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 준비를 시작했나요?

by 영주 닐슨

성인 10명 중 3명의 노후 준비가 위태롭다

여기 곧 은퇴를 앞둔 두 사람이 있다. A는 30평대 아파트 한 채와 10억 원 규모의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다. B는 A와 비슷한 지역의 20평대 아파트 한 채와 1억 원 규모의 금융자산, 그리고 월 300만 원씩 지급받는 퇴직연금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떤 사람의 상황을 택할지'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산은 더 적지만 안정적으로 퇴직연금을 받는 B를 선택한다. A의 경우 B보다 넓은 아파트로 주택연금을 더 받거나 10억 원의 금융자산으로 더 큰 수익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나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저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2025년이면 성인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일 것으로 예측되어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은 은퇴에 대한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다. 수입이 끊기는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준비를 제대로 해둔 사람들은 적다. 통계청이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성인 10명 가운데 3명이 노후 준비를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그나마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7명 가운데 60%가 국민연금에 의지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준비가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연금을 수령하는 고령층 가운데 64%는 월 50만 원 미만을 받는다고 한다. 2023년 1월 기준 국민연금 월평균 수급액은 61만 7,603원에 불과하다. 최소 노후생활비로 조사된 124만 원의 절반도 못 미치는 금액이니 국민연금만 받아서는 일상을 살아나갈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모두가 행복한 노인을 꿈꿀 수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숫자다.

한국에는 노후를 위한 3단계 연금제도가 준비되어 있다

물론 국민연금이 노후를 위한 준비의 전부는 아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영국 등 금융선진국들은 3단계 연금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다. 1단계는 국가 차원의 공적연금, 2단계는 회사와 관련된 퇴직연금, 마지막 3단계는 개인이 준비하는 개인연금이라는 세 가지 단계를 고루 준비해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단계 공적연금에서 국민연금으로 노후 대비가 가능한지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공무원, 교직원, 군인 등 특수직역연금 대상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수입의 일정 비율을 국민연금으로 납부한다. 2023년 기준 지역가입자는 소득의 9%를 내며, 직장가입자는 사업주가 4.5%, 근로자가 4.5%를 낸다. 국민연금이 논란인 가장 큰 이유는 ‘고갈'이다. 1990년생이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는 2055년이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개혁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불안은 대한민국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인구의 노령화는 선진국을 위주로 전 세계가 안고 있는 숙제이고, 국민연금 고갈 역시 금융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독일에서는 빠른 고령화로 인해 정부의 연금 지급 능력이 약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 개시 연령을 70세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또 공단에서 얼마나 투자를 잘하느냐에 따라 공적연금을 보전할 수 있는 확률과 기간을 높일 수도 있다. 때문에 국민연금공단은 기금 운용 현황을 주기적으로 공시한다. 다만 공적연금은 상황에 따라 연금법을 개정해 수령 시기나 수령액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2단계, 3단계 연금까지 준비해둬야만 한다.

퇴직연금을 가지고 있다면 이중으로 단단한 준비가 가능하다

2단계 퇴직연금의 구조와 장단점도 살펴보자. 지금 설명하는 퇴직연금은 기존의 퇴직금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2005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퇴직금제도는 퇴직금과 관련된 돈을 회사 내부에서 관리한다. 그래서 기업이 도산하면 근로자가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등 수급권이 보호되기 어려웠고, 이를 보안하기 위해 재원을 외부의 금융기관에 적립하는 퇴직연금제도로 보완했다. 퇴직금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현재는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 중 회사가 선택해 운용한다. 2022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근로자의 퇴직연금제도 가입률은 전체의 53.2%라고 한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 확정기여형, 개인형으로 나뉜다. 첫째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퇴직급여가 근무 기간과 평균 임금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이 퇴직금을 외부의 운용관리기관에 맡기고 운영을 지시하는 등 관리의 책임을 갖는다. 이는 기존의 퇴직금제도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퇴직금을 회사 내부에 두는가, 외부에서 운용하는가이다.

둘째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은 근로자가 직접 퇴직금을 운용하는 방법이다. 회사의 기여금 수준은 사전에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연봉의 1/12에 해당하는 금액 이상을 퇴직계좌로 지급한다. 근로자가 받을 연금급여액은 회사가 지급한 금액을 개인이 운용한 실적에 따라 최종 결정된다.

셋째 개인형(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은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는 퇴직금을 본인 명의의 퇴직계좌에 적립해 노후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계좌이다. 1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는 사업 규모의 영세성을 감안해 DB나 DC가 아니라 기업형 IRP를 선택할 수도 있다.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 역시 개인형 퇴직연금에 가입이 가능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가장 최근 자료인 2022년 말 기준 확정급여형은 57.3%, 확정기여형은 25.2%, 개인형은 17.5%의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만약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중 고를 수 있다면 무엇이 더 좋을까?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의 가장 큰 차이는 누가 자산 운용 지시를 내리느냐에 있다. 확정급여형은 회사, 확정기여형은 개인이 운용한다. 결론부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투자 지식이 전혀 없고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기에는 너무 게으르다면 확정급여형을 선택해야 한다.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인 근로자가 55세를 맞이하면 모든 퇴직연금은 인출이 가능하다.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은 중도에 인출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다른데, 확정급여형은 중도 인출이 불가능하고 확정기여형은 제한적이지만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 확정기여형은 무주택자가 주택을 구입할 경우, 전세금이나 보증금을 내야 할 경우, 본인 및 배우자 또는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해야 할 경우, 담보 제공일로부터 5년 이내에 법률에 따라 파산 선고를 받은 경우, 개인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천재지변 등 6가지 이유 중 하나의 사유에 해당될 때만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 이처럼 중도 인출의 제한 여부를 제외하면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할 것인가'에 따른 선택이다.

은퇴의 질은 퇴직연금의 수익률과 수수료가 결정한다

사실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은 낮은 수익률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확정급여형이 곤란에 빠지게 된 거의 유일한 이유는 근로자에게 지불해야 할 연금액만큼의 수익률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서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총 42개 사업자가 지난 10년간 운용한 한국의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2%를 넘지 못했다.

평균 임금상승률보다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은 그 차이를 메꾸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의 책임을 개인에게 맡기는 확정기여형을 선호한다. 미국은 이미 확정급여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앞으로 한국에서도 10~20년 후에는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줄어든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실제로 2017년 이후 확정급여형의 가입자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확정기여형의 가입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추가로 알아둬야 할 것은 수수료 부담이다. 퇴직연금계좌를 유지해주는 은행, 증권, 보험사는 수수료를 부과한다. 크게 운용관리 수수료, 자산관리 수수료, 거래할 때 부과되는 상품 수수료가 있다. 한국 퇴직연금의 평균 운용관리 수수료는 약 0.3%로, 다른 국가에 비하면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1%대의 이자율을 가진 저축과 비슷한 수익률을 내면서 0.6%에 달하는 평균 총수수료를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다. 금리가 높았던 2023년은 예외적인 해였지만 연금 특성상 10년 이상의 긴 기간을 놓고 보면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확정급여형의 경우 회사가 운용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수수료를 다 회사에서 부담한다. 확정기여형의 경우 상품수수료는 개인이 거래할 때마다 부담한다. IRP는 모든 수수료를 개인이 부담한다.

여전히 불안하다면 3단계 개인연금이 있다

12월 연말정산의 시기가 찾아오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금융상품이 바로 연금저축이다. 연금저축에 넣은 금액만큼 세액공제 혜택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2024년 기준 연 600만 원 한도, IRP와의 총합 900만 원 한도). 따라서 직장인들이 조금이라도 세금을 줄이기 위해 연금저축에 새로 가입하거나 기존 연금저축에 추가 불입을 결정하곤 한다. 정부가 연금저축에 이처럼 세제혜택을 주는 이유는 노후 자금을 준비할 수 있는 3단계 개인연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단계 국민연금, 2단계 퇴직연금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3단계 개인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

연금저축은 5년 이상 납입하면 만 55세 이후에 연금 형태로 수령할 수 있다. 연 최대로 1800만 원까지 저축이 가능하고 급여 수준에 따라 세액공제율이 다르게 적용된다. 연금저축 상품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서 제공하는 연금저축펀드와 보험사에서 제공하는 연금저축보험으로 나뉜다. 세제혜택을 받고 싶다면 연금저축펀드와 연금저축보험, 원금 보장이라는 안전성을 선호한다면 지금 당장의 세제혜택 대신 연금 수령 시 비과세 혜택이 있는 연금보험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연금보험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경우에 따라 죽을 때까지 매달 정해진 돈을 받게 된다. 원금 보장, 연금 수령 시 비과세 등 장점이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품에 설계된 수수료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가입 전에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잘 골라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퇴직금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현재 퇴직연금은 기업이 관리의 주체인 확정급여형에 절반 이상이 들어 있다. 하지만 55세 이상이 되어 퇴직연금을 수령할 때는 이 자금이 모두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로 이동한다. 이때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고, 연금 형태로 받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55세 이상의 계좌 가운데 92.9%가 일시금 형태로 집계됐다. 연금 형태로의 개시는 7%대에 불과했다. 이렇게 일시불로 수령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후 관리의 책임을 내가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퇴직연금 가입자 절반 이상이 확정급여형에 속하므로 아마 많은 사람들이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는 신경을 끄고 있을지 모른다. 노후 자금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할 만큼 목돈인데도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해당 금액까지를 시드 머니로 여기고 은퇴 후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굴릴지 궁리해야 한다.

이제 아름다운 은퇴를 원한다면 투자 공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아직 일할 날들이 많이 남은 시기에 은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매우 좋은 신호이다. 이 시리즈에서 앞으로 나눌 은퇴자금 관리법에서는 내게 필요한 노후자금을 계산해보고,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이나 IRP 등 실제로 내가 결정해야 하는 영역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제부터 은퇴 준비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이 콘텐츠는 은퇴자금 관리를 돕는 글라이드와 함께 만듭니다. 글라이드는 퇴직연금 투자, 관리, 인출 플랜 솔루션을 제공하는 아이랩의 소프트웨어 서비스입니다.


Edit 주소은, 김현미(아이랩) Graphic 조수희, 이서영

해당 콘텐츠는 2024.04.0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영주 닐슨 에디터 이미지
영주 닐슨

모두가 인생 설계를 통해 안정적인 은퇴를 맞이하도록 투자, 관리, 인출 플랜을 돕는 아이랩을 설립하고 '글라이드(www.glide-path.org)'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인공지능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월가의 JP모건, 시티그룹 등에서 15년 이상 알고리즘 트레이딩 헤드와 헤지펀드 최고투자책임자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글로벌 경영전문대학원의 재무 분야 교수이자, AI MBA 학과장이다.

필진 글 더보기
0
0

추천 콘텐츠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