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으로 확장되어 자연에 뿌리내리는 삶

by My Money Story

Story 01. 서울을 떠날 결심

서울과 구례를 오가며 4도3촌* 형태로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일본 도쿄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일본의 소도시와 시골 마을을 자주 여행했어요. 그곳 사람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 작은 농장을 가꾸며 자급자족하거나, 전통 공예를 이어가는 공방을 운영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지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다웠고요.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지켜보며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은 마치 씨앗처럼 마음속에 심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라났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사실 바로 지방 정착을 생각하기가 어려웠어요. 살고 싶은 지역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어딘가 조용한 마을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큼은 한 번도 접은 적이 없어요. 그렇게 그때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 4도3촌: 일주일 중 4일은 도시에서, 3일은 지방에서 생활하는 삶의 형태

결심이 서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네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마치 인생의 곡선에서 ‘가야 할 때'가 정해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고, 20대 때부터 생각해 왔던 일이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넘었더라고요. 그렇게 천천히 때를 기다리다 보니, 2023년이 되어서는 이제 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지방 정착을 목표로 4도3촌을 하고 있는 셈이네요. 어떤 부분에서 떠날 결심이라고 할까요. 시기적절함을 느꼈나요?

삶의 터전을 옮기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잖아요. 너무 늦어지면 그런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도 있으니, 너무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나이가 그 마지노선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만 계속 일하다 보니 새로운 것을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고요. 이 배움에 대한 열망이 결국 결심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가고 싶은 지역이 명확히 정해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지방에서 배우고 싶은 것들은 어떤 건가요?

저는 ‘재료의 산책’ 프로젝트를 통해 제철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요. 그게 식당이 될 때도 있고, 워크숍이나 영상, 사진 또는 책의 형태로 나오기도 하죠. 이런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방에서 직접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흙이 있는 곳에서 당근이 자라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면서 제가 원하는 시점에 수확하는 그런 경험이요. 재료를 사용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요리에 담기는 이야기들도 훨씬 풍부해질 것 같아요. 서울에 있으면 이런 것들이 굉장히 제한적이거든요.

또 요리를 하다 보면, 서울에서 사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다양한 재료들이 긴 시간을 거쳐 서울까지 오고, 저는 그 재료들을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해서 요리하고, 그렇게 만든 요리는 다시 높은 가격에 판매해야 하죠.

이런 순환을 반복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차라리 재료들이 자라는 곳에서, 그들과 가까운 곳에서 요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던 것 같아요.

요리 연구가 요나가 모으고 보관해온 음식의 재료들

운영하는 ‘재료의 산책’처럼, 재료를 찾아 떠나는 거네요.

그렇네요. (웃음) 서울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비용들이 높아서 제가 제공하는 식사의 가격도 계속 오르게 돼요. 인건비, 부동산, 전기세 같은 모든 요소를 고려하다 보면, 제가 생각한 적절한 식사 비용보다 훨씬 커지죠.

그런데 이 비용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니까요. 그렇다면 차라리 지역을 옮겨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으로 가면 재료의 퀄리티도, 비용적인 부분도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겠죠. 산지에서 직접 재료를 구매하면 불필요한 이동이 없어 방부제 같은 것도 쓰지 않아도 될 테고요.

물론 서울만큼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제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에 있으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비용들이 높아요. 지역을 옮겨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바로 이주하지 않고, 4도3촌을 먼저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구례 부동산 특성 상 정착할 만한 집을 바로 구하기는 쉽지 않겠더라고요. 이주 결심 후 먼저 집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는데요. 서울에서는 ‘직방’이나 ‘네이버 부동산’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매물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구례는 온라인으로 매물을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구례를 직접 오가며 부동산을 다녔죠. 주변에 물어보니, 구례에서는 먼저 살고 싶은 마을을 정하고, 그 마을의 이장님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장님이 동네에 빈집을 소개해 준다고요. 여기는 보통 마을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중개가 이루어지더라고요. (웃음)

마을 사람들이 중개를 해주는 건가요?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더 어려움이 있겠는데요.

네, 보통 입소문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사람들도 ‘나 언제 이사 갈래’하고 확정 짓기보다 ‘이사 갈까?’ 정도로 생각을 두고 주변에 슬쩍 얘기해 두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러면 ‘저 사람이 이사 갈 수도 있다는데, 너 혹시 이 동네에 관심 있어?’ 같은 식으로 전달되죠.

그래서 구례에 내려와 지인들을 만나면 ‘이 동네에 집이 나올 수도 있다는 데, 한번 봐볼래?’ 하며 갑자기 임장이 시작되어요. (웃음) 정말 인연이 맞아야 내 집을 만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다 보니 한두 번 내려와서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어렵겠구나 싶어서 장기전으로 생각했어요. 내려올 때마다 숙소를 알아봐야 하는 불편함도 있고, 비용도 생각보다 많이 들더라고요. 가깝게 지내는 구례 친구들 집에도 몇 번 신세를 졌는데, 미안한 마음이 커졌어요.

그래서 구례 시내에 단기 월세를 구해서 일주일 중 4일은 서울에서 일하고 3일은 구례에 머물며 정착할 집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본격 임장 베이스캠프 느낌이네요. 지내는 곳은 어떤 형태이고, 월세는 어느 정도인가요?

작은 빌라이고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8만 원이에요. 부담이 크지 않은 금액이죠? 구례 읍내 중심가의 빌라인데요. 제가 원하는 동네의 집은 아니지만, 구례에 단기 임대 빌라가 거의 없어서 이곳도 구례 친구의 소개로 어렵게 구할 수 있었어요.

Story. 02 서울과 구례에서의 삶

혼자일 때보다, 가족 구성원이 있을 때 거주 지역을 옮기는 데 더 어려움이 있다고도 해요. 요나 님은 배우자 분과의 의견 충돌은 없었나요?

사실 남편을 만나기 직전에 혼자서 서울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했었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났고, 탈서울보다 결혼을 먼저 하게 됐죠. 부모님도 놀라셨어요. “너 어디 내려가서 산다더니, 갑자기 결혼이냐”고 할 정도로요. (웃음)

남편은 탈서울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에요. 반면 저는 꾸준히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 특히 소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이야기했어요.

그 과정에서 남편도 점차 서울에서 계속 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남편도 저와 비슷한 성향이거든요. 하지만 그때는 남편이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제 오랜 염원을 잠시 미뤄두고 서울에서 더 일을 해보기로 했고, 지금의 작업실도 구했죠. 그러다 남편이 회사에서 나오게 되는 상황이 생겼어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선 거죠. 새 직장을 구해 계속 서울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오랜 꿈을 조금 당겨서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저희는 후자를 선택했죠. 떠나기로 결심하고 남편도 ‘재료의 산책’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구례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어요.

많은 지역 중, 구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서울을 벗어나기로 결심했을 때는 수도권 위주로 찾아봤어요. 양평처럼 서울에서 1~2시간 거리에 있어서 손님들이 오가기 쉬운 곳들로요. 아무래도 식당에 손님들이 와야 운영이 유지되니까, 그 편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 그런 조건을 우선하다 보니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고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1년 정도 주저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23년 여름, ‘다함께차차茶’라는 구례에서 개최된 차(茶) 문화와 자연을 탐구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됐어요. 저는 그 행사에서 음식을 담당했죠. 이 계기로 구례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됐어요.

동네 분위기도 좋고, 무엇보다 펼쳐지는 자연 풍경이 정말 너무 멋지잖아요! 서울에서 멀긴 하지만, 구례구역이 있고 KTX도 운행해서 서울에서 2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어서 접근성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사성암에서 보는 구례 전경

구례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방에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평지에 작은 마을들이 모여있는 형태인데 거대한 자연이 마을을 감싸주고 있는 듯한 안정감 같은 것도 동시에 들었고요.

맞아요.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면, 10년 후의 저를 상상했을 때 서울에서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았어요.

구례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화도 사라지고, 기댈 수 있는 땅으로 느껴져요.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이 저를 진짜 하찮게 만들어요. ‘나는 정말 작은 존재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상하게도 그 느낌이 참 좋아요.

서울에서는 늘 스스로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살아남을 것 같은 압박을 받았어요. 스스로를 더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구례에서는 오히려 ‘내가 감히…’하는 마음이 들어서 작아지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이곳에서는 자연이 모든 것을 해내고, 저는 그저 아주 소박한 임무만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이런 소박한 삶이 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후의 저를 상상했을 때, 서울에서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았어요.”

오늘 마침 카페 ‘안음’, ‘도재명차’와 함께 팝업 식당을 운영해서 제가 경험해 볼 수 있었는데, 이 팝업이 소박한 임무로는 느껴지지 않는걸요?

‘재료의 산책’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구례에서 운영한 팝업 식당처럼 더 넓은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요. 식사를 예약하면, 식사하러 오는 길부터 기대감이 시작되잖아요.

손님들이 아름다운 길을 걸어와 식사를 즐기고, 다시 그 길을 걸어 돌아가면서 그 여운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식사만 하고 가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경험이죠.

서울에서는 식사 경험의 호흡이 너무 짧다고 느껴져요. 바쁜 일상에서 음식을 말 그대로 해치우는 식이 대부분이잖아요. 구례에서는 시간을 들여 자연 속에서 식사와 공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요.

카페 ‘안음’에서 진행한 팝업 운영 모습

Story 03. 구례로의 이주 계획

구례에서 정착할 집은 어떤 형태를 찾고 있나요?

최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서 계약을 앞두고 있어요. 오래된 구옥이고 마당이 있는 주택인데, 이맘때(가을) 보이는 풍경이 정말 멋져요. 광활한 황금빛으로 물드는 곳이죠. 매천로를 따라 산 쪽으로 가다 오른편에 있는 마을로, 구례에 머무는 동안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해요. 개방감이 있고 아주 조용한 동네라 마음이 끌렸어요.

이곳으로 이주하면 주거와 작업 공간을 합쳐서 ‘재료의 산책’도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어요. 그래서 꽤 넉넉한 크기의 집과 마당이 있었으면 했고, 한 가지 더하자면 주변 길이 아름답기를 바랐어요. 그 조건들에 잘 맞는 집을 찾았죠. 저는 산을 정말 좋아해요. 서울에서도 산과 가까운 곳을 찾아다녔는데, 마지막으로 엄청 큰 산을 고른 느낌이에요!

(좌) 매천로에서 보는 황금빛 들판 (우) 요나가 좋아하는 구례의 풍경

터전을 구하였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주를 준비하겠네요.

저는 서울에서 작업실도 자주 옮기고 집도 여러 번 이사 다녀서 부동산에 대해 꽤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의 경험이 거의 쓸모가 없더라고요. 서울에선 땅을 볼 일이 잘 없잖아요. 여기서는 땅을 봐야 하더라고요.

게다가 ‘일반 음식점’ 사업자로 집터를 구하려다 보니 더 까다로워졌어요.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도 그곳이 농림지역*이면 허가가 나지 않거든요. 자연 보호 구역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상업 용도로 허가가 가능한 지역이 매우 한정적이에요. 지도에서 보면 색깔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어요. 이런 제한들로 집을 구하는 데에만 1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서울과 비교하면 매매 가격은 정말 낮지만, 시골집에서는 또 다른 문제도 있어요. 대출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주택 담보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시골집들은 감정가가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제가 2억 원에 집을 사도, 그 집이 2억으로 평가되지 않아서 대출을 받기가 어려운 거죠. 집이 대부분 오래되다 보니, 감정가가 낮아요.

서울에서보다 초기 자본금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겠네요.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집을 고쳐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요.

사업적으로 지원 사업이나, 관련하여 이주 지원 사업 등도 알아보셨나요?

지원 사업도 열심히 알아봤지만, 집과 사업자가 함께 있는 경우엔 받기가 어렵더라고요. 주택 개량 같은 지원 사업은 대부분 주택용으로만 한정되기 때문에, 저희 같은 경우에는 혜택이 없었어요.

귀농한다면 이야기가 다를 것 같긴 해요. 귀농 지원 센터도 있고요. 물론,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저희의 경우 서울보다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더라고요.

귀농의 꿈도 있나요?

저희가 계약하려는 집에 100평 정도의 텃밭이 있어요. 그래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긴 해요. 하지만 재배한 작물을 판매하려는 생각까진 없어요. 이것저것 키워보고 연구하며 배우고 싶은 마음이지,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어요.

오늘 팝업을 함께 운영한 카페 ‘안음’ 분들과는 어떤 계기로 친해졌나요?

앞서 언급한 구례에서 열린 ‘다함께차차茶’ 행사에 참여했을 때, 주최자분이 좋은 카페가 있다며 ‘안음’에 데려가 주셨어요. 그렇게 처음 만났는데, 안음 사장님이 제 SNS를 팔로우하고 있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대도 비슷하고 성향도 잘 맞아서 빠르게 친해졌어요. 사장님 두 분 중 한 분은 하동에서 ‘도재명차’를 가업으로 이어받아서 하고 있는데, 주변에 얽힌 지인이 많더라고요. 구례에서 만나지 않았어도 어디선가 만났을 것 같아요.

구례의 동네 분위기는 어떤가요?

지역마다 사람들의 성향이 조금씩 다르다고 느껴요. 구례의 동네 분위기는 조금 독특해요. 여기는 마치 ‘I(내향형)’들의 집성지 같은 느낌이에요.

또,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모두 고양이 집사거든요. 열 명 중 열 명이요. (웃음) 저도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데, 이 점이 공동 관심사가 되어 금세 친해졌어요. 모이면 낯을 가리다가도 고양이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죠.

저도 낯을 많이 가려서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아서 ‘이 정도면 나도 여기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페 안음의 마스코트 단풍이

실제로 4도3촌을 하며 경험한 구례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집을 구해서 4도3촌을 시작한 건 올해 8월 말쯤부터였지만, 거의 1년 정도 구례와 서울을 오가면서 생활했는데요. 구례 생활을 경험하면서 매일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게 정말 좋았어요.

산과 들의 모습이 하루하루, 계절마다 다르게 변하는데, 그걸 보는 게 너무 즐겁더라고요. ‘빨리 와서 매일 이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엄사에 국보인 홍매화가 있는데, 봄이 되면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몰려와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제대로 보기도 어려워서, 새벽 6시에 가봤거든요. 아무도 없는 절에서 새벽에 그 아름다운 홍매화를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런 멋진 절과 산 근처에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자연 속에서 지내다 보니, 점점 서울 생활이 더 힘들어졌어요. 서울에 돌아오면 너무 시끄럽고, 인구 밀도도 높아서 피로감이 컸죠. 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좋아하는데, 서울에서는 일상의 리듬이 자꾸 깨지는 느낌이었어요.

구례에선 대부분의 상업 공간이 저녁 8시면 문을 닫고, 동네가 조용해져요. 저희 생활 패턴과 잘 맞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활이 균형을 이루는 것 같았고, 서울로 돌아오면 왜 여기 있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자꾸 들었죠. 서울에서 저희가 누리고 있는 인프라가 무엇인가 생각해 봤을 때, 병원이나 편의시설 말고는 특별히 끌리는 게 없더라고요.

“매일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아요. 멋진 절과 산 근처에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Story 04. 구례에서 꿈꾸는 삶

구례 정착 이후, 기대하는 삶의 형태는 어떤 모습인가요?

집의 주방과 작업실의 주방을 하나로 합치고 싶은 게 오랜 꿈이에요. 주방이 두 개이다 보니 도구도 다 두 배로 필요해서, 작업을 할 때마다 들고 오가는 게 너무 소모적이더라고요.

저의 요리 작업은 제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공간에서 이뤄져야 제 삶이 더 자연스러워질 것 같아요. 그래서 두 공간을 합치는 것이 목표였는데, 서울에서는 꿈꿀 수 없던 일이었죠.

보통의 사람들은 일과 쉼을 명확히 구분하고 싶어 하잖아요. 공간을 합친다는 건, 일과 쉼의 구분이 명확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일과 쉼의 경계를 없애고 싶어요. 이게 오히려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일 자체가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피곤함도 덜하거든요. 작업실에 ‘출근한다’고 표현하긴 하지만, 사실은 좋아하는 일을 하러 놀러 나온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이걸 굳이 집과 나누지 않고 합쳐야 제 호흡이 더 안정적일 거라 생각해요. 고양이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일할 수 있는 점도 좋고요. 한 울타리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삶을 꿈꿔요.

(좌) 작업실에서의 요나 모습 (우) 작업실에 놓인 요나의 그릇들

대도시를 떠날 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자녀 계획도 있는지 궁금해요.

서울에 있을 때는 자녀 계획이 없었어요. 아기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서울에서의 생활 자체가 힘들고, 제가 일을 하다 보니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아이가 서울에서 받게 될 영향들을 생각하면, 키우고 싶지 않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4도3촌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 단위로 서로 챙겨주는 문화가 아이에게는 정말 좋은 환경 같아요. 여기선 주변 어른들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 같고, 흙을 만지고 자연을 경험하면서 자라게 하고 싶어요.

서울처럼 놀거리가 많지 않아도, 오히려 아이가 똑똑하게 성장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집에서 일을 하게 될 테니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요. 자녀 계획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구례에 정착할 생각도 있나요?

이곳에서 평생 살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막상 살아보니 안 맞을 수도 있죠. 2년 뒤 인터뷰에서는 ‘너무 별로예요. 서울로 가고 싶어요, 영화관 가고 싶어요’ 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웃음) 일단은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노후 계획이라고 할까요. 나이가 더 들면 화개에서 살고 싶어요. 그곳은 정말 아름다운 동네라서, 저는 화개에 울컥할 정도로 감동해요. 너무 좋아서요. 어릴 때부터 ‘언젠가 여기서 살아야겠다’라고 마음먹었을 정도예요. 이번에도 화개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어요. 구례에는 비밀이에요. (웃음)

요나 님에게 탈서울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구례로의 이주는 저의 삶의 방식에 맞는 지역을 찾아 떠나는 일이라 생각해요. 서울을 떠난다는 게 저에겐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가 더 이어지는 경험처럼 느껴지거든요.

이곳에서는 흙과도 연결되고,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더 넓은 관계가 생겨나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집이라는 공간도 일과 생활이 확장되는 장소가 되죠.

서울에서는 일과 생활이 분리되어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느낌이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제 세계는 더 커지지만, 저 자신은 오히려 더 겸손하고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Interview·Write 김현의(A.R.E) Photo 박현성 Graphic 이은호 Edit 금혜원 송수아

My Money Story 에디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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