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혼자 살 때, 얼마가 필요할까?

by 사소한 질문들

“청소년은 혼자 살 수 있을까?”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가 많은 어른의 속마음일지 모릅니다. 제각기 살아온 세월에 빗대어봐도 고개를 젓게 되는 상상이라서요. 하지만 10대가 끝나기 전에 자립해야만 한다면? 뭐가 필요할지, 얼마가 있으면 너무 힘들지 않을지, 혹은 어떤 정책이나 사람이 필요할지 헤아려보려고 합니다.

만 18세가 지나 자립정착금 500만 원을 가지고 양육시설을 떠난 박강빈, 신선은 막상 혼자 살아보니 우리는 보통의 청년으로 자랐지만, 보통으로 생존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자립 7년 차인 신선(이하 선)은 현실적인 도움의 필요성을 느끼고 스스로 ‘자립 전문가’라고 이름 붙인 일을 시작했고, 자립준비청년 관련 캠페이너로서 후배들을 위한 강연, 정책 자문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자립 6년 차 박강빈(이하 강빈)은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던 중 자립준비청년 커뮤니티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사각지대를 안타까워하며 콘텐츠 참여와 강연 등 멘토 활동에 합류했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 부딪히는 가장 큰 난관인 ‘집 구하기’부터 경제관념이 생기기까지의 시행착오, 청소년이 자립할 때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까지 깊이 고민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립 준비 멘토로 활동하는 박강빈(왼쪽)과 신선(오른쪽).

우리가 마주한 세상에는 지도가 없어서

Q. 이제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불러야 하죠? ‘보호종료아동’에서 공식 명칭이 바뀌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선: 보호종료아동을 설명하려면 ‘보호아동’부터 설명이 필요한데요, 보호아동은 부모님의 사망, 이혼, 학대, 방임 등의 이유로 양육시설에서 자라게 된 아이들이에요. 보통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요즘은 부모가 있는데 보호자 역할을 해줄 수 없어서 법적 보호를 받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양육시설에는 보육원, 위탁 가정, 그룹홈이 있고요. 만 18세까지는 법적으로 속한 시설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만 18세가 넘으면 법적 보호가 종료돼요. 그래서 보호종료아동이라고 불렸죠.

강빈: ‘보호가 종료됐다’는 어감이 부정적이잖아요. 보살핌이 끝난 아이 같달까요. 만 18세가 넘어서 나오게 된 건데 보호아동의 반대말처럼 보호가 종료된 ‘아동’이라고 계속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요. 본격적으로 자립을 시작하는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자는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자립준비청년’이라고 공식 명칭이 바뀌게 되었어요. 늘 도움을 받기만 하던 수동적인 존재에서 독립된 인격체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요.

Q. ‘열여덟 어른’이라고도 불리죠. 지금도 열여덟 살이 되면 500만 원을 받고 시설을 나오게 되나요?

선: 보호아동들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름의 준비를 해요. 하지만 열여덟 살에 내가 정말 혼자 살 수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잖아요. 금전적 준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수도 있고요. 여태까지는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대학 진학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보호를 연장해서 받을 수 있었어요. 그마저도 시설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서, 저는 대학에 입학하며 더 머물 수 있었지만 만약 생활하던 시설에 수용 가능한 인원이 넘치면 더 있고 싶어도 바로 보호가 종료되는 상황이었어요.

강빈: 2021년에 보호종료아동지원 강화 방안이 발표되면서 이제는 모든 아동들이 희망하면 만 24세까지 양육시설에서 머물 수 있게 됐어요. 스스로 자립에 대한 의사와 준비도를 고려해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호 연장을 희망하지 않으면 바로 퇴소할 수도 있고요.

선: 저는 자립정착금 500만 원과 제가 매월 적금을 넣으면 정부지원금이 추가로 적립되는 디딤씨앗통장, 딱 이 돈을 가지고 시설을 나왔어요. 2016년 8월이었고, 그때는 자립정착금 규정이 최대 500만 원이었기 때문에 저는 500만 원을 받았지만 지역이나 시설 형태에 따라 200만 원, 300만 원을 받고 나오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현재도 지역이나 시설에 따라 다른데요, 법적으로는 최소 500만 원에서 최대 1500만 원으로 바뀌었어요. 보호 종료 후 5년간 매월 35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자립수당도 생겼고요.

Q. 두 분이 ‘혼자 살게 되던 날’로 돌아가볼게요. 어떤 기억이 있나요?

강빈: 사실 퇴소하기 전날까지도 와닿지가 않았어요. 앞으로 살게 될 집에 딱 들어섰을 때 진짜 혼자 산다는 걸 느꼈죠.

선: 우편함에 꽂힌 공과금 고지서, 처음 보면 살짝 놀라게 되는 거 아세요? 그냥 내면 되는 건데 아주 작은 것도 물어볼 사람이 없어가지고… 어느 날 갑자기 시설을 나와서 혼자 살다 보니까 집 구하는 게 어려운 건 물론이고 하다 못해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Q. 10대에 내가 살 집을 혼자 구하는 거 어려웠을 텐데… 저는 아직도 부동산 가면 쭈뼛쭈뼛하거든요.

선: 당장 이곳을 나가면 살 곳이 없는 거라 정말 생존 그 자체였기 때문에, 되게 열심히 찾게 되더라고요. 아직 취업을 못한 상황에서 500만 원 안에서 생활비도 당장 해결해야 하니까 보증금과 월세가 최대한 저렴한 곳을 구해야 했어요. 그래서 정보를 찾다가 LH청년전세임대주택을 알게 됐고, 부동산 사장님 만나서 설득하고, 집주인 설득하고… 그때만 해도 자립준비청년 중에 LH 이용하는 사람이 30% 정도밖에 안 됐어요. 왜냐하면 그게 확정되기까지 3~4개월이 걸리고, 보호자 없이 혼자 계약서도 작성하고, 권리 분석도 맡겨야 하고, 집도 돌아다니면서 봐야 하고, 잔금도 처리하는 과정을 모두 혼자 해내야 하는데 도중에 포기해버리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이 과정을 견디면 월세 50~60만 원 정도 하는 방을 월세 10만 원에 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절차가 어려우니 엄두가 안 나서 ‘나 그냥 월세 살래’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50% 정도로 이용률이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 선은 자립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인 ‘집 구하기’에 부딪히는 후배들을 위해 주거 정보를 꼼꼼히 알려주는 영상을 찍기도 했다. (유튜브 링크)

강빈: 저는 취업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자립하는 시점에 이미 직장인이었어요. 그럼에도 사회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립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많았죠. 혼자 살게 됐을 때 마주하는 첫 번째 문제는 당연히 ‘주거지 마련’이고 저 역시 고생했어요. 인터넷 검색으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거 체크리스트를 보면 집을 구할 때 확인해야 하는 항목들이 있잖아요? 물이 잘 나오는지, 환기나 채광은 어떤지, 교통편은 어떻고, 집주인과 사전에 협의해야 하는 부분들은 어떤 게 있는지 등등… 그런 걸 전혀 몰랐고 일하다가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잠깐 시간을 쪼개서 둘러보다 보니까 ‘대충 사람이 살 수 있겠다’ 싶은 집들을 계약하곤 했어요. 이후에 이사를 여러 번 하고 주거 환경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제가 정말 열악한 곳에서 살았었구나 알게 된 거죠.

Q. 강빈님이 했던 말 중에 “나의 수많은 실수가 후배들이 살아가는 날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수많은 실수’를 공개해줄 수 있나요?

강빈: 셀 수 없지만, 축의금 에피소드 이야기하면 다들 놀라고 웃으시더라고요.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신입일 때 회사 분들이 결혼하면 축의금을 20만 원씩 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많이? 싶지만 그땐 그게 마음의 표시인 줄 알았어요. 근데 알고 보니 사회 통념상 정해진 선이 있었더라고요? 서로 입밖에 내지 않아도 다 아는 것을 우리는 접해본 적이 없잖아요. 부모님 따라서 가족 행사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Q. 18번째 생일이 지났을 때 경제관념은 어떤가요? 누구나 10대, 20대에 걸쳐서 처음엔 돈을 막 쓰다가 아 좀 남겨놓기도 해야 하는구나 알게 되잖아요.

강빈: 경제관념 제대로 기르는 거는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 저축 많이 하면 좋죠? 하지만 무조건 참기만 하면 나중에 폭발해 버려요. 제가 그랬어요. 보호아동은 어릴 때 용돈도 적고, 통금 시간도 있어서 친구들이랑 놀거나 갖고 싶은 걸 사는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러다가 자립할 때 큰 돈이 처음 주어지는 거죠.
어릴 때 금융과 관련된 소비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지능이라고 할까요? 경제관념 같은 게 잘 안 잡혀요. 저는 심지어 지금 전공이 금융투자학인데도 공부랑 또 다르게 일상에서 금융지능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초년생 때 너무 스스로 억압하지 말고, 보험이 되어줄 자산을 일정 부분 구분해서 떼어놓고, 그 안에서 그동안 못한 것을 누려보는 연습도 거쳐야 할 거 같아요.

선: 보육원에 살면 고등학교 때 한 달 용돈이 3만 원이에요. 정말 부족하죠. 중학생은 2만 원이고요.

강빈: 이것도 시설마다 차이가 있는데 저는 고등학교 때 2만 5천 원이었고, 중학생 때는 일주일에 천 원이었어요. 한 달에 4천 원인 거죠. 제가 그때 여자친구가 생겼었는데 돈이 정말 없어서 데이트를 못해서 헤어졌던 슬픈 기억이 떠오르네요.

선: 상상해보세요. 보호아동일 땐 너희는 어리니까 외박도 안 되고 외출 시간도 정해져 있어. 돈도 한 달에 3만 원밖에 못 써. 이렇게 통제하다가 갑자기 만 18세가 됐다고 이제 너는 네가 알아서 해야 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억제되어 있던 것을 터뜨리기도 하고 자립정착금을 엉뚱한 데 쓰는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오히려 청소년기 때 좀 더 자유를 줘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자립하기 전에 ‘돈 잘 쓰고 잘 모으기 연습’을 위한 교육이 있나요?

강빈: 자립하기 전에 받는 ‘자립 표준화 교육’이라는 게 있어요. 모여서 강의를 듣거나 각 시설에서 개별 교육을 진행해요. 만 15세가 되면 자립수준 평가를 하는데, 일상생활 기술, 진로 탐색, 사회적 기술 등 8가지 영역 중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들로 교육을 받아요. 그중 돈 관리 기술 영역에는 미래 설계, 통장 개설하기 등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 들어 있고요.

선: 교육은 양육시설별로 달라요. 지자체별로도 다르고요. 그래도 표준화 교육이 전국에 동일하게 나가는 자료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외에는 강사나 자립 선배를 초빙해서 강의를 듣는 등의 교육이 자율적으로 이뤄져요.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자립교육이 표면적인 교육에 그쳤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경제 교육은 많이 받았지만, 실제로 자립 후에 저는 은행에서 공인인증서 발급이나 통장 개설 같은 걸 전혀 할 줄 몰랐으니까요.

강빈: 형식적인 것 말고 주식 투자나 보험처럼 생애 주기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저도 스무 살 때 누군가 저에게 보험을 들어달라고 해서 가입했어요. 보험료가 원래 다 30만 원씩 나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나중에 내기 버거울 때 해지하니까 하나는 소멸성이었고, 하나는 원금 겨우 받았어요.

Q. “와, 500만 원? 이 돈으로 갑자기 어떻게 혼자 살아”였다면, 얼마가 있으면 “아, 그래, 살아보자”가 될까요? 무턱대고 엄청 많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경험에 근거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 거 같아서 여쭤봐요.

강빈: 자립정착금과 5년간 받는 자립수당을 모두 합친 돈이요. (몇 년간 받게 되는 지원금을 일시불로 받으면 좋겠다는 뜻인가요?) 아뇨, 지원금이 많아지는 것은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실제로 집 보증금 상승 같은 현실을 반영해서 자립정착금을 1000만 원 정도로 상향 평준화하고 있고, 5년간 자립수당 35만 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합치면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최소 3천만 원가량 돼요. 이 밖에도 기초생활수급자 생계 급여, 디딤씨앗통장, 사회취약계층 우대 적금, 취업장려 매칭 적금 등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이 존재한다는 것과 세부 내용을 미리 알면 마음이 좀 괜찮아질 것 같아요. 저는 퇴소할 때 그런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대학생활이나 사회초년생인 동안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이만큼이다, 무슨 일을 계획할 때 쓸 수 있는 예산이다’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그리고 현실적인 경제관념을 충분히 습득한다면 저는 자립할 때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건강한 자립을 위해서는 출발선에서부터 자기객관화와 목돈 마련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나만큼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답노트를 펼쳐 보이는 일

Q.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하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계시죠. 자립 준비를 돕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궁금해요.

선: 저는 전주에서 줄곧 생활했는데, 양육시설을 퇴소하는 날까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제게도 정보 격차가 있었던 거죠. 최소한의 수당만 받고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는데, 당연히 대학생활 내내 생활비가 부족해서 소액 대출을 받기도 했어요. 보호 연장을 받아서 월세가 나가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교통비, 식비, 교재비 등등 나갈 곳이 많으니까요. 돈이 부족하면 휴대폰 비용 납부가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알바비를 탈 때까지 착발신 정지되는 경우도 종종 생겼어요. 친구들도 그걸 알아서 “선아, 너 이번 달에 또 휴대폰 요금 못 냈어?” 묻는 경우가 많았고요.
선배들이 겪은 걸 저도 똑같이 경험했고, 앞으로 자립하게 될 친구들도 똑같이 경험하거든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주변 사람들한테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운 것도 나랑 비슷하게 생활했던 친구들한테는 물어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당사자 친구들을 직접 만나며 건강한 자립을 도우려고 캠페이너로 활동하게 됐어요.

강빈: 신선 선배와 같은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에는 정말 우연히 들어가게 됐어요. 후배들을 위한 강연이나 멘토링을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고, 단지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였죠. 비슷한 유년기를 공유한 사람들이기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금방 친밀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내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 되게 특별했어요.
게다가 커뮤니티 안에 자립 정보가 정말 많았어요. 교육 기회나 취업 지원 프로그램 같은 당장 필요한 것들이요. 이전에는 이런 정보에 무지했고, 주변 시설 친구들이나 누나, 동생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커뮤니티와 멘토링의 활성화가 보다 절실하게 느껴졌어요.

△ 강빈은 자립 정보를 접하자마자 이를 모르는 친구들이 떠올라 멘토 활동을 시작했다.

Q. 후배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요?

강빈: 자주 하는 얘기가 있는데, 제가 스무 살 때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연말정산할 때 소득과 지출액이 똑같았어요. 또래보다 빨리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까 더 여유로울 수 있었는데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말 그대로 탕진한 거예요. 마음에 드는 옷을 사본 적이 없어서 좋은 옷, 멋진 옷을 사야겠다는 것보다 비싼 옷에 집착한 적도 있어요. 사회초년생이 한 벌에 100만 원이 넘는 정장을 샀을 정도로요.
이제 자립하는 후배들은 소득도 고정적으로 없을 확률이 높고, 정부 지원금에 기대서 뭔가 차곡차곡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잖아요. 저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어서 몰입감을 주려고 가감 없이 말해요. 어디서 돈 날렸는지까지요. 목적은 오로지 동기 부여예요.

선: 강빈이가 얘기한 것처럼 저도 자립 전날까지 실감이 안 났어요. 다른 친구들도 그럴 거예요. 마냥 나가고 싶어 하면서도,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감이 안 잡혀요. 그러니까 교육을 대충 듣거나 듣기 싫어하는 것도 저는 너무 이해가 돼요. 그럴 나이인 거죠. 다만 꼭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하는데, ‘자립하고 나서도 절대 너희가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얘기해요. 자립하며 겪게 되는 문제는 수백 수만 가지거든요. 보호자 없이 병원에도 가는 큰일부터 공과금 어떻게 낼지, 명절에 누구랑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같은 작은 일들도 아주 많은데 무조건 혼자라고 생각하고 주위 관계를 다 닫아버리면 고립되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돈 어떻게 쓸지도 중요하지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죠.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에게 조금씩 내 얘기를 꺼내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 자체도 자립이니까 자립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기대고 도움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Q. 현실적이라서 완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자립정착금 500만 원 받으면 어떻게 써라, 이런 얘기도 해주세요?

선: 일단은… 자유롭게 쓰라고 얘기해요. 강연해보면 “저는 아이패드 사고 싶어요”라고 하는 친구도 있거든요. 그럼 다른 선생님들은 “무슨 아이패드야!” 하시죠. 하지만 생애 처음으로 내 몫의 목돈이 생긴 그 기분도 이해를 해줘야 해요.
대신 그것에 대해 어떤 책임이 따라오는지 알려줘요. 저 같은 경우는 집 보증금으로 100만 원, 가구와 생활필수품 사는 데 150만 원 쓰고 나머지는 저축했어요.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했고요. 하지만 살면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잖아요. 제 친구는 다리가 부러졌는데 실비보험도 없다 보니 수술비랑 치료비로 자립정착금 중 400만 원을 썼어요. 갑자기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꼭 비상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Q. 주말에 졸면서 들었던 교육이 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와닿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느껴져요.

선: 그때는 아무 일이 안 일어났어도, 교육이 끝나고 며칠 후, 아니 몇년 후에라도 교육을 들었던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요. 교육 잘 들었다는 감상을 말하기도 하고, 이제 자립했는데 장학금 좀 알려주세요 하는 친구도 있고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좋아요.

강빈: 강의 자료 맨 마지막 장에 휴대폰 번호를 넣어두면 1년 뒤에 연락이 와요. 들을 때는 우리 말이 잘 안 들려도 도움 청할 수 있는 채널을 하나 남긴 거예요.

Q. 양육시설에서 자립하는 친구들이 매년 2500명이나 되는 줄은 몰랐어요. 자립에 필요한 게 금전적인 지원만은 아닐 텐데, 앞으로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

강빈: 자립정착금이 지역별로 달랐던 것처럼 보호아동이 퇴소했을 때 사후 관리를 해주는 자립 전담 기관도 있는 곳, 없는 곳 차이가 있었어요. 이런 지원 체계 자체도 평준화시키자는 의도로 모든 지자체가 전담 기관을 설치하고 운영 체계를 만들고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크게 존재하는 사각지대가 풀어가야 할 문제예요.

선: 양육시설에는 보육원, 그룹홈, 위탁가정이 있는데, 저와 강빈이는 보육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쪽으로 활동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사실 보육원만 해도 단체로 기관에서 같이 생활하는 거니까 교육을 받는 기회도 많고 정보 접근성이 높은 편이에요. 그런데 그룹홈이나 위탁가정은 다 찢어져 있고 사정이 제각기 다르다 보니 본인이 자립준비청년이라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자립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계속 사각지대로 발생하는 거죠. 지원제도는 바람직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그 정보나 혜택이 모두에게 균일하게 전달되고 있지는 않아요.

Q. 멘토링도 하시고, 여러 제도도 있다고 하니까 마치 자립을 하는 시점이 되면 얼마를 어떻게 받을 수 있다고 일관된 공지를 받을 것 같거든요. 그런 건 아닌가 봐요?

선: 네, 정보 격차가 안타까운 한편 아직까지는 겪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에요. 보호가 종료되면 국가에서도 방치하는 게 아니라 5년까지 사례 관리라는 걸 해요. 자립전담요원이 붙어서 관리해주시는데, 워낙 사람이 부족해서 보통 요원 한 사람이 70~80명, 어떤 곳에서는 200명까지 관리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몇 번 연락이 안 되면 연락이 두절됐다는 이유로 정보가 더 안 가게 되고요. 수도권에서 정보 습득에 능숙한 친구들은 계속 받지만, 지원이 부족한 지방에 살거나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놓치기도 하죠. 저희처럼 정보를 이용하는 친구는 전체의 20%나 될까 싶어요.
게다가 사회에 나왔을 때 겪는 편견 같은 것들 때문에 숨는 친구도 많아요. 스스로 보호아동이었다고 밝히지 않고 굳이 지원 제도를 이용하지도 않는 거죠. 지원이 많아지고 있어도 그게 닿아야 하는 건데 말이죠. 실제로 통계상 매년 25%의 아이들이 사례 관리자와 연락이 두절된대요.

강빈: 저희도 활동하다 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 사례마저도 만나서 얘기했을 정도면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한 친구들이 온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안타까운 사례는 우리가 못 만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아끼고 잘 살아가는 건강한 자립,
한번 해보자

Q. 혼자 나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고 나서, 나를 잘 챙기며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었나요? 마음일 수도 있고, 자원일 수도 있고요.

선: 넷플릭스?(웃음)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자립하는 시기에 생각이 정말 복잡하고, “앞으로 나는 진짜 혼자야”라고 느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보호아동 중에 가족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자립을 하면 원래 가정(원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해요. 하지만 이 원가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거나, 부모님 나이가 너무 많아서 갑작스럽게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많고… 복잡하고 어려운 시기예요.
저도 온전히 혼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기 바빴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되게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고 있더라고요. 제가 보호아동이었던 걸 아는 대학 동기들은 매년 생일날 불러서 같이 시간을 보내주고, 보육원 퇴소할 때는 한 선생님이 저에게 사비로 전자레인지를 선물해 주셨어요. 앞으로 선이가 혼자 살면 음식을 많이 해먹어야 하는데 전자레인지가 필요할 거라면서.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통해서 자립한다고 무조건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불안이 가시고 나니까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지지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 보육원 시절 강빈이 방에 붙여두고 수시로 보던 ‘나와의 약속’

강빈: 제가 요즘 닮고 싶은 친구들이 있는데, 자립준비청년 중에 즐겁고 행복하게 일상을 꾸려가면서 자립을 진짜 건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 특징이 자기애가 강해서 자신을 아낄 줄 알더라고요. ‘나를 아껴서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게 무척 중요한 거 같은데, 예전에는 이런 마음을 갖기가 더 어려웠어요. 지금은 여러 지원책들이 있어서 출발 시점에 몇 가지 손에 든 것들이 있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던 시절도 있었죠. 그러다 보니 그 세대에는 홈리스가 되는 분도 많았고요. 하지만 지금은 포기해버리지 않고 잘 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 줄 아는 비율이 늘었어요. 나한테 더 좋은 거 먹이고 싶고, 주거 환경도 개선하고 싶고 그런 거죠.
저에게는 전혀 없던 부분이라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하다 못해 ‘나 멋지다, 예쁘다, 좋다’는 마음까지도요. 늘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회사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고, 대외활동도 하고, 학생회장도 하다 보니 이게 잘 사는 게 맞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회사 선배가 갑자기 저를 카페에 데려가더니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게 예쁘고 귀한 사람이야” 하는 거예요. 와, 저 눈물 정말 없는데 울어버릴 뻔했어요.
이제는 잠도 잘 챙겨서 자고, 방에 암막 커튼도 달아보고, 이불 커버도 바꿨어요. 맨날 어디서 주워온 것 같은 거 쓰다가 처음으로 베이지색으로 컬러를 맞췄는데 기분 좋던데요?

Q. 편견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어요. 미디어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넘겼겠지만 나에게는 마음이 뜨끔했던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었는지요?

강빈: 지금 딱 생각나는 거 있는데, 제가 꼭 결혼을 하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요, ⟨갯마을 차차차⟩ 보다가 흠칫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남자 주인공이 가족이 없거든요. 어느 날 여자 주인공 부모님을 만나서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다가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얘기를 하니까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 태도가 돌변해요. 그리고 남자가 화장실 간 사이에 여자가 왜 그러냐고 따지니까 아버지가 그래요. “고아한테 딸을 보내주는 걸 두 팔 벌려 환영할 부모는 없다.” 그런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 대사를 듣고는 어쩔 수 없이 주눅 들었던 것 같아요.

선: ‘고아’라는 단어가 서사를 완성시키기 되게 간편하잖아요. 영화 ⟨악인전⟩을 보면 부패 경찰과 조폭이 힘을 합쳐서 사이코패스를 잡는 과정이 나오는데요, 이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계속 죽이고 다녀요. 이유가 안 나와서 이 사람에게는 어떤 서사가 있나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말미에 딱 한두 마디가 나와요. “아빠한테 어릴 때 폭행을 당했고 보육원에서 자랐대.” 고아라는 설정만으로 너무 불쌍하거나, 너무 구두쇠이거나, 살인범까지 쉽게 캐릭터를 만들어요. 사람들이 미디어 속에서 얼마나 쉽게 이런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생각하면 정말 보기 불편하더라고요.

강빈: 다르게 그려진 작품들도 요즘 있어요. ⟨런 온⟩의 오미주(신세경 역)나 ⟨스타트업⟩의 한지평(김선호 역)이 정확히 보호종료아동으로 나오는데, 악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천사도 아닌 보통의 사람으로 나와요.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나오는 게 참 좋았어요. ⟨스타트업⟩에서 한지평은 마지막에 보호종료아동 지원사업에 기부도 해요. 제가 지금은 정신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를 하고 있지만, 열심히 살아서 나중에는 한지평처럼 금전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자립 멘토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Q. 두 분은 이제 어떤 꿈을 꾸나요?

강빈: 경제관념 부족으로 생겼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금융권으로 이직하고자 금융투자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막상 공부하면서 현직자 멘토링도 받아보니 저와 금융 실무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이후 개발자를 꿈꾸며 코딩도 해봤는데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고요.(웃음) 그런데 사회공헌그룹에서 보조 역할을 하고, 당사자성을 지닌 캠페인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저는 공익을 위한 변화를 목격하고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뚜렷해졌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기업의 사회공헌 부문에 취업해 경험을 더 쌓고, 그후 소셜벤처 창업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게 구체적이네요.) 꿈은 구체적일수록 더 가까워지거나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또 한 가지 꿈이 있는데요, 저도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도 보육원에서 생활하다가 중도 퇴소를 하셨어요. 어머니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공감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모습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건강하고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꿈 뒤에는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도 조금 가지고 있어요. 제가 선순환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선: 제 꿈은 아직 추상적이에요. 저는 국어교육학과를 나왔는데요,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는 너무 불행하다, 왜 내가 이렇게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선택했을까 싶었는데 지금 캠페이너로 활동하면서는 더 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더 많이 알려주고 싶고, 더 많이 바꾸고 싶어요. 너무 행복한 지금의 모습을 50대, 60대가 되어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따뜻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당사자였기 때문에 지금은 자립준비청년에 국한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다른 쪽으로도 따뜻한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예전에 이슬아 작가님과 팟캐스트를 녹음할 때 작가님이 저에게 “선이 씨는 따뜻한 그늘 같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저희가 가진 배경이나 상황이 어둡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는 어둡다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해줄 수 있는 얘기도 많으니까… 그래서 저도 따뜻한 그늘이라는 표현이 되게 좋았어요. 따뜻한 그늘처럼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Interview・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Photo 김예샘

– 해당 콘텐츠는 2022. 8. 12.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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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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