 보고요. 그래도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적은 돈이라도 제대로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죠.

뭘 팔아야 하나, 아이템을 찾다가 우연히 ‘대추고’를 알게 됐어요. 건강식인데 흔하게 팔고 있지는 않더라고요. ‘와, 이거다. 내가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보자’ 해서 대추고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잼하고 공정과정이 비슷해요. 시장에서 대추를 사서 만들어봤더니 꽤 맛있더라고요. 사진도 찍어서 만드는 과정을 제 블로그에 올렸죠. 근데 누가 제 블로그에 오겠어요(웃음). 2주 정도 지나고 첫 주문이 들어왔어요. 두 병 사고 싶다고요. 정성스레 포장하고, 먹는 방법도 직접 써서 보내드렸죠. 근데 손님이 대추고 후기를 커뮤니티에 올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주문이 엄청 들어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첫 손님이 제 큰 누나였어요. 제가 안쓰러우니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거죠. 

대추고 판매 시작과 끝을 함께한 주걱. 이미지 출처 : 장삐쭈 제공 

나중에 큰누나가 200만 원을 선뜻 빌려줘서, 200/27짜리 사무실도 빌렸죠. 페인트칠하고, 환풍구 내고, 테이블 놓고 대추고를 본격적으로 만들면서 홍보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주변인들 따라 하고 흉내 내는 걸 잘 하다 보니까 그걸 살려보자 싶었어요. 전쟁 영화 장면에 대추고를 합성해서 더빙 영상을 만들 계획이었어요. 

다O소 마이크를 사서 녹음 상태를 체크하려고 일단 연습을 해봤죠. 애니메이션 <안녕!보노보노>의 한 장면을 병맛 더빙해서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반응이 엄청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투잡이 시작됐죠. 밤에는 영상 만들고, 낮에는 대추고 만들고. 당시 대추고 매출이 600만 원 정도였는데, 순수익은 180만 원 정도였어요. 심지어 대추고 3병 사면 택배비 무료여서 3병 팔아도 6천 원 정도 남았어요(웃음). 

유튜브 수익이 130만 원 됐을 때 전업으로 돌렸죠. 집에 새까맣게 탄 나무 주걱이 아직 있거든요. 그 주걱으로 대추고 만드는 걸 시작했고, 그 주걱으로 끝을 냈죠. 영상컨텐츠는 대추고에 비하면 가성비가 너무 좋은거예요. 온전히 제 창의력으로 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영상을 만들다가 샌드박스와 함께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오게 됐죠. 

‘남들한테 어려운 일은 나에게 쉬운 일이고, 남들한테 불가능한 일은 나한테 시간이 조금 걸리는 일이다’ 이게 제 좌우명이거든요.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고등학생 때 휴게소 화장실에서 본 문구예요. ‘나를 다른 사람들하고 같은 취급하지 마’ 이런 생각이 자신감의 원천이 됐던 것 같아요. 주변에도 ‘어차피 난 성공할 거야’ 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라도 하고 말을 해라, 관련 서적이라도 읽고 성공하겠다고 말을 해라’ 이런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죠. 그때마다 자기방어적으로 했던 말이, 나는 어차피 나는 성공할 거야!

대추고 다음에 어떤 한 단계를 더 거쳤더라도 결국 여기(크리에이터)로 왔을 것 같아요.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 것을 좋아했고, 제가 이걸 갈망했으니까요. 지금은 저의 재능을 애니메이션에 담고 있는거죠. ‘병맛 더빙’ 이라는 이름으로 고전만화 더빙을 제가 선택했기 때문에, 초심을 유지하고자 애니메이션을 쭉 하고 있지만 실사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대중문화의 끝판왕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희 콘텐츠가 영화가 되는 것, 혹은 영화 콘텐츠를 따로 제작하는 것, 영화 시나리오를 쓰거나 투자를 받아서 상을 받는 것. 이런 것들이 정말 최종 목표고요. 단기적인 목표로는 저희 콘텐츠를 맞는 가격으로 플랫폼에 판매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곳에 납품한다거나. 이런 것을 단기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잘 되어야만 했던 사람이거든요. 

한편으로 오싹한 게, 사실 저는 잘 되어야만 했던 사람이거든요. 누구도 ‘네가 잘 돼야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1남 2녀 중 막내이자 장남이에요. 큰누나는 공단에서 일하고 있고, 작은누나는 작은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두 분 모두 벌이가 큰 편은 아니에요. 코로나 때문에 작은누나는 더 힘들고요. 

그러니까 저는 땅에 바짝 붙어서 신나게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1km 상공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던 거죠. ‘내가 잘 안 됐으면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다행스러우면서도 허무감도 들고, 오싹하기도 해요.  

IMF가 터지고 어머니랑 저, 누나들 넷이서 생활하게 됐거든요. 저는 집에서 입김 나오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겨울에 집에서 양말 신고 패딩 입는 것도요. 그런데 친구 집 가보니까 겨울에도 따뜻하고 반팔티 입고 있는 걸 보고 충격받았었죠. 샤워하기 전에는 늘 녹물을 빼고, 급할 땐 녹물로 샤워하기도 하고. 엄마가 분식집 주방에서 일하시면서 세 남매를 키우셨어요. 급식비 같은 건 안 밀리게, 학교는 잘 다닐 수 있게 해주셨죠. 엄마 일이 너무 고되다 보니까, 저는 좋게 말하면 방목형으로 자랐어요.

모든 주변인이 저를 다 걱정했었죠. 과연 얘는 커서 뭐가 될까? 이렇게 살아서 뭐가 될까?(웃음) 큰누나는 제 재능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줬어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웃긴다고 해주는 사람이거든요. 엄마는 제가 백수 시절에는 잔소리 많이 했었는데요. 지금은 너무 자랑스러워하시죠. 제가 얼굴 공개를 안 했으니까, 사실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엄마랑 어디 가면 ‘장삐쭈가 내 아들인데’ 이러시면서 ‘장삐쭈, 장삐쭈’ 일부러 큰소리로 말하시거든요. 정작 엄마 세대분들은 장삐쭈를 모르시는데(웃음). 그렇게 자랑스러움을 표현하시는 것 같아요. 

큰누나한테는 일단 차 한 대 해줬고, 엄마는 하고 싶은 것 다 하시라고 했어요.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더라고요. 금붙이도 사시고, 홈쇼핑도 하시고(웃음). 코로나 때문에 작은누나도 힘들다 보니까, 작은 누나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죠. 출금문자가 쉬지 않고 와요. ‘절대 망하면 안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 시간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고향에 내려갈 때 장거리 대리기사님께 운전을 부탁하면, 저는 이동하면서 유튜브를 볼 수 있잖아요. 제게 유튜브 영상 시청은 생산적인 일이거든요. 제 인생에서 3시간이 늘어나는 거니까, 돈을 벌고 나서부터는 ‘내 시간이 많이 늘어나는구나’ 싶었어요. 날 위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지고 싶지 않아요. 이제 더 이상, 돈한테. 

돈은 ‘위선자’ 같아요. 가난할 때는 우리 가족을 징글징글하게 괴롭히던 놈이거든요. 근데 돈을 얻고 나니까 ‘옛날일 가지고 왜그래~’ 이런 느낌으로 제 옆에서 서글서글 웃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힘들긴 했지만, 가난이 제게 소박함을 줬죠. 정신적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힘을 주기도 했고요. 그래서 돈을 벌고도 씀씀이가 많이 커지지는 않더라고요. 예전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돈에 대한 복수심도 있는 것 같아요. ‘네가 우리 가족을 그렇게 힘들게 했지? 네가 뭐길래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했니? 너를 정복해줄게!’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제가 계속 돈을 이기고는 있지만, 언제 또 역습당할지 모르니까. 지고싶지 않아요. 이제 더 이상, 돈한테.  

 “너무 멋 내지 않고 담백하게 문신을 했죠. 악수할 때 제 손으로 돈이 이렇게 들어오는거죠.”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일을 하다 보면, 멘탈이 강해야 하더라고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보니까 문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저는 돈을 정복하고 싶고, 정말정말 많이 벌고 싶거든요. 그래서 ‘머니’ 라고 새기려고 했는데, 너무 속물 같기도 하고 ‘돈 좇다가 망한다, 돈이 쫓아오게 해야 한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너무 멋 내지 않고 담백하게 문신을 했죠. 악수할 때 제 손으로 돈이 이렇게 들어오는거죠. 너의 돈을 내가 뺏어가겠다(웃음). 문신을 보면 동기부여가 되고 그래요. 

돈을 버는 이유는 첫 번째로 제 능력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에요. 내 재능은 얼마짜리일까? 내가 대한민국에서 얼만큼의 입지를 쌓을 수 있을까? 그 한계치를 보고 내려오고 싶어요. 두번째는 책임감. 가족, 친구, 주변인들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도 있죠. 저의 도움으로 인해서 주변인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서 행복을 얻는 편이에요. 그래서 돈이 정말 많다면, 돈 많은 사람이란 걸 티내지 않으면서돈 때문에 힘든 주변인들을 쓱쓱- 도와주고 행복을 얻으면서 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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