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by My Money Story

글 쓰고 향 만드는 전아론입니다

요즘은 조향사로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프리랜서 에디터, 에세이스트 그리고 브랜드 ahro(아로)의 대표로도 일하고 있어요. 글 쓰고 향 만드는 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해나가는 중이에요. 

밖에서 볼 땐 맥락 없이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 같지만, 저에겐 이 모든 작업이 하나의 작업처럼 느껴져요. 오랜 시간을 두고 제 일상을 채우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지금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에요. 원래 대학내일이라는 주간지에서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한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글을 쓰는 일을 했죠. 회사를 나왔을 땐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을 시작했고요. 조향은 직장을 다니면서 꽤 오래 깊게 공부했던 취미였어요. 

ahro는 자연을 닮은 향을 만드는 향수 브랜드예요. ‘아로새기다’라는 말에서 이름을 지었어요. ahro가 선보이는 모든 향은 제가 직접 만들어요. 글을 쓸 때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하며 써내려 가는 것처럼 한 방울 한 방울 섬세하게 조향한 향수를 만들고 있어요. 글로 정성스럽게 향을 소개하기도 하고요. 원래 혼자서 향수도 만들고, 브랜드 운영도 하고, 글도 썼지만 작년부터는 ahro의 크루분들과 함께 브랜드 운영을 함께 하고 있어요. 

사업을 하려고 향수를 만든 건 아니었어요 

평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직장을 다닐 때 베이킹, 디제잉 등 오만가지를 배웠어요. 향을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였어요. 차이가 있다면 향을 만드는 일은 현생에 치여 힘들어도 계속하게 됐다는 거예요. 취미반에서 기초반, 기초반에서 심화반으로 이어졌어요. 향수 브랜드를 만든 지금도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고요. 왜 향을 계속 만들까 생각해 보면 정말 재밌고 좋아서였던 것 같아요. 

글 쓰는 일과 향을 만드는 일은 공통점이 많아요. 글과 달리 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직접 방향성을 정하고 스토리를 쌓아 완성한다는 점이 닮았어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제가 생각한 향을 완성하면 수많은 퇴고를 거쳐 글을 완성한 것 같은 보람이 느껴졌어요. 글을 쓰면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게 되는 것처럼 향도 누군가에게 선보이고 싶은 제 창작물이 됐어요. 

처음에는 ‘제품’이 아니라 좋아서 만든 창작물로 크라우드 펀딩에 소개했어요. 당시 향수를 펀딩하는 게 생소할 때였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그때 제 향수를 아껴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크라우드 펀딩은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후원을 하기 때문에 창작자의 이야기와 결과물에 대한 기대로 후원을 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자연을 닮은 향을 만들었는데, 당장 결과물을 볼 수 없는 분들에게 되도록 정확하게 실제와 비슷한 향을 전달드리려고 노력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텍스트로 향을 잘 느끼실 수 있게 노력을 기울였죠. 

만약 ‘사업’을 하겠다는 마음만으로 향수를 만들었다면 못했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만든 향을 텀블벅에 ‘향수’라는 형태를 내놓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거든요. 이미 ‘향’은 만들었고 향수를 판매할 자격도 갖췄지만 막상 제조를 할 수 없었던 시간이 꽤 길었어요. 

요즘엔 큰 공장에서도 개인 브랜드 제품을 제조해 주는데 제가 처음 시작할 땐 그런 곳이 거의 없었어요. 공장이 제시한 ‘최소 생산 수량’을 맞추기도 어려웠고요. 최소 생산 수량을 들으면 ‘와… 내가 이걸 다 팔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협의를 해서 수량을 줄이면 단가가 올라 부담이 됐고요. 공장과 직접 일하는 게 처음이라 조율하는 일도 어려웠어요. 좋은 담당자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향수를 전부 다시 만들어야 할 뻔한 적도 있었죠. 

다행히 첫 펀딩에서 3천만 원 정도 후원을 받았고, 반응이 좋아 앵콜 펀딩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대출 없이 다음 향수를 만들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거죠. ahro 향수를 좋아해주시고 구매해주신 아로러버분들이 향수 리뷰도 정말 시처럼 멋지게, 섬세하게 적어주셨어요. 

그 마음에 화답하고 싶어서 다음 향수를 선보였고 그 마음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브랜드의 형태를 갖추게 됐어요. 

사업은 저를 확장하는 과정처럼 느껴져요   

사업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객 관점에서, 브랜드 관점에서 기획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이게 사업처럼 느껴지지 않고, 저를 확장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직장인으로 살았으면 안 했을 공부, 일반 소비자였다면 몰랐던 뒷면을 알아가는 게 재밌더라고요. 

ahro 곳곳에 글 쓰는 저의 정체성이 담겨있어요. 향수 바틀을 보면 한쪽은 책등처럼 둥글고, 한쪽은 책장처럼 곧게 뻗어있죠. 책등에는 ‘written by ahro’라고 적혀있어요. 향수 패키지도 책을 닮았어요. 양장본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진 상자에 ahro가 새겨져 있고, 띠지와 책밴드로 디테일을 살렸어요. 향을 텍스트로 소개한 소책자도 함께 드리고요. 

원래 혼자서 하다가 작년부터 ahro 크루분들이 들어오시면서 본격적으로 브랜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어요. ahro 향수를 사랑해 주셨던 분들이 크루로 오셔서 서로 결이 비슷해요. 지금까지 사업이 저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었다면, 이제 크루분들과 함께 만든 ahro 브랜드 정체성을 잘 유지하면서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어요. 브랜드 결에 맞는 선택을 하기 위해 여전히 크루분들과 하나씩 도전해보고 있어요. 

이번에 선보인 금목서 향수, full moon blossom의 출시 과정도 ahro다웠던 것 같아요. 금목서가 가을꽃이라 작년 가을 출시를 앞두고 있었어요. 1년 넘게 열심히 만들었지만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어요. 주변에서는 이대로도 좋은 것 같으니 출시하라고 했는데, 결국 출시 일정을 미루고 다시 제주로 내려갔어요. 금목서는 보통 제주나 부산처럼 따뜻한 지역에만 피기 때문에 직접 가서 향을 맡으며 제가 만든 향을 보완했어요. 나중에 출시할 때 그 과정을 영상으로 공개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 부분을 좋게 봐주셨어요.

🎥 금목서 향수 비하인드 영상

이런 식으로 저에게 ahro의 향수는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창작물이지만, ahro를 운영하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그저 제품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해요.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이제 그럴 수도 있단 걸 인정하게 됐어요. 하지만 ahro다움을 좋아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기쁜 마음으로 지속할 수 있는 만큼 ahro의 정체성을 더 견고히 해나가려고 해요. 기준이 없으면 확장 과정에서 무너지기도 쉬울 것 같거든요.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ahro다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돈을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달라졌어요

월급을 받을 땐 얼마를 받는지가 중요했어요. 1인 기업을 할 때도 그 마인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요. 지금은 이전에 비해 매출액이 엄청 커졌어요. 막상 제 월급은 회사 다닐 때보다 적지만요. 그래도 회사가 만드는 돈의 사이즈는 훨씬 크니까 돈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어요. 제가 아니라 ahro가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이 보이게 됐어요. 

돈의 의미도 바뀌었고, 관리하는 관점도 달라졌어요. 처음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매니저를 뽑았을 때 저한테 ‘인건비’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보통 백화점이나 대형몰에서는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액을 1개월이나 2개월 후에 지급해주는데, 월급은 딱 그 달에 줘야 하잖아요. 잔고가 순식간에 줄더라고요. 제조를 할 때 최소 생산 수량 자체가 크니까 선금이 확 나가기도 하고요. 

고정비는 계속 나가는데 현금 흐름에는 변수가 계속 생기니까 진짜 열심히 일했는데 통장에 돈은 없을 때가 있어요. 제가 돈을 못 받는 건 상관없는데 ahro 크루들에게 돈을 못 주면 안 되니깐 돈이 들고 나는 것들에 대한 흐름을 계속 공부하고 대비하고 있어요. 사업을 안정화하기 위한 전략도 고민하고요. 그나마 ahro는 펀딩 덕분에 대출을 받지 않아서 부담이 비교적 덜한 것도 있어요.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안정성이 부족한데 대출이 있다면 더 부담이 됐을 거예요.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사업을 하고 얻은 것들이 정말 많아요. 무엇보다 제가 저의 생계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면서도 주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더라고요. 저에겐 주체성이 정말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아무리 힘들어도 주체적으로 사업을 하고 느낀 이런 감각들이 독특하면서 값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좋은 향수는 ‘내가 좋아하는 향’의 향수예요.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거나 유행 때문에 뿌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고 즐길 수 있는 향수가 좋은 향수 같아요.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취미를 하다가 사업으로 확장시키고 싶은데 그 방법이 궁금하다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일단 취미를 즐겁게 해 보시길 추천해요. 그 뒤에 작게라도 시작해보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확장할 건 확장하는 방식으로 즐겨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시작조차 어렵더라고요. 특히 직장을 다니며 병행하는 분이라면 좋아하는 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수 있어요. 어차피 처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면 좀 편하실 거예요. 


Interview・Edit 공다솜 Photo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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