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선수에게는 자발적인 은퇴가 필요합니다

by My Money Story

QMIT대표 이상기 님의 마이 머니 스토리

은퇴 하는 날, 팬들 앞에서 사업 발표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QMIT(Questions Meet Information Technology)대표 이상기입니다. 선수와 지도자가 데이터를 통해 자신과 팀을 관리하고 부상 방지를 돕는 앱 플코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소년 선수로 10년, ​​수원 삼성, 성남 일화(현 성남FC), 강원FC, 서울 이랜드, 상주 상무(현 김천 상무), 수원FC 등에서 프로 선수로 8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만 30세의 나이로 은퇴했죠. 은퇴식을 크게 열어서 팬들이 많이 와주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셔서 그 자리에서 사업 발표를 하게 됐어요. 원래 눈물바다가 되어야 하는 자리에서 사업 발표를 하고 있으니 어떤 팬은 놀라고, 다른 팬은 “역시 이상기답다”며 응원해주셨어요.

이미지=QMIT제공

프로 생활을 하면서 ‘멋지게 그만두고 싶다’라는 생각을 꾸준히 했습니다. 일반 직장인보다 높은 연봉을 받긴 하지만 선수들은 모두 계약직이거든요. 매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을 견뎌야 해요. 부담감이 크다 보니 퍼포먼스에도 영향을 받고요. 물론 2년, 3년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계약 기간이 길다고 해도 다른 선수가 들어오면 비주전으로 밀릴 수도 있고, 팀에서 나가야 할 수도 있죠. 재계약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니 내 실력을 떠나서 타의에 의해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목표를 자발적 은퇴로 잡았습니다.

제가 은퇴식 내내 눈물도 흘리지 않고 즐거워하니 한 기자분이 슬프지 않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은퇴가 왜 슬퍼야 하죠?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축하할 일이죠.” 은퇴는 긍정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부정’이 아니니까요. 모두가 “수고했고, 푹 쉬어”라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은퇴식에서 저는 앞으로 해나갈 일을 생각했어요. 신나고 즐거웠죠. 

혹시, 살면서 축구 선수 본 적 있으세요? 

선수 시절 저는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갖고 싶었어요. 스스로 그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시간을 가리지 않고 훈련하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축구는 기본적으로 팀 스포츠이고, 경기 환경이나 트레이닝 방식, 동료의 컨디션 등 모든 것이 복합적이라 문제가 생겨도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었어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거나 경기력이 저하되면 정말 답답했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고 싶고, 성취감과 동기 부여를 돌아오길 바라잖아요. 저는 축구를 하며 이 구조를 자주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부는 달랐어요. 제가 노력한 만큼 배우게 되고, 결과가 고스란히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치며 축구를 하며 겪었던 갈증이 일정 부분 해소됐어요. 스포츠와 연계해 생리학, 심리학, 역학, 인문학, 과학 등을 공부하면서 스포츠에도 이를 접목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생각이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당시에는 선수 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 시작했지만요. 

은퇴 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던 건 공부와 인적 네트워크였습니다. 은퇴 전에도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나 공부하는 학생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프로 축구선수인데,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고,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가게 되었나요?” 하면서요. 학회 참여든, 대학원 진학이든 궁금한 게 생겨도 제게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쳤죠. 그러다 보니 원하는 일과 차츰 가까워졌어요. 그 과정에서 스포츠 멘탈코치, 스포츠 심리상담사, 은퇴 진로 지원 강사 자격증도 땄고요. 

선수들은 늘 선수들만 만나요. 오랜만에 외박을 나오거나 휴가를 가도요. 네트워크나 기회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죠. 종종 주변에 물어봐요. “혹시 살면서 축구선수 본 적 있으세요?” 다들 만나본 적 없다고 해요. 요즘도 제가 회사 대표로 미팅을 가거나 IR을 할 때, 모두 의아해하고 신기해하면서 또 대단하게 보거든요.  저는 은퇴를 앞둔 선수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속한 스포츠의 세계를 벗어나서 다양한 사람을 겪어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도 선수였기에 자신이 속한 스포츠 밖의 세계가 익숙하지 않고, 두려운 마음을 이해해요. 그런데 그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창업 초기 자금 규모는 3~4억이었어요

선수 시절 돈을 차곡차곡 모았어요. 은퇴하면 많은 돈을 벌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에 도전할 때 적금이 발돋움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창업 초기 자금 규모는 3~4억이었어요. 제 적금과 엔젤 투자, 정부 지원금, 은퇴 지원금을 영혼까지 끌어모았죠.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일반 직장인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창업을 결심한 후로는 밥만 먹고 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현재는 스무 명이 넘는 직원들이 QMIT와 함께 하고 있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팀의 선수였다가 어떻게 보면 지금은 팀을 이끄는 감독이 된 거죠. 선수 때랑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어요. 회사를 이끌 때도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지만, 필드 플레이어였을 때처럼 모든 일을 직접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선수 시절 골키퍼였거든요. 골키퍼는 골을 막는 역할도 하지만 가장 끝에서 경기 상황을 바라보며 선수들에게 지시도 하고, 독려도 해야 합니다. 지금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플코는 2021년 11월 기준 215개 팀에서 사용하고 있고, 데이터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팀의 부상률이 절반 가까이 줄고 있어요. 선수들이 스스로 상태를 매일 관찰하고 기록하게 되거든요.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요. 예전에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 훈련을 따르기 바빠 본인을 파악하는 일이 어려웠거든요. 또 선수들의 데이터가 지도자와 연결되어 있으니 트레이닝과 전략이 더 세심해지고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 선수나 지도자에게 후기를 받는데요.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어떤 선수가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줄 때, 원래 인지하지 못했을 부상이나 능력 저하를 알게 됐다고 할 때, 이런 문화를 선도해줘서 고맙다고 할 때 찌릿찌릿해요. 최근에 좋은 성과 중 하나는 플코를 사용하는 팀 중 하나 결승전에 진출했는데, 그 팀에 부상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거예요. 보통 결승전까지 가면 부상자가 많아지거든요.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날두도, 메시도, 모두 은퇴하기 마련이에요

한 해 4만 명 정도의 스포츠 선수가 은퇴해요. 2019년 은퇴 운동선수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23세에 은퇴를 하고, 이후 10명 중 4명 정도가 무직 상태를 겪습니다. 비정규직 비율도 높고, 연봉도 열악하고요. 조사에 집계되지 않는 현실은 더 심각할 거예요. 

또한 비자발적인 은퇴가 대다수를 차지하죠. 부상을 당하거나, 재활에 실패하거나, 계약 기간이 만료되거나, 새로운 팀을 찾지 못했거나. 그러다 보니 사회로 나오기 부끄러워하는 감정도 없지 않은 듯해요.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선수들이 다음에 올 삶을 준비하고 설계해서, 원하는 시점에 자발적인 은퇴를 하길 바랍니다. 은퇴 이후의 삶을 재사회화라고 본다면, 떠밀려 나오는 사람과 스스로 선택해서 나오는 사람에게는 분명 차이가 있거든요. 

현재 은퇴 선수를 위한 프로그램은 상당히 열악하거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홍보가 되지 않아 선수들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잘 모르기도 하고요. 최근 프로축구연맹에서 은퇴 진로 교육을 하고 있는데요. 단체, 기관, 협회가 힘을 모아 탄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선수들의 은퇴 후 진로가 굉장히 다양해질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종목에서 은퇴한 선수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에요. 실패한 게 아니라 결실을 맺어서 떨어진 거죠. 이 열매가 썩지 않고 재상품화하거나 다른 나무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 순환이 가능해야만 스포츠 산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은퇴를 앞둔 스포츠 선수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모든 선수 생활에는 끝이 있거든요. 호날두도, 메시도 모두 은퇴하기 마련입니다. 선수 시절의 커리어 만큼 은퇴 후의 커리어도 돌봐야 해요. 저 또한 18년 동안 축구를 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에 비하면 그 시간은 길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앞으로 지도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진로 케이스를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삶에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다른 선수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예요. 

Interview 이현아 Edit 이현아 이지영 Photo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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