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어떤 집을 ‘좋은 집’이라고 생각할까?

by 사소한 질문들

‘다들 정말 잘해놓고 사네’ 요즘 SNS를 보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입니다. 나만 빼고 모두 예쁘고 근사한 ‘좋은 집’ 에 사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매일 SNS에서 집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날은 우리 집이 괜스레 초라해지기도 합니다. 우리집 만큼 세상 편한 곳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근사한 집들을 보면 풀이 죽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좋은 집을 꿈꾸는 것은 보편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집 하나쯤은 있으니까요. 그런데 ‘좋은 집’ 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질 좋은 가구들로 채워진 집? 투자 가치가 큰 집? 잡지에 나올 법한 근사한 인테리어? 두 전문가를 만나 ‘좋은 집’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옥탑방부터 풀옵션 원룸까지. 다양한 집을 경험한 최고요(이하 고요)는 셀프 인테리어 이야기를 블로그에 담아 유명해졌고, 현재는 공간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윤영(이하 윤영)은 건축 칼럼니스트로 건축과 관련된 사회, 문화,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나만의 공간을 구축한 다는 것

좋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두 분이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이 궁금해요. 어떤 집들을 거쳐 오셨나요?

고요: 28살에 자취를 시작했어요. 옥탑방, 풀옵션 원룸, 투룸, 복층,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을 거쳤어요. 한국에서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호주에서 지냈었는데요. 100년 된 집을 빌려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했었어요.

사소한 질문들

윤영: 1999년에 결혼을 하면서 사당동에 24평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거실 하나에 방 2개가 마련된 집이었어요. 처음에는 하나는 침실, 하나는 공동 서재로 사용했는데, 서재를 함께 쓴다는 것은 어딘지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10개월 만에 방 3개짜리 아파트를 구해서 공동 침실, 아내의 서재, 남편의 서재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각각의 서재를 둔다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죠. 돌아보면 20년 동안 자신의 방, 자신의 공간을 구축해 온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결혼을 해서도 저와 남편은 항상 따로따로 각자의 서재를 가져왔어요.

지난 시간 동안 집순이로 살면서 집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했는데요. 재작년에 이 작업실을 구했어요. 작업실 겸 세컨드 하우스로 쓰고 있어요. 더 전문적으로 작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일종의 주거 실험이기도 해요. 옷을 바꿔 입는 것처럼,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작업실에서 집에 관한 여러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시도해 보고 있어요.

서윤영

고요님은 거쳐 오셨던 집에 ‘고요의 집’이란 이름을 붙이셨어요. 서울에서 생활하셨던 ‘고요의 집’들은 모두 낡은 집이었고, 손수 집을 고치며 사셨어요.

고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요. 제 취향이 반영된 것도 있어요. 오래된 집이라도 사이즈가 더 큰 게 나을 것 같아서 낡은 집을 고치는 편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잘 몰랐지만 큰 마음 먹고 문도 페인트칠 하고, 싱크대 상부장도 직접 칠하고, 선반 같은 것도 설치하고 그랬죠.

제게는 어렸을 때부터 집이 되게 중요한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식구가 단칸방에서 생활했던 적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살았던 적도 있었어요. 부모님이 밤낮없이 일해서 10살 때쯤, 연립 주택을 구매하셨는데 너무 행복했거든요. 아빠가 제 방을 위해 골라주신 백설공주 벽지, 뒷베란다에서 나던 새소리도 다 기억나요. 공간이 주는 행복을 어린 시절에 느껴서 공간에 대한 욕망도 컸던 것 같아요.

저는 돈이 없어도 내 집이 아니어도 ‘좋은 집’에 살고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엔 그게 전부였어요.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보듬어 주는 공간을 만들면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얼마나 일상에 동기부여가 되는지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막연히 지금 당장 좋은 집에 살고 싶었고, ‘으리으리하지 않아도 나에게 맞게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아주 쉬운 것 부터 시도했어요.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최고요

고요의 집 시즌1. 3년간 살았던 이태원 집 / 사진: 최고요 블로그

요즘 집의 의미와 역할이 많이 확장된 것 같아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좋은 집’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도 커졌고요.

윤영: 집은 외부 요인에 따라,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 의미와 역할을 굉장히 민감하게 반영해요. 중세 시대에 집은 직주 합일, 그러니까 직장과 주거가 합쳐진 공간이었어요. 산업혁명으로 대규모 공장과 기업이 생기면서 직장과 주거 공간이 분리되고, 사람들이 집을 떠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집에 있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무직자, 백수로 불렸죠. 우리가 이런 말 자주 하잖아요. “그 사람 요즘 뭐해? 안 보이던데?” “어, 그냥 집에 있나 봐” 심지어 집에서 일을 한다는 건,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취미 혹은 부업으로 폄하되는 경향도 있고요.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전환점을 맞이한 게 아닐까 싶어요. 누구는 재택근무를 하고, 누구는 홈스쿨링을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 작은 불편도 견디기 힘들어지죠. 그러니까 집을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하면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라인도 두 집이나 수리를 하더라고요.

고요: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집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된 건 좋은 일 같아요. 그런데 SNS에 집 사진이 많이 올라오잖아요. 누군가는 집을 과시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혼돈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유행하는 가구는 너무 고가고요. 저도 유명한 디자인 가구를 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남들이 다 가지고 있으니까 예뻐 보이고, 공간 디렉턴데 유행하는 가구가 없어도 되나? 싶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나는 뭔가 새로운 걸 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사명감도 생기고요. 이런 고민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은 있는 걸 잘 쓰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그런 가구가 없는데, 나는 그런 집이 없는데’ 이런 마음까지 안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저에게도 어려운 일인 것 같네요.

좋은 집은 예쁜 집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좋은 집 = 예쁜 집이 된 것 같아요. 좋은 집과 예쁜 집은 어떻게 다를까요?

고요: 예쁜 집이 좋은 집일 수는 있지만, 좋은 집이 꼭 예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집이 정말 좋은 집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요리를 좋아하면 주방이 제일 커다랗고, 잠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침실의 방향과 좋은 침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할 거고요. 자기만의 우선순위가 정확한 공간. 그런데 스스로의 우선순위를 아는 게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나의 우선순위를 아는 것 자체가 이미 좋은 집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하신 대로 공간에 대한 우선순위를 아는 일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고요님은 본인의 취향과 우선순위를 어떻게 찾으셨나요?

고요: 집 가꾸기 리추얼을 1년 반 정도 운영했었어요. 그때 매일 공간 일기를 썼었는데요. 오늘 내가 집을 위해서 한 일을 한 가지씩 기록하는 거예요. ‘오늘은 옷장을 정리했다’ 이런 식으로 아주 간단히 일기를 쓰는 거예요. 1년 반 동안 매일 공간 일기를 쓰니까 제가 원하는 게 너무 심플하고 정확하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스스로 도회적인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했거든요. 도시 좋아하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스타일을 좋아해서요. 그런데 제가 모아둔 이미지나 살고 있는 공간을 보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요. 막상 곁에 두는 건 따뜻한 느낌의 나무, 자연에서 온 소재 같은 것이더라고요. 유럽의 할머니 같은 스타일 있잖아요(웃음). 결국 제 취향도 간극이 있었던 거죠.

최고요

취향의 간극이 보이는 최고요의 집. 오래된 가구와 따뜻한 느낌의 오브제들이 많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취향과 우선순위에 따른 집. 집의 다양성과도 연결되는 이야기 같아요.

윤영: 우리나라는 4인 가구 기준, 3LDK(3개의 침실과 거실 및 주방이 있는 주택 형식)가 가장 보편적인 형태였죠. 지금까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잖아요. 그런데 이제 4인 가구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1-2인 가구가 늘어나죠.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주택의 형태도 당연히 변화해야겠지요.

우리나라에 획일적인 주택인 아파트가 많은 이유는 땅이 작기도 하고, 국토의 70% 산이잖아요. 환경적인 이유도 있고요. 일제강점기, 6.25 두 번의 큰일을 겪으며 주택을 단기간에 빠르게 공급해야 했던 배경도 있긴 하지만요.

아무리 작은 아파트라도 방은 3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집에 4인가구가 산다는 전제하에 나온 것이다. 즉 부부를 위한 안방 하나에 자녀 방 둘. 여기에 44평짜리 중대형 아파트로 가면 방 하나를 옵션으로 더 넣는 식이다. 1.5인가구를 위한 방 1개짜리 12평 아파트나 방 2개짜리 18평 아파트는 아예 계획에서 제외되어있다. 그래서 1.5인가구는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의 대세는 1.5인가구인데 이들이 왜 주거문화, 주거 정책에서는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가

-서윤영,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

두 분이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공간에 대해 듣고 싶어요. 집을 ‘내게 맞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작업들을 하시나요?

고요: 저는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비주얼적인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제가 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을 집 구석구석에 많이 배치해요. 그래서 수납장도 다 보이지 않게 넣을 수 있는 제품보다 물건들을 어느 정도 꺼내 놓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진 것을 선호하고요. 새로운 물건을 집에 들일 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에요. 또 제가 좋아하는 무드를 유지하면서 고양이들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큰 과제였죠. 그래서 집 가구들을 보면 천장까지 닿지 않고 공간이 모두 띄워져 있어요. 고양이들이 올라가서 놀 수 있도록요.

물건을 신중하게 고른다는 것은 물건을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신중하게 들인 물건은 쉬이 버려지거나 대체되지 않습니다. 가족이 되고 이야기가 됩니다.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최고요의 서재는 고양이 집사답다.

윤영: 건축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제 공간이 대단히 예쁠 것을 기대하고 꼭 물어봐요. ‘인테리어 직접 하셨어요? 인테리어 컨셉은 뭔가요?’ 그런데 저는 인테리어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들 의외라는 표정을 짓죠. 지금도 그런 표정이시네요(웃음). 대신 가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특별히 비싼 가구를 쓰는 건 아니고요. 요즘 저렴하게 잘 나오는 가구들도 많으니까요. 제가 가구를 선택하는 원칙이 있어요. 내 손으로 옮길 수 있는 가구만 사자. 이게 원칙입니다. 가구는 배치를 달리해서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인테리어보다는 가구를 활용하는 편입니다.

서윤영의 작업실 겸 세컨드 하우스의 변천사. 같은 공간이지만 가구 배치를 옮겨 공간을 자유롭게 쓴다. / 사진: 서윤영

가구 배치에 따라서 정말 공간의 활용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요.

윤영: 개인적으로 물건을 위한 방은 만들지 않는다, 공간은 모두 사람이 써야 한다는 주의에요. 이런 계산을 해본 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서울 33평 아파트를 10억이라고 가정해볼게요. 그럼 평당 약 3천만 원 이잖아요. 근데 우리는 1평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없단 말이죠. 1평이 1.8m x 1.8m 거든요. 5만 원 권을 두 장씩 겹쳐서 300장을 깔면 그게 1평 값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침대를 200만 원에 샀다고 했을 때, 사실상 점유 비용 공간까지 하면 3200만 원이 되는 거죠. 쉽게 생각하면 집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돈을 깔고 있는거예요. 주변에 보면 옷이 너무 많아서, 물건이 너무 많아서 방 하나를 물건에 내어주는 경우가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귀한 공간은 사람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가능한 많은 물건을 두지 않으려 해요.

공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쓰기 위한 팁이 있을까요?

윤영: 수납가구를 줄이고 신체가구를 늘려보세요. 모델하우스가 근사해 보이는 건 수납가구가 거의 없고 신체가구 위주로 공간이 구성되어서 그렇거든요. 신체가구는 우리 몸이 직접 닿는 가구들을 말해요. 침대, 의자 이런것들요. 수납가구는 옷장 같은 거고요. 집은 사람의 신체와 비슷해요. 수납가구는 쓰지 않는 물건을 넣어둔다는 점에서 지방 조직과 같아요. 신체가구는 매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근육과 같습니다. 우리가 몸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 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리잖아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수납을 위한, 물건을 위한 방을 만들지 않는다는 건 전체적으로 물건의 양을 줄인다는 뜻이에요. 대신 그 자리에 신체가구를 하나 더 놓아 보는 거죠.

내게 맞는 공간을 만들기 까지, 두 분도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어오셨겠지요?

고요: 블로그나 책에 소개된 ‘고요의 집’ 말고도 다양한 집을 거쳤어요. 여섯 평짜리 샌드위치 판넬로 된 옥탑방은 결로가 너무 심해서 물이 줄줄 새기도 했고, 지하에 노래방이 있던 주변 환경이 다소 열악했던 풀옵션 원룸에서도 살았고요. 그런 집들을 짧게 짧게 거쳐 이태원의 투룸 집을 고쳐 살기 시작했어요.

집을 고쳐살면서도 마찬가지예요. 취향이라는 게 계속 발전하는 거잖아요. 예전에 제가 골랐던 색, 샀던 가구들 모두 다 시행착오 투성이었죠. 조금 더 멀리 보고 선택할걸, 생각이 들더라고요. 금방 질릴 포인트 컬러로 집을 꾸민다거나, 오래 쓰지 못할 가구를 산다 거나요.

윤영: 지금 바로 보고 계신 이 소파요(웃음). 모델하우스 가보면 가구 사이즈가 아주 조금씩 작습니다. 가구의 크기를 조금씩 줄여서 공간이 넓어 보이게 하는 거죠. 비율의 문제예요. 연예인들이 얼굴이 작으니까 키가 커 보이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우리 집 가구의 크기를 10%씩만 줄이면, 역으로 공간이 10% 넓어지는 거잖아요. 지금 제가 사용하는 이 테이블도 깊이가 60cm예요. 안정적으로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려면 깊이가 80cm는 돼야 하지만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서 비율을 줄인 60cm짜리 책상을 산 거죠.

근데 사이즈를 줄이기 어려운 게 침대예요. 사이즈가 딱 정해져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원하는 사이즈의 카우치 소파를 산 거예요. 낮에는 소파로, 밤에는 침대로 쓰면 되겠다 싶어서 샀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요.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침대를 또 사게 됐어요. 이렇게 계속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좋은 집은 내부뿐만 아니라 환경이나 인프라 등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좋은 집이 갖추어야 할 외부적인 요소들로는 뭐가 있을까요?

윤영: 건축가들이 설계를 아무리 잘해도 지하철 뚫리는 거 못 당한다, 백화점 하나 들어오는 것 못 당한다, 이런 소리를 해요. 그만큼 주거에 있어서 인프라가 중요합니다. 불과 70-80년대만 해도 서울에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들이 많았죠. 주차할 수 있고, 마당 있고, 5인 이상 식구들이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죠. 부잣집들은 가정부가 생활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추고 있었고요. 그런 집들을 보면 주택 자체의 ‘완결성이 높다’라고 해요.

그런데 1~2인가구가 될수록 주택 완결성은 떨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5평, 7평, 운 좋으면 12평. 누에고치처럼 웅크리고 산단 말이에요. 주택 완결성이 낮기 때문에 주변 인프라가 무척 중요하고, 좋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들이 나가야 하잖아요.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호캉스 이런것들도 주택 자체의 완결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끼리 모여서 파티하고 싶은데 집 크기가 너무 작아서 못하죠. 그렇기 때문에 에어비엔비 같은 방을 따로 잡아서 노는 거고요. 공원 같은 외부 인프라가 더 많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 서울을 떠나 사는, 일명 탈서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인프라가 낮은 대신 높은 주택 완결성을 찾아서 간다고 볼 수 있겠네요.

윤영: 그렇죠. 저도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어요. 20대 때, 부모님이 용인으로 이사를 가셨거든요. 마당도 있고, 땅도 넓고, 집은 좋았어요. 근데 교통이 엄청 불편해요. 저는 대학생이었고, 친구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해야 하는데 교통이 안좋으니까(웃음) 그때 이제 알았죠. 제 주거 환경에는 인프라가 중요하다는걸요.

고요님은 지금 서울을 떠나 생활하고 계시잖아요. 어떠세요?

고요: 지인이 지금 살고 있는 신현리를 추천해 줬어요. 좋은 산책로와 거실 창밖의 풍경, 그리고 작은 테라스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어요. 저는 고양이 3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어서 집에 계단이 있거나, 실외 공간이 있는 집을 선호하거든요.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책할 수 있고, 주차 걱정 없고, 안전해서 집 자체에는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 집을 구할 때, 때마침 코로나로 사무실을 잠시 뺐던 시기라 가능한 선택이기도 했어요. 일주일의 며칠은 재택 근무로 일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만약 제가 9 to 6로 매일같이 서울 사무실에서 일해야 했다면 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이 동네는 교통 체증이 심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하거든요.

주변 인프라는 확실히 약해요.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해도, 슈퍼를 가려고 해도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거리에 있죠. 때문에 운전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으로 이사온 후 나는 미국에 살고 있다, 라고 편하게 생각해요(웃음). 대신 쉴 때는 정말 리조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에요. 2년을 살아도 그 생각은 여전해요. 그런 부분은 좋습니다.

최고요 집의 테라스 풍경

좋은 집,
내가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편안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다양한 주거 공간을 거치며, 삶의 태도나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궁금해요.

고요: 옥탑방에 살 때와 지금, 집을 대하는 제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아요. 옥탑방에 살 때도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꽃무늬 벽지에 페인트를 칠하고 재활용 센터에서 들여온 가구, 엄마가 만들어준 커튼을 창틀에 걸고 누워있으니 ‘이제 나다운 공간에 사는구나’ 싶어서 뿌듯했어요. 다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예전에는 지금보다 한계가 더 많았죠. 금전적으로도 그랬고 경험도 부족했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원하는 집의 모습에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어요.

가끔은 집이 나를 채찍질하는 것 같기도 해요. 조금만 소홀해도 집은 금세 어수선하고 지저분해지잖아요. 정성 들여 꾸민 공간을 방치할 수 없으니 청소를 루틴화 하고, 더 좋은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런 노력들이 제게 안정감과 행복감을 가져다주었죠. 집과 저는 그런 선순환적인 관계를 맺어왔어요.

윤영: 어릴 때 부모님이랑 함께 살던 4인 가족일 때는 집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가족이 4명이지만 집에 대한 내 의견이 반영될 확률은 4분의 1이 채 되지 않으니까요. 결혼을 하고 2인 가구로, 주거 실험을 하며 간헐적 1인 가구로 생활하면서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결혼을 하니까 4인 가구로 살때보다 집에 대해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지고요. 또 작업실을 얻고 간헐적 1인 가구로 생활할 때는 방범 문제부터, (집에서는 남편이 맡고 있는) 관리비, 공과금 같은 것도 챙겨야 하고요. 가구 형태가 변하고 식구 수가 줄어들수록 무게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요?

윤영: 옛날부터 집은 사는 사람을 대변해 왔어요. 사람을 부를 때, 집이나 사는 곳으로 대신 부르기도 했잖아요. 우리가 잘 아는 신사임당도, 당호(堂號)에요. 신사임당이 머물렀던 거처의 이름이 사임당입니다. 마찬가지로 파주댁, 장성댁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부르기도 하죠. 단순히 머무르는 공간을 넘어서 집은 한 사람의 정체성인 것 같아요.

사소한 질문들

서윤영의 서재. 20년 간 글을 써온 건축 칼럼니스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공간이다. / 사진: 서윤영

고요: 그곳에 사는 사람을 발전시켜줄 수 있는 곳. 이게 집이 가진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싶은데요. 집은 쉬는 곳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충전한 에너지를 통해 우리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맺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잘 관리된 집은 인간의 내면을 발전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두 분에게 ‘좋은 집’ 이란 무엇인가요?

고요: 사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집이 ‘좋은 집’ 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집을 알뜰살뜰하게 가꾸고, 예뻐해 주며 살고 있어요. 아침마다 집을 깨끗이 정돈하고 ‘나다운’ 집을 바라보는 기쁨을 누립니다. 집의 크기와 미학을 떠나서 사람의 마음과 손길이 닿는 공간인지가 중요해요. 예를 들어 부모님 또래의 어르신이 정성스레 가꾸는 집을 방문하면 그런 곳은 생김새가 조금 촌스러워도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좋잖아요. 저는 그런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윤영: 사는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곳이 좋은 집 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게는 인프라가 잘 되어있는 도시의 아파트(공동주택)가 좋은 집입니다. 저는 그냥 그게 편하고 좋아요. 건축 한다고 하면 왠지 양평이런데 가서 집 짓고 살것 같잖아요. 아파트에 사는 건축가도 많아요. 땅사서 집짓는게 보통일이 아니니까요. 요리사들이 집에 와서 요리 안 해먹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기까지 나의 하루는 온전히 집 안에서 이루어지고 때로는 며칠 동안 집 밖을 전혀 나가지 않을 때도 있다. 철저한 집순이지만 이 별명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 내게는 집이 저녁 늦게 퇴근해 돌아와 씻고 잠을 자다가 아침이 되면 곧바로 떨치고 나가는 곳이 아닌, 사람이 내내 머물며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때로 친구나 이웃을 초대해 홈파티를 벌이는 다기능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가장 집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서윤영,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

빛이 드는 서윤영의 거실 풍경 / 사진: 서윤영

두 분이 꿈꾸는, 앞으로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고요: 버지니아 울프 부부가 1919년부터 세상을 떠날때 까지 살았던 ‘몽크스 하우스’라는 집이 있어요. 온갖 식물과 꽃이 흐드러진 정원과 텃밭, 과수원, 연못이 있는 옛날식 집이에요. (지금도 버지니아 부부가 살던 모습으로 복원되어 유지되고 있다고 해요) 3000 제곱미터쯤 되는 넓은 땅에 집 자체는 소박하고 작아요. 부부가 소설을 써서 돈을 벌면 조금씩 원하는 형태로 고쳐가며 사용했대요. 정원을 따라 걷다 보면 버지니아가 집필을 하던 ‘글쓰기 오두막’도 있어요. 그곳은 말하자면 부부의 시골 집으로, 세컨드 하우스였던 셈인데 거기서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며 삶의 많은 부분이 풍요로워졌다고 해요. 몽크스 하우스 이야기를 접하고 저도 그런 집을 꿈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 정원이 없더라도 사람과 일에 지쳤을 때 여행처럼 찾아갈 소박한 마당이 딸린 시골집이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에서는 아파트에 살더라도 말이죠.

윤영: 예전에 제가 일본에서 생활할 때,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필름 사진을 하는 작가였는데요. 부엌을 암실로 개조해서 사용한다고 하더라고요. 냉장고에는 음식 대신 약품을 보관하고요. 그 분이 “1층 편의점은 내 부엌이다” 라는 말을 해서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의 취향, 우선순위에 따라서 공간을 개조한 거죠. 집에 꼭 부엌이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저는 언젠가 주방을 카페로 만들고 싶어요. 요리를 즐겨 하지 않거든요. 대신 도서관, 카페 공간을 좋아해요. 주방을 카페처럼 인테리어해두면 밥하기는 불편하겠지만, 항상 카페에서 브런치 먹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우스꽝스럽다고 하겠지만, 해보고 싶어요.


Interview﹒Edit 이지영 Photo 김예샘

Interviewee 서윤영

건축과 관련된 사회, 문화, 역사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건축 칼럼니스트.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건축칼럼을 기고해 왔다. 개인의 공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작업실 겸 세컨드 하우스를 얻어 지금은 간헐적 1인가구로 살며 주거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 ,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 등 다수의 책을 썼다.

Interviewee 최고요

옥탑방부터 풀옵션 원룸까지. 다양한 집을 거치며 셀프 인테리어 이야기를 블로그에 담아 주목받았다. 큰 돈을 들여야만, 엄청난 노동력을 들여야만 집이 가치 있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스스로 집을 가꾸는 것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재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탠 크리에이티브TAN creative를 운영하고 있다. 책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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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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