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농부와 소비자를 한 그릇의 요리로 연결합니다
ㆍby My Money Story
‘어쩌다농부’를 운영하는 불꾼, 포롱, 토리입니다
불꾼: 안녕하세요. 어쩌다농부 경영을 담당하고 있는 불꾼입니다. 불꾼은 불을 지피는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보통 제가 일을 벌리는 쪽이라서 불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포롱: 메뉴 개발과 요리를 맡고 있는 포롱입니다. ‘포롱’은 작은 새가 날갯짓을 한다는 순우리말이에요. 힘차게 날갯짓을 하자는 의미에서 짓게 됐습니다.
토리: 저는 여기저기 잘 굴러다니면서 일을 벌이는 편이라 도토리에서 따온 별명 ‘토리’로 불립니다. 주로 신사업을 담당하고 있어요.
불꾼: 저희 셋은 대학생 때 창업을 하다 만난 사이에요. 저희 아버지는 뒤늦게 귀농을 하셔서 토마토 농사를 지으시는데요. 아버지가 농사짓는 모습이 고생스러워 보여서 농사일에는 얼씬도 말아야지, 했는데 아버지가 키우신 토마토가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저는 설탕 없이는 토마토를 안 먹던 사람인데 너무 맛있어서 ‘아빠, 이거 어떻게 키운거야?’ 묻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은 농작물과 농작물을 유통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포롱: 불꾼이가 맛있는 토마토 먹을 수 있다고 설득해서(웃음) 토마토 농가를 갔는데, 현장이 참 재밌었어요. 우리가 만나는 토마토는 빨간색인데 현장에서 수확할 때는 초록색이거든요. 덜 익었을 때 수확을 해서 유통해야 하니까요. 미처 몰랐던 생산 과정을 보는 게 신기했고 불꾼이와 함께 농작물을 유통하는 일을 함께 시작했어요.
불꾼: 시작은 포롱이를 포함해 4명이었는데,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며 저와 포롱이만 남게 되었어요. 그 이후 토리가 합류해 어쩌다농부를 시작하게 되었고요. 아, 저랑 토리는 또 다른 창업 멤버로 인연이 있었던 사이였어요.
토리: 어쩌다농부 멤버로 합류하기 전에 농사일을 경험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불꾼이를 만났어요. 저는 유아교육을 전공했는데요. 부모님이 유치원을 운영하셔서, 저 역시 자연스럽게 졸업 후 부모님과 같은 길을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주도적으로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포천으로 가서 창업지원센터를 통해 농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경험을 쌓았어요.
불꾼: 포천에서 농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산속에 위치한 2,000평의 밭이었는데, 서향이라 해가 굉장히 뜨거운 게 특징이었어요. 이때는 자연농 방식에 푹 빠져있을 때라 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땅을 가꾸는 방식의 농사를 지었어요. 뭐든 일이 쉬울 때가 있는데, 그 ‘때’를 잘 모르다보니 하루 종일 풀을 깎아야 하는 날도 많았어요. 결국 풀이 자라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농사의 절반은 포기해야 했지만요.
토리: 맞아요. 가지 씨앗을 사면 2,000립이 들어있거든요. 그럼 가지가 2,000대가 나온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기본적인 개념이 없으니까 2,000립을 다 심어버린 거예요. 가지가 엄청 많이 나오는데 소비를 다 못하니까 가지 싣고 플리마켓도 다니고, 작은 가게에 납품도 했었죠. 포천에서 좋은 농부님들도 많이 알게 되고, 좋은 농부와 농작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에도 관심이 생겼고요.
3천만 원으로 연고 없는 춘천에 식당을 열었습니다
불꾼: 2016년 11월,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춘천에 어쩌다농부를 오픈했어요. 지역을 춘천으로 정한 이유는 건강한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어쩌다농부의 컨셉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땅이 있으면서도 소비가 잘 되는 동네가 어디일지 고민하다가 정한 곳이에요.
포롱: 당시에 나름 상권 분석도 했었어요. 가게 위치가 춘천 명동과 가까우니 사람들이 많이 올 거란 기대가 있었어요. 가게를 열기로 한 부근에 앉아서 하루 종일 몇명이 지나가나 지켜보기도 했고요.
토리: 그때는 지금보다 더 허름한 옛날 뒷골목 느낌이었어요. 하루 종일 50명도 안 지나다니고 근처에 살고 계신 분들만 다니는 거예요(웃음). 그래도 인터넷 홍보를 통해 손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포롱: 그리고 아는 분이 춘천에 놀고 있는 땅이 있다고 해서, 농지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셨어요. 그래서 춘천을 선택한 이유도 있고요.
토리: 보통 땅은 ‘지대’라고 해서 1년 단위로 임대료를 내요. 저희는 공짜로 얻은 기회이니까, 농사지은 수확물을 보내드린다거나 그런 식으로 지대를 대신했었어요.
포롱: 돈이 부족하니 인테리어도 직접 했어요. 황학동에서 의자랑 테이블을 사고, 페인트칠도 저희가 직접 다시 하고요. 식당을 운영해 본 적이 없으니까 주방 동선이나, 배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옆집 가게 사장님한테 소꿉놀이하냐고 혼나기도 했어요(웃음).
토리: 그래도 주방은 중요하니까 인테리어를 맡겼거든요. 근데 업체에서 ‘이렇게는 안되는데요’ 하면 그때 저희는 ‘아 안되는구나~’하고 바로 수긍을 했어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안되면 되게 하는 방법을 무조건 찾아야 해요. 처음에 할 때 제대로 못해서 배수시설 다 뜯어내고, 보수공사를 순수하게 7번 정도 했던 것 같아요. 맨땅에 헤딩이었죠.
포롱: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준비를 많이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희도 많이 경험하고, 공부하고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 가게 차린다!’ 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일단 가게를 열고 배우고 공부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가게를 오픈하면 못 움직이거든요.
토리: 초반에는 10시부터 장사를 시작해서 저녁 9시까지 했어요. 브레이크 타임도 없었고요. 그러니까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2시, 1시까지 일을 하는 거였어요.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를 잘 몰랐죠. 미련맞게 계속 가게에 메여서 일만 했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루 매출은 고작 15만 원 정도였고요.
불꾼: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위험했던 게 돈이 없던 거예요. 3천만 원으로 가게 차리고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데, 매출은 15만 원 이랬으니까요. 그때는 ‘몸으로 때우자. 안되면 알바라도 하자’ 이 정도로 무모하게 했던 것 같아요. 초창기에 저희가 돈이 안되는 일도 많이 했었어요. 농사를 직접 짓는 일 같은 거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농사를 짓다가 지금은 허브, 땅콩, 고구마 정도를 키우는 작은 텃밭 정도예요. 농사를 접은 이유는 농사철과 가게가 바빠지는 시기가 맞물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농사에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농사는 짓고 있지 않고 가게 운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토리: 수익이 나기 시작한 건 1년 정도 뒤였어요. 초기에 직접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드니까 방송이나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들이 조금씩 들어오며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춘천에 여행으로 방문하는 20대부터 동네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찾아오고 계세요. 평일에는 근처의 시청, 병원, 은행 등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분들도 많이 오시고요.
포롱: 시간이 지나면서 주방에서 쉽게 속도를 낼 수 있는 레시피를 연구하게 됐고, 지금의 시그니처 메뉴인 ‘명란들기름파스타’도 탄생하게 됐습니다. 시그니처 메뉴는 꼭 있어야 해요. 고정적으로 있는 시그니처 메뉴가 없으면 손님들이 혼란을 겪으시더라고요. 어쩌다농부는 명란들기름파스타와 텃밭(샐러드 라이스)메뉴를 고정으로 두고, 제철 농작물을 이용한 시즌메뉴를 한 두개씩 변경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요.
불꾼: 예전에는 하루 장사가 잘되면 크게 기뻤다가, 하루 장사가 안되면 크게 슬펐어요. 기복이 심했죠. 토리는 아직도 매출과 표정이 비례해요(웃음). 이제는 평균치가 있으니까 불안하지는 않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려해요. 식자재 값, 인건비가 계속 오르니 그에 대한 방법도 강구해야 하고요. 최근에도 원가 계산을 다시 했는데요. 메뉴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셀프서비스를 도입했어요. 셀프 바와 테이블마다 손님이 직접 카드 결제가 가능하도록 장비를 두었어요.
지역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해 재미있는 식탁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불꾼: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더 맛있고 건강한 농산물을 먹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농부님들의 농장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어요.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는 것. 어쩌다농부가 거래를 하는 농가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현재 어쩌다농부와 함께 하는 가장 대표적인 농가는 ‘너래안’이에요. 강원도 화천에서 들깨를 수확하고 들기름을 짜는 청년 농부가 운영하는 농장이에요. 저희 음식은 양식의 형태를 띠는데, 양식에서 주로 사용하는 올리브유 대신 들기름을 사용할 때가 많거든요. 너래안 들기름은 고온에서 착유하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생산량은 적지만 특유의 쓴맛이 적어 저희 음식과 잘 어울려요, 너래안과 5년 가까이 꾸준하게 거래를 해온 것 같아요.
또 꾸준히 거래하는 농가로는 ‘오탄농장’이 있는데, 여기는 자연방목란을 생산하시는 농가에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달걀은 배터리 케이지에 갇힌 닭들이 낳는 알이에요. 이 공간에서는 닭이 마음껏 움직일 수도 없고, 그저 달걀을 낳는 것 밖에 할 수 없어 닭이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아요. 오탄농장은 닭에게 넓은 공간을 주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닭을 키워요. 덕분에 닭들도 훨씬 건강하고, 달걀의 비릿한 맛도 없어요.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서 재미있는 식탁을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이 어쩌다농부가 지향하는 방향이에요. 마트에서 보이는 식자재는 대부분 획일화되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감자도 한 가지 품종뿐이고요. 실제로 농가에 가보면 감자도 정말 다양한 품종이 있고, 각기 다른 식감과 맛을 내거든요. 이런 게 잘 안 알려진 이유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을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어요.
2022년부터 어쩌다농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해나가고 있어요
불꾼: 저희가 6년간 매장을 운영하면서 계속해서 부딪히는 한계가 있었어요. 음식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었죠. 지역 농가의 식재료를 소싱하고 메뉴를 개발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농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다는 점이었어요. 생산 환경에 따라 하루아침에 메뉴를 팔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거든요. 농가의 입장에서도 한 작물이 나올 때 우르르 나오는데, 그에 맞춰 저희 작은 매장에 손님이 우르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저희가 크게 도움이 되지도 못했고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상품을 제작해 보기로 했어요.
토리: 밀키트를 생산하고픈 생각은 2년 전부터 있었는데, 생산 허가 등의 문제가 복잡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안오더라고요. 마침 와디즈에서 현대그린푸드와 협업해서 지역 맛집의 밀키트를 제작해 준다는 공고를 발견해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260개 업체가 지원했다고 하더라고요. 운 좋게도 그중 10개의 업체에 선정이 되어 현대그린푸드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어요. 저희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작은 시도들을 먼저 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저희도 매장에서 송편 밀키트 같은 걸로 작게 시도를 먼저 했었거든요. 속도는 느릴 수 있어도, 예산을 크게 태웠다가 잘 안되면 손실이 크잖아요. 작게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노하우를 쌓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불꾼: 올해 3월에는 ‘시골파스타’라는 서브 브랜드 매장을 오픈했고요. 6월에는 어쩌다농부 엔타점을 오픈했어요. 11월에는 어쩌다농부 본점 확장 공사를 마쳤고요. 매장이 1개에서 3개로 늘어나게 되면서, 어쩌다농부에서 함께 오래 근무해 온 친구들을 관리자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기존에는 서비스와 음식의 퀄리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 친구들이 그 고민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하니 더 어렵더라고요. 다행히도 어쩌다농부에 애정을 가진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현재는 큰 어려움 없이 운영을 해나가고 있어요.
토리: 본점 매장 확장공사를 마치고 오픈하는 날, 이 공간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불꾼과 포롱이 뿐만 아니라는 생각에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저희 셋이 했을 때의 에너지보다 지금은 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일을 해요. 그래서 성장하고 싶은 욕심도 더 커진 것 같아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포롱: 춘천에서 식당을 할 거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반대가 심했어요. 부모님은 제가 길어봤자 3개월 있다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저 역시 스스로를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업을 운영하면서 돌아보니 생각보다 제가 단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냥 물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매 순간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선택을 해왔더라고요. 가게를 꾸려가며 제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했던 것 같아요.
토리: 얼마 전 어쩌다농부가 6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임신했었을 때 자주 왔던 손님의 아이가 다섯 살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단골 대학생 손님이 성인이 되어서도 저희를 생각해 주실 때. 어쩌다농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저희를 응원해 주는 분들을 마주칠 때 뿌듯합니다. 작은 실패와 도전 성공을 거치며 나도 무언가를 해 나갈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불꾼: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주제의 일인 만큼 더 잘해내고 싶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그냥 해보고 실패하면 되었을 일을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는 저희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잘’하지 못할까 봐 아무것도 ‘안’하는 모습을요.
작년에 밀키트 출시, 지점 확장 등을 시도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실패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그래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움직이는 대신, 내부적으로 좋다는 판단이 들면 최소한의 투자를 해보고 있어요. 혹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워나가면 되니까요.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처럼, 처음 가게를 열던 때처럼 말이죠. 처음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저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너무 ‘잘’하려고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단 움직였다면 이전과 달라진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Interview・Edit 이지영 Photo 김예샘 김예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