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패딩은 왜 고등학교에서 유행했을까?
ㆍby 사소한 질문들
인플루언서와 친구 따라 강남 가기, 원래 가고 싶었는지는 헷갈리지만 아무튼 가기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대유행한 아이템을 떠올리며 다음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2021년 12월, 한 학생복 브랜드가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명품 등 소비 실태’에 관한 조사다. 청소년들은 명품을 구매한 이유에 대해 1) 유명인(연예인, 인플루언서 등)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예뻐서(28.9%), 2) 친구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소외되기 싫어서(28.6%), 3) 평소 명품에 관심이 많아서(23.3%), 4) 명품인 것을 의식하지 않고 구매(19.1%) 순으로 응답했다.
수입이 용돈밖에 없거나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10대와 성인도 턱턱 사기 힘든 명품의 조합이라니 의미심장하다. 먼저, 어떤 것이 유행할 때마다 ‘소비 심리학 필수 기출문제’처럼 등장하는 펭귄 효과와 밴드 왜건 효과로 이 현상을 이해해보면 어떨까?
유명인이 광고에서나 협찬을 받아 상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구매했다는 답은 ‘펭귄 효과(Penguin effect)’가 맞다. 펭귄 효과는 다른 사람이 어떤 상품을 사면 이에 동조해 우르르 같은 상품을 사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름이 왜 하필 펭귄일까? 펭귄은 먹잇감을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바다표범과 같은 천적이 있어 주저한다. 그러다 바다로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퍼스트 펭귄)을 따라 나머지 펭귄도 바다로 뛰어든다. 이와 비슷하게 가격이나 낯선 디자인, 기능 등으로 선뜻 구매하기 힘들어 주저하던 상품이지만 유명인이 먼저 쓰는 모습을 보면 따라서 구매하게 된다고 해서 펭귄 효과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등학생들은 유명인이 입은 명품 패딩을 보고 구매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응답인 ‘친구들이 가지고 있으니까’는 ‘밴드 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이 효과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금광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나면 악단이 탄 마차가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간 모습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특정 유명인이 앞장서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우르르 가니까 동조해서 따라하는 것이 밴드 왜건 효과의 큰 특징이다. 참고로 밴드 왜건 효과는 편승 효과라고도 한다. 속담처럼 “친구 따라 강남 간다”인 상황이다. 자기가 강남을 원래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친구가 가는 모습을 보고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기의 행동을 맞추는 것이다. 두 번째 응답처럼 고등학교의 명품 패딩도 학교의 다른 친구들이 입으니까 따라서 입는다면, 바로 밴드 왜건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홈쇼핑에서 “이미 많은 분들이 주문 전화를 주고 계십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유도 밴드 왜건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을 뉴스처럼 전달하려는 목적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빨리 주문해서 매출을 올려달라는 설득 목적의 메시지이다.
여기까지 보면 청소년 명품 패딩 구매의 절반 이상이 펭귄 효과와 밴드 왜건 효과로 설명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충분한 설명은 아니다. 펭귄 효과와 밴드 왜건 효과는 굳이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에게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같은 현상이라도 청소년의 소비는 ‘꼭 있어야 하고,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극단적이다.
최근 몇 년간 고등학생들이 입는 명품 패딩, 이른바 신종 등골브레이커가 이슈였다. 점점 더 가격이 비싸지고 브랜드가 달라지는 등의 변화가 있지만 사실 2010년대를 뜨겁게 달군 원조 등골브레이커 노스페이스 패딩과 양상이 똑같다. 가격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부모는 과도한 지출인 줄 알아도 자식의 의지에 못 이겨 구매하고, 패딩을 둘러싸고 청소년간 폭행 혹은 갈취 사건이 발생하는 것 말이다. 펭귄과 밴드 왜건 치고는 선을 넘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까?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문제로 계속 다뤄지고 있는데도 양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요즘 청소년인 Z세대의 성향이 아니다. 1980년대에 고가였던 리바이스 청바지와 나이키 운동화 열풍 때도 마찬가지였다. 즉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거쳐가는 시기, 보편적인 청소년기의 심리적 특징에 답이 있다.
교복 위에 입은 패딩은 같고도 다른 정체성 표출을 가능하게 한다
심리학 기출문제 족보처럼 ‘청소년기’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는 말이 있다. 바로 ‘자아정체성 형성의 시기’라는 말이다. 형성되는 중이라는 건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엄청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 심리 추리게임을 해보자.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말 그대로 안정적이지 않다. 안정적이지 않으면? 주변 자극에 민감해진다. 민감해지면? 즉시적으로 반응한다. 그게 다인가? 필요 이상 과도하게 에너지를 써서 반응한다. 게다가 이것도 다는 아니다.
인간은 갑자기 청소년이 되지 않는다. 출생 이후 부모(혹은 비슷한 역할을 해줄 양육자나 시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가족, 유치원, 학교로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자기보다 더 나이 든 다양한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성장하는 경험을 청소년이 될 때까지 한다.
하지만 청소년이 되면 달라진다. 남자와 여자는 제각기 성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되면서 몸이 변하며 자기도 자신이 낯설어진다. 바소프레신 호르몬도 분비되며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마음도 커진다. 다른 사람이 자기 방에 들어오거나 자기 물건을 맘대로 만지는 것이 싫어진다. 타인과 함께하는 게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가족이나 선생님 등 어른의 말과 행동에 민감해진다. 특히 신체적으로 많이 성장해서 자신이 어른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시를 받는 게 마뜩하지는 않다. 이미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자기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거나, 무모해 보이는 행동도 벌인다.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니 소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끔은 주변 사람에게 예전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싶어 외롭다. 다행히 주변에 또래들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자기가 누구인지 찾는 ‘자아정체성 형성’을 위한 변화이지만, 그 과정이 외롭고 힘들어 ‘자아’만이 아니라 ‘또래’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또래의 말과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또래가 입는 옷에 민감하다. 그저 편승 효과로 ”따라서 입어야지“ 하는 수준이 아니다. 혼란스러운 ‘혼자’만의 세계로 추방되어 극도로 외롭고 불안하게 사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숨을 좀 내쉬면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생존 장치다. 그런 청소년에게 명품 패딩의 기능적 실용성을 이야기하거나 내년에는 유행이 바뀔 수 있으니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등 논리적으로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것을 사면 좋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지금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생존템‘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런데 청소년기의 다른 심리적 특성도 있다. 바로 개성 추구의 욕구. 또래와 함께하고 싶지만, 자신은 좀 다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지만, 조금 길거나 짧거나, 내어 입거나, 들여입거나 하는 식으로 남과는 다른 자기를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교복 위에 입는 패딩은 어떤가? 내가 얼마나 잘 나가고, 얼마나 감각 있는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고등학생은 패딩 브랜드뿐만 아니라 색상까지도 신경을 써서 구매한다. 물론 워낙 많은 학생들이 구매하다 보니 그 색상까지도 개성이 아니라, 특정 계급을 표시하는 식으로 변질되었지만 말이다. 색상에 의한 계급은 개성을 추구하고 싶지만, 소외되고 싶지 않아 또래와는 보조를 맞추고 싶고, 또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현상이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엘킨드(David Elkind)에 따르면 청소년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무대 위에 선 것처럼 착각하는 ‘조명 효과’보다도 더 심각하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고,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이런 인지적 왜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또래의 거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하지만 자기 생각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니 자기 스타일도 고집하려고 한다. 그 팽팽한 긴장 속에서 극도로 예민해지고, 충동적으로 소비하려고 한다. “일단 사야 해”라고 충동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바로 이런 긴장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명품 패딩 구매에의 진짜 욕구는 바로 그 긴장에서 나온다.
혼란과 긴장이 불러낸 소비 폭발력에 불을 붙이는 것은
청소년기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심리 작용에 더해 소비의 폭발력을 강하게 하는 조건들이 있다. 첫째, 2차 보상이다. 왜 1차 보상이 아니고 2차 보상일까? 1차 보상은 소비 자체로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보상이다. 즉 음식점에 가서 배를 채우면 배고픔 해결이라는 1차 보상이 주어진다. 패딩을 입으면 몸을 가리고 추위를 막는 1차 보상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냥 음식점이 아니라 SNS에서 유명한 맛집에 가면 어떤가? 단순한 배고픔 해결이 아니라, 사진을 올리거나 이야기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2차 보상이 주어진다. 명품 패딩도 마찬가지다. SNS가 중요해진 세상의 사람들은 직접적인 생리적 욕구 해결의 1차 보상보다는 다분히 심리적인 인정 욕구에 해당하는 2차 보상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2차 보상을 더 잘 줄 수 있는 상품은 더 폭발력이 있다.
둘째, 간헐적 보상이다. 2차 보상이 공평하게 늘 주어진다면 어떨까? 그러면 보상을 받기 위해 더 열정적으로 선택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그렇지 않다. 포켓몬빵 열풍의 핵심은 식욕과 관련된 생리적 욕구 해결이 아니라 스티커 득템이다. 그 스티커를 모아서 자랑할 수 있으니, 2차 보상이 있다. 그런데 만약 포켓몬 띠부띠부실을 늘 원할 때마다 주어지는 상황으로 만들어 돈으로 그냥 살 수 있게 했다면 어떨까? 일주일 만에 150만 개 판매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를 끌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에 있는 스티커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보상이 랜덤으로 주어지는 게 핵심이다. 마치 도박처럼. 그리고 희귀한 스티커를 인증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도 보상이다. 그런데 이 보상은 늘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열심히 구매한다. 예측 불가능한 게 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결말을 다 알고 보는 영화와, 어떨지 모르고 보는 영화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게임에서도 사람들은 확실한 보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게임에서 아이템 파밍을 하는데 늘 정해진 위치에 정해진 아이템이 정해진 순서로 나온다면 재밌게 할 수 있을까? 간헐적으로 보상이 주어질수록 언제 보상이 나올지 몰라 더 열정적으로 매달리곤 한다. 확률을 조정해서 더 많은 사람이 로또에 자주 당첨이 되도록 하는 대신 최고액이 10만 원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확률이 낮아도 강렬한 보상이 있는 상황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나선다.
명품 패딩을 구매했다고 해서 매번 또래와 낯선 사람의 뜨거운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헐적으로는 얻을 수 있다. 적어도 관심의 중심이 되었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할 기회는 얻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열광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SNS 전파력을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느냐이다. 과거 미디어 중심으로 노출하며 펭귄 효과와 밴드 왜건 효과로 열풍을 만들던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2차 보상이 간헐적으로 주어지는데 온라인으로 퍼지기 힘들다면 폭발력을 얻을 수 없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병합된 부모 세대와 다르게 현재의 청소년 세대는 디지털 세계에서 정보를 구하고 사람을 접촉하고 인정을 받는 등 다양한 욕구를 해결한다.
청소년에게 인기를 끈 상품을 떠올려 보자. 그 뒤에는 인터넷 밈,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인상적인 사진, 재미있는 문구, 감성적인 메시지 등 온라인을 통해서 공유하기 편한 마케팅 자원들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심리학이 이런 마음이 드는 원인들을 찾아냈다고 해서, 현상도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명품 패딩이 왜 유행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냥 두자는 뜻은 아니라는 거다.
명품 패딩은 언제 어느 것으로든 대체될 수 있다. 명품 패딩 쇼핑으로 해결하고 싶은 욕구를 이해했다면, 그 쇼핑이 아니라 또래 소속감을 높이면서도 나만의 정체성처럼 키워갈 수 있는 동아리 문화 활성화 같은 대응은 어떨까. 또 한편으로 예민하고 충동적인 시기에 인간관계도 아주 즉시적으로 변하는 디지털 세계에만 의지하는 것은 안정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니, 천천히 움직이는 아날로그 소통 기회를 늘리도록 도우면 어떨까. 청소년기 간절한 소비에 숨은 심리를 아는 것이 그때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청소년을 이해하는 시작점이기를 어떤 명품보다 더 바란다.
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Writer 이남석 작가 겸 심리학자. 성균관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인지과학과 협동과정을 거쳐 WCU 인터랙션 사이언스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지과학회 간사, 한림대학교·서강대학교 심리학 강사,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초빙 연구원, 교육과학기술부 WIST 정보운영실장 등을 거쳐 현재 심리변화연구소 소장과 서촌의 인문학 카페 ‘여기인가’ 공동 대표로 활동하며 심리학의 실제적 적용에 힘쓰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이대로 어른이 되어도 괜찮을까요?》, 《무삭제 심리학》, 《자아 놀이 공원》, 《인지편향 사전》 등이 있다.
– 해당 콘텐츠는 2022. 8. 12.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 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토스팀 브랜드 미디어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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