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도 삼박자가 맞아야 해요

by My Money Story

은퇴 6년 차,김석환 님의 마이 머니 스토리

정년퇴직할 때까지 남은 입사 동기는 2명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김석환입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명함을 주거나 어느 회사에 다니는 누구라고 소개하면 되었는데, 은퇴 후 자기소개를 하려니 약간 망설여집니다. 현재 저와 제일 가까운 키워드를 고른다면 ‘취미 부자’가 알맞겠네요. 현재는 봉사직으로 아파트 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저는 울산 KG케미칼에서 34년 근무하고 정년퇴직했습니다. 제대 후 3개월 만에 취업해 1979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근무했죠. 화학 비료, 디젤용 차량 요소수, 폐수처리 약품 등의 생산 책임자였고, 대학에서 공업 화학을 전공해서 자연스럽게 이 길로 오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드물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어떻게 몇십 년 간 근무할 수 있었는지 묻곤 합니다. 지금은 여러 직장을 옮기며 몸값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제가 일할 당시에는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게 좋다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개개인의 능력보다 근속연수에 따라 월급이 올랐고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이야기지요. 

장기근속에 비법은 없고, 다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회사 생활하며 어려운 시절도 겪었지요. 더 좋은 조건으로 직장을 옮기는 사람을 보면 비교를 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늘 가족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 입사 동기가 20명 정도 됐는데, 퇴직할 때 보니까 한 2명 정도 남아있더라고요. 

경제적, 정신적, 체력적인 대비가 필요합니다

저도 젊을 때는 노후 대비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50세가 넘어서야 자각을 하게 되었죠. 그 시기가 되면 주변에 노후를 준비하지 못해 어려워지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거든요. 또 정년퇴직 이후의 삶도 길지 않습니까? 20~30년 정도의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이 실제로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경제적 대비가 필요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국민연금을 꾸준히 들었고, 돈 관리는 아내가 했기에 저는 퇴직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건강하다면 정년 없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2005년 도배 기능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종종 지인들이나 아파트에 도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해주곤 합니다. 

2010년에는 지게차 운전 기능사를 취득했습니다.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라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를 활용했습니다. 80% 이상 출석하면 학원비를 일정 부분 돌려받을 수 있었죠. 학원에 가면 이직이나 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퇴직 후 다시 경제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두 개의 국가기술 자격증이 있다는 점이 안심됩니다.

두 번째로 정신적인 대비를 했습니다. 정년퇴직 후 공허하거나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몇십 년 동안 반복하던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게 되니 무엇을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도 있지요. 이를 위해 취미를 여러 개 만들어두었어요. 

은퇴 후 처음으로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5년 차인데 아직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웃음) 나이가 들어 악기를 배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손도 훈련해야 하고, 노래도 해야 하고, 악보도 봐야 하고…. ‘나는 소질이 없나 보다’ 하고 포기하려는데 선생님이 그 고비를 넘기면 한 곡을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믿고 계속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천히 늘더라고요. 뿌듯함도 생기고요.

유년 시절에는 산골에 살아서 책을 많이 접하지 못했어요. 지식이 부족함을 자주 느꼈죠. 그래서 요즘은 도서관에 자주 가서 책을 읽습니다. 깊이 있는 지식을 쌓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면 자신에게도 이롭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즐거워지니까요. 

저는 몰두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지 은퇴 후의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냈습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집중하면 잡념이 없어집니다. 특히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배우는 게 정신 건강에 참 좋은 것 같아요. 

경제적, 정신적인 대비를 받쳐주는 것은 체력입니다. 현재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니 이 모든 일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지요. 코로나 이전에는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에 자주 갔고, 요즘은 집 근처 도림천을 매일 걷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지속하려면 경제적, 정신적, 체력적인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것이지요.

은퇴 후 서울에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은퇴 후 울산에서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아들과 딸이 모두 서울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는 아내의 의견으로 오게 됐지요. 저는 고향이 김천인데, 직장 때문에 울산에서 40년 가까이 살았으니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지내면 ‘삶이 각박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은 늘 북적일 것 같고, 시간에 쫓겨야 할 것 같고, 사람들은 깍쟁이 같을 것 같고. (웃음) 그런데 은퇴 후 와보니 참 좋더라고요. 물론 집값이나 물가는 높지만, 생활이 편리하고 문화생활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죠. 특히 지방 도시보다는 시니어를 위한 복지관이나 평생학습관 등 공공시설이 잘 되어 있고요. 의지만 있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50세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퇴직 후 일자리와 노후 준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 50플러스센터처럼요.

우리는 은퇴 후 귀농하는 사례를 자주 접하죠. 각자 가치관과 경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도시가 내가 원하는 삶에 적합할 것인지 고민해본다면 좋지 않을까요? 무언가 배우고 싶고, 새로운 걸 접하고 싶다면 서울에서 보내는 은퇴 후의 삶도 괜찮다고 봅니다.

평생 현역이라는 마음으로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은퇴했다고 하면 집에만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사회에서는 노인 대우를 받지요. 하지만 저는 봉사활동이든, 소소한 경제 활동이든, 어떤 방식의 노동이든 제공하는 한 사회에 참여하는 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는 그저 평범하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거창한 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부모도 모시고, 자녀도 돌봐야 하는 끼인 세대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물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도움을 받을 일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꾸려서 독립된 삶을 사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조경 공부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사는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부모님이 살던 김천 시골집에 내려가고 싶거든요. 땅이 한 300평 정도 되는데, 그곳에 제 나름대로 정원을 가꿔보고 싶어요. 근처에 관광지로 지정된 숲이 있어서 숲해설가를 해도 좋을 것 같고요. 근처 방송통신대학이나 평생학습관에서 과정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제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들은, 은퇴라는 단어에 집착하기보다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래에 도전할 수 있으니까요.

Interview 이현아 Edit 이현아 이지영 Photo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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