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는 왜 이렇게 비쌀까?

by 사소한 질문들

얼마 전, 반려묘 루리가 배변을 잘 못 해서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엑스레이 촬영과 초음파 검사, 그리고 수액까지 맞은 후 청구된 진료비는 16만 원. 이럴 때면, 수의사 출신인 저도 동물병원 진료비가 부담스럽습니다. 반려동물 보호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동물병원 1회 평균 진료비는 약 8만3천 원으로 보호자 10명 중 8명은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합니다.

*한국소비자연맹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소비자 경험 조사(2020.12.) 결과 반려동물 보호자 중 80.7%가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잠깐. 동물병원 진료비, 진짜 비싼 걸까?

반려동물 진료비가 저도 부담스럽지만, 부담감과 별개로 우리나라 동물 진료비가 정말로 비싼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싸다, 비싸다는 상대적인 표현입니다. 사실 정확한 표현은 ‘동물 진료비는 사람 진료비에 비해 비싸다.’가 맞습니다. 배탈이 나서 내과에 갔다고 가정해봅시다. 사람의 경우 내과에서 진료받고,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기까지 1만 원이 채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물병원에 가면 최소 몇만 원이 나오니 동물 진료비가 비싸다고 느껴질 수밖에요.

사람 진료비가 동물 진료비에 비해 싼 이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갖춰진 건강보험제도 덕분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소득에 따라 매달 건강보험료를 내죠.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보험료 절반을 부담하고요. 이처럼 건강보험료를 내기 때문에 진료비의 일부(본인부담금)만 내고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부담률은 진료 항목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5% 정도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부지런히 납부하고 있는 건강보험료의 혜택을 받아 전체 진료비의 ‘일부’만 내고 있는 거니까요.

사람 진료비와 동물 진료비를 정확하게 비교하고 싶다면 병원 영수증을 펼쳐보세요. 영수증에는 ‘급여’와 ‘비급여’ 항목이 나누어 져있습니다. 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 항목을 뜻합니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진료 항목이고요. 급여 항목은 다시 ‘일부 본인부담’과 ‘전액 본인부담(①)’으로 나뉘며, ‘일부 본인부담’은 다시 ‘본인부담금(②)’과 ‘공단부담금(③)’으로 분류됩니다. 비급여는 ‘선택진료료(④)’와 ‘선택진료료 이외(⑤)’로 나뉩니다. 내용이 무척 복잡하지요? 결론만 말하면, 사람 진료비의 총액은 ①+②+③+④+⑤을 모두 더한 금액입니다.

반면 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동물진료비는 사실상 모든 진료 항목이 비급여인 셈인 거죠. 동일한 진료 항목으로 사람진료비(①~⑤를 합친금액)와 동물진료비를 비교해봅시다. 사람이 습진에 걸렸을 때와 반려견이 습진에 걸렸을 경우 진료비를 비교하는 식으로요. 모든 진료 항목에서 사람진료비가 동물진료비보다 비싸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해외 동물 진료비와 비교해보면

다른 나라 동물 진료비는 어떨까요? 정부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미국, 독일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동물병원 진료비는 오히려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예방접종, 피부질환 진단, 임상병리검사, 영상진단검사, 주사처치 등 22개 항목을 두고 국내 19개 동물병원의 평균가격과 미국동물병원협회 진료비 통계자료(Veterinary Fee Reference), 독일 수가제도(GOT)*의 상대가격수준(comparative price level)을 비교한 결과입니다.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 2017.12, 농림축산식품부

*독일 수가제도(GOT) : 수가제는 각 서비스 항목별로 고정된 가격(혹은 고정된 범위의 가격)을 부과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뜻한다. 독일의 동물진료비 수가제는 GOT(Gebührenordnung für Tierärzte)라고 불리며, 1940년 120개의 진료 항목에 처음 도입되었다.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 발췌

동물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

보호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부분은 병원마다의 가격편차입니다. 동물 진료비도 부담스러운데, 동물병원마다 가격이 달라서 난감했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예전에는 동물 진료비도 정해진 가격이 있었습니다. 1974년 12월에 수의사법이 개정되며 도입된 ‘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 에 의해 동물병원간 가격편차가 크지 않았죠. 그런데 해당 법률은 1999년 2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적용이 제외되는 부당한 공동행위 등의 정비에 관한 법률(일명 카르텔일괄정리법)’ 개정에 따라 폐지됩니다. 자율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소비자의 선택을 넓힌다는 취지였죠. 수의사뿐만 아니라,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관세사 등 9개 전문자격의 보수와 수수료가 자유화됐습니다. 현재 법에 의하면 동물병원들이 진료비를 똑같이 맞출 경우, 담합이 되는 구조입니다. 동물병원 입장에서는 진료비를 맞추려고 해도 맞출 수 없는 상황인겁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은

우리나라 동물 진료비가 사람 진료비와 해외 동물 진료비보다 싼 것은 맞지만, 보호자의 부담은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정부가 기초의료비용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이야기 됩니다. 예방접종, 중성화수술, 건강검진 등 기본적인 동물의료 부담을 낮추는 겁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호자들은 동물병원 진료비 중 수술·입원 및 질병 진료비와 일반 검진비 다음으로 예방접종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예방접종과 같은 기초의료비용을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으니, 혹시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의 지원이 있는지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전체 동물을 대상으로 지원을 확대하려면, 사회적 합의와 시간이 어느정도 필요하겠죠.

보호자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반려동물 보험’입니다. 3년 전만해도 펫보험을 판매하는 회사가 3개뿐이었지만, 지금은 10개 보험회사가 반려동물 상품을 다루고 있습니다. 반려견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슬개골탈구 수술까지 보장되는 상품도 있고요. 선택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죠. 만약 마음에 드는 보험상품이 없거나 보험이 부담스럽다면, 매달 적은 금액이라도 적금을 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사람도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또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집니다. 반려동물도 똑같아요. 반려동물이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할 수는 없겠지요. 반려동물을 위한 적금을 꾸준히 들면, 갑자기 큰 진료비가 발생했을 때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이홍유진


Writer 이학범

‘글쓰는 수의사’ 이학범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최초 수의학전문신문 ‘데일리벳’을 창간해 9년째 운영하고 있다. 동물복지국회포럼자문위원, 경기도 동물복지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반려동물을 생각한다》,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2》(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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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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