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밖에서 빚어낸 삶의 풍경

by My Money Story

Story 1. 서울을 떠나온 이야기

서울을 떠날 결심을 한 건 언제였나요?

지금의 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결혼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남편은 세일러(sailor)라는 직업적 특성상 전라남도 여수에 머물고 있었고, 저는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죠.

거리가 멀었지만 2주에 한 번씩 서로 오가며 자주 만났어요. 만나면 물론 좋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분명 있었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저는 왠지 모르게 남편이 서울로 올라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결혼 후 삶의 터전을 정하는 과정에서 남편분과 의견 차이가 있었군요?

네, 그 과정에서 몇 번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왜 내가 내려가는 건 생각하지 않았지? 너무 일방적으로 요구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사실 한국 회사의 조직문화가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고민도 하고 있었어요. 제 의견과 다르게 진행되는 업무 방식에 제 에너지를 쓰는 일이 점점 지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안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준비해 볼게. 회사에 속하지 않아도 충분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프리랜서가 되면 오빠 옆에서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까. 1년만 시간을 줘. 내 입지를 다지는 데 그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 남편은 흔쾌히 동의해 줬고, 그렇게 프리랜서로 전환하게 되었어요.

지방으로 이주 후 프리랜서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준비한 과정이었네요?

맞아요. 1년 동안 프리랜서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로 마음먹었죠. 1년 안에 이전 직장에서 벌던 월급을 넘기지 못하면 다시 취직하는 방향으로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처음 3개월 동안은 수입이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허락했어요. 조급함을 가지지 않도록요.

프리랜서로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어린 시절 해외에서 주로 지냈기 때문에 저는 영어에 강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생 시절 입시 학원에서 면접 조교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로 돈을 벌었고, 그렇게 영어 번역 일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번역 일이 저에게 항상 든든한 밥줄이 되어주었죠.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만약 수입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이 들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래도 번역은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이 큰 안도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번역 일은 작든 크든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목표 달성을 해냈나요?

네, 처음엔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100만 원이라도, 아니면 10만 원이라도 벌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번역 일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어요. 팔로워가 많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몇 주 사이에 연락이 오더라고요. 비록 단기적인 일이었지만, 그때 첫 목표를 달성했죠.

그렇게 한 달 만에 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을 벌어내면서 ‘프리랜서로도 해낼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후로도 꾸준히 일을 이어갔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지방으로 내려갈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

대단하시네요. 수민 님을 만나기 전에는 굉장히 즉흥적인 스타일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생각보다 철두철미한 편이에요. (웃음) 남들은 주로 ‘월 얼마는 벌어야지’라는 기준을 세우지만, 저는 그런 목표보다는 ‘회사를 떠나서도 내가 혼자 자립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자는 생각이 더 컸어요.

돈을 중시하는 사람이기에, 무작정 남편과 함께 통영에 내려갈 수는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래서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입지를 다지고, 통영에서도 안정적으로 일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 했어요.

도시를 경상남도 통영으로 정한 이유도 있을까요?

남편의 직업이 세일러이기 때문에 항구 도시에 자리 잡기로 했어요. 부산과 여수도 후보였지만, 그곳들은 통영에 비해 규모가 큰 도시라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조금 더 색다른 경험을 해보기로 하고 통영을 선택했어요. 또 결혼 전부터 통영에서 자주 데이트해서 좋은 기억과 인상이 남아 있었던 것도 커요. 서로의 뜻이 잘 맞아 통영을 선택하는 데는 큰 고민은 없었어요.

Story 2. 통영에서의 또 다른 시작, 레몬샵 이야기

통영에 온 지는 얼마나 됐나요?

벌써 1년 반 정도 되었네요.

통영에 정착하려 할 때 집 문제도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보셨나요?

통영으로 이사 오기로 했을 때, 아파트보다는 저희 스타일을 담은 주택에서 살고 싶었어요. 아파트는 동선이나 구획이 대부분 비슷하게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 획일적인 구조보다는 우리만의 개성을 살려 꾸밀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부동산에 매물을 문의할 때도 ‘폐가라도 좋으니, 주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다 부동산에서 주택을 하나 소개해 줬는데, 문을 열자마자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수도가 터져서 한 달에 700만 원어치의 물이 새고 있었다고 했어요. 덕분에(?) 매매 금액을 협상할 수 있었고, 결국 그 집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서울에서 살던 주거 환경에 비해 만족스러운가요?

서울에서는 전세로 약 10평 정도 되는 오래된 합정동 빌라에서 살았어요. 방이 여러 개였지만 공간이 좁고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 집 안을 다니기도 불편했죠. 그래도 그때는 제 능력껏 꾸며가며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만큼 추억도 많고요.

그런데 최근 부모님이 통영 집에 오셨을 때, 아버지께서 “이젠 걱정 없다”라고 하시는 걸 보고, 부모님이 그동안 왜 저를 걱정하셨는지 이해하게 되었어요. (웃음)

수민 님이 요즘 한창 몰두하고 있는 레몬샵 이야기를 좀 해 볼게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레몬샵을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비롯됐어요. 직접 집을 꾸미고 그 과정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어느 순간 팔로워 수가 1만 명에서 8만 명까지 급격히 늘어나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기 때문에 당시 정말 놀랐어요.

이 콘텐츠 덕분에 평소 제 계정을 보지 않던 분들까지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작업 때문에 서울 동대문으로 원단을 떼러 갔을 때 상인분들이 저를 알아봐 주시기도 하고, 서울에서 다니던 치과 선생님도 저를 기억해 주셨거든요. 심지어 통영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도 지나가던 분이 저를 알아보고 길을 안내해 주셨어요.

그때 느꼈죠. 사람들이 제 취향과 스타일에 공감해 주고 있다는걸요. 그래서 제 취향을 담은 레몬샵이라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레몬샵의 시작이 된 임수민의 집 부엌 공간

가게를 열면서 어떤 제품을 판매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사람들이 통영에 내려온 지 1년 반 만에 가게를 오픈한 걸 보고, 정착을 빨리 잘했다고 많이들 놀라시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가게를 열 계획이 없었어요. 집을 수리하며 4개월을 보냈고, 부엌을 꾸미면서 해외 인테리어 유튜브에서 본 레몬 장식을 떠올렸죠. 그런데 레몬을 실온에 두니 금방 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도자기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만든 레몬 장식을 본 주변 사람들이 “저도 사고 싶어요”라고 반응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레몬을 테마로 한 도자기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죠.

실제 만들어서 판매할 때 기대만큼 반응들이 일어났나요?

생각보다 큰 수요가 생기더라고요. 통영에서 새로 사귄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팝업을 열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때 접시도 디자인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상품을 추가로 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브랜드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죠.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온라인 사이트도 열었는데, 제품이 금방 품절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구매해 주셨고요. 그러다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통영에 공간을 준비하게 되었고, 내려온 지 1년하고 한 달 만인 8월 16일에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어요.

레몬샵에 놓여있는 시그니처 아이템 레몬 오브제

레몬샵 부동산 매물은 어떻게 구하게 되었나요?

마땅한 장소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인스타그램의 힘을 빌리기로 했어요. ‘통영에서 매물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요?’라는 스토리를 올렸더니, 한 분이 월세로 나온 적이 있던 장소를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찾아봐도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서, 예전에 그곳이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게스트 하우스 번호를 찾아 연락해 봤어요. 운 좋게 주인분과 바로 만나게 되었고, 계약까지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죠.

이곳 위치가 너무 좋아 보이는데, 월세는 어떻게 되나요?

정확한 액수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대략 서울의 아파트 공과금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돼요. 서울과 비교했을 때 정말 매력적인 조건이죠. (웃음)

그렇게 비용이 낮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처음엔 저도 놀랐지만, 통영에서 지내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이곳은 주차가 어렵고, 도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서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에요. 통영 기준에서 상업적 입지가 그리 좋지 않은 거죠. 주변에 식당이나 카페 같은 편의시설도 없으니, 상업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위치죠.

게다가 대중교통도 충분하지 않아서 자가용이 필수인데, 주차 공간이 부족하면 통영에서는 그만큼 상업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인건비였어요. 하루 인건비가 약 40만 원, 목수와 타일 시공이 각각 40만 원과 35만 원 정도였고, 자재비는 별도로 들었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한 DIY로 작업을 했고, 인테리어 비용은 총 약 1천만 원 정도 들었어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공방 장비도 추가로 샀는데, 이 부분에는 약 2천만 원 정도 들었어요. 만약 저처럼 DIY로 최대한 한다고 하면, 약 800만 원 정도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업 초기 자본금은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그동안 모아둔 자금을 활용했어요. 평소에 돈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기도 해요. 주식이나 코인 같은 재테크는 하지 않아서, 주로 현금을 통장에 보유해 두고 있었어요. 현금으로 관리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인터넷 뱅킹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어요. (웃음)

그동안 적금은 꾸준히 넣어왔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투자 없이 그대로 두는 스타일이었죠. 부모님께서는 ‘그 돈은 다 죽은 돈’이라며 걱정하셨지만, 저는 오히려 그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해서 벌자는 마음이 컸어요.

운영을 시작한 후 실제로 투자한 비용 대비 운영이 잘 되고 있나요?

네, 첫 달에는 주 3일, 금, 토, 일요일에만 오픈했는데 그 첫 달에 오프라인으로만 1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팔로워분들이 통영까지 기꺼이 찾아와 주신 덕분에 가능했던 결과였죠.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하지만 비수기에는 운영 방식을 조정하기로 했어요. 11월에는 가게를 아예 닫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3주 정도 문을 열 예정이에요.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에는 가게를 여는 대신 번역 일을 하거나, 그릇을 더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쪽에 집중하려고 해요.

운영 3개월 만에 내린 결정치고는 꽤 과감한 결단인 것 같아요.

아직은 테스트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통영은 성수기 외에는 정말 조용해서 운영 시기와 스케줄을 조정하는 데 큰 고민은 없었어요. 저는 생계를 위해 여러 파이프라인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수기에는 타지에서 오는 손님이 적으니 번역 일이나 콘텐츠 작업, 브랜드 관련 일을 병행하죠. 성수기에는 손님이 많아 제품 제작 시간이 부족하니, 비수기 동안 미리 제품을 준비해 두고 성수기에 판매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봤어요.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다른 일에 집중해 시간과 생산성을 최대로 활용하려고 항상 노력해요.

수민 님은 정말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네요.

맞아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효율’은 다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투자 대비 효율’과는 좀 달라요. 저는 ‘재미 효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제게는 가치 있는 일이거든요.

편하게 쉬는 것도 좋지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시간을 더 행복하고 의미 있게 쓸 수 있을지 늘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레몬샵의 유지비용도 궁금한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되나요?

유지비는 거의 들지 않아요. 전기세나 수도세도 크지 않은 편인데, 특히 전기세는 태양광 패널로 해결하고 있어서 비용을 크게 절약하고 있거든요.

또, 월세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 수익에 비해 투자할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유지비 부담 없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태양광으로 공과금을 절약할 수 있다니, 정말 좋은데요? 그럼, 레몬샵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부엌 작업 중에 있었어요. 원래 화장실로 쓰였던 공간을 개조하던 중에 남편이 사고를 당했거든요. 그라인더가 손에 박히는 큰 사고였는데, 정말 심각했어요.

사고 직후 바로 119에 연락했지만, 통영에는 큰 병원이 없어서 근처 도시인 진주까지 가야 했어요. 한 시간을 가는 동안 계속 그 상태로 있어야 했죠. 너무 무서웠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때 정말 많이 울고, 걱정도 많았지만, 다행히 신경에는 문제가 없어서 한 달 정도 입원 후 지금은 아무 문제 없이 지내고 있어요. 그 순간은 정말 큰 충격이었고, 마음이 아주 무거웠던 경험이었죠.

두 분 정말 놀라고, 아찔한 순간이었겠어요.

집을 셀프로 고치면서 ‘이 정도면 뭐든 할 수 있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사건 이후로 남편은 그라인더는 절대 다시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전문가처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걸 크게 배웠죠.

사고 후에 한 달 동안은 이곳에 오지 못했어요.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도 나고, 원망스럽기도 했죠. 남편은 자기가 그렇게 다친 것에 미안해했고, 그런 남편을 보며 저도 마음이 아팠어요. 퇴원 후에야 다시 용기를 내어 함께 돌아올 수 있었어요.

남편분의 사고 이후, 지방에서 병원이 멀다는 점이 탈서울 결심을 흔들진 않았나요?

레몬샵은 남편과 제가 함께 애착을 가지고 고쳐가던 공간이라 포기하면 우리의 성취를 버리는 것 같았어요. 두려움을 딛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서로를 보듬으며 이 터전을 진정한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결국 어디에서 살든 크고 작은 불편은 존재하니까요. 사고 이후로는 더더욱 건강과 안전에 신경 쓰게 되어서, 그런 불안을 나름의 방식으로 관리하면서 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투자 대비 효율’과는 좀 다른 관점이에요. 저에게는 ‘재미 효율’이 더 중요하거든요.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면, 그게 제게는 가치 있는 일이죠. “

레몬샵을 운영하면서 지자체 지원 사업에 참여한 적 있나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지자체 지원을 받고 있어요. 예전에 서울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에 도전했지만, 전국적으로 경쟁자가 많아서 탈락했던 기억이 있죠.

이번에는 통영이 *글로컬 상권 창출팀 공모에 선정되면서 동네에 축제 분위기가 가득해요. 저는 글로컬 크리에이터로 지원했는데, 통영 내에서만 진행되는 사업이라 경쟁이 덜했고, 특히 영어가 제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 글로컬 상권 창출팀 지원사업: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역 로컬 크리에이터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지역 고유의 문화와 자원을 활용해 국내외 방문객을 유치하는 상권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 2024년에는 수원시, 전주시, 통영시가 글로컬 상권으로 선정됨

이 지원 사업이 국제적 요소를 중시하는 만큼 영어 능력도 중요한 요소라서, 제 콘텐츠가 눈에 띄어 좋은 평가를 받아 합격할 수 있었죠. 상금도 받았지만, 구체적인 금액은 비밀이에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웃음)

축하 드려요! (웃음) 글로컬 상권 창출팀에서 글로컬 크리에이터 역할은 어떤 건가요?

지역의 고유한 특색이나 자원을 발굴하고, 여기에 국제적인 감각을 더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역할이에요. 예를 들어, 지역의 문화나 콘텐츠를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지역 상품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죠. 이렇게 지역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저는 통영이 가진 항구도시만의 특색과 매력을 제품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제가 만든 특별한 굿즈를 사기 위해 통영으로 직접 찾아오고, 또 통영에 오면 기념품처럼 구매해 가는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예산 집행 기간이 두 달로 짧다 보니, 그 안에 큰 금액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더라고요. 예산을 양산용으로는 쓸 수 없고, 샘플 제작 비용으로만 사용해야 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샘플 제작에 몇천만 원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예산을 짜내어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지원금을 사용할 때 집행 기준상 개인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 물건은 구매하지 못해요. 그래서 자산으로 남지 않는 소모품을 구매하는 등 규정에 맞게 사용하고 있어요.

Story 3. 통영에서 찾은 나만의 삶

통영에서의 생활이 2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도시 생활보다 만족스럽다고 느끼나요?

도시 생활을 싫어했던 건 아니에요. 통영에 정착한 계기는 물론 남편도 있지만, 제 삶의 가장 큰 변화는 강아지 ‘수리’가 생기면서였죠. 수리가 제 인생에 들어오고 나서 우선순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브랜드 정보나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는데, 강아지를 키우면서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쇼핑도 거의 하지 않게 됐고, 필요한 건 오직 강아지 간식이나 장난감 정도였어요.

서울에서 수리를 혼자 두고 외출할 때마다, 특히 어두운 3층 집에 두고 나가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비싼 전세로 사는 집인데도 햇빛이 잘 안 들어서 ‘얘를 위해 햇빛이 잘 드는 집에 언제쯤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당시에는 돈을 모으기보다는 경험에 쓰는 걸 중요하게 여겼는데, 강아지와 함께하면서부터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는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막막함을 느꼈죠. 그래서 통영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서울이 싫어서 떠난 건 아니지만, 지금 통영에서 지내다 보니 오히려 서울이 점점 더 멀게 느껴져요.

통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인구 밀도가 가장 큰 요소인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인구가 너무 많아 그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보통 통영의 매력을 묻는다면 바다를 떠올리겠지만, 저에게 가장 좋은 건 오히려 ‘적당한 인구 밀도’예요. 정말 행복해요.

특히 강아지와 함께 산책할 때, 서울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통영에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너그러운 느낌이 들어요.

반면 서울은 모든 게 좀 날카롭게 느껴졌어요. 강아지와 산책할 때마다 혹시 잘못될까 봐 눈치를 보게 되고, 아파트에서는 꼭 누군가가 “물진 않나요?”라고 물어보곤 했죠. 그런 경험 때문에 서울에서는 강아지를 키우는 게 죄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서울이 싫어서 떠난 건 아니지만, 지금 통영에서 지내다 보니 오히려 서울이 점점 더 멀게 느껴져요.”

통영에서 지내면서 오히려 서울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더 강하게 다가왔나 보네요?

막상 통영에서 살아보니 ‘서울에서 꼭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비용에 그 정도의 퀄리티로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서울을 벗어나 다른 삶을 한 번쯤 경험해 보라고 권해요. 서울을 미워하라는 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삶을 느껴보라는 거죠.

통영에 와서 제 건강도 정말 좋아졌어요. 피부도 훨씬 좋아지고, 생리통도 줄었고, 정신적으로도 안정감을 많이 느껴요. 불안정했던 감정도 많이 사라지고, 전반적으로 행복감이 커진 것 같아요.

이곳에서 생활하시면서 지역사회에서 텃세 같은 걸 느낀 적은 없나요?

전혀 없었어요. 사실 저는 여수에도 살아보고 부산에도 가봤는데, 강아지랑 산책만 해도 “저런 큰 개를 왜 데리고 다니느냐”라거나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라”는 말을 자주 들었거든요. 저의 옷차림을 보고 쳐다보는 시선도 있었고요.

반면, 통영에서는 어르신 분들이 강아지 수리를 보면 “외래종인가? 러시아산인가? 비싼 개 아니냐?” 정감 가는 사투리 어투로 말씀하면서 예뻐해 주세요. “뽀삐야!” 하면서 친근하게 부르기도 하고, 마트 앞에 앉아 있으면 “더워서 여기 있나 봐” 하며 다정하게 관심을 두시죠. 저에 대해서도 신기해하면서 호의적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오히려 새로운 사람을 환영하는 분위기라 텃세는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통영 사람들은 이곳에 다른 사람들이 오는 걸 신기하고 반갑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지역에 고령인구가 확실히 많다고 느끼나요?

동네마다 다르긴 하지만, 터미널이 있는 죽림 쪽을 제외하고는 젊은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길에서 20대나 30대를 보면 “어느 동네 사람이려나?” 하고 궁금해질 정도예요. 학생이 아닌 젊은 사람이 보이면 여행객인가 하고 서로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응원하는 마음도 생기고요. (웃음)

통영에서 또래 친구를 사귀거나, 같은 ‘탈서울’ 경험을 가진 친구를 만났나요?

네, 있어요. 통영에 유명한 카페 ‘배양장’이 있는데, 원래 멍게 배양장이던 곳을 개조해 만든 카페예요. 그곳을 운영하는 부부가 저희를 많이 도와줬어요. 본인들도 카페를 직접 손으로 고쳐 꾸민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희 집을 고칠 때부터 도움을 줬어요.

그 일을 계기로 친해져서 배양장에서 팝업도 열고, 제 영상 상영회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또래 커플 친구가 있으니 축제도 같이 가고, 덕분에 통영 생활이 더 즐거워진 것 같아요. 그 친구들도 저희가 와서 더 신나게 지내는 것 같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참고로 그분들은 원래 통영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에요.

텃세는커녕 많이 환영해 준다는 점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맞아요, 전 자칭 ‘미수동 댁’이에요. 미수동에 살고 있어서 제가 그냥 스스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웃음) 그만큼 통영에 깊은 애정이 생겼어요.

통영은 항구도시라 그런지 외국인도 많고, 다양한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열려 있는 동네라는 느낌이에요. 또,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누군가 와주면 고마워하는 분위기도 있고요.

통영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가요? 주로 대도시로 상경하려 하나요?

완전히 나뉘는 것 같아요. 상경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통영에 남아 요식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통영에서 취업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고요. 그런데 의외로 통영에 남아 가업을 이어받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저희가 친하게 지내는 두 친구도 그런 케이스죠.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통영 출신을 만나는 건 흔치 않잖아요? 저도 서울에서 통영 친구는 딱 한 명 만나봤어요. 서울로 올라가기보다는 부산 쪽으로 움직이거나, 이 지역 내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통영에서 지내면서 대도시의 필요성은 얼마나 느끼나요?

대도시에서 사는 좋은 점이라면 역시 병원 같은 의료 시설인 것 같아요. 최근에는 강아지 다리 문제로 동물병원을 몇 군데 다녔지만, 서울에서처럼 확실하게 답을 얻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경험이 적은 느낌이라 불안할 때가 있어요. 여기서 계속 해결이 안 되니 결국 강아지를 서울 병원으로 데리고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또 남편이 다쳤을 때 진주에 있는 작은 의원에서 응급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도 불친절하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어 당황스러웠죠. 그때 남편이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경험을 하고 나니, 병원 문제는 대도시와 큰 차이가 있구나 싶었어요. 통영에서도 새벽 첫 차가 항상 매진인데, 어르신들이 대학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통영과 가까운 대도시는 어디인가요?

진주나 창원이 가까운 대도시예요. 두 도시 모두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어서 통영 분들도 볼일이 있을 때 종종 가시는 것 같아요.

수민 님도 병원 외에 진주나 창원을 종종 가시나요?

자주 가는 건 아니에요. 다만 통영에 없는 특정한 게 필요할 때는 가죠. 예를 들면 병원이나 도자기 관련 도예상이 창원에 하나 있어서 그런 목적이 있을 때만 가요. 웬만한 건 다 통영에서 해결되거든요.

통영이 생각보다 시골은 아니에요. 맥도날드도 있고, 스타벅스도 세 곳이나 있어요. 요즘 시골 기준이 롯데리아나 맥도날드가 있는지로 나뉜다는 말도 있잖아요. (웃음) 그런 면에서 통영은 시골이라고 할 수 없죠.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도시에서는 이것저것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여기서도 거의 다 가능해요. 당일 배송만 안 될 뿐이지, 큰 이마트 매장도 있어서 불편한 점이 없어요. 지역을 고를 때, 주변에 1시간 거리 내에 대도시가 있고, 장 볼 곳이나 카페 몇 군데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서울에는 어느 정도 자주 가세요?

의류 제작 때문에 동대문에 갈 일이 종종 있어요. 한 달에 많게는 세 번, 적게는 한 번 정도 가는 것 같아요. 놀러 가는 건 거의 없고, 대부분 업무 때문이죠.

애초에 통영에 내려올 때도 업무 때문에 서울에 자주 갈 수 있다는 점은 감수했어요. 이동 시간만 4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그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도시에서는 이것저것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여기서도 거의 다 가능해요.“

서울과 지방 생활의 또 다른 장단점도 있을까요?

지방 생활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정말 필요한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서울에서는 끊임없는 자극과 선택지가 주어져서 때로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는데, 여기선 그런 고민이 적어요. 생활이 단순해지니 생각과 시간에도 여유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삶의 질도 좋아졌다고 느껴요.

반면, 서울에서의 편리함은 확실히 그리울 때가 있어요. 24시간 언제든 원하는 걸 바로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나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은 지방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느긋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다 보니, 저는 지방의 삶이 오히려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수민 님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피로감을 느끼지만,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람을 여전히 좋아해요. 그래서 레몬샵을 통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다만, 요즘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먼 곳에서도 친구들이 저를 보러 와주는 게 고마웠지만, 제 소중한 안식처에 사람들이 자주 오는 게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죠. 그래서 이제는 “미안하지만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해 줄래?”라고 말할 때도 많아졌어요. (웃음)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저를 지치게 할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며, 관계에도 일정한 선을 두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죠. 이제는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있어요.

통영에 생활하며, 언제 행복을 느끼나요?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에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을 때예요. 보통 6시면 눈이 떠지지만, 남편이 자고 있어서 8시까지 기다렸다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러 나가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걷고 싶은 만큼 산책하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 졸리면 낮잠을 한숨 자고, 그런 여유로운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참 행복해요.

주변에서 “지루하지 않냐?”라는 질문을 자주 듣지만, 사실 서울에 있을 때도 문화생활을 자주 즐기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이곳에서 전시가 열린다고 하면 더 신나는 마음으로 찾게 되고, 통영시립박물관 같은 곳도 자주 가요. 가끔 맛있는 디저트를 다양하게 맛볼 카페가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 정도의 아쉬움이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을 방해하지는 않아요.

Story 4. 앞으로의 계획

수민 님은 통영에 평생 정착할 생각도 있나요?

언젠가 통영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통영을 부러워하는 사고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갈망이 인생에 있어서 유의미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늘 지금 있는 곳에서 최대한 즐기려고 해요. 만약 통영이 더 이상 나에게 행복한 감정을 주지 않는다면, 떠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죠. 그때는 또 다른 곳에서 그곳을 즐기고, 그 경험을 최대한 느끼며 살아가려고 노력할 거예요.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저는 노후를 위해 특별히 큰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정 기준은 세워두었어요. 통장에는 항상 일정 금액이 유지되도록 하고, 남편과 협력해서 예기치 않은 상황, 예를 들어 부모님이 아프거나 하는 일에 대비할 수 있는 금액도 마련하고자 해요.

이를 위해 매달 목표 금액을 정해 그에 맞춰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일이 잘 안될 때는 조금 더 집중하고, 잘될 때는 다음 달에 조금 여유를 두며 서로 합의하고 있죠.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는 만족도는 어떤가요?

정말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까지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사는 건 처음이에요. (웃음) 퇴근길에 걸어가면서도 행복하고, 아침에도 행복하고, 잠자리에 들 때도 행복해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해요.

만약 이 행복의 크기가 줄어든다면, 그 원인을 찾아보겠죠. 그리고 그 원인이 통영이라면, 그때는 또 다른 선택을 고민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정말 만족스럽게 살고 있어요.


Interview·Write 장용헌(A.R.E) Photo 박현성 Graphic 이은호 Edit 금혜원 송수아

My Money Story 에디터 이미지
My Money Story

토스피드 오리지널 콘텐츠 'My Money Story'는 사람들의 일과 삶, 그 사이에 담긴 돈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필진 글 더보기
0
0

추천 콘텐츠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