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도 서사가 있는 시대, 인천도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요
ㆍby My Money Story
인천 중구에서 ‘인천맥주’를 운영하고 있는 박지훈 입니다
2010년부터 자영업을 시작했어요. 2010년 칵테일바 ‘코소보 라운지’를 시작으로 수제 맥주 펍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거쳐 현재 ‘인천맥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른 살까지는 음악을 했었어요. 클래식 바이올린을 오래도록 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헤비메탈, 락에 빠져서 기타를 맸어요. 집에서 난리가 났었죠(웃음). 군대 다녀오고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싶어서’ 아는 형의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음악을 시작했어요. 소소하게 밴드 생활을 했는데 생계유지가 안되더라고요. 돈을 벌어야 해서 대중음악을 잠시 했습니다. 편곡하고, 가이드 녹음도 다니고요. 방송도 잠깐 했었어요. 6개월 정도 행사 다니고, 작업실 와서 음악하고. 계약금 받아 가며 어찌어찌 생활을 했었죠. 이제는 친한 동생들이랑 농담처럼 주고 받는 이야기가 됐어요. 저희끼리는 ‘망댄모(망한 댄스그룹 모임)’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합니다.
음악을 그만두고 가평 리조트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계약직 아르바이트로 일을 했는데,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긴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터닝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요. 5년 동안 일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사회성도 길렀고요. 조주기능사도 따서 첫 창업이었던 칵테일바 코소보 라운지(이하 코소보)를 열 수 있었습니다.
3천만 원으로 칵테일바를 차렸습니다
자본금 3,000만 원을 가지고 칵테일바를 차렸습니다. 갖고 있던 천만 원에 퇴직금 천만 원, 나머지 천만 원은 대출받았어요. 자, 이제 돈 좀 벌어보자! 이런 마음으로 가장 편한 곳을 찾다 보니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위치가 메인 상권이긴 했는데, 가게가 3층 구석이었고 심지어 불법영업을 하다가 쓰리아웃 받아서 급하게 빠진 공간이었어요. 지금이면 안 들어갔을 곳이었죠. 왼쪽 가게는 비디오방, 오른쪽 가게는 공실이었어요.
자본금 3,000만 원 중 보증금으로 1,500만 원을 내고 나니 남는 돈이 별로 없더라고요. 돈이 없으니까 공사도 모두 셀프로 했어요. 엑셀로 도면 그리고, 메뉴판도 엑셀로 만들고요. 주변에 물어보니까 일러스트랑 포토샵을 쓴다는데 그런 거 몰랐거든요. 하나씩 독학으로 배워가면서 알아갔어요. 제가 음악을 왜 시작했냐면 악기가 멋있어서 시작했거든요. 신시사이저 쌓아놓고 조명 어둡게 하고 작업하면 멋있잖아요. 허세죠 허세. 칵테일도 마찬가지였죠. 멋있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절실하다 보니까 멋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지더라고요. 길거리에서 직접 전단지 돌리다 보면 지치고 솔직히 창피하더라고요. 열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죠. 요즘은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고 재밌는 것도 많지만, 그때는 힘들었어요. 자본도 준비도 없이 너무 무식하게 시작한 거죠. 6개월이 지나서 수익이 나기 시작했고요. 그 이전까지는 집에 걸어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월급처럼 돈을 벌기 시작한 건 1년이 지날 시점이었어요.
자본이 부족해서 모든 걸 셀프로 해결하다 보니 가게가 엉성하긴 했지만 그 당시 칵테일 바가 많지 않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항상 틀어뒀는데 음악이 좋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파티 같은 것도 간간이 열었는데 세번 째 열었던 파티가 빵 터져서, 그때부터 가게가 잘 돼서 6년 넘게 운영했죠.
직접 양조장을 만들게 된 이유는 제품 퀄리티 때문이었어요
2013년쯤에 더부스, 맥파이 같은 수제 맥주 매장이 생겼어요. 흥미가 생겨서 원데이 클래스 듣고 직접 만들어 보면서 맥주를 배우기 시작했고, 2016년에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하 칼리가리) 이라는 이름으로 수제 맥줏집을 오픈했어요. 칼리가리는 자본금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에서 오픈했지만, OEM(위탁생산)방식으로 맥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6개월 정도는 힘들었어요. 공장에서 만들어오는 맥주 양은 엄청 많은데 손님은 없어서 매장에서 이걸 어떻게 다 팔지 막막했어요.
그래도 경험이 있다 보니 꾀가 많이 생겼죠. 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레시피를 만들어 두거나, 20평 기준으로 직원 3~4명이면 충분히 매장이 돌아갈 수 있게 동선을 짜고요. 6개월 정도가 지나니까 수익이 나서 코소보 라운지를 접고, 칼리가리에 집중하며 양조장을 직접 만들었어요.
직접 양조장을 만들게 된 이유는 제품 퀄리티 때문이었어요. 충청도, 강원도 등 몇몇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제 공장이 아니다보니까 퀄리티가 들쑥날쑥한데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퀄리티 컨트롤이 안되다 보니 매장에 제품 수급도 불안정했어요. 당시에 칼리가리 매장이 전국에 10개 정도 있었거든요. 지점에 좋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수급하기 위해서 제조 시설을 직접 만들기로 한거죠. 칼리가리는 2018~2019년 매장이 23개까지 늘어났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규모가 줄었습니다. 현재는 직영점3개, 가맹점 10개가 운영되고 있어요.
팬시하거나 깔끔한 느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딱 인천맥주 답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에 칼리가리 브루잉에서 ‘인천맥주’로 리브랜딩을 했습니다.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시기였고, 저희 브랜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인천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회사가 생각보다 없거든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인천 회사가 되는 게 저희의 목표다 보니 ‘인천맥주’로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했어요. 그런데 리브랜딩에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지 몰랐어요. 정말 억이 들었던 것 같아요. 시간도 6개월 정도 걸렸고요. 제가 인하우스 오퍼레이터가 돼서 리브랜딩 작업을 했죠.
리브랜딩 후에 가장 처음으로 냈던 제품이 ‘개항로’ 라는 라거 맥주입니다. 대형 주류회사와 경쟁하면서 ‘전국에 우리 맥주를 납품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고객 타깃층을 줄이고, 지역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지역에 맞는 이야기를 가진 분들과 작업해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인천에 ‘개항로 프로젝트’라고 구도심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민간 크루가 있어요. 자영업자도 있고, 디자이너, 셰프 등 다양한 인천 사람들이 모여있는데요. ‘개항로 프로젝트’랑 콜라보를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잘나가는 맥주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우선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맥주를 만들고 싶었어요. 인천 지역의 특색을 담은 맥주요. 이 지역에는 어르신이 많고 노포가 많아요. 노포에서도 팔 수 있는 맥주를 만든다면 IPA나 스타우트보다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라거가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기본적인 라거를 만들되, 맥주 본연의 맛을 더 챙기는 쪽으로 제품을 개발했어요. ‘끝 맛이 좋아야 라거다’ 라는 카피를 만들었고요. 500ml 옛날 병 크기로 크게 디자인하고요. 포스터 모델과 개항로 필체 디자인도 저희 지역 어르신이 해주셨어요. 모델로 참여해 주신 어르신은 벽화 그리시는 작가님이시자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고요. 필체 디자인해 주신 어르신은 오랫동안 목간판 만드시는 일을 해오셨어요. 35년생이신데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시고요. 개항로 필체 보면 아시겠지만, 팬시하거나 깔끔한 느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딱 인천맥주 답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지만 멋스럽고 강한 힘도 느껴지고요.
사실 제게 인천이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고향, 문신 같은 거예요. 문신하면 처음에는 신기하지만 시간 지나면 있는지도 잘 모르게 되잖아요. 제게 인천은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로컬 비즈니스를 하면서 있는 둔탁하고 조금 거칠어도 그대로의 멋을 끄집어 내서 보여주고 싶어요.
빌런도 서사가 있는 시대, 인천도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요
지역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된 단어들이 있어요. 괴물들이 산다는 ‘마계 인천’, ‘고담 대구’, ‘갱스터 부산’ 이런 단어들이 온라인 상에서 많이 쓰여요. 인천이 인식이 별로 좋진 않잖아요. 저도 3대째 인천에서 살고 있거든요. 인천사람들도 부정하진 않아요(웃음). 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마음도 있어요. 인천에 대한 이미지에 일정 부분 동의하긴 하는데 너무 부풀려져 있다 보니까,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한번 와봐, 인천 와서 실제로 보면 되게 멋있다?’ 그렇게 ‘마계인천 시리즈’를 시작했죠. 요즘은 빌런이 각광받잖아요. 빌런도 각각의 서사가 있고 캐릭터를 알아가는 매력이 있잖아요. 인천도 그런 식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천에서 30~40년 이상 멋지게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들이 많아요. 노포의 이름을 딴 한정판 맥주를 만들고, 그곳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면서 파티를 여는 거예요. 첫 마계인천 시리즈는 54년 된 스지탕집 ‘다복집’에서 시작했고요. 그 다음에는 50년 된 스지탕집 ‘대전집’, 그 다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재즈클럽이기도 한 ‘버텀라인’에서 마계인천 시리즈를 이어갔어요.
매장의 이름을 딴 맥주는 보통 리미티드로 4,000병 정도 만드는데요. 맥주 맛은 가게의 음식, 공간의 분위기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직감에 의존해 만들어요. 스지탕은 소 힘줄을 꾸덕꾸덕하게 끓여 낸 음식이에요. 스지랑 트렌디한 IPA 맥주의 조합을 시도해 봤는데 좋더라고요. 재즈클럽 ‘버텀라인’의 경우는 음악과 곁들이기 좋게 도수가 조금 높은 라거를 만들었고요.
파티할 때는 제가 음악을 좋아하니까, 장비 가지고 와서 디제잉, 버스킹도 하고요. 처음에는 사장님들이 굉장히 시크하게 반응하세요. “사장님, 다복집에서는 꼭 디스코를 틀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도대체 여기서 뭘 하려고 하냐” 며 놀라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파티를 시작하면 너무 좋아하세요. 마계인천 시리즈로 세 곳 모두 최고 매출을 올렸다고 하시더라고요. 4시간 만에 준비한 음식이 다 동나고요.
지역 곳곳에 보석 같은 공간이 많습니다. 그런 곳은 맛도 좋고, 분위기도 흉내 낼 수 없어요. 긴 세월 동안 가게를 끌어오신 사장님의 노하우는 카피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포나 오래된 가게는 어르신들만 가잖아요. 다음 세대가 와야 하거든요. 마계인천 시리즈를 통해서 요즘 세대 사람들에게 숨겨진 공간을 알려준다면 또 다음 50년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에요.
지금은 수제 맥주의 성숙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수제 맥주의 미래가 밝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한창 주목받았다가 지금은 하향세니까요.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보게 되는데요. 보편화되려면 대량화 해야하고, 대기업의 구조를 뚫고 새로운 유통 경로를 찾아야 하는데 너무 힘들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요즘 소비자들은 비싸도 가치가 있으면 지갑을 열잖아요. 술에 대한 문화가 바뀌고 있기도 하고요.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할 수 있는 가치를 계속 실현하면서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맥주만의 매력이 있잖아요. IPA, 밀맥주, 흑맥주, 라거 맥주마다의 특색이 있고, 맛을 깊게 음미하지 않아도, 공부하지 않아도 딱 맛을 느낄 수 있잖아요. 편안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거죠. 지금은 수제 맥주의 성숙기라고 생각해요. 이 시기가 지나면 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재밌는 일에 도전하고 싶어요. 우리가 ‘상생’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근데 상생을 실천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가게 하나가 잘 된다고 이 지역이 살아나지 않거든요. 그것에 대한 괴리감이 항상 있어요. 마계인천 시리즈도 그런 고민에서 시작하게 됐고요. 제 주변에서 함께 자영업하고 계신 분들과 얼굴 보고, 계속 소통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자 합니다.
Interview・Edit 이지영 Photo 김예샘 김예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