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에 관한 영감은 어디서 얻을까?

by 사소한 질문들

🏠 건축가, 공간 디렉터, 건축 칼럼니스트, 공인중개사, 도시계획가, 노마드이자 크리에이터로 집을 둘러싼 일을 하는 9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집에 관한 책, 영화, 드라마, 유튜브’를 추천합니다.

1.
공간 디렉터 최고요의 추천,
유튜브 채널 ⟨The Local Project

요즘 즐겨 보는 콘텐츠는 세계 여러 지역의 집을 소개해주는 ⟨로컬 프로젝트⟩다. 예쁜 집이 정말정말 많이 나와서 틀어두고 시간을 보내곤 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호주, 뉴질랜드의 집도 자주 등장한다. 집을 설계한 건축가와 집주인이 나와서 인터뷰하기도 한다. 공간을 기획할 때도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

2.
건축 칼럼니스트 서윤영의 추천,
책 ⟪여인의 저택(Pavilion of Women)⟫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S. 벅의 소설로 19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15살에 결혼해서 아이들을 다 키워낸 주인공 우부인이 40살에 남편의 첩에게 안방을 내어준다. 그리고 자신은 시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가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19세기에 시아버지의 서재를 며느리가 차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여성의 서재’가 나오는 이야기는 이 소설밖에 못 봤다. 책을 읽다 보면 펄 벅이 우부인에 자신을 투영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3.
건축가 박창현의 추천,
영화 ⟨콜럼버스⟩

사경을 헤매는 건축학자 아버지 때문에 콜럼버스에 돌아온 남자, 약물 중독 어머니 때문에 콜럼버스를 떠나지 못하고 쭉 살고 있는 여자. 사정이 다른 둘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건축’에 관한 것이라서 콜럼버스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알아간다.

음악도, 내용도 좋았지만 영화의 구도 전반이 모더니즘 건축을 반영하듯 완벽한 앵글로 촬영되었다. 작은 도시에 모여 있는 오래된 모더니즘 건축물들을 밀도 있게 표현하고 담아냈다. 건물의 완성도나 형식이 균일하게 유지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는 모더니즘이 있었나?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4.
공인중개사 전명희의 추천,
일본 드라마 ⟨키치조지만이 살고 싶은 거리입니까?⟩

우리나라 버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다. 키치조지는 실제로 일본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 1위 혹은 상위권에 자주 랭크되는 곳인데, 이곳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쌍둥이 자매가 손님들에게 정말 필요한 집과 동네를 찾아주는 과정을 짤막한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황당하게도 쌍둥이 자매는 기치조지에서 살아보고자 부동산을 찾은 손님에게 매번 엉뚱한 동네를 추천한다. 부동산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집’이 아닌 ‘동네’에 초점을 맞춘 점, 실제 도쿄 곳곳의 장소와 풍경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점이 개인적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 좋은 집을 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떤 동네에서 살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당장이라도 내가 사는 동네를 산책해야만 할 것 같은 의욕이 불타오를지도 모른다.

5.
노마드 김은덕・백종민 부부의 추천,
책 ⟪행복의 지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어디서 시작되는지 궁금하던 찰나 만난 책이다.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에 만족하지 못해 다른 장소에서 살기를 꿈꾸지만 정작 그곳에 간다 해도 100%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건 지금, 여기를 사는 나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해서일지도. 책을 읽다 보면 스위스, 태국, 부탄 등 집의 모습, 사람들의 생활 양식, 기후 등을 통해 행복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만든다.

6.
노마드 김수향의 추천,
영화 ⟨노매드랜드⟩

나처럼 밴라이프로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영화다. 여행이 생활인 다른 밴라이퍼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고, 미국에서 시작된 밴라이프 커뮤니티에서 지향하는 것들과 리얼한 생활 모습을 보며 큰 울림을 느꼈다. 지금은 젊지만, 나이가 들면 밴라이프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추구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보는 내내 뭉클했다.

7.
도시계획가 최민아의 추천,
미국 드라마 ⟨와이 우먼 킬⟩

각각 다른 시간에 같은 집에 살게 된 세 커플이 등장하는 드라마다. 사랑의 완성을 꿈꾸는 커플들은 멋진 집으로 이사하며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거라 예상하지만, 그 사랑은 이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여자들이 원하는 사랑과 관계, 그리고 사랑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고급 맨션’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하나의 집, 시대별로 다른 인테리어’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8.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추천,
영화 ⟨홈리스⟩

2022년 9월 16일 개봉한 영화 ⟨홈리스⟩는 “보증금 사기를 당한 어린 부부가 운수 좋게 어떤 집에 머무르게 되며 벌어지는 입주극을 담았다”는 문장으로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단순히 주거 문제뿐 아니라 주거취약계층이 겪는 복지 사각지대가 여러 겹의 층으로 담겨 있어 놀랐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람객의 마음속엔 많은 질문이 떠돈다. 많은 장면이 현실 그 자체를 담고 있어 이 영화에 비하면 ⟨기생충⟩은 약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기 어려워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함께 시사회에 갔던 민달팽이들은 영화가 다루는 날것의 현실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9.
콘텐츠 매니저 주소은의 추천,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문장이 오감을 자극할 때의 희열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 건축학과를 갓 졸업한 주인공이 존경하는 건축가 무라이 선생의 건축설계사무소에 들어가고 국립현대도서관이라는 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책장에 꽂아둔 표지만 보아도 오래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삐걱 소리가 들리고, 차가운 회색벽의 냉기와 나무 바닥의 온기가 느껴지고, 여름 새벽 물안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길어진 생각의 꼬리를 늘어놓는 대신 발췌문을 덧붙인다.

잘 닦인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에는 낙엽송이, 바닥에는 노송나무가 가지런히 발라져 있고, 나무무늬가 예배당 가운데로 흐르고 있다. 노송나무 원목의 나뭇결은 석회와 찰흙과 풀가사리를 반죽한 하얀 회반죽벽 사이에 조용한 긴장감을 자아냈고 그 표면에 닿는 공기를 정화하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 바로 있는 로비를 곧장 빠져나가 막다른 예배당 문을 열자 강단이 있는 정면으로 내리막 경사가 뻗어 있다. 진입로에서 로비,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흐름에는 심리적 벽이 없었고, 고양이 배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선생님의 건축이 늘 그렇듯이 무언으로 사람을 받아들이는 친근한 공기가 떠돌았다.
–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71쪽

“손이 닿는 부분은 현관 손잡이 빼고는 나무가 좋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현관문은 안과 밖의 경계선이니까 금속을 쥐는 긴장감이 있는 편이 좋지. 밖에 있는 문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으면 실내가 밖으로 삐져나온 것 같아서 뭔가 쑥스러워.”
–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145쪽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건축이 잘됐다는 이야기야.” (…)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180쪽


Edit 금혜원, 이지영, 주소은 Graphic 이은호,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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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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