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나의 직업으로만 먹고 살 수 있나요?
ㆍby My Money Story
연극배우 정현준의 머니 스토리
저는 직업이 많아요.
극단 실한의 대표이자 연출자, 배우이고, 예술 고등학교의 교사입니다. 가끔 대학교에 출강하기도 하고, 기업의 신입사원 교육을 맡기도 하죠. 어느 때는 시민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기도 하고요. 대학 입시철에는 제 생활이 제자들 입시에 온전히 맞춰져요. 새벽 4시까지 레슨을 하기도 하고요.
당장 제 주변만 봐도 요즘은 직업 하나로 생존하기 힘든 시대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전문직이면 다 해결될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말이죠.
본업이요? 꼭 돈 많이 버는 직업일 필요는 없죠.
극단 실한에 소속된 단원들은 대부분 연극 이외의 다른 부업을 가지고 있어요. 연기 레슨이나 대학 강의로 돈을 벌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단원들도 있습니다. 다른 극단을 보더라도 대리운전 기사, 택배 기사처럼 다양한 부업을 가진 배우들이 많아요. 박스 공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저희 극단은 주로 정부 단체나 기업들과 연극 교육 프로그램 같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익을 내는 편인데요. 이런 사업을 할 때마다 단원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꼬박꼬박 참여하는 단원들은 일 년에 1,200~1,300만 원 정도를 받아 가기도 해요. 다른 직업이 있는데 이 정도 추가 수입이면 괜찮지 않나요?
물론 수입의 크기로만 보면 연극 말고 다른 직업을 본업으로 생각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단원들은 연극을 본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연극을 부업으로 생각하면 삶이 너무 괴로워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난 왜 이런 돈도 안되는 부업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연극으로 돈을 더 벌고 싶었어요.
2014년에 친한 친구들과 극단을 설립하고 작은 연습실을 하나 마련했어요. 연습도 하고, 입시생들을 가르치는 레슨 장소로도 활용해보려고요. 스무 살 때부터 입시 레슨으로 돈을 벌었거든요. 이제 남의 공간을 빌려 쓰지 않고, 내 연습실에서 입시 준비생들을 대거 받아서 돈을 벌고 싶었던 거죠.
예전보다 수입은 나아졌어요. 문제는… 연습실이 입시 준비생들로만 가득 차버린 상황이 된 거예요. 정작 우리는 제대로 연극 연습을 할 수가 없게 됐고요. 공간은 누가 그 안에 머무는지에 따라 성격이 바뀌잖아요.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더라고요.
레슨을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어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조합을 만들었어요. 레슨을 좀 줄이고, 정식으로 단원을 모아서 각자 한 달에 10만 원씩 모으자고 한거죠.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공연을 올리자고. 그렇게 탄생한 공연이 2017년의 ‘레라미 프로젝트’예요.
‘아, 나는 평범한 사람들 축에도 못 끼는구나!’
신용등급이 낮아서 결혼 전까지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가 없었어요. 금융 거래 실적도 낮고 직업 특성상 수입이 불규칙하니까요.
마트에서 장 볼 때나 전자제품을 살 때도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으면 엄청 할인 되잖아요. 실제로 직원들이 신용카드 발급을 적극 권유하기도 하고요. 몇 번 카드 신청을 한 적이 있는데 발급 신청서에 제 이름을 넣고 조회를 할 때마다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나오는 거에요. 제 직업 때문에 신용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되는 것 같았어요. 평범한 사람들 축에 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고요.
금융 회사에서 정해 놓은 조건이나 기준에 제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는 해요. 그런데 왜 금융 회사가 이런 기준과 시스템을 만들어서 저를 평가하는 것인지가 못마땅 했던 거죠. 신용카드로 사용하게 될 돈을 못 갚을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신용이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판단 받을 기회도 없었는데, 어느새 판단이 되어버린 거죠.
돈이 대화 주제마저 결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 중에 직장인도 있고, 저처럼 연극을 하는 예술 계통의 친구들도 있는데요. 이 둘은 대화를 할 때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직장인 친구들은 항상 돈 이야기를 해요. 저도 돈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조차 돈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냥 추억 이야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한 친구는 잘나가는 연예인이라 최근에 돈을 많이 벌었는데요. 수입이 많은데도 만날 때마다 돈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직도 자기가 버는 돈의 액수가 적다고 느끼는 것 같았어요. 또 한 친구는 만날 때마다 연봉이 얼마이고 아쉬운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사실 저는 친구의 연봉보다는 그 친구가 요즘 뭐하면서 사는지가 더 궁금한데 말이죠. 돈이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마저 결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이 필요해요.
가족의 건강, 웃음 그리고 선물을 기다리는 아들의 설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더라고요. 아이에게 선물을 사줬을 때 아이가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 가족들과 보라카이 여행 갔을 때도 생각했어요. 바닷가에 파도 소리가 철썩철썩 들리고, 아이는 자고 있고, 아내와 저는 와인 한 잔 마시면서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이것들 모두 돈 없으면 못 하는 거잖아요.
욕구 해결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식욕, 수면욕은 물론 다른 욕구들까지요. 특히 스트레스 받을 때는 맛있는거 먹고 싶잖아요.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려면 라면을 끓여 먹는 것보다는 아구찜을 시켜 먹는게 나은거죠. 배움에 대한 열망도 늘 지니고 있는데요. 뭔가 배우려고 할 때도 돈이 필요해요. 장비도 사야 하고, 또는 레슨비도 내야 하고요.
제 돈은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것 같아요.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나서부터 금융이 너무 편해졌어요. 그전까지는 참 귀찮았죠. 송금 한 번 하려면 전화해야 하고, 보안카드를 확인하고… 그런데 더 편한 금융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관심이 잘 안 가요. 조금 더 편해진거지 완전히 편해진 건 아니더라고요. 금융과 담 쌓은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충분히 편해요. 이제 그만 편해져도 될 것 같아요.
적금이나 보험에 돈을 넣고 있고, 집 전세금도 있지만 제 수중에 이 돈이 있는지 잘 못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그냥 숫자에 불과한 거잖아요. 금액이 쌓이면서 숫자가 올라가고 있지만 그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내 돈이 어딘가에 잠들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가 않으니까. ‘내 금융생활은 안녕하진 않구나, 그냥 숙면을 취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보통 금융생활을 한다고 할 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수익도 남겨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금융생활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새로운 금융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금융이라 생각해요. 금융생활 자체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일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