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알짜 경제경영서 골라내는 법

by 김얀

지난해 내가 읽은 최고의 경제경영서는 전직 포커 플레이어가 쓴 좋은 결정에 관한 책이었다. 저자는 ‘애니 듀크’라는 이름의 여성이고, 20년 경력의 전문 포커 플레이어였다. 대학에서 영어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인지심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다니던 그가 어떻게 홀연히 포커판에 앉게 되었는지 일단 작가의 배경 스토리부터 흥미진진하다.

합법적인 포커 플레이어라고 하지만, ‘베팅’이나 ‘블러핑’ 같은 단어에는 확실히 ‘Game’과 ‘Gambling’을 넘나드는 짜릿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인생 역시 베팅의 연속이다. 가령, ‘오늘 저녁 그 모임에 나갈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부터 ‘이 사람과 결혼을 할지 말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까지. ‘베팅’은 곧 ‘의사 결정’이고 우리는 오늘도 이런저런 ‘베팅’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통 포커는 한 게임에 2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그 안에는 대략 20번의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포커에선 내가 내린 결정에 따라 확실한 승패가 나온다. 따라서 인지심리학을 전공하던 학생이 ‘인생의 축약판’이라고도 볼 수 있는 포커 경기에 깊이 빠지게 된 것은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진정한 깨달음은 심리학 전공 책에 없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래서 초반부터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는 이 책을 지금까지 3번은 읽었고 주변에도 많이 권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아직도 외우지 못한다. 늘 핸드폰 검색창에 ‘애니 듀크’라는 이름을 검색해서 이 책을 찾는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 바로 책의 개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책 커버다.

국내에서 출간된 이 책의 첫 표지는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라는 긴 제목과 점잖은 커버 디자인이 반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결정보다는 선택이라는 단어가 더 쉽게 떠오른다. 그래서 항상 책 제목을 생각할 땐 ‘결정’ 대신 ‘선택’이라고 검색하는 바람에 한번에 결과를 찾지 못했고, 결국 애니 듀크라는 저자의 이름으로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차라리 ‘Thinking in Bets: Making smarter decisions when you don’t have all the facts’라는 원제처럼 ‘베팅’이나 ‘포커’를 큰 제목으로 했다면 이 책의 개성을 훨씬 살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커버 디자인만 보더라도 원서의 경우 강렬한 붉은색 표지에 카드 느낌의 세 개의 사각의 문이 있고, 그중 하나만 열려 있는 것으로 뭔가 이 책의 내용이 축약되어 있다. 그에 반해 국내 표지는 죄송한 말이지만 ‘노잼’ 그 자체다. 

경제경영서 읽는 법 중에서도 ‘목차 읽기’가 제일 중요한 이유

이쯤에서 한가지 질문이 생길 것 같다. 표지만 보고서는 고를 일이 절대 없을 것 같은 보석 같은 책을 나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책은 ‘책선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내게 권해준 책이었다. 그는 한창 책을 읽을 때는 1년에 최대 300권까지 읽던 비문학계 독서 대장으로 책값을 감당하지 못해 주로 중고 책 사이트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책을 고르는 루틴을 보면 알짜 책을 귀신같이 골라내는 비결을 알 수 있다. 

우선 두 권에 6,000원을 넘지 않는 책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매일 아침 1시간씩 책의 목차를 살피는 것이 그의 아침 루틴이었다. 일단, 그 정도의 가격이 나오려면 신간은 피해야 했고, 표지가 ‘노잼’일수록 가격이 저렴했다. 그런 책 중에도 반드시 보석은 있다는 일념으로 그는 매일같이 책의 목차와 머리말을 꼼꼼히 살펴 읽었다.

특히 경제경영서 같은 경우에는 목차에 그 책의 정수가 모여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책도 ‘노잼’인 표지만 넘기고 나면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목차에서부터 드러난다.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의 목차의 일부를 보자.

“좋은 결정은 경험에서 온다. 경험은 나쁜 결정을 내리는 데서 온다.” 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이 책에서는 실수한 경험 역시 다시 좋은 결정을 위한 소스로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목차 중에 ‘학교에서 배운 답변의 방식은 버려라’라는 말은 문장 하나로 통쾌하다.

대학원에서 박사까지 공부했던 작가가 ‘학교에서 배운 답변의 방식은 버려라’라고 말하니 더욱 말에 힘이 실린다. 비록 이런 작가의 매력과 개성은 표지에서는 알 수 없지만, 목차와 머리말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경제경영서 읽는 법 중에서도 ‘목차 읽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다. 단순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고만 해서, 온갖 추천사가 뒤덮인 표지라고 해서 너무 현혹되지 말자.

긴가민가 하다면 작가 이름 검색해보기

자, 그렇다면 최근에 발견한 비운의 북커버 책을 하나만 더 말해 보자. 산뜻한 민트색 커버의 ⟪아침 청소 30분⟫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시계가 그려진 커버 디자인만 보자면 ‘미라클 모닝’이나 ‘습관’의 중요성을 말하는 자기계발서로 보이기도 한다. 핑크색으로 적혀 있는 부제 ‘버리는 일부터 시작 하라’만 보면 ‘미니멀리즘’에 관한 생활 인테리어 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은이 이름이 무려 ‘고야마 노보루’인 것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경제경영서를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괴짜 사장 ‘고야마 노보루’를 모르긴 어렵다. ‘사장’들을 가르치는 ‘사장’으로 유명한 그는 ⟪하루 수업료 350만 원! 삼류 사장이 일류가 되는 40가지 비법⟫이라는 책부터 이미 10권 이상의 경영서가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 그 중에 한 권이라도 그의 책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표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침 청소 30분’이라는 책도 심심한 커버를 넘겨 목차만 읽어보더라도 아주 파격적인 포인트가 넘쳐 난다.

청소 용품 대여업이 회사의 중점 사업인 주식회사 ‘무사시노’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문제투성이 회사였다. 간부사원 중 3분의 1은 폭주족 출신이었고 자기 업무에 자부심을 느끼는 직원이 없었다. ‘문제 집단’이라고 불릴 정도의 작은 회사가 ‘아침 청소 30분’을 시작으로 일본 IBM과 공동으로 일본 경영 품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책에는 아침 청소 30분으로 어떻게 이런 변화를 만들었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만, 역시 심심한 표지와 제목으로만 보면 예상하기 힘들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누구에게나 최고의 하루가 있다⟫라는 책은 영업직에 종사하는 친구들에게 적극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물론 이 책 역시 앞의 ‘애니 듀크’의 책처럼 ‘조 지라드’라는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서 책 이름을 찾아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책에는 저자의 사진과 ‘세계 최고 판매왕’이라는 부제가 있다. 

저자 ‘조 지라드’는 12년 동안 세계 최고의 자동차 판매왕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된 전설적인 세일즈맨이다. 심지어는 책의 내용도 정말 좋다. 마케팅이나 세일즈라 하면 너무 상업적이라 인상이 먼저 찌푸려지던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고는 영업이라는 것이 참 다양한 분야가 섞여 있는 일이구나 깨달았을 정도였다. ‘How to sell anything to anybody’라는 원제처럼 ‘조 지라드’만의 영업 비밀 역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책 목차만 보고 판단이 어렵다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서 지금까지 출간된 책을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앞에 나온 애니 듀크, 고야마 노보루, 조 지라드만 검색해도 한국에 출간된 그들의 다른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세 명의 저자는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본업에서 인정 받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쓴 책이라면 어느 것을 읽어도 독특한 재미가 있다.  

요즘 서점에 가면 표지로 유혹당하기 쉽다. 그만큼 예쁘고 화려한, 눈에 띄는 표지로 어떻게든 독자들의 선택을 받으려는 책들이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작가의 매력도나 내용의 충실함을 반영하지 않은 표지로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비운의 경제경영서들이 많다. 

그러니 커버가 ‘노잼’이라도 그 안의 저자와 목차를 확인하고, ‘머리말’까지는 꼭 읽어보는 습관을 들이자. 시간을 써서 꼼꼼하게 고른 책이 정말로 나와 잘 맞는 책이었을 때 독서의 기쁨은 두 배가 된다. 경제경영서 읽는 법을 익히기 전에 잘 고르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직접 서점에 가서 누군가의 평가가 아닌 자신만의 베스트셀러를 찾아 보자. 중고 책 가게도 좋고 도서관도 좋다. 특히 도서관에서는 마음껏 대출을 실행 해 보자. 미국을 시작으로 무섭게 금리가 상승하는 시대에서 가장 안전한 대출은 역시 도서 대출 밖에 없을 테니까. 


Edit 이지현 Graphic 함영범 김예샘

– 해당 콘텐츠는 2022. 9. 29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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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얀

작가이자 경기도 부천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얀집'의 호스트. 쉽고 재미있는 재테크 입문서 《오늘부터 돈독하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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