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인에게는 매월 얼마가 필요할까?
ㆍby 사소한 질문들
MZ세대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면
행복한 노후, 돈 걱정 없는 노후. 누구나 가진 바람입니다. 우리 사회가 눈에 띄게 고령화되며 더욱 간절한 소망이 됐지요. 비참한 한국 노인의 전형인 폐지 줍는 모습과 노후자금이 몇 십억 원은 돼야 한다는 으름장이 넘쳐나 젊은 세대의 노후 불안은 커져만 갑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양 극단의 20대를 봤습니다. 한 쪽은 조기 은퇴를 꿈꾸며 월급의 80% 이상을 저축합니다. 한 푼도 쓰지 않는 날도 꽤 되더군요. 다른 쪽은 월급의 대부분을 명품 가방과 옷에 씁니다. 주변의 성화로 월급 1%를 주택청약에 넣는 게 저축의 전부입니다. 전자는 청춘을 저당 잡힌 채 몇 푼에 벌벌 떨며 저축 강박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걱정합니다. 후자의 마음속에선 마냥 이렇게 살 수 없을 텐데 하는 두려움이 수시로 고개를 들고요. 대부분의 청년은 둘 사이 어느 지점에 있거나, 양쪽을 오가며 끊임없이 고민하겠지요.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경제대국,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PPP) 4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입니다. 그런데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노인에게는 더 가혹합니다. 수입이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노인의 비율을 나타내는 노인 빈곤율은 OECD국가 중 1위입니다. 기초연금 덕택에 2020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39.8%로 조금 줄었으나, OECD 평균의 3배에 이를만큼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착시 현상은 있습니다. 흔히 보는 노인의 전형은 대체로 2030의 조부모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은퇴하는 5060의 부모 세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압축적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에서 한 세대(30년) 동안 벌어진 변화는 엄청납니다. 경제의 비약이 가장 극적이죠. 생존과 자식 부양에 모든 걸 쏟아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부모와 달리 5060세대는 부동산·금융 자산, 고학력, 더 나은 건강, 늘어난 연금으로 무장했습니다. 여전히 에너지가 넘쳐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은퇴 뒤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활기차고 즐거운 노후를 보내는 고령자는 갈수록 늘어날 겁니다. 2030세대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노년의 풍경들이 펼쳐질 수도 있겠지요. 그렇기에 젊은 세대에게 더욱 중요한 노후대비. 노후하면 불안이 먼저 떠오르지만, 어느 정도 자금과 건강이 뒷받침된다면 노후야말로 가장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기일지도 모르니까요. 20여 년간 해온 노후 연구를 바탕으로 행복한 노후를 위해 ‘지금’ 실천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 해보려합니다.
- 소소한 행복으로 ‘위장한’ 지출 찾기
행복한 노후의 기초는 물적 토대, 즉 ‘돈’입니다. 소비성향에 따라 개인차가 크지만, 마음의 안정감을 위한 일정 수준의 노후자금은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대 이상 중·고령자가 생각하는 적절한 노후생활비(월)는 1인 165만 원, 부부 269만 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설문조사 결과이고 물가 상승률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므로 나에게 맞는 진짜 노후생활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내 씀씀이를 챙겨봐야 합니다. 매달 옷값, 외식을 포함한 식비, 문화・취미・관계비용 등 덩치가 큰 항목을 보면 소비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노년에도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거나, 정기적으로 해외여행까지 즐기고 싶다면 지금보다 더 큰 자금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소비 흐름 파악을 통해 소확행으로 ‘위장한’ 지출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동구매의 유혹이 곳곳에 널려있는 시대에는 소비력을 키우는 것이 답입니다. 소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필수가 아닌 군더더기 지출을 줄여나가며 건강한 씀씀이를 만드는 것을 추천합니다.
2. 큰돈 들이지 않고 마음 채우는 연습하기
가진 것(자산)에 비해 갖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능력)에 비해 하고 싶은 게 적을수록 행복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산을 늘리는 것보다 욕망을 줄이는 편이 쉽습니다. 주변의 눈을 의식하거나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볼 때 치솟는 욕망을 줄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소소한 재미와 즐길 거리에 나를 길들이세요. 큰돈 들이지 않고 마음 채울 만한 것이 수두룩합니다. 둘레길을 걸으며 보는 풍경이나, 책과 영화 드라마, 가깝고 짧은 여행, 나의 시간을 조그맣게 내어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워보는 일. 물질이 아닌 것으로부터 만족감을 얻고 존재 가치를 찾는 연습은 노후자금 걱정을 줄여줍니다. 행복은 야속하게도 제 발로 찾아오지 않거니와, 오래 머물지도 않습니다. 행복을 스스로 찾고 느끼는 연습이 꾸준히 필요합니다.
3. 든든한 노후대비, 3층 연금 쌓기
노후자금의 기둥은 역시 연금입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층 연금으로 노후생활비를 충당하도록 설계하는 게 최선이죠.
3층 연금 플랜의 1층은 국민연금입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과 불신은 여전합니다. 젊은 세대는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억측과 엄포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외치고 싶네요. ‘정답은 닥치고 국민연금!’ 국가가 존재하는 한 공적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여느 선진국처럼 정년과 연금 지급 시기가 늦춰지고 운영 방식이 바뀌어 기금 고갈 우려를 해소할 겁니다. 조금 떨어진다 해도 어떤 연금 플랜보다 유리한 게 국민연금입니다. 지급액이 물가에 연동돼 안정성이 탁월하고, 직장인은 납부액의 절반을 회사가 내기 때문에 더 말할 것도 없죠.
2층으로 가보겠습니다. 회사에서 받는 ‘퇴직연금’입니다. 퇴직 때 한꺼번에 받는 퇴직금 대신 연금 형태로 지급되는 걸 말합니다. 회사가 관리하는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과 스스로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이 있습니다. DB는 내가 퇴직할 때 받을 금액이 사전에 확정된 연금입니다. 퇴직 전 3개월 급여 평균치에 근무연수를 곱한 금액입니다. 회사는 직원들의 퇴직급여를 외부 금융기관에 맡기지만, 그 운용 성과에 관계없이 퇴직할 때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죠. DC는 본인이 투자한 상품의 수익과 손실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퇴직금 금액이 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달마다 월급의 1/12이 자신이 정한 금융기관의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됩니다. 이 계좌를 활용해 투자한 성과물이 곧 퇴직금이 됩니다. 퇴직하면 더 이상 월급이 나오지 않는 데다 살면서 큰돈 들어갈 때가 적지 않아 퇴직금을 한꺼번에 받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지막 목돈인 퇴직금을 일찍 까먹을 우려가 있습니다. 생존 때까지 계속 지급되는 연금 방식으로 나눠 받을 때 노후의 경제적 안정성이 높아집니다. 또 일시불로 받을 때의 퇴직 소득세 대신 30% 적은 연금 소득세를 내면 되므로 절세 효과도 있습니다.
마지막 3층, 개인연금입니다. 회사와 무관하게 개인이 가입하는 상품을 말합니다. 개인연금은 개인형퇴직연금(IRP)과 연금저축보험·펀드로 나뉩니다. IRP는 여유자금을 넣어 운용하다가 55살 이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상품입니다. 개인연금의 가장 큰 장점은 세액공제가 된다는 것인데요. 1년에 연금저축 400만 원, IRP를 합쳐 총 700만 원까지 소득에 따라 13.2% 또는 16.5%의 세금을 연말정산에서 돌려받을 수 있죠. 퇴직 뒤 연금으로 받을 때에는 3.3~5.5%의 연금 소득세를 내면 되고요. 연금저축보험은 수익률이 신통치 않지만 원리금 보장이 장점입니다. 반대로 연금저축펀드와 IRP는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기 때문에 수익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개인연금 들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노후준비를 돕기 위해 개인연금에 세금 혜택을 준 것이기 때문에 중도 해지할 경우 손실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기억해야 합니다. 중도 해지 시, 무려 16.5%의 세금을 토해내야 합니다. 원리금 보장이 장점인 연금저축보험 또한 다른 보험 상품처럼 초기 사업비를 많이 떼기 때문에 중도 해지 때는 원금 손실이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 연금저축이든 IRP든 퇴직 때까지는 없는 셈 치고 묻어두는 게 현명합니다.
4. ‘한 방의 덫‘ 피하기
지난해 주식 인구 1천만 시대가 열렸지만 하반기부터 증시가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경우 주식·펀드의 담보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매각(반대매매)해 빌려준 돈을 회수해갑니다. 주가 반등까지 버티려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죠. 금융감독원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투자자 반대매매 규모가 4조 4437억 원으로, 2019년 대비 90% 급증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76%가 3일짜리 초단타 거래였고요. 전업 투자자가 아니라면 투자 종목을 분산하고 장기 보유로 위험을 줄여야 합니다. 주식뿐 아니라 다른 투자도 마찬가지고요.
지인의 지인이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 방의 유혹’에 흔들리는 게 사람 마음이겠죠. 때문에 경제적 소양이 더욱 중요합니다. 내게 맞는 재무 설계와 자산관리를 위해선 국내외 경제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단기적 가격 오르내림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풀린 돈의 규모,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돈줄 죄기 정도, 국내 인구·가구 수 증감 추세 등 여러 판단 근거를 바탕으로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투자하는 자세가 안정된 가계와 노후의 버팀목입니다. 영끌과 빚투는 가계파산으로 가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습니다.
5. 운동 습관으로 노후 자산 만들기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모두 알지만, 먹고살기 바빠 뒷전으로 미뤄 놓기 쉽죠. 운동 결심만큼 사흘을 넘기기 힘든 것도 드물 겁니다. 노후에 날아올 고액의 청구서를 대비해 운동하는 습관을 들입시다. 죽기 전 마지막 1년 동안은 평생 의료비의 절반 정도를 쓰게 됩니다. 공적 의료보험이 취약한 미국에서는 노후 파산의 최대 원인이 의료비입니다. 한국에서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간병비 부담이 크고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간병인을 쓰면 월평균 280만 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고 합니다. 국민연금만으로 온전히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죠. 운동하는 습관을 들여 건강을 관리하는 건 훌륭한 노후 자산이 됩니다. 노후에는 돈을 까먹지 않는 게 곧 버는 것이니까요.
직장 생활이 끝나고 나이가 들면 관계의 폭도 확 줄어듭니다. 가족과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절감하게 되죠.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많은 돈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도 아닙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는 것 또한 노후의 외로움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5월은 가까운 이들에게 한 발짝 다가가기 좋을 때죠. 지금부터 관계에 조금씩 마음을 쓴다면, 노후에 든든한 위로가 되어줄 겁니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Writer 박중언
30년 넘게 <한겨레> 기자로 글을 쓰고, 노년학(Gerontology)을 공부하며, 고령사회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한다. 노후 관련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와 시니어 사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건강하고 즐겁게 나이 드는 세상, 나이로부터 자유를 꿈꾼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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