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질문들⟩ 가을호: 주거환경, 생존과 낭만 사이
ㆍby 사소한 질문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집 바닥이 흥건하게 잠겨있었습니다. 천장 구석에서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고요. 열 평 남짓의 반지하였지만 생애 첫 독립이었기에 아기자기하게 꾸몄던 공간이었어요. 물에 젖은 물건들을 보며 얼마나 속상했던지요. 설렘과 낭만에 가득 차 시작했던 독립이었지만 새벽 내내 물을 빼고 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하지.’
다행히 더 이상의 물난리는 없었고, 그집에 사는 동안 좋은 일도 많았어요. 하지만 먹고 ‘사는’ 걱정은 물난리처럼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곤 했습니다. 온수가 고장 났을 때의 난감함, 늦은 밤 바깥의 낯선 소리가 주는 긴장감, 재계약 시기의 초조함. 집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상황과 감정들은 온전히 집에 머무르는 사람의 몫이었죠. 그때 알게 됐습니다. 집은 한없이 낭만적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잠만 자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요.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은 UN이 제정한 ‘세계 주거의 날’입니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주거가 기본적인 권리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날이라고 해요. 올해는 유난히 집에 대한 이슈가 많았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집은 학교 혹은 직장이 되고, 역할이 다양해지며 집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부동산 시장에는 똘똘한 한 채 열풍이 이어졌고요. 반면 이 모든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안타까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지난 8월 폭우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반지하에 거주하던 주거취약계층이었죠.
<사소한 질문들> 가을호 키워드는 ‘주거환경, 생존과 낭만 사이’입니다.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소비되는 예쁘고 근사한 집의 모습을 넘어, 집 본래의 역할과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했지만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해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히는 ⟨사소한 질문들⟩.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준비한 6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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