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발견한 삶의 균형
ㆍby My Money Story
Story 01. 공주로의 이주
서울에서 충청남도 공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던 걸로 알고 있어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건축사 사무소에서 약 4년간 실무 수련을 하며 경력을 쌓았어요. 이후 독립해서 2년 정도 엔지니어링 사무소와 협업하거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비교적 여유롭게 지냈죠.
그러던 중 충남 공주의 공영 차고지 프로젝트를 외주로 맡게 되었어요. 고속버스, 시내버스, 택시 기사분들을 위한 정비고와 휴게시설이 있는 두 동의 건물을 설계했는데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주를 자주 오가다 보니, 그 도시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됐어요.
그 무렵 도시 재생과 관련된 제안서를 많이 쓰면서, 도시 계획과 재생에 관해 관심이 깊어졌어요. 공영 차고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엔지니어링 사무소는 친구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곳이었는데, 마침 공주에 유휴 공간으로 남은 건물이 하나 있었죠.
친구는 제가 도시 재생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을 해봐”라고 제안해 주었어요. 그때 문득 ‘여기서 책방이라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공동대표인 목진태 씨도 독립책방을 열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내려가 자리를 잡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건물이 지금의 ‘마을호텔’인가요?
네, 맞아요. 사실 처음에는 회사를 차리고 대표를 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도 잘 몰랐어요. 친구가 “너 놀고 있으니까 해봐”라는 말에 시작하게 된 거죠.
도시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친구들과 공간을 운영하던 친구들, 저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 주주가 되어 법인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마을호텔 전경 (사진 제공: 박우린)
마을호텔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마을호텔은 도시와 건축을 업으로 삼던 친구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커피와 책을 좋아하는 우리가 매일 드나들고 싶은 공간을 직접 만들고 운영해 보자는, 대책 없이 순진하지만 설레는 도전이었죠. (웃음)
저희가 사랑한 공간들은 도시의 맥락 속에서 존재하며, 공간을 채우는 익명의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매력이었어요.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가 바로 마을호텔이에요.
마을호텔은 크게 독립책방 ‘블루프린트북’과 카페 ‘프론트’로 구성되어 있어요. 도시의 맥락을 공간 속에 담기 위해 주변 가게들과 생산자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거래했어요. 예를 들어, 공주에서 생산된 밀을 사용해 빵을 만들고, 로컬 로스터리의 원두를 들여오는 방식으로요.
또, 공간을 함께 채우는 사람들을 만들어가기 위해 책을 매개로 한 북토크, 영화제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며 지역 커뮤니티와 소통했어요. 그렇게 쌓인 기록들이 ‘마을호텔’이라는 이름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정체성을 만들어갔다고 생각해요.
낯선 지역에서 창업하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아니요. 오히려 설렜어요.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로컬 콘텐츠를 다루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어요. 고즈넉한 길과 옆으로 흐르는 제민천이 있는 동네 분위기도 저에게 큰 환기가 되었고요. 여기서 내가 꾸려갈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설레었어요.
공주에서의 주거 형태는 어땠나요?
셰어하우스 형태였어요. 저와 목진태 대표,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이 같이 지냈죠. 서울로 오갈 일이 많을 것 같아서 공주 터미널 근처에 있는 아파트를 구했어요.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가 120만 원 정도였고, 34평에 방이 세 개 있는 집이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 제일 좋은 집인 것 같은데요. (웃음)
공주로 이주하기 전에도 셰어하우스 형태로 지냈다고요.
네, 맞아요.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둘이나 셋이 함께 사는 게 익숙했어요. 스페인에서 유학할 때도 셰어하우스에 살았거든요. 스페인에서는 원룸 같은 개념이 없어서 함께 큰 집을 나누어 쓰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함께 모여 살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들이랑 음양의 조화도 생각하면서 남녀 비율을 맞춰서 함께 살기 시작했죠. (웃음)
여럿이 모여 좀 더 쾌적한 공간에서 살 수 있었겠네요.
맞아요, 그게 셰어하우스의 핵심이죠. 원룸에 살 돈으로 넓은 거실과 주방, 욕조가 있는 화장실까지 쓸 수 있으니까요. 거실과 주방을 함께 쓰며 생기는 즐거움도 컸고요.
한국에서는 보통 여러 사람이 같이 살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걱정하는데, 저희는 잘 맞는 친구들이라 큰 문제가 없었어요.
Story 02. 공주에서의 경제활동
마을호텔을 시작하실 때 초기 자금은 어느 정도 필요했나요?
초기 투자금으로 다섯 명이 각자 5백만 원씩 모아서 총 2천5백만 원을 마련했어요. 책방을 세팅하고, 몇 달 후에는 카페도 열었죠.
그때는 그 정도면 충분할 거로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순진했던 것 같아요. 커피 머신 하나만 사도 최소 6백만 원이 넘잖아요? 그런데 그 자금으로 사업을 유지하려니 당연히 부족했죠.
그래서 빠르게 자기 자본을 추가로 투입하기 시작했어요. 사업 경험이 없다 보니 비용과 매출, 지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죠.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그런 부분이 정말 막막하죠.
맞아요. 세금 계산서도 누가 누구에게 발행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기본적인 ‘공급자’와 ‘용역’의 개념도 모른 채 시작했으니까요.
그러다 필요에 따라 고용을 늘리면서 자금 지원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청년들이 공주로 이주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지원 혜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저희는 법인 대표자라서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은 지역으로 이주하는 청년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업주나 대표자는 지원을 받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카페 운영자로 서울의 친구를 섭외하면서 그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지역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어떤 지원 사업을 받으셨나요?
저희는 ‘사회적 기업’을 생각해 보게 됐어요.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공공 행정이나 지역 재생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거든요.
사회적 기업은 고용노동부에서 관리하는 프로그램인데, 지역 고용을 창출하면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방식이에요. 1년 차엔 직원 급여의 약 60%, 2년 차에 50%, 3년 차에 40%로, 최저임금 기준의 40~60%의 금액을 지원받았어요.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다 보니 고용 창출 비용이 상당히 절감되어서 최대로 8명까지 함께 일할 수 있었죠.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점차 알아보게 되신 거군요.
네, 자금이 빠듯하니까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웃음)
서울에 있을 때는 몰랐던 다양한 지역 지원 혜택이 있었어요. 도시 재생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고, 저희는 그중 사회적 기업 지원을 받게 됐죠. 공주에 젊은 청년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빠르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층은 카페 프론트, 2층은 독립서점 블루트린트북으로 구성된 마을호텔 (사진 제공: 박우린)
마을호텔이 자생력을 갖췄다고 보시나요?
아직 자생력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자영업을 지속하려면 기본적인 유동 인구가 필요한데, 소도시는 인구 밀도가 부족하거든요.
처음엔 ‘우리가 사람을 불러 모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장사는 기본적인 유동 인구가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는 걸 실전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죠.
사업 초기에는 로컬 비즈니스가 주목받으면서 골목 곳곳에 책방과 작은 카페들이 생기고 도보 여행객들이 조금씩 늘긴 했어요. 하지만 매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웠어요. 계절마다 수요가 크게 달라져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가 힘들더라고요.
또 공주는 금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이 나뉘는데요. 강북은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아파트와 터미널 등이 들어서 상대적으로 활기가 있지만, 금강 남쪽은 구도심으로 무령왕릉, 공산성이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이에요. 경주처럼 고밀도 개발이 어렵고 고층 건물도 지을 수 없어서 관광객은 많지만, 상업적 활기를 띠기가 힘든 구조죠.
독립책방 운영은 어땠나요?
그 당시 서울에서도 독립책방이 많아지고, 저도 책을 좋아하다 보니 막연히 책방 운영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운영해 보니 책방으로 수익을 내는 건 정말 어렵더라고요. 생각보다 더 수익 구조가 나오지 않아서 저희끼리 “책방은 마치 명품백 같은 존재야”라고 농담할 정도였어요.
다양한 행사도 준비해 보고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유지에 어려움이 있어 무인 운영 방식으로 전환했죠. 그래도 독립책방의 핵심 자산은 평대와 서가를 구성하는 큐레이션 능력이라고 생각해서, 목진태 씨의 큐레이션은 유지하되 무인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었어요.
소도시에서 자생력을 갖추는 게 쉽지 않음을 느끼셨겠어요.
맞아요. 소도시의 작은 카페는 관광 성수기인 봄, 가을에는 손님이 많지만, 여름이나 겨울에는 운영이 정말 힘들어요. 다행히 정부 지원 덕분에 인건비를 보충할 수 있어 그나마 버틸 수 있었죠.
지원받은 만큼 지역에서 좋은 사례를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단순 자영업을 넘어 우리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죠.
3년 정도 운영하고 나서 목진태 대표와 함께 마을호텔을 돌아봤을 때, 약간의 부채 의식도 들었어요. 정부와 행정에서 받은 지원에 대해 ‘이만큼 혜택을 받았는데 남은 성과가 없네’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스스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셨군요.
소도시의 경우 유동 인구가 제한적이라 매출 규모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이런 환경에서는 법인이 요구하는 고정비와 운영비를 충당하기 어려웠죠.
법인은 보통 확장성과 지속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구조인데, 소도시의 특성상 고객 기반이 좁아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려웠어요. 결국 공간을 잘 만드는 것보다, 그 공간을 잘 운영하고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게 됐나요?
2022년, 공주시 문화도시에서 유휴공간을 단기간 활용해 마을호텔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이를 계기로 ‘올드타운 스쾃팅(Old Town Squatting)’이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죠. 공주의 비어 있는 공간을 영화제, 전시, 음악회 같은 문화 콘텐츠로 채우는 방식으로 기획해 진행했어요.
2023년에는 올드타운 스쾃팅을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키고자 창업 도약 패키지에 지원했고, 교보문고 협업팀으로 선정되면서 제2회 올드타운 스쾃팅을 개최했어요. 궁월장 여관과 직조 공장을 활용해 ‘이상한 책나라’, ‘제민천 보통 영화제’, ‘비브라 음악회’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콘텐츠의 깊이와 다양성을 더했어요.
지역의 빈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문화적 장을 제공하는 셈이네요.
그렇죠. 이 프로젝트는 지역에 일시적이지만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깨달은 건, 결국 저희의 핵심은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 비즈니스’라는 점이었어요.
Story 03. 공주에서 서울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공주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면서 많은 성과를 이루신 것 같아요. 지금은 서울로 돌아와 ‘클리(QLI)’ CPO로 활동 중이시죠.
네, 2021년에 클리에서 처음 공주의 세컨하우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에게 협업 제안이 왔어요. 공주에서 매물 찾기부터 비즈니스 확장까지 클리와 협력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죠. 클리의 공동 창업자들이 제 대학 동기들이라, 서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천천히 합류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렇게 일주일 중 나흘은 서울의 클리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나머지 사흘은 공주에서 마을호텔을 운영했는데, 쉬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일주일 내내 일한 셈이라 정말 힘들었지만, 두 사업을 모두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열심히 했어요.
클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클리의 서비스 ‘마이세컨플레이스’는 세컨하우스 공유 플랫폼으로, 개인이 소유하기에 부담스러운 세컨하우스를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임대하여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예요.
세컨하우스의 구매부터 관리, 사용, 재매각까지의 전 과정을 지원하기 때문에, 투자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면서 필요할 때만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죠. 클리는 이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주거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자 해요.
공주를 베이스캠프 삼아 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현재 클리에서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맞아요, 클리에 합류하게 된 계기도 그 때문이에요. 마을호텔을 통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키워보려 했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좀 더 확장성이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공주의 마을호텔이 로컬에 뿌리내린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형태라면, 클리는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며 도시에 뿌리를 두고 로컬로 확장하는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어요. 클리에서는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성장 과정을 경험해 보고 싶었고, 투자자들과의 관계, 비즈니스 인큐베이팅* 프로세스도 배우고 싶었어요. * 비즈니스 인큐베이팅(Business Incubating): 신생 기업이나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금, 전문 지식, 네트워크 등 다양한 자원을 지원하는 과정. 창업 초기의 기업들이 자립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
이전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왜 이걸 아무도 안 하지?’라는 생각으로 직접 하거나, 주변 친구들에게 권유하곤 했어요. 빵을 잘 만드는 친구에게는 “지역에서 자란 밀로 빵을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하고, 맥주 양조를 잘하는 친구에게 “우리 쌀로 양조해 보자”고 하면서요.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엉망진창이었지만 겁 없이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통 4도3촌 같은 생활 방식은 힐링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우린 님에게는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이었겠어요.
그렇죠. 그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고, 클리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 지금은 서울로 다시 이주하여 저는 클리 비즈니스를 메인으로 하고, 마을호텔은 목진태 대표가 주로 맡아서 이어가고 있어요.
마을호텔은 ‘이 사업의 핵심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서울의 이태원으로 확장해 로컬 브랜딩과 상권 강화를 목표로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가고 있어요. 공주에서 시작한 공간들은 쇼룸 형식으로 남겨두고,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요즘 서울 생활이 치열하니 지방으로 가볼까 하는 분위기도 많은 것 같아요. ‘로컬’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면서요.
맞아요. 그런데 그런 접근이 위험하다고 봐요. 제가 경험자잖아요. (웃음) 지방으로 이주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서울이 힘든데 왜 지방으로 가고 싶나요?”라고 묻고 싶어요. 대부분은 “좀 더 편할 것 같아서”라고 답하겠지만, 실제로 가보면 기대만큼 쉽지 않아요.
누군가 우린 님과 같은 로컬 창업을 꿈꾸고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확실한 비전과 철저한 계획이 필요해요. 단순히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유통과 제조, 마케팅과 브랜딩까지 고려해야 해요. 지방이라고 해서 더 쉬울 거로 생각하면 오히려 위험해요.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상권 분석부터 사업 계획을 철저히 준비하듯이, 지방에서도 똑같은 마인드로 접근해야 해요.
단순히 ‘지방은 좀 덜 치열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내려가서는 결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민도 꼭 필요하고요.
“지방에서의 사업이 기대만큼 쉽지 않아요.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철저히 준비하듯이, 똑같은 마인드로 접근해야 해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민도 필요하고요.”
Story 04. 도시와 시골의 균형
지방으로 이주하기 전, 어떤 삶을 기대했나요?
공주에 가면 여유로운 강변을 달리면서 자전거도 타고 자연을 즐기면서 살아야지 했어요. 그런데 그건 서울에서나 어디에 살든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제가 공주에서 산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건 아니었어요. 자연 속에서의 삶이라기보다는 치열하게 일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적인 생활의 연장이었죠.
오히려 제 삶은 더 치열해졌고, 너무 바쁘다 보니 건강까지 해칠 정도였어요. 그때 깨달았죠. 지방에서의 삶이 무조건 여유롭고 편할 거라는 건 다소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걸요.
그렇다면, 공주에서의 생활은 우린 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저에게 공주는 생활의 영역이 달라진다는 느낌보다는, 일터의 의미가 더 강했어요. '시작하면 안 될 걸 시작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웃음) 저에게 탈서울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었어요.
공주에서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힘들었던 건 익명성이 사라졌다는 점이었어요. 서울에서는 제가 어디에 있든 누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공주에선 ‘서울에서 온 여자애가 이런 걸 하고 있네’라는 시선이 항상 따라다녔어요. 그 익명성의 상실이 저에게는 큰 어려움이었죠. 익명성이 저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어요.
지방에서 생활할 때,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는데, 실제로 불편함은 없었나요?
서울에 살 때도 덕수궁이나 시립미술관을 매달 가는 게 아니라, 몇 년에 한 번 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아요. 저는 서울과 대전을 가까운 생활권으로 느끼면서 살아서 문화적 인프라에 대한 불편함을 크게 느끼진 않았어요. 사실 모든 걸 다 갖춘 곳을 찾으려면, 서울도 공주도 완벽히 충족시킬 순 없는 것 같아요.
이후에 다시 지방으로 터전을 옮길 생각도 있나요?
설계사무소에서 일할 때 ‘이럴 바에야 농사 지으며 살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시골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고 막연히 꿈꿨죠.
그런데 요즘에는 일은 서울에서 하고, 산이 있는 곳에 작은 공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가끔 임야 경매 사이트를 들여다보기도 해요. (웃음) 작은 오두막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런 공간이 있으면 저에게는 딱 맞는 삶일 것 같거든요.
사실 저는 어디서든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정말로 어느 곳에서든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클리에 합류하시게 된 배경에는 도시와 시골의 균형에 대한 우린 님만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완전히 이주하기보다는 서울과 지방 간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어요. 클리에 합류한 것도 제가 생각하는 도시와 시골의 균형을 실현해 볼 수 있는 과정이라고 느꼈거든요.
사실 ‘탈서울’이라는 단어 자체가 다소 강하게 들리기도 해요. 마치 서울을 ‘탈출’해야만 할 것처럼 들리잖아요. 서울과 지방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더 이상 동시대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도시와 지방의 경계를 넘나드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이네요.
지금은 디지털 기술과 모빌리티의 발전 덕분에 도시와 지방을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서울에서 일하면서도 원할 때는 지방의 자연과 여유를 충분히 즐길 수도 있죠.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제는 귀농·귀촌자 모집이 아니라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해,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사람도 지역 인구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중앙정부나 지자체들이 이제는 기존의 인구 정책에서 벗어나 도시와 시골이 함께 상생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법령에서도 도시와 시골을 구분 짓지 않는 개념들*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탈서울’이라는 말도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클리의 활동을 통해 도시와 지방을 연결하며, 균형 잡힌 삶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어요. *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상 인구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관광 등으로 지역을 방문하여 체류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이러한 생활인구를 확대하기 위한 지원 정책이 수립되고 있다.
“완전히 이주하기보다는 도시와 시골의 균형을 맞추고 싶어요. 서울은 ‘탈출’해야 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요?
클리를 통해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허물며, 언제든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싶어요. 클리와 마을호텔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Interview·Write 김현의(A.R.E) Photo 박현성 Graphic 이은호 Edit 금혜원 송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