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의 생활비는 4인 가구의 4분의 1일까?

by 사소한 질문들

혼자를 미완성처럼 여기던 시대는 우리를 떠났어요. 스스로 1인분의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은 계속 늘었고, 이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구 형태가 되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1인 가구는 31.7%로, 우리나라 열 가구 중 세 가구가 혼자 살고 있어요. 나의 학교·직장 때문에, 동반자의 사망 때문에, 혼자 살고 싶어서 등의 순으로 저마다 욕구와 사정은 달랐지만요.*
*출처: ⟨2021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통계청

1인 가구의 미래 계획은 어떨까, 돈이 중요하겠지만 어떤 식으로 중요할까, 훗날 원치 않아도 1인 가구가 된다면 공동 거주가 해결책이 되어줄까 같은 질문에 정답은 없어도 함께 고민해줄 두 사람을 찾았습니다. 틈만 나면 주변인에게 창업 아이템을 피칭하지만 여전히 광고회사에서 근로소득자로 일하며 12년째 혼자 사는 노윤주(이하 노난)는, ‘배우자도 자녀도 없어서 회사의 복지 대상에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내가 비정상일까’를 고민하다 1인 가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복지 대상자에 부모님이 포함되게 해줄 수 있는지 묻는 메일을 지원팀에 보낸 적이 있어요. 11년째 혼자 사는 홍인혜(이하 루나)는 카피라이터, 만화가, 에세이스트, 시인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자유노동자로, ‘전세 사기’라는 인생이 흔들리는 사고를 수습하고 일상을 되찾느라 더 단단한 1인 가구의 가장이 되었죠.

이 ‘충분한 혼자’들을 만나 각자의 속도로 각자 가장이 되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일로 만난 친구 사이이자 각자 1인분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노난(왼쪽)과 루나(오른쪽).

1인 가구의 대단하지 않은 미래 계획

“1인 가구로서의 나는 평범하다. 혼자 사는 것이 안락해서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혼자 사는 것이 버거워서 누군가의 품과 손이 간절할 때도 있다. 다만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이 문득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립다고 갑자기 부동산 앱을 켜서 원룸을 계약하지 않듯이, 혼자 사는 사람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하루 아침에 혼자 사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뿐이다. 지금은 괜찮아도 나이가 들면 외로울 거라는 걱정의 말들 너머로 괜찮은 지금을 살며, 괜찮을 미래를 만들기 위해 착실하게 살고 있다.”

– 노윤주, ⟪오늘의 모험, 내일의 댄스⟫, ‘1인 가구의 가장입니다’ 중에서

누구나 두 분의 글을 읽다 보면 눈치 챌 수 있을 텐데요, 루나 님은 꼼꼼한 계획형, 노난 님은 엉덩이 가벼운 충동형이시죠. ‘돈 관리’ 면에서도 마찬가지인가요?

루나: 네, 저는 돈 관리도 꼼꼼하게 하는 편이에요. 투자의 달인 같은 건 아니고요, 제가 뭐든 모으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돈도 야금야금 모아왔어요. 기록형 인간이라서 내 돈이 어느 계좌에 얼마 있는지, 며칠에 얼마가 만기니까 재예치해야 하는지 등등을 기록하고 자주 업데이트하거든요. 그래서 현재 제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노난: 저는 전셋집을 옮긴다든지, 이직을 한다든지 하는 인생에서 큰 돈을 써야 할 때 한 번씩 정리해봐요. 최근에도 여기로 이사 올 때, 집을 옮기려고 보니까 전세 시세가 확 올라서 이게 내가 가능한 건가, 전세자금대출을 얼마나 받아야 되나 따져봤죠. 솔직히 평소에는 신경을 많이 안 써요. 돈 관리에도 성향이 드러나냐고 물으셨는데, 맞아요. 제가 여기서만 되게 계획적이면 소름 돋지 않을까요?(웃음)

어느 날 독립을 했다고 해서 “나는 1인 가구의 가장이다. 구성원(나)을 잘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는 마음가짐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닐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시기나 계기가 있었나요?

노난: 12년 전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둘 때 많이 지쳐서 1년가량 놀고먹을 생각이었어요. 버는 것 없이 1년을 버텨야 하니까 처음으로 ‘내가 얼마 쓸 수 있지?’를 따져본 거예요. 얼마나 어디에 들어가 있고, 그래서 내가 지금 운용할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쫙 확인하는 계기였죠. 그것조차 머리 아팠지만 재미도 있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언제까지 놀 수 있겠구나’ 각이 나왔고요.
당시에 들고 있던 펀드를 다 해약해서 유럽으로 반년 동안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다양한 1인 가구들을 만났어요. 제 또래 직장인들이 각자의 취향대로 집을 꾸며놓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식탁을 스스로 차리면서 아주 잘 살고 있더라고요. 그것에 큰 자극을 받았어요. 잘 산다는 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면서 사는 거구나 하고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취직하고 모았던 돈을 다 털고 마이너스통장도 뚫고 전셋집을 구해서 독립했어요.

루나: 노난과 같은 시기에 같은 생각을 한 게 신기한데요. 저희가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각자의 낭만을 찾아 장기 여행을 떠났거든요. 당시 저 역시 얼마나 해외를 떠돌 수 있을지 자금 사정을 챙겨야 했고요.
런던에서 생애 첫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아직도 생각나는 순간이 있어요. 머나먼 타지에서 딱 일주일 정도 살고 ‘어라? 내가 일주일 동안 맑은 물을 한 모금도 안 먹었네?’를 깨달았어요. 식당마다 생수를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니까, 기왕 돈 낼 거 탄산음료 시키고, 맥주 주문하고 이런 식으로 살았던 거예요. 고국에서 ‘맑은 물’은 집에 언제나 있는 것이었는데 여기에선 내가 직접 사서 구비해야 하는 거구나, 스스로 먹여줘야 하는 거구나, 나를 돌볼 보호자는 나뿐이구나를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투자 성향은 어떤 편인가요? 자산 관리 계획을 세울 때 흔히 간접 투자, 직접 투자, 부동산을 3:3:3으로 분배하라던데 우리나라 집값 생각하면 쉽지가 않죠.

루나: 적극적인 투자하는 분이 보면 놀라겠지만 저는 정말 겁이 많아서 정기 예금처럼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으로 돈을 모아요. 자고 있는 동안에도 내 돈이 돈을 벌고 있어야 한다지만 제 세계관과 잘 맞지 않는달까. 그리고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말하자면 저는 돈이 자고 있고 제가 벌고 있는 쪽이네요.
빌라를 샀으니까 부동산이 50%를 차지하고, 펀드랑 주식에는 아주 조금 있어요. 이 조금도 사실 스스로 한 건 아니고 지인 권유로 했지만요. 나머지는 모두 예적금이에요. 다람쥐처럼 쫌쫌따리 모으면서 ‘와 도토리가 많아졌네’ 이러는 걸 좋아해요.(웃음)

노난: 저는 부동산에 85%가량 묶여 있어서 굴릴 수 있는 돈의 비율이 매우 작아요. 루나와 서로 관리하는 성향은 다르지만 투자에 있어서는 비슷한 게, 저도 자산소득*에 적극성이 없어요.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까 월급 받으면 퇴직연금펀드에 들어가는 돈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전체 분배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내가 지금 현금으로 굴릴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모였지?’를 가끔 챙겨보다가 주식이나 펀드, 예금 등에 적당히 넣어두는 편이에요.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해보기는 해요. 해외주식 붐이 불길래 주식도 사고 전 국민 용돈 벌기라기에 궁금해서 엔솔 청약도 해봤고 최근에는 김유라 PD가 시작한 샤이고스트스쿼드 NFT도 샀어요. 투자가 아니라 정말 NFT가 뭔가 싶어서 사본 거지만.
*근로, 용역 등의 제공으로 얻은 소득이 아니고 단순히 자산 즉 부동산·주권·현금 등의 소유에서 발생하는 부동산 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 등을 말한다.

루나: 저는 제가 평온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0.1%라도 더 받으려고 노력해요. 프리랜서로 일하니까 가끔 목돈이 들어온다든지, 적금이 만기라든지 할 때 여러 상품을 비교하고 알아봐서 새로운 상품에 가입해요. 물건 살 때도 어떤 사람은 눈품, 손품 파는 게 귀찮으니까 대충 사기도 하잖아요. 저는 최저가의 최저가까지 찾아서 사는 스타일이에요. 쿠폰 다 끌어와서 쓰는 거 엄청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요.

방금 서로 놀라시던데, 평소 ‘돈’과 관련한 대화를 별로 안 하나요? 주로 재테크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도 궁금해요.

루나: 지금 갑자기 토스에서 인터뷰한 사람 중 가장 이상한 인터뷰이로 등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희 돈 얘기 잘 안 해요. 정확히 말하면 일 얘기, 친구 얘기, 재밌는 거 본 얘기 하느라 바쁘고, ‘요즘 무슨 종목이 핫하더라’ 같은 이야기는 화제에서 밀려나곤 해요.

노난: 저희끼리도, 다른 친구들을 만나도 투자 얘기는 잘 안 하는데, 주변에 재테크 고수가 꼭 한두 명씩 있잖아요? 저도 회사 선배가 가끔 연락해서 투자에 관한 정보를 물어다 주세요. 근데 듣고도 안 하니까 “서울대 가는 법을 알려줬는데 왜 안 가냐”고 하면서 엄청 답답해하시죠. 그런데 저는 근로소득이 좋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선배가 또 근로소득으로는 대출 이자를 갚는 거라고 하겠지만…(웃음) 어쨌든 저는 갑자기 비트코인이 터지고 이런 것보다 내 일 해서 돈 벌고, 근로소득으로 부자 되는 사람이 제일 멋있어요. 주변에 어떤 작가가 작품 터져서 잘됐다거나, 내 브랜드 만들어서 사업하다가 잘됐다는 이야기 들리면 제가 다 뿌듯하고 자극이 돼요. ‘부자가 되려고 노력해서 잘됐다’와 ‘좋아하는 걸 열심히 했는데 심지어 부자까지 됐다’의 차이가 있어요. 얼마 전에 팟캐스트에서 송은이가 비보 사옥 올린다고 좋아하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날 뻔했어요.

그럼 살아가면서 돈이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나요.

노난: 돈 중요하죠. 그런데 돈이 너무너무 중요하다는 의미가 돈이 너무너무 많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아닌 거 같아요. 내 인생에서 돈이 얼만큼 필요한지에 대한 저만의 기준을 가지고 벌고 싶어요. 그게 없으면 누가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 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데도 열심히 공부해서 투자한다는 얘기 들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시기에 어떤 책에서 돈의 장점에 대한 문장을 읽었는데 그게 확 와닿았어요.

“돈이 갖는 엄청나게 강력한 장점을 경험하게 됐다. 바로 돈 말고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중에서

어설프게 투자를 할 때는 하루 종일 돈 생각만 하잖아요. 친구들이랑 술 마시다가도 주식 앱 열어보고 그런 거. 그때는 저도 그렇게 하는 게 싫으면서도 끊을 수는 없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왜 이상한지 잘 몰랐거든요. 그때 이 문장을 읽고 한참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나요. 제가 돈을 벌겠다면서 돈이 가진 엄청난 장점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나 이거에 안 얽매일 수 있나?” 생각해보고 투자를 해요. 그리고 이런 관점이라면 가끔은 나도 되게 부자라는 생각도 하고요. 코인 사기 싫은데, 굳이 그런 생각 안 할 수 있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 하면서요.

루나: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돈의 위력을 실감했어요. 애초 돈 문제가 저를 고통의 수렁에 빠트렸지만 극복 과정에서도 결국 돈이 필요하더라고요. 법률 자문을 받거나 소송을 걸어 법적인 투쟁을 시작하더라도, 아니면 직접 경공매에 뛰어들어 집을 낙찰받기 위해서라도 결국 돈이 필요했거든요. ‘정의’가 나에게 있음에도 그를 관철하려면 어느 정도의 자본이 필요하구나를 뼈아프게 깨달은 사건이었죠. 과정은 지난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집을 갖게 되었고 그 만족감은 말로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버지니아 울프가 쓴 이 문장도 떠올랐어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저는 평온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창작을 마음껏 하는 날을 늘 꿈꿨거든요. 어린 시절엔 부모님 품 안의 ‘내 방’ 정도면 됐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은 ‘내 집’으로 확장되었죠. 지금은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삶을 위해서 경제력이 필요하구나 생각합니다. 창작이 바로 수익이 되면 좋겠지만, 때로는 그게 쉽지 않고 돈과 결부된 순간 제약이 생겨버리기도 하니까요. 말하자면 저는 클라이언트가 남인 창작과 클라이언트가 나인 창작을 나누는데 전자로 돈을 벌고 후자로 자아 실현을 한답니다. 힘겹게 손에 넣은 ‘자기만의 방’에서요.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 가장이 된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일, 녹록치 않지요. 해보니까 어떠세요?

노난: 제가 독립한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어요. 빠른 건 아니었죠. 그 전에는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계속 일을 했고 큰 돈을 안 썼어서 독립할 때 원룸 전세 보증금 정도의 자금은 모았었고요. 시작이 안정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저는 혼자 살면서 힘든 일보다 기쁜 일이 훨씬 많았어요. 독립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 누군가 “아무리 혼자 사는 게 좋아도 10년쯤 지나면 마음이 바뀐다”고 했거든요. 이제 11년 넘었는데 지금도 만족해요. 각종 집안일도 아주 잘 맞아요.

루나: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베갯잇 하나부터 오늘 저녁 메뉴까지 온전히 자의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좋아요. 내가 돈 벌어서 나 책임지는 게 너무 좋아서 언제부터인가 파트너에게 의지한다는 옵션을 아예 선택지에서 배제하게 됐어요.

1인 가구의 생활비는 4인 가구의 4분의 1일까요?

루나: 더 들죠. 4인 가구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자녀 교육비 같은 거 빼고 생활비만 따지면요. 간단한 예로 1인이 사나 2인이 사나 세탁기는 한 대 필요하잖아요. 세탁기가 고장 나서 2인이 20만 원 주고 고치면 1인은 10만 원 드는 것도 아니고요.

노난: 기본적인 생활을 굴리는 데 드는 돈은 고정값이 있고, 그건 1인의 집이건 4인의 집이건 같으니까요. 가스비, 에어컨 전기료처럼 여러 명이 쓸수록 아낄 수 있는 게 있고요. 배달음식을 보면 1인용이 나오고 있지만 배달비까지 생각하면 1인 가구는 비싼 가구예요. 여행을 가도 싱글룸과 트윈룸의 가격 차이가 별로 안 나는 것처럼 살다 보면 그런 유의 일들이 종종 일어나요.

루나: 차 한 대를 사면 4인 가구는 4인이 쓰고, 1인 가구는 1인이 쓰는 것도 그렇고요. 인당으로 나눗셈하면 더 드는 건 사실이에요.

실제로 1인 가구에 관한 통계를 보니까 2020년 1인 가구의 월 평균 소비는 143만 원이고, 2인, 3인, 4인 혹은 그 이상인 가구들 평균은 240만 원이었대요. 1인 가구의 소비가 그 이상인 가구들 소비의 55%인 거죠.
1인 가구라서 예상치 못하게 나가는 돈, 혹은 대비해야 하는 것이 있었나요?

루나: 안전에 관한 소비요. 독립하기 전에는 부모님과 사는 4인 가구였고 그때는 창문을 별로 신경 쓴 적이 없었어요. 베란다 창문 맨날 열려 있고 그랬죠. 그런데 혼자 살면 창문이 요만큼만 열리게 스토퍼도 사고, 보조키도 하나 더 달고 그런 소비가 생기죠. 더 예민했으면 세콤 같은 보안 업체에도 돈을 썼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 이사를 위해 ‘나와의 혼수비용’도 모으고 있어요. 아까 주식은 조금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게 제 인테리어 비용이에요. 혼자 이름 붙여놓은 거지만, 이게 오르락내리락하잖아요? 어제는 샤시 뭘로 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못하고, 어제는 건조기랑 세탁기 세트로 살 수 있었는데 오늘은 통돌이 사야 되고 뭐 그래요.(웃음)

노난: 인력비를 꼭 염두에 둬야 돼요. 독립 초기에는 짐이 많지 않으니까 소형 트럭 이사를 했거든요. 그러면 기사님이 “같이 짐 들어줄 사람 있어요?” 이렇게 물어봐요. 독립 초기에는 나도 1인분의 성인 근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3층 집까지 이삿짐센터 기사님이랑 둘이서 소파를 날라본 이후에는 반드시 추가 인력을 고용해요. 내가 죽을 뻔한 건 둘째 치고 기사님한테 너무 죄송해서… 요즘 중고 거래도 많이 하는데, 무거운 거 사거나 팔면 그때도 추가 인력 고용 필수예요.

루나 님께 눈물의 부동산 얘기를 여쭙지 않을 수 없어요.

루나: 아이러니한 게, 저는 어릴 때부터 집이 너무 갖고 싶었어요. 안정을 추구하다 보면 끝판왕이 집이거든요. 내가 쫓겨나지 않을 공간이 있어야 하니까요. 직장 초년생 때 돈 벌기 시작하면 비싼 거 사보고 싶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때도 ‘이 돈 모아서 집 사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사람에게 전세 사기 사건이 일어나다니… 악독한 사기꾼 집주인 만나 고생을 많이 하셨죠.

루나: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장장 4년에 걸쳐 압류, 소송, 경매, 공매까지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했어요. 저처럼 꼼꼼한 척, 야무진 척하고 살아도 그런 일을 당하더라고요. 충격이 너무 크니까 누가 걱정해주는 것조차 버거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경매, 공매 공부해서 결국 전세 사기 당한 집의 주인이 되었어요. 여전히 살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그때를 돌아보기도 싫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시 곱씹어볼 용기가 났을 때 전세사기 극복실화 – 루나의 전세역전라는 만화를 연재했어요. 많은 분들의 걱정과 공감을 샀고 최근 드라마화 계약을 하기도 했답니다. 이런 고통을 다른 분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고, 혹시 겪고 있다면 제 사례가 도움이 됐으면 해요.

이미지 제공=홍인혜(루나) 작가

예상 밖의 사고로 전세로 살던 빌라를 매수하게 된 건데, 원래 계획은 어땠나요?

루나: 이 집에 전세로 들어올 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그후 불타는 상승장 당연히 예상 못했고, 그때만 해도 부동산 매수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20대 갓 지나서 집을 산다는 게 자신 없는 거예요. 전세 계약 끝나고 이 집 떠날 때도 결혼을 안 했으면 이 다음에는 사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때는 명확하게 ‘나는 1인 가구로 살아간다’는 아니었나 봐요.

루나: 맞아요. 30대 초중반에는 불확실했어요. 결혼하면 자산을 합쳐서 더 좋은 집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매매는 다음 텀으로 미루자였고, 어느 시점에는 혼자 살겠다고 확실하게 결정했어요. 뭐든 결정이 느리고 궁리를 오래 하는 사람이라 마음의 로딩 기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노난: 저는 지금이 혼자 사는 집으로는 네 번째인데 세 번째 집부터 혼자 살겠다는 생각이 든 거 같아요. 이유는 가장 집다운 집이어서 안정감이 생긴 것도 있고, 동네도 제가 살고 싶은 곳을 골랐더니 여기서 이렇게 산다면 쭉 혼자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더라고요. 세 번째 집에 살 때 평소 호감조차 없던 서울 남동쪽 동네에 작은 집을 사뒀고, 지금은 평소 살아보고 싶었던 서울 북쪽에 전세로 살고 있어요. 집을 살 때 재테크도, 같이 사는 사람 수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나중에 강원도에 세컨드 하우스 갖는 게 제 로망이거든요. 그 남동쪽 동네라면 바로 고속도로 타고 강원도 가기 진짜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지금 인터뷰하는 노난 님의 전셋집 분위기가 멋져요. 서울이라곤 믿어지지 않게 집 뒤에서 산이 이어지고, 계곡도 흐르고, 주변도 고즈넉하고요. ‘사실산장’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셨죠.

노난: 다세대 주택이지만 산장 같은 느낌이 있죠? 자연 가까이서 살고 싶지만 회사 때문에 서울엔 살아야겠고, 그래서 찾다가 구한 집인데 확실히 큰 결심이었어요. 계획했던 것보다 사이즈가 훨씬 크기도 하고 사시사철 가꿔야 할 땅도 있으니까. 살아보니까 너무 좋은데 교통이나 주변 상점가 같은 걸 포기하는 것 말고도 예측하지 못한 고생이 많긴 했어요. 집 데워줄 벽난로 뗄감도 미리미리 사둬야 되고 벌레도 잡아야 되고 낙엽도 쓸어야 되고 겨울에 보일러 동파도 되고요, 눈 오면 잽싸게 골목길 눈도 쓸어야 해요.

내가 나와 잘 살기 위해서 포기할 수 없는 소비가 있나요?

노난: 뭔가 사는 것보다 밖에 나가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소비는 여행비예요. 비행기 티켓부터 숙박비, 여행 가서 쓰는 돈들이요. 어떤 소비를 할 때 기쁨이 가장 극대화되느냐 하면 여행 가서 열심히 번 돈 쓸 때고요.

루나: 저는 ‘자기 교육비’요. 1인 가구도 지출 계획에 교육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해요. 친구들이 농담처럼 사교육의 왕이라고, 제가 자기를 사교육 시킨다고 해요. 어떤 분야에 호기심 생기면 학원부터 알아보는 사람이거든요. 지금도 기타 레슨 듣고 있고, 운동 다니고, 문학 수업도 듣고, 최근에 동영상 편집 수업도 듣기 시작했어요. 학구열 높은 곳에서 학원 서너 개 돌리는 것처럼 저를 돌리고 있고 다른 데 돈 안 쓰는 것 학원비로 다 쓰는 거 같네요.

계속 일하는 1인 가구들의 군락을 꿈꾸며

혹시 은퇴에 대해 생각해보셨나요.

노난: 늘 하죠? 오늘도 했는데요.

아니, 퇴사하고 싶은 거 말고요.(웃음) 노후 생활비를 마련해두고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요. 요즘은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조기 은퇴하려는 계획도 많이 세우잖아요.

노난: 은퇴라는 게 아예 노동을 그만두는 거라면 솔직히 계획 없어요. 어떤 형태의 일이든 계속 하고 싶고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아요. 글도 계속 쓰고 싶고, 축구협회에서 일하는 것도 꿈이고, 작은 목장이나 훌라댄스 학원 운영도 하고 싶고요. 강릉에 가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참소리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거기 도슨트도 하고 싶어요. 노후 일자리를 궁리하는 쪽으로 은퇴 준비를 하는 셈이네요.

루나: 2년 전에 퇴사하면서 ‘졸사’라는 표현을 썼던 이유는 다시는 직장생활을 안 할 거라는 생각에서였어요. 어떻게 보면 파이어족과 비슷하죠? 그때는 십몇 년 넘게 회사 다니며 키운 연봉 같은 거 포기하고 나오는 거니까 앞으로는 최소한의 돈만 벌면서 조용히 살자 했거든요. 이만큼 모아놨으니까, 한 달에 이만큼씩 까먹으면 되겠다 계산하면서 은퇴한 사람처럼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덜 하고 모아놓은 돈을 까먹으면서 사는 삶이 너무 불안하고 안 맞는 거예요. 게다가 직업이 여러 개라서 신문 칼럼 기고나 일러스트레이션 외주처럼 크지 않아도 수익이 보장되는 일을 만들어놓고 퇴사했는데 코로나 터지면서 그런 일도 확 줄었고요.
갑자기 마트에서 원래 사던 동물복지 달걀을 집다가 내 주제에 하면서 내려놓고, 술집에서 칵테일을 한 잔 더 마시고 싶어도 내 주제에 하면서 자제하는 거죠. 오래 돈 벌면서 늘려온 소비의 폭이 있는데, 그걸 졸라매면서 살려고 하니까 갑자기 마음이 가난해진 기분이 들었어요.
광고 일에 많이 지쳐서 나왔으니 그것만은 안 한다가 원칙이었는데 달걀 살 때도 벌벌 떨면서 1년 정도 살아보니까 “나 돈 필요해요” 이렇게 된 거예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역시 내가 돈 벌 수 있는 건 광고구나 하면서 되게 열심히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노난과 똑같은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한은 평생 벌겠다고 생각해요. 나는 내 손으로 벌어서 살아가는 걸 제일 좋아하는구나를 많이 느꼈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말고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하면 광고 일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루나: 머릿속에 자아실현 파트랑 돈 버는 파트가 나눠져 있는데 광고 일은 돈 버는 파트이고, 시 쓰고 만화 그리는 건 자아실현 파트예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당장 플랫폼에서 연재를 시작하면 자아실현보다 돈벌이에 가까워질 것이다, 조회 수에도 연연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생각했어요.
아마도 광고 일을 프리랜서로 하는 건 길어야 몇 년이겠지만 창작하는 일은 평생 할 수 있겠죠. 나이에 따라 보이는 세계가 또 다르니까요.

엄청 철저한 계획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나를 잘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져요. 그건 어디서 오는 걸까요?

노난: 내가 나랑 살아봤더니 제가 별로 돈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일단 있고요. 그렇게 기준을 낮춰놨더니 거의 20년 가까이 회사 다니며 모은 것만으로도 최소 몇 년 이상 먹고살 수는 있죠. 억대 연봉이 아니어도 직장생활 착실히 하며 큰 돈 안 쓰고 살면 모이는 게 있잖아요. 경험의 양도 그렇고요. 그래서인지 더 어릴 때가 더 초조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고, 어떤 일을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거예요.

어떤 때 안정감을 느끼나요.

루나: 워낙 불안한 사람이라서 평생 안정감을 추구하며 살아왔죠. 농담이 아니고 마음이 불안할 때 통장 잔고를 보기도 해요. 그렇게 돈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신기하게…

노난: 가시화된 안정이니까, 그치?

루나: 왠지 증거 같아요. 이게 나를 지켜줄 것이다. 현대 사회의 많은 불안이 사실 돈으로 해결되는 게 많잖아요.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되면 돈이 있으니까 치료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고, 노년기에도 독거인으로 살 것이 걱정되면 실버타운이라도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결국 나 지켜주는 건 이 숫자다 싶어서 계좌를 들여다보면서 안정을 찾기도 해요.

노난: 그리고 역시 주거 안정이 가장 기본적인 안정감을 주는 거 같아요.

노년기에 대한 불안을 생각하며 이제 막 꾸기 시작한 꿈이 있는데요, 나이 들고 기동력이 떨어지면 외롭지 않게 비슷한 일을 해온 사람들과 모여 사는 건 어떨까 싶어요. 1인 가구끼리의 공동 거주도 생각해보셨나요.

루나: 지금도 작가나 카피라이터 들이 마포구 망원동 쪽에 많이 살고 있어서 그쪽으로 이사 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완전한 공동 거주라기보다는 군락을 이루고 사는 정도죠. 또 한 친구는 50살 되면 건물 지어서 의료 시설 연계도 하고 층층마다 지인들 살게 할 테니 돈만 모아두라고 하기도 했어요. 싱글이 늘어나는 만큼 공동 주택 같은 것도 점점 생겨나겠다는 막연한 믿음은 있어요. 그래서 전보다 덜 불안해졌고요.

노난: 저도 완전한 공동 거주보다는 딱 군락 정도, 동네 친구 있는 게 좋아요.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동네 친구가 두세 명 생겼는데 정말 좋거든요. 집에는 혼자 있을 수 있고, 나가면 아는 사람이 있고요. “결혼을 왜 안 하냐”는 질문을 들으면 늘 “결혼 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동거하는 게 싫다”는 답을 해요. 나중에는 급한 일이 있으면 동네 친구가 봐줄 수 있는 환경에서 강아지랑 살고 싶어요. 근데 어떤 형태로든 따로 또 같이 주거 형태 사례가 늘어나는 건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진로 등 어떤 선택을 할 때, 2,3,4인이 아닌 1인 가구라서 달라지는(혹은 고민되는) 부분이 있나요?

노난: 1인 가구마다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저는 이왕 1인 가구로 살기로 한 거 다인 가구가 못하는 선택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부동산을 예로 들면 학군이나 역세권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택하는 것처럼요. 그런 곳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저렴하니까 좋고요. 투자라면 다인분의 여윳돈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금 운용에 큰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해요. 1인 가구라서 불안한 것도 많지만 1인 가구니까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누리면서 살고 싶어요.

루나: 노난의 이야기 전부 공감하고요. 다인 가구는 가족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야 하지만 저희 집안은 저만 생각하면 되거든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내 집을 친구에게 빌려주고 나는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다 오겠다’ 이런 계획도 가능한 것처럼요.
다만 그런 자유도의 이면에는 책임이 따른달까, 결국 나를 건사할 사람은 나뿐이니까 마음이 묵직해지는 순간도 분명 있어요. 앞으로도 쭉 혼자 살 거라고 다짐했을 때부터 각종 보험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내가 힘들 때 스스로 케어하기 위한 백업을 필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1인 가구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가 꼭 결핍일까? 혼자는 완성의 말이다. 나는 혼자일 때 비로소 자유롭고 평화롭다. 물론 영원히 혼자이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사회적인 인간이라 때로 혼자인 게 진력이 나고 타인이 그립다. 우리의 거제 여행처럼 함께일 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맺는 관계가 ‘부족한 혼자’끼리 만나 서로 완성하는 관계이기보다 ‘완결된 혼자’끼리 서로를 부딪치며 건배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혼자는 충분하고 충만하다.
– 홍인혜, ⟪고르고 고른 말⟫, ‘이토록 혼자’ 중에서

Interview・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Photo 김예샘

Interviewee
노윤주(노난)
광고대행사 AP(광고전략 플래너)로 일하는 근로소득자. 1인 가구가 된 지는 12년 차. 에세이를 쓰고, 코미디 팟캐스트 ‘다정한 사람에게 다녀왔습니다’를 진행하고, 자기성장 커뮤니티 HFK의 ‘인생 첫 카피’ 파트너에, 에어비앤비 체험 ‘인왕산 걷고 다함께 치맥!’을 운영하는 n잡러이기도 하다. 회사를 졸업하면 반년은 서울에서, 반년은 서울 밖에서 사는 것이 꿈이다. ⟪오늘의 모험, 내일의 댄스⟫ 등을 썼다.

홍인혜(루나)
카피라이터, 만화가, 에세이스트, 시인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자유노동자. 1인 가구가 된 지는 11년 차. 뭐든 햄스터처럼 모으는 것을 좋아해 돈도 열심히 모았다. ‘전세 사기’라는 큰 역경에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회복한 뒤 더 단단한 1인 가구 가장이 됐다. 자칭 창작 관종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은 계속하고 싶다. ⟪고르고 고른 말⟫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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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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