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서로 비슷하게 벌고 싶어요
ㆍby My Money Story
학창 시절, 책상 위에 써둔 목표는 ‘연봉 6,000’ 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안무가 모니카입니다. 댄스 크루 프라우드먼의 리더로 지금은 춤을 추지만 예전에는 디자이너를 꿈꾸며 패션회사에서 근무했었어요.
저는 패션회사에 취업하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언제부터 제가 그림을 배우고 있었고, 고등학교 내내 미술반이기도 했고요. 입시미술을 포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미술 쪽으로 가지 않으면 제 학창 시절이 다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목표를 방에 써두잖아요. 제 패턴 책상 위에는 ‘연봉 6,000’ 이렇게 쓰여있었어요. 막연하게 디자이너가 될 거야, 이게 아니라 ‘연봉 6천 정도되는 디자인실의 디자이너가 돼야지.’ 이렇게 목표를 세우면 가야 할 회사의 네임 밸류가 나오잖아요. 어머니가 구체적이고 뚜렷한 목표를 만드는 걸 교육을 많이 시키기도 하셨고요. 딸이 당신이 걸어오신 길의 반대로 걷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항상 제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길 원하셨던 것 같아요. 근데 저희 어머니 눈에는 사회적인 인정이 숫자로 보였던거죠. 연봉이 얼마냐, 직급이 뭐냐 이런 것들이요.
대기업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궁금하더라고요. 다들 이렇게 좋은 건물에서 일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일할까? 디자인실 사수부터 대리님, 팀장님, 부장님까지 돌아가면서 질문을 드렸죠. ‘꿈이 어떻게 되세요?’ 제가 어려서 귀엽게 봐주셨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당돌했던 것 같아요. 부장님은 언젠가 본인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꿈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 위치에서부터 부장까지 오는 데 14년이 걸렸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층을 돌보는 부장이 되는데 14년이 걸린다면, 이 건물 꼭대기까지 가는 건 나는 평생을 해도 못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에는 내가 패션을 좋아하지 않는걸까? 이 고민을 깊게 했던 것 같아요.
철이 없던 걸 수도 있는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디자이너의 능력과 기량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도 알아버렸고요. 예술가가 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배웠고, 디자인실에 왔는데 막상 실제로 하는 일들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그 당시에는요. 5천 원으로 만들었으면 1만 원에 팔아야지 왜 10만 원에 팔아? 이런 게 부조리하다고 느낀 거예요. 마케팅을 배운 적도 없고 잘 몰랐으니까요. 그때는 패션이 솔직하지 않다고 느껴서 의상을 안 하게 됐죠.
첫 레슨 잡기까지 딱 1년이 걸렸어요
나 이제 뭐 하지? 싶어서 일단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2D 그래픽 작업, 쇼핑몰에 올라가는 사진 작업도 하고요. 디자인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으면 다 열어놓고 일을 했었어요. 알바 하면서 취미생활로 다니던 춤 연습실을 매일매일 제대로 가기 시작했어요. 회사 다닐때도 금, 토, 일요일은 춤을 췄었거든요.
처음에는 춤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춤밖에 없다’ 이런 마음으로 춤에 기댔었죠. 그런데 어느 날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도 레슨 해봐.’ 내가 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레슨을 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1년 동안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첫 레슨 잡기까지 딱 1년이 걸리더라고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첫 레슨을 딱 잡고 울었어요. 다이어트 레슨이었는데, 주변 댄서들이 와아- 하면서 박수를 쳐줬거든요.
레슨으로만 돈을 벌게 됐을 때는 8-9시간 일해서 200만 원을 벌었어요. 그때 보증금 500에 월세 50 원룸에 살고 있었거든요. 생활비가 적어도 150만 원은 필요했었어요. 근데 수입이 200만 원이니까 저축을 못하잖아요. 6개월에서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해외 댄스 배틀 다녀오고, 이걸 몇 년 동안 반복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월에 4-500만 원 정도 벌 때는 잠을 거의 못 잤죠. 낮에는 방송 백업하고, 안무시안짜고 새벽에는 레슨하고요. 건강이 나빠졌는데 돈은 많이 버는거죠. 그렇게 4-500만 원 버는 걸 모아서 학원을 차린 거예요. 제 인생 계획에는 없었는데 그렇게 됐더라고요.
학원을 제대로 운영해 보고 싶어서 방통대 경영 수업도 들었어요. 스트릿 우먼 파이터 나오기 전에 한 2년 정도 들었는데 아직 졸업을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거 같아요. 세무회계 너무 어려워요. 근데 나름 열심히 공부하면서 그제서야 이전에 경험했던 회사 생활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기업도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졌어요. 오히려 경영학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직업을 존중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제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근데 경영학 배우면서 정말 이 세상에는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부자가 될 필요는 없는데 서로 비슷하게 벌 수 있게 노력하자
밥 혼자 잘 안 먹는 사람 있잖아요. 제가 그렇거든요. 혼자 있으면 굶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때우는데 사람들이랑 있으면 그렇게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맛집 찾아다니는 성격인 거예요. 저만 좋자고 하는 일에 별로 흥미가 없어요.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개인전이었으면 그렇게까지 안했을 거예요. 결국에는 팀과 함께 하니까 승부욕이 더 올랐었죠.
제게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한 말 중에 사무치는 말이 있어요. 춤추면 먹고 살 수가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이유는 되게 단순했어요. 소위 말하는 관종이 아니었거든요. 유명해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누구보다 춤을 열심히 추는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댄스씬이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왜 춤으로 먹고 살 수 없게 된 거지? 왜 화려한 사람만 돈을 벌게 됐을까? 여기에 내가 일조하고 있나? 저는 친구 사귀는 것도 좋아하고, 잘 놀고, 호기심 많고, 인싸였거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면 다음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타입이었어요. 근데 안 그런 친구들도 있는 거죠. 성격이 모두 저 같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놓친 동생들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자기 브랜딩 하는 걸 어려워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OFD(Only Forward)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죠. 매달 출연을 원하는 안무가 15명을 연습실로 불러서 춤추고 영상 찍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출연 기회가 열려있던 거죠. 내향적인 친구들은 비디오그래퍼를 불러서 자기 춤을 담는 것도 어려워하거든요. 이런 걸 대행해 주는 역할을 OFD가 했던 거죠. 덕분에 춤을 잘 추는 친구들도 발견하게 되고요. 정말 실력이 좋은 친구들은 행사 기획할 때 솔로쇼를 권유하거나, 연습실에서 수업을 오픈해 주기도 하고요. 꾸준히 댄스 영상을 올리다 보니까, 영상 몇 개가 유명해지면서 해외에서도 OFD 채널을 알아줬어요. ODF 채널에 출연했던 친구들 중에 유명한 안무가가 된 분들도 많고요. 점차 유명해지니까 ‘OFD채널을 오프라인화 해보자’ 이게 지금 차린 학원의 출발이었던거죠.
학원을 열 때도 모토가 ‘같이 벌어서 같이 쓰자’ 였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같이 많이 벌어야지, 혼자 많이 버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 같이 여유가 있어야 재밌잖아요 삶이. 제가 효원이(립제이)한테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부자가 될 필요는 없는데 항상 서로 비슷하게 벌 수 있게 노력하자’ 정확히는 무언가를 공유하는 데 있어서 아무도 소외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댄서들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하는데 진짜 올라갔는지, 이런 것도 계속 체크해요. 댄서들에게 물어보거든요. ‘요즘 페이 얼마 받아?’
제 춤도 많이 변했고, 변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서른여섯까지 그냥 차근차근 살아왔는데, 서른일곱에 너무 많은 게 바뀌었어요. 그래서 매일 생각 정리를 해요. 느끼는 게 매일매일 달라서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이 세상에 진짜 1등은 없다’라는 걸 체감해요. 어릴 때는 이 사람 춤은 꼭 배워야지, 배우지 말아야지 이런 걸 나눠서 생각했는데요.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안들어요. 정말 취향 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대중분들이 저를 평가했잖아요. 그 시간을 겪고 나니까 자기 객관화가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저를 겸손하게 만들어줬죠. 많은 아티스트 분들이 같은 고민을 할 거예요. 내가 선택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제 춤도 많이 변했고, 변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이전에는 신체적 기능과 체력을 높여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뜨거웠다면, 이제는 더 부드러워지고 몸의 밸런스나 라인들을 많이 살리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호흡도 100m달리기하듯이 했다면, 이제는 잔잔한 호흡으로. 대신에 디테일을 더 살리려고 연구하죠.
어릴 때의 촉박함이 싫었거든요.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어학연수를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거기 가면 제가 춤 연습을 못하잖아요. 도태될 것 같아서 어학연수 가기 싫다고까지 했었어요. 결국 방학 동안 너무 즐겁게 다녀왔는데(웃음) 그 정도로 조급함이 있었단 거죠.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고, 제 게으름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과거에 비해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죠.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끼면 그 고마움을 바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미안하면 또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요. 그런 여유를 주는 게 경제적인 풍요로움이라고 생각해요.
한계를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좋겠어요
비욘세 음악 중에 Bigger라는 곡이 있어요. 영화 <라이언킹> OST 중 하나인데요. 우주의 작은 먼지가 아니라 너는 더 큰 무언가가 될 거야, 이런 가사가 있어요. You’re part of something way bigger, Not just a speck in the universe. 제가 이 노래를 자주 이야기하거든요. 우리나라는 꿈을 가지라고 하면서 모순적이게 현실적인 한계를 빨리 깨우치게 하는 것 같아요. 저도 항상 꿈은 있는데 현실에 부딪히다 보니 회사를 다니면서 춤을 췄던 거고요.
현실적인 한계를 깨부수기가 쉽지 않은데, 사실은 되게 쉬워요. 믿으면 돼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기 확신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보통 꿈을 물으면, 현실적인 목표를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현명하다고 여겨지고요. 저도 그렇게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바뀐 거예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꿔도 괜찮아요. 그 꿈을 입 밖으로 내도 되는데 부끄러워하잖아요. 꿈을 못 이룰까 봐. 못 이루면 어때요? 허무맹랑한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그래서 Bigger 노래 가사가 너무 좋아요. 한계를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좋겠어요.
저의 궁극적인 꿈은, 지금 제가 연습하자고 연락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잖아요. 그 동료들이 그대로이기를 바라요. 아무도 춤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업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목표로는 댄서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올리는 일을 꾸준히 하고 싶고요. 사실 ‘댄서는 춤만 잘 추면 되지’ 이런 인식이 만연했던 때가 있어서 안 좋은 풍토도 아직 많이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이 업계가 좀 더 올바른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건강한 문화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창의적이지 않다,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죠. 그게 요즘 제 꿈이고 욕심이에요.
또 하나는 저작권에 대한 거요. 댄서의 수입원을 보면 레슨이 제일 많고요, 그다음에 광고예요. 근데 음악처럼 춤(작품)도 저작권료를 받는 게 가능할까, 라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근데 댄서는 작품을 만들게 되면 음악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100% 댄서의 창작이라고 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공동 분배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어요.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퀄리티로 이 업계에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음 그림이 그려진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림의 주인공이 저는 아니에요. 제 친구일 수도 있고, 후배일 수도 있고요. 제가 잘해야 다음 사람이 좋은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 길을 걸을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함께 행복하고 싶어요.
Interview 정우진 이지영 Edit 이지영 Video 정우진 Photo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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