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이 최저점이었던 날, 행복만큼은 최고점이었어요.
ㆍby My Money Story
빌리캣 바버샵 대표 슬랙의 머니 스토리
수입이 최저점이었던 날, 행복만큼은 최고점이었어요.
안녕하세요, 빌리캣 바버샵 서울을 운영하는 슬랙입니다. 바버샵 운영하기 전에는 모델 일을 꽤 오래 했어요. 모델 일도 정말 재미있게 했었는데,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친하게 지내는 주환이 형(아도이 밴드 보컬)한테 “바버(barber)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어요. 2012년이니까… 9년 전이네요. 그런데 말만 하고 실천으론 못 옮기던 겁쟁이였어요. 그래도 진심을 담아 말하던 제 모습이 꽤 진지해 보였나 봐요. 형도 진지하게 도와주더라고요. 아예 방을 빌려줬어요. 형이 쓰던 건반을 활용해 경대로 만들고 의자도 가져다 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바버 일을 시작했던거죠.
‘바버’라는 문화 자체가 자리가 잡히지 않은 상태였어요. ‘낯설면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이 대다수. 공부는 독학으로, 유튜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더 깊게 알아야 하는 지식은 구글링해서 찾아보고 번역기 돌리면서 습득했고요. 그 다음에 친한 친구들 머리를 만져주면서 실전 감각을 키웠습니다.
미용실 스탭 일을 1년 정도 했었거든요. 바버도 헤어 디자이너도 머리를 만져야 하는 일이니, 이쪽 일이 맞는지 안 맞는지 스스로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어요. 좋아하는 게 맞더라고요. 확인하자마자 바버 일을 시작했어요. 헤어 디자인과를 전공한 것도 도움이 됐어요. 사실 그땐 이쪽 일이 안 맞는 것 같다 생각했고, 모델과 교수님 눈에 띄어서 모델 일 시작하게 된 건데… 고생길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웃음)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이 정도 여정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해요.
대학생일 땐 부모님이 좀 지원해 주셨었는데, 모델 일하려고 서울에 올 땐 아예 끊겼어요. 짐가방 두 개랑 10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이 전부. 한 달 동안 컵라면만 먹으면서 버텼어요.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요. 다행히 모델, 바텐더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수입은 금방 해결됐어요. 바버 일 시작하면서는 시간이 많아서 테이크아웃 바버숍도 했었거든요. 손님들 계신 곳으로 직접 바이크 타고 가서 머리 잘라주겠다는 컨셉으로요.
한 달살이로 삶을 지속해 왔었던 만큼, 인생 굴곡이 꽤 있었고 수입이 특별히 높았던 적도 없었는데요. 어려울 때마다 항상 도와주는 가족과 지인분들이 계셨고 그분들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빌리캣 오픈도 가족들이 아낌없이 도와줘서 가능했거든요. 정말 열심히 해서 빚도 다 갚고, 가족들에게 잘하는 모습만 보여드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어요. 잊을 수 없는 오픈일인 2016년 9월 25일. 아이러니하게도 수입이 가장 저점이었지만 행복만큼은 가장 고점이지 않았나 싶어요.
바버가 되고 싶었던 주목적이 돈은 아니었어요. 신선하고 새로운 직업, 제게 큰 임팩트를 남긴 직업이기 때문이었어요.
헤어 디자이너와 바버의 차이점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헤어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티브한 헤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에 가깝다면, 바버는 좀 더 원류, 고전에 가까운 스타일을 유지하는 사람에 가깝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모든 바버숍이 클래식만 하는건 아닌데, 저는 처음부터 클래식만 하고 있어요. 주변에는 ‘클래식한 남자 머리 하는 사람이다.’라고 많이 소개했었어요.
바버 일을 시작하게 된 주목적이 돈은 아니었어요. 그냥 되게 하고 싶게 만드는 직업이었어요. 거칠면서도 자유분방한 문화 때문인 것 같아요. 손님들 머리 끝내고 그냥 “안녕히 가세요~” 하고 보내는 게 아니라, 모여서 수다도 떨고, 술도 마시고. 기본적인 운영 룰은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유분방한 문화가 깔려있는거죠. 클래식을 하는데도 세련된 머리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는 것도 한몫했고요. 생각해보니 바버의 모든 것이 제게 큰 임팩트를 줬던 것 같네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말해볼까요. 고양이가 올드스쿨 이미지에 많이 쓰이거든요. 잘 어울리는 메타포 같아서 ‘빌리캣’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서울을 대표하는 바버숍이 되고 싶어서 <빌리캣바버숍 서울>. ‘슬랙’은 15~16년 전쯤에 운영한 ‘슬랙킹’이라는 바버숍 이름에서 가져왔어요. 그리고 Slack 영단어 뜻이 나무늘보같이 느슨한, 한산한, 되는대로, 완만하게 이런 거거든요. 제 성격과 잘 맞는다 생각해서 붙인 이름이에요. 막상 일할 땐 되게 열정적으로 하는데. (웃음)
가장 기쁠 때는 머리가 너무 잘 될 때, 가장 슬플 때는 머리가 정말 안 될 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머리 스타일이 있는데요. 그 스타일을 꼭 해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어요. 고객님들은 잘 모르시죠.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미세한 차이가 큰 결과물을 가져오거든요. 저 혼자 되게 씨름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디테일을 굉장히 좋아해요. 안 보이는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스타일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바버숍 시작할 땐 우리나라에 다섯 개도 안 됐어요. 지금은 서울에만 100개가 넘어요. 수요가 아주 많지는 않아요. 아직 언더 문화인 만큼 많은 분이 찾아주시지는 않는 것 같아요. 더 많은 분이 바버숍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분들은 바버 문화가 잠깐 유행이 되고 끝날 것이라고도 하시는데, 저는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바버들도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 생각하고요. 바버숍 문화가 더 자연스러워지는 때요? 10년 정도 생각해봅니다.
한 달 평균 손님은 400분 정도. 단골 비중이 80% 예요.
주 수입원은 샵에서 나오는 매출이에요. 한 달 평균 손님은 400분 정도. 단골 비중이 80%, 나머지 20%는 지인 소개로 오시거나 검색이나 유튜브 보고 오시는 신규 고객분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자영업자분이 그렇듯 수입이 많이 줄었어요.
샵 매출 외 수입은 교육인데요. 바버의 실무적인 영역에 대해 교육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어요. 회당 세 시간씩 총 4회. 아무래도 우리나라엔 바버에 대한 정보도 적고, 교육 과정도 잘 없다 보니 일부러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유튜브 채널도 교육의 일환이라 볼 수 있겠네요. 유튜브는 가게 홍보를 위한 목적도 있어요. 바버숍이 너무 많아서 어딜 선택해야 할지 모르시는 분들께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운영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머리 하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다양한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리면, 그걸 보고 저희 바버샵에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이 생기는 거죠.
바버로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는 거예요. 배움에서는 나이가 전혀 상관없는 것 같아요. 자존심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쓸데없을 때도 있거든요. 특히 배움에서 그래요. 바버에게 필요한 기술적인 역량은 늘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요. 그래야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니까. 1920~60년대 머리를 하면서도 2021년에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게. 옛날의 그 클래식함은 유지하면서 지금 봐도 세련되게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려면 쉬지 않고 배우고 익혀야 해요. 앞으로도 쭉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데 까지.
바버를 꿈꾸는 후배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하나 물어보시는데요. 일단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비달 사순같이 바버 역사에 내 이름 석 자를 새기고 싶다.’라는 꿈을 가지고 시작했거든요. 이뤄지든 안 이뤄지든 꿈은 클수록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을 시작하든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모두에게 맞는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전 그런 방법이 잘 맞았어요. 이왕 시작한 일이면 제일 잘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하고요. 저도 바버 일을 제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해왔어요. 그런 면에서 바버는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자유롭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고. 외적인 것만큼 내적인 것도 중요하죠. 마인드가 멋진 친구들이 와서 바버 신을 더욱 빛내줬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고심한 후 결정한 소비는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한 거니까.
수입이 좋을 땐 하고 싶은 것들은 웬만하면 다 할 수 있는 정도예요. 멋진 수트를 맞출 때 부담이 좀 있지만 리스크 있는 건 아닌 정도? 기본적으로 손님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고, 제 외모를 보고 찾아와주시는 고객들도 많다 보니, 외적인 부분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 수입과도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버는 것 이상의 지출은 절대 하지 않아요. 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커트라인은 지키되 살짝 부담을 느끼는 정도의 소비를 합니다.
단적인 예로 수트. 옷을 많이 사지는 않아요. 그런데 한 번 살 때 제대로 된 걸 사고 오랫동안 사지 않아요. 대물림까지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아예 정말 오래 입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예전엔 그렇게 못 했어요. 10만 원짜리 옷을 하나 사기보다 10만 원어치 옷 여러 개를 사는 타입이었죠. 그런데 하나 살 때 좋은 제품을 사는 게 훨씬 좋더라고요. 살 땐 비싸다 생각할 수 있는데, 잘 보관하면서 입은 후에 물려준다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에요.”
시력이 좋은데도 안경을 좋아해서 사 모으는 편이에요. 원래는 쌍꺼풀이 없었어요. 갑자기 생기게 되면서 거울을 볼 때마다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웃음) 눈을 가리려는 목적으로 안경을 자주 쓰다 보니, 자연스레 안경에 빠지게 됐어요. 클래식한 제품을 가장 좋아해요. 빈티지를 살 수 있으면 가장 좋고요. 원판이라서. 빈티지를 못 사면, 그 느낌을 가장 잘 담아내는 브랜드를 선택해요. 트렌디하거나 하이엔드 브랜드보다는 클래식한 느낌의 브랜드를 선호합니다.
돈 쓸 때 가장 고민하는 카테고리는 매일 사용하는 제품들이에요. 빗, 가위, 클리퍼 같은 것들. 유튜브에서 제품 리뷰도 하는데 협찬을 안 받아요. 제가 직접 산 것만 소개합니다. 내돈내산이라 하죠. 좋은 제품을 잘 소개해드리려면 제품 정보를 다방면으로 수집해야 해요.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고민해보고,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 판단될 때 소비를 결정해요. 사실 빗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거든요. 그래도 많이 고민해요. 자주 쓰는 물건이니까. 컨버스 운동화 하나 살 때도 2주를 고민했어요. 기본적으로 소비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타입이에요. 다행히 엄청 고민한 후 결정한 소비는 대체로 만족스럽던데요. 선택한 것에 후회도 안 하게 되고요**.** 충분히 고심한 후 판단을 내리면 실패한 소비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한 거니까.
지금 당장 돈 벌 수 있는 일보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던 것 같아요.
돈 없다는 소리 듣는 게 싫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부분 때문에 노이로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특이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지금 당장 돈 벌 수 있는 일보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던 것 같아요. 전 부자가 될 생각도 없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요. 대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해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그에 맞는 돈을 버는 것, 그 돈으로 남부끄럽지 않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돈 돈 돈 하는 건 싫지만,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돈에 좌지우지되는 기분이 싫었어요.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면 돈은 어느 정도 따라온다 생각해요.
돈을 버는 이유는,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돈)으로 행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소비가 될 수도 있고 저축이 될 수도 있겠죠. 자식이 가지고 싶어하는 장난감 있으면 사주고,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 보면서 나도 흐뭇해지고. 열심히 저축하면 통장 잔고가 늘어날 테니 잔액을 보면서 또 흐뭇해지고.
돈보다 소중한 건… 아이가 자라나는 시간. 처음에 아이가 태어났을 땐 당황스러웠어요. 매일같이 쑥쑥 크는 게 느껴지거든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커 있더라고요.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두 눈과 마음속에 꽉꽉 눌러 담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모든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데 말이죠. 가끔은 아이가 커가는걸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엔 늙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는걸 보면서 제 시간도 흐르는걸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아이가 커가는 만큼 나도 늙어가는구나- 싶어서.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돈은 항상 제 곁에 붙어있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돈에 대한 감정은 애증. 어린 시절과 2~30대엔 돈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많았어서, 떼어버리고 싶은 꼬리표 같았어요. 결혼 후엔 안정적인 가정과 삶을 함께 만들어온 동반자 덕분에 다행히도 돈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돈이 있었기에 빌리캣도 오픈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더 시간이 흐른 후엔 돈이 ‘애증’이 아닌 ‘애정’이 됐으면 좋겠어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돈에 있어서도 분명 제 차례가 올거라 생각합니다. 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중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