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ㆍby 김동길
올해도 올랐습니다. 한국의 주택가격은 매달 사상 최고치를 쓰고 있죠. 주가의 경우, 코스피가 2021년 6월 25일 장중 역사적 최고치 3,316포인트에 도달한 이후, 8월에 3,100선이 붕괴되긴 했으나 최근 다시 반등하는 등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2020년 3월 한 달 동안 지수가 600포인트가량 하락했으나, 그 후 지금까지의 상승폭은 1,800포인트로 두 배 넘게 올랐습니다.
미국은 더합니다. 주택가격과 주가가 천장을 뚫은 지 오래입니다. 주택가격 지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4년 전에 일찌감치 넘어섰고, 지금은 말 그대로 하늘로 치솟고(skyrocketing) 있습니다. 다우존스 지수는 8월 기준으로 35,000을 넘었습니다. 최저 7,000 수준이었던 2009년 대비 5배가량 올랐고요. 이처럼 자산시장의 끝없는 활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섭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금융기관의 손실 가능성 분석이고, 취미는 금융위기 관련 책 읽기입니다. 그런데 자산 가격의 끝 모를 상승을 보고 있자니 이러다 또 한 번 시장 붕괴와 금융위기를 맞이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오를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데, 이러다가 다시 큰 위기가 오는 것 아닐까.’
그래서 1930년 세계 대공황 발발 전인 1920년대의 미국 경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기는 지금처럼 자산시장의 초호황기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1920년대는 1918~19년 전 세계에 퍼져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라디오, 자동차가 보편화되는 등 지금의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처럼 신기술로 인한 혁신이 일어났던 시기라, 사회·경제적으로 지금과 유사하죠.
현재는 과거와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유사한 양상을 띠기도 합니다. 따라서 과거의 사례는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100년 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끝 모르고 질주하던 1920년대 미국 자산시장과 경제
1918년 11월 연합국과 독일의 휴전협정 체결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났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최대 사망자수 2,500만 명의 3배에 가까운 7,0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독감도 1920년부터 수그러들었습니다.
미국에 번영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세계대전으로 인해 피폐해졌던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미국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산 제품들이 유럽에 많이 수출되었고, 1억 명이 넘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했기에 미국 경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1921년 최저 64 정도였던 다우존스 지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1925년 100을 넘었고, 1927년 150, 1929년 9월에는 381로 6배 가까이 상승합니다.
주가지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자, 투자 저변도 확대됐습니다. 기존에 투자하던 부자뿐 아니라 전차 운전사, 재봉사, 이발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서민도 주식투자에 적극 나섰죠. 당시 신문과 잡지에는 주식투자로 부자가 된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실리는 등 성공 사례가 넘쳐났습니다. 또한 1920년에 투표권을 갖고 사회에 활발히 진출하기 시작한 여성들 역시 적극적으로 주식투자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미국 전체 부의 40% 이상을 소유했으며, 일일 주식 거래량 중 35%가 여성들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유현금만으로 부족했던지 사람들은 돈을 빌려 주식을 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빚투’입니다. 마진론으로 불린 주식담보대출 잔액이 급증했고, 주식 거래를 하던 브로커들이 임시로 돈을 빌리던 단기 신용대출인 브로커론 규모도 매년 커졌습니다. 은행은 물론, 기업과 해외자본까지 ‘빚투’에 나선 사람들에게 단기 자금을 빌려주며 연 10%대의 높은 이자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주식시장 활황의 주역은 단연 기술 기업이었습니다. 그중 새로 보급된 라디오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놓았죠. 라디오를 통해 집에서 정치인의 연설을 듣거나,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1920년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KDKA)이 개국했고, 1922년부터 라디오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라디오 판매는 급증했고, 1921년 1.5달러에 불과했던 라디오 회사 RCA*의 주가는 1924년 67달러, 1927년 101달러를 넘어, 1929년에는 무려 574달러가 됩니다. 당시 라디오는 지금으로 치면 애플의 아이폰이었나 봅니다.
* RCA의 창업자 데이비드 사노프의 일대기는 이 기사를 참고하세요. – 저자 주
자동차 공급 또한 이 시기에 크게 증가합니다. 1919년 미국에서는 677만 대의 자동차가 운행 중이었는데요. 1929년에는 그 수가 2,300만 대를 넘습니다. 당시 약 1억~1억 2000만 명의 미국 인구를 감안하면 자동차 보유율이 7%에서 20%로 약 3배 증가한 셈이죠. 1927년 자동차 회사 포드(Ford)는 가격을 크게 낮춘 ‘모델 A(Model A)’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동차를 구입했습니다. 철도의 시대가 저물고 자동차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부동산 시장 또한 크게 흥했습니다. 뉴욕의 고층빌딩은 1920년대에 세워진 것들이 많았고*, 플로리다는 주택·토지 투기로 가격이 급상승했다가** 허리케인을 맞아 폭락하는 등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 102층 규모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1920년대 말에 계획하여 1930년에 착공, 1932년 완공됐습니다. – 저자 주
** 부동산 투자 붐이 일기 전 플로리다 팜비치 어떤 지역의 토지 가격은 25만 달러였으나, 1925년에는 500만 달러로 20배 상승하기도 했어요. – 저자 주
이렇게 끝 모르고 질주하던 1920년대 미국 자산시장과 경제는 1929년 10월 주가 폭락과 연이은 정책 실패 등으로 인해 야기된 대공황으로 1930년대 내내 침체를 겪습니다. 주가지수는 1932년 최저 41포인트까지 하락하여 최고점이었던 1929년 383 대비 89% 폭락했고, 1925년부터 1930년까지 5% 이하였던 실업률은 1933년 25% 수준까지 급등했죠*.
* 코로나19 확산기의 최고 실업률 14.7%(2020년 4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최고 실업률 10.0%(2009년 10월)은 대공황 시기의 실업률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 저자 주
미국 GDP는 1929~1933년 사이 1/3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 공황은 미국을 넘어 유럽까지 전염됐고, 히틀러의 나치, 일본 군국주의 발흥에 따른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단초가 됐죠. 산이 높았던 만큼 골도 깊었습니다.
만약 지금이 1920년대라면
지금이 1920년대라면, 우리는 이십몇 년쯤 와 있을까요? 주식시장이 활황이나 아직 더 큰 상승을 맛보기 전인 1927년 초일까요? 아니면 폭락을 눈앞에 둔 조마조마했던 1929년 말일까요? 물론 저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지금은 몇 년이다!’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고요. 다만 당시 상황과 지금 상황의 유사점, 그 유사한 상황의 진행 경과 등을 따져보아 대략 추정해 볼 순 있습니다.
먼저 주식시장 상황을 봅시다. 투자 저변은 연령과 성별 구분 없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빚투’까지 만연해 있으니 적어도 지금은 주식 호황이 무르익었던 1920년대 후반과 유사하죠. 하지만 미 연준의 테이퍼링, 중국의 긴축을 염두에 두고 투자하는 현명한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올랐으니 앞으로도 오르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리던 광기의 1929년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다음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대응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1927년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의 통화정책을 돕기 위해, 금리(재할인율)를 2.5%까지 끌어내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주식시장이 더욱 과열되자, 연준은 1929년 8월, 6%까지 재할인율을 끌어올립니다.
* 당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금본위제를 알아야 하나, 이 글에서는 이해의 편의를 돕고자 설명을 생략했습니다. 또한 당시 연준은 재할인율을 조절해 통화정책을 실시했으나, 지금은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 Rate)를 활용합니다. – 저자 주
그러나 이때는 실물경기 침체가 이미 시작된 상황이라, 연준의 재할인율 인상이 경기 침체를 오히려 가속화했습니다. 마침 근거 없이 오르던 주가도 상승 탄력을 상실하고 하락 우려가 쌓이던 차에, 1929년 9월 19일 영국에서 클래런스 해트리(Clarence Hatry)가 운영하던 대기업 집단인 해트리 그룹이 과다 부채 등의 이유로 파산했죠. 런던 증시가 크게 하락했고, 영란은행은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재할인율을 끌어올렸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 투자된 영국 자금이 이탈했고, 미국 주식시장도 하락세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로부터 1개월 뒤 미국 주식시장은 대폭락을 겪었고요.
일본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일본은행은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5.0%였던 재할인율을 1987년 초 2.5% 수준까지 낮추어 경기를 부양했어요. 그러자 닛케이지수가 1985년 말 13,083포인트에서 1989년 12월 29일 38,915 포인트까지 올랐고, 이제는 주식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1990년 8월까지 재할인율을 6.0%까지 올립니다. 이후 닛케이지수는 20,000포인트를 하회하는 등 폭락했고, 여러 경기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기침체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중앙은행이 1~2년 사이 2~3%p의 금리인상을 할 만큼* 긴급한 상황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 연준은 국채 등의 자산매입부터 조금씩 축소한 후, 추후에 금리를 서서히 올리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도 8월에 0.25% 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하였으나, 향후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가계부채 문제도 있어서 급격한 금리인상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따라서 연준 등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등의 이유로 1929년 10월과 같은 주가 대폭락이 일어나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 이 정도면 굉장히 빠르고 큰 폭의 상승입니다. – 저자 주
금융기관 등의 상황을 살펴보면, 1920년대에 미국은 소규모 은행이긴 했지만 이미 은행 파산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은행 파산이 급증했고요. 또한 1931년 5월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형 은행인 크레디트안슈탈트(Credit-Anstalt)가 파산하는 등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심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을 맡겨두었다가는 돈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에 떨었고, 앞다투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가는 뱅크런이 연달아 발생했죠.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 공급이 감소했고, 이것이 경기침체를 일으켰습니다.
한편 지금은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 조짐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공황 같은 경제위기가 임박한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코로나19 지속으로 인해 자영업자 등 금융취약계층의 대출상환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점, 서민금융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의 대위변제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앞으로 금융기관의 부실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할 수 있겠죠.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주식시장, 통화정책, 금융기관 건전성 등을 생각해 보면 지금이 대공황과 같은 주가 폭락과 금융위기의 입구에 서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호황을 앞두고 있는 기다림의 시기냐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종식 여부, 미 연준의 통화정책 추이, 기후변화, 신기술 개발 등 미래 주요 변수의 방향과 리스크를 잘 헤아려 투자, 일자리 선택 등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재앙은 종종 예상 밖의 일에서 시작합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시에 폐렴이 번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2020년 3월의 주식시장 폭락을 예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뒤의 주식시장 폭등을 예상하기는 더 어려웠고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티모시 가이트너는 이렇게 충고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견주어 보건대,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은 우리에게 놀랄 만한 재앙이나 새로운 호황을 예언하지 않습니다. 예상되는 위험은 위험이 아니듯, 위험은 우리의 예상 밖 어딘가에서 놀랄 만한 일과 함께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활동 및 투자에 대해서도 강력한 대비책을 생각해볼 때입니다.
Edit 손현 Graphic 김예샘, 박세희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외부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토스팀의 블로그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피드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기를 겪었고 위기를 다루며 위기를 공부하는 사람. 성균관대 경제학부와 KDI 국제정책대학원을 졸업했고, 기획재정부 영 프로페셔널(YP)을 거쳐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문에 학업을 접어두고 취업했고, 입사 첫 달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겪으며 경제위기 원인과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필진 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