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ㆍby 사소한 질문들
2차 세계대전이 끝을 향해 달리던 1945년 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빅 버사(Big Berth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소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습니다. 빅 버사는 자손 39명*을 남기고 49세 생일을 석 달 남짓 앞둔 1933년 겨울, 세상을 떠났습니다. 빅 버사가 세상을 뜬 후에도 블루벨(BlueBell), 제니(Jenny) 등 30세를 넘긴 소들이 종종 두각을 드러냈지만, 아직 빅 버사의 신기록을 경신한 소는 없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은 동물의 수를 셀 때 ‘마리’ 대신 ‘명(名)’을 씁니다.
축산업계에서는 소의 기대 수명을 20세 안팎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송아지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이른바 ‘씨소’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평균 수명에 근접한 나이를 채우는 소는 거의 없습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되는 ‘비육우’는 2~2.5년, 우유를 얻기 위해 사육되는 ‘젖소’는 대개 4~8년 살다 도살됩니다.
업계는 사육비를 줄이기 위해 소의 수명을 더 단축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도 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9년부터 새로운 축산물 등급 판정 기준을 적용해 도살 가능한 한우의 연령을 31.2개월에서 29개월로 낮췄습니다. 이렇게 되면 연간 1,161억 원의 목장 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농림부의 분석입니다*.
*’기획특집: 쇠고기 육질 등급 판정’, <월간 축산>, 2019년 3월호, 34~35쪽
기대 수명은 20년, 실제 수명은 2년?
빅 버사처럼 불혹을 훌쩍 넘기지 못하더라도 20~30년을 족히 살 수 있는 소의 수명이 짧게는 2년까지 줄어든 것은 인간이 소로부터 고기와 우유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일련의 행위가 ‘산업’이 되면서부터입니다. 고기 산업(meat industry)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역으로는 미국, 시기로는 남북전쟁이 끝난 19세기 말엽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중요한 발명품, 철도와 냉장 기술이 무대 장치로 등장하죠.
철도와 냉장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소의 사육-도살-유통은 반경 몇백 킬로미터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발명품이 등장하면서 서부 지역의 목장에서 사육된 소를 중부 지역에서 도살해 동부 지역의 시장에서 파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놀라운 혁신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곳은 미국 북동부 도시인 시카고입니다. 시카고의 도살장에서 나온 소고기가 냉장 열차에 실려 전국 각지로 유통이 가능해졌고, 1890년대에 이르면 아무어(Armour&Co.) ,스위프트(Swift&Co.), 모리스(Morris&Co.), 해먼드(GH Hammond&Co.) 등 주요 도살업체 4곳이 미국 전역으로 유통되는 소고기의 거의 대부분을 직간접적으로 장악하게 됩니다.
전국 각지로 소고기를 차질 없이 보내기 위해선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해야만 했습니다. 도살 업체들은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훗날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분업 체제’가 도입됩니다. 숙련된 도살업자 혹은 정육업자 한 명이 맡았던 작업을 잘게 쪼개 공정을 단계화⋅기계화한 겁니다. 자동차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대량생산 사회의 초석을 마련한 헨리 포드가 영감을 얻은 것도 바로 이 철저히 분업화한 소고기 생산 공정이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업계에서 고민한 다른 문제는 “어떻게 하면 소들을 더 빨리 살찌울 수 있을 것인가?” 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상대적으로 근육이 적고 살이 많은 품종의 소를 택하고, 풀보다 지방과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아예 소들을 집중적으로 살찌우기 위해 마련된 ‘비육장(feedlot)’이 등장했습니다. 엄마 젖을 뗀 송아지들은 비육장으로 보내져 풀 대신 곡물 사료를 먹으며 몸을 불립니다. 소들은 이곳에서 매일 1kg 이상 살을 찌우기 위해 16kg가량의 사료를 먹으며 짧게는 100일에서 길게는 300일을 보냅니다. 그리고 몸무게가 600kg*에 가까워지면 도살장으로 보내지죠.
*USDA에서 발표한 평균치(약 1,300~1,380파운드)로, 소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 효율을 꾸준히 높인 결과, 오늘날 미국의 소고기 산업은 미국 전체 산업군 중 55번째로 많은 일자리를 거느린 경제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2019년 약 127억 킬로그램의 소고기가 생산됐고, 이중 약 11%에 해당하는 34억 킬로그램이 해외로 수출됐습니다. 소고기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무려 74억 달러(한화 약 8조7000억 원)에 달하고요.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산 소고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2019년 기준 약 18억 달러(한화 약 2조1000억 원) 어치에 해당하는 미국산 소고기 약 3억1000만 킬로그램이 국내로 수입됐습니다. 같은 해 국내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13.0킬로그램으로 1990년 4.1킬로그램 대비 3배 가까이 뛰었고요. 국내 소고기 생산량도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육되는 한우 수는 2014년 298만 명에서 2020년 323만 명으로 약 8.3% 늘었습니다.
그리고 이 323만 명의 한우 중 99% 이상이 태어나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서 30개월 안팎의 짧은 생을 살다가 도살됩니다. 풀 대신 곡물 배합 사료를 먹고, 자유로운 활동을 제지당하면서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고기가 되기 위해 사육되는 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축산법에서 한우 1명에게 허용한 공간은 57㎡(약 1.52.1평)에 불과합니다. 소위 ‘동물복지’를 고려한 ‘친환경’ 목장이나 ‘유기축산’ 목장에도 같은 기준(7㎡)이 적용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복지일까요?
사실 우리 모두 어렴풋하게는 축산업의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비닐하우스처럼 생긴 열악한 축사에 갇혀 있는 소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진실을 외면하곤 합니다. 게다가 진실을 피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고기의 모습은 ‘상품’의 형상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로폼과 비닐 랩에 쌓인 채 마트 정육코너 냉장고에 놓여 있거나, 각종 양념 옷을 입은 채로 식당에서 나오는 고기를 보고 살아 있는 동물인 소의 모습을 바로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산량 증대와 비용 절감을 목표로 발전해온 고기 산업은 100여 년에 걸쳐 인간과 동물 사이의 거리를 한없이 벌어지게 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공간, 생추어리
그러면 이토록 단절되고 멀어진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우선 동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기가 되기 위해 좁고 지저분한 우리에 갇혀 도살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아닌, 타고난 본성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장면은 흔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에게 축산동물로 인식되어 온 소, 돼지, 닭의 타고난 본성은 무엇인지,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무엇인지에 관해 알려진 것보다 알아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실정이니까요. 이 글의 시작이 된 질문 “소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도 앞으로 답을 찾아야 할 수많은 물음표 중 하나입니다.
‘생추어리(sanctuary)’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는 현장입니다. 생추어리는 인간의 착취와 학대로부터 동물을 구조해, 남은 생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하는 안식처 혹은 보금자리입니다. 대체로 생산성이 떨어져 도살될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때문에 생추어리는 ‘동물들의 요양원’으로도 불리곤 합니다. 생추어리에서는 소, 돼지, 닭, 양, 염소, 말 등 다양한 동물들이 한데 모여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최소한의 규칙은 있지만 대체로 동물들은 이곳에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로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생추어리의 동물들을 보면서 인간은 소, 돼지, 닭에게도 성격이 있고 취향이 있다는 것,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 ─ 일찍이 책이나 TV에서 배운 사실을 ‘새삼’ 그리고 ‘깊이’ 깨닫습니다.
그럼 생추어리는 누가 만들까요?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 동물을 보호하는 생추어리는 나라에서 설립하기도 하지만, 소, 돼지, 닭과 같은 축산 동물 생추어리는 대체로 동물권 옹호 단체가 후원금을 모아 조성합니다. 미국의 1세대 축산 동물 생추어리인 ‘팜 생추어리(Farm Sanctuary)’도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팜 생추어리는 1986년 동물해방 운동가 진 바우어(Gene Baur)가 가축장의 동물 사체 더미에서 양 ‘힐다(Hilda)’를 구조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바우어는 더 많은 축산 동물을 구조·보호하기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조직을 꾸려 생추어리의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과 모금 행사를 꾸준히 열었고, 그렇게 해서 1990년 뉴욕주 동남부의 왓킨스 글렌에 70만8000㎡(약 21만4000평) 규모의 생추어리를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1993년엔 캘리포니아에 두 번째 생추어리를 마련했고요. 현재 팜 생추어리 두 곳에는 소, 돼지, 닭, 말, 양, 염소, 칠면조 등 다양한 동물 900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변심’한 축산업자가 운영하던 목장을 생추어리로 바꾸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독일의 동북부의 부트야딩엔에 있는 ‘호프 부텐란트(Hof Butenland)’는 3대째 이어온 낙농업을 접고 소들을 착취하지 않는 삶을 택한 얀 게르데스가 동물해방 운동가 카린 뮈크와 함께 만든 생추어리입니다. 2002년 생추어리로 새 출발 한 호프 부텐란트에는 소를 비롯해 돼지, 말, 닭, 오리, 거위, 토끼가 살고 있어요. 호프 부텐란트의 이야기는 지난해 <낙원(Butenland)>이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에서는 널리 알려진 생추어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추어리는 아직 낯선 개념입니다. 생추어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필요한지 설명해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가 일하는 동물해방물결은 소 생추어리를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지난 8월 도살 예정이던 두 살배기 소 6명을 구조했는데요. 여기저기서 “도대체 (먹는) 소를 왜 구조하느냐”는 핀잔 섞인 질문을 참 자주 들었습니다. 소를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고기로 보기 때문에 소를 구조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느껴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생추어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축산업의 굴레에서 해방된 소가 삶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명확한 답이 될 테니까요. 생추어리가 보여주는 장면들이 마트 정육 코너 냉장고 앞에서, 고기 사진으로 가득한 식당 메뉴판 앞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잠시라도 ‘불편한 진실’에 가닿게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한없이 멀어진 인간과 동물의 거리를 좁히고 싶습니다.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Writer 한승희
한승희는 동물해방·비거니즘 운동단체 ‘동물해방물결’에서 생추어리 조성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소셜 섹터 전문 기자로 일했으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에 관심이 많아 도시재생, 식량 위기 관련 출판 프로젝트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시민력과 상상력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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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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