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침대를 좋아하던 내가 집을 샀다

by 김얀

‘계획과 노력’. 이것은 마치 성공의 절대 법칙처럼 알려져 있지만, 인생의 큰 변화와 성공의 대부분은 어쩌면 ‘우연과 운’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자타 공인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도 “운이 좋았다.”라는 말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만 봐도 말이다.

38세, 비혼, 전업 작가이던 내가 경기도 부천이라는 연고도 없는 곳에 자가 주택을 소유하게 된 것 역시 우연과 운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계획과 노력은 그다음이었다.

“유 리브 온리 원스(You live only once).”

몇 년 전까지 모두가 외쳤던 ‘욜로(YOLO)’. 나는 그 선봉에 있던 사람이었다. 나의 첫 책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은 11개국을 떠돌며 만났던 남자들에 관해 쓴 여행기였고, 두 번째 책 역시 33살에 늦깎이 워홀러로 머물던 호주의 한 셰어하우스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의 결과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래란 저 멀리 있고 인생은 감히 예측할 수 없으므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살자 싶었다. 글을 쓰기에도 그런 삶이 좋았다. 그래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단출한 살림살이만 가진 채로 월세와 반전세, 친구 집과 애인 집을 전전했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도 결혼이고 청약이고 부동산 같은 단어는 내 관심사 밖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갚아야 하는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을 보곤 ‘편히 쉬기 위해 산 집 때문에 평생 쉬지 못하는 바보들’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부천에 시세 1억 원의 빌라를 사기 위해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을 좋아하던 내가 덜컥 집을 산 이유는 딱 하나였다. ‘돈’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내가 사는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 이것 역시 우연과 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에어비앤비의 이상한 호스트

2008년 8월 시작된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 쉽게 말하면 내가 사는 집의 남는 방을 숙박을 원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는 것.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 몇 가지 법적 이슈가 있긴 하지만 ‘외국인 도시 민박업’이라고 신고하면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남는 방에 오직 외국인 손님만 받는다는 것’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게 된 건 정말 우연과 운이 만들어 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친구 집에서 전세로 살던 때였는데, 그 친구가 바로 에어비앤비의 게임 체인저였다. 그는 직장을 다니며 부업으로 1만 원짜리 에어비앤비를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 덕분인지, 공급이 너무 부족해서였는지 몰라도 그의 에어비앤비는 금방 인기를 끌었고 그는 전투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늘 목돈이 필요했고 조그만 원룸 전세를 찾고 있던 나는 그의 쓰리룸 빌라에서 잠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잠잘 때도 돈 생각을 하는 돈 마니아에 극심한 짠돌이였던 그는 별 다른 수입 없이 도서관을 다니며 전업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아주 한심하게 생각했다. 집주인이라는 명목으로, 혹은 친구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잔소리 폭탄을 늘어놨는데 그중 하나는 이랬다.

“그러지 말고 에어비앤비라도 해서 용돈 좀 벌어라.”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명대사를 읊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1만 원 때문에 내 공간을 낯선 사람들에게 오픈한다고? 하지만 그의 잔소리와 함께 듣게 되는 다양한 게스트에 관한 이야기, 에어비앤비 사이트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느 날 덜컥 호스트 등록을 해 버렸다.

돈 욕심보단 호기심이 더 컸기에 방 하나 하룻밤 숙박료는 1만 원으로 정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여행자였을 때를 생각하며 안전과 청결을 특히 신경 썼다. 호주 워홀러 시절, 특급 호텔 하우스키퍼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게스트룸의 수준을 호텔 기준으로 맞췄다. 시간이 많을 때니 처음 오는 손님은 역까지 픽업해서 짐도 들어주고, 웬만하면 아침 식사도 준비했다. (나의 아침 식사는 계란 토스트인데 내 것 만들 때 게스트 것까지 하나 더 만들었을 뿐이다.) 말이 잘 통하는 손님이면 내 책까지 선물로 줬다.

“만 원 받아서 대체 뭐가 남아요?” 하던 게스트들은 결국 후기로 보답했다. 그 덕분에 나는 3개월 만에 슈퍼 호스트가 됐고, 밀려오는 예약으로 결국 내 방까지 내었다. 방 세 개는 모두 각국에서 온 게스트로 찼다.

△ 나의 에어비앤비 페이지에 올라간 게스트의 후기는 100건이 넘는다. 덕분에 나는 3개월 만에 슈퍼호스트가 됐다. 사진은 게스트 중 한 분이 남긴 메모. (사진: 작가 제공)

에어비앤비의 다양한 게스트 

미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캐나다, 호주, 프랑스, 영국 등… 지금까지 우리 집을 다녀간 게스트들의 국적이다. 각국에서 다양한 이유로 부천을 방문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외국인들의 한국 방문 목적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관광을 위해 방문한 단기 게스트. 보통 K팝과 K컬처를 좋아하는 외국인들로,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 사인회나 콘서트에 맞춰 관광을 하기 위해 온다. 한국 방문이 처음이 아닌 경우가 많고, 웬만한 한국 드라마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를 “Unnie(언니)”라고 부른다. 귀국일이 되면 아이돌 굿즈와 K뷰티로 캐리어가 터지기 일보 직전. 드라마에서 많이 봤다는 떡볶이와 짜장면을 시켜주면 아주 좋아한다.

둘째, 워킹 홀리데이나 교환 학생 등의 이유로 6개월 이상 한국에 머무는 장기 게스트. 이들은 거의 반 한국인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말을 매우 잘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한 번 묵으면 반년 이상씩 있기 때문에 청소나 에어비앤비 스케줄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적다. 대신 한국살이가 처음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와줘야 하는 일이 많다.

셋째, 성형 수술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한국 의료 수준의 우수성은 이미 여러 나라에 알려져 있다. 특히 태국에서는 몇 년 전 방영된 방송 프로그램 <렛미인*>이 인기를 끌어 한국에 성형 관광을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Let 美人>.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한 한국의 성형 리얼리티쇼. 성형을 조장한다는 논란이 있어 2015년 6월, 5기 방송을 마지막으로 종영됐다.

실제로 홍콩, 대만, 태국, 러시아에서 성형 수술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가 우리 집에 온 경우가 있었다. 수술 전날과 당일은 성형외과가 밀집해 있는 강남역, 압구정역 등 병원 근처 호텔에 있다가 비용 부담 때문에 나머지 일정 동안 우리 집을 찾는다. 어차피 수술하고 실밥을 빼기까지 일주일, 길게는 2주 동안 부은 얼굴 때문에 집 안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숙소가 서울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게 이 친구들의 설명. 성형 게스트들은 주로 방에만 조용히 있다 가고, 이번에 한 수술이 마음에 들면 다음번에는 또 다른 곳을 성형하러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넷째, 교포와 이민자들. 한국에 있는 친척과 가족,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오는 부류. 이들은 대체로 매일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온다. 한국 문화와 서양 문화에 둘 다 익숙하고 매너가 좋다. 미국이나 영국 등 팁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온 손님들은 체크아웃할 때 팁을 놓고 가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의 에어비앤비 

지금처럼 해외 여행길이 막힌 코로나19 시대의 에어비앤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내 경우는 팬데믹 전부터 이미 장기로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고정 게스트들이 생겨버려 에어비앤비를 더 이상 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운영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에어비앤비는 여전히 순항 중이라 한다. 

한국 에어비앤비의 게스트 비율은 통상적으로 외국인 50%, 내국인 50%라고 한다. 에어비앤비를 찾는 내국인의 방문 목적 역시 실로 다양하다.

  • 이사 날짜나 인테리어 공사 등으로 인해 1~2주 정도 묵을 곳이 필요한 경우
  •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병원이나 학교 등에 실습 나가는 학생들
  • 종합 병원이나 요양 병원에 입원한 가족을 간병하러 오는 사람들
  • 면접이나 자격증 시험, 콘서트 등 서울에 일이 있어 며칠 묵는 지방 사람들
  • 부천의 경우에는 부천 국제 영화제 기간 관계자나 관광객들 

물론 코로나로 현재는 관광과 실습생 게스트의 비율이 줄었다. 한편 그 빈자리를 국내에 입국하는 자가 격리자나 재택근무자들이 채워주고 있는 게 요즘의 에어비앤비 풍경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내가 배운 것

집을 오픈하고 살아보니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집을 통해 돈이 돌아가는 방식을 배웠다. 돈은 사람과 함께 움직인다. 고로 돈이 움직이는 방식도, 돈을 버는 방법도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만 원짜리 에어비앤비를 통해 배웠다. 

세입자임에도 집주인의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워런 버핏이 그렇게 강조했던 ‘잠을 자도 돈이 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에어비앤비는 게스트가 체크인을 할 때마다 정산이 된다. 덕분에 현금 흐름의 힘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동산 관련 법을 공부하고, 관련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엇보다 내 소유의 집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돈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내 소유의 집이 더 필요합니다. 언제 집값을 올려줘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언제 이사 가야 할지 몰라 인생 계획을 확실히 세우지 못하는 건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니까요. 저는 부동산 투자를 한 게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샀다고 봅니다. – 정은길, 《집 블레스 유》

누군가는 지금도 나에게 왜 아파트도 아닌 빌라 샀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 작은 빌라는 이미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천의 평범한 주택가, 남들 눈에는 특별할 것 없는 낡은 빌라가 그래서 내 눈에는 더욱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 안에서 나는 지금도 나의 귀여운 하우스 메이트들과 함께 다양한 꿈을 꾸고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과 운을 언제든 기쁘게 맞을 준비를 하면서.

나의 머니 💙 하우스에서 김얀.


Edit 손현 Graphic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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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얀

작가이자 경기도 부천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얀집'의 호스트. 쉽고 재미있는 재테크 입문서 《오늘부터 돈독하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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